네가 뭘 좋아할지 몰라 '종합선물세트'로 준비했어_전국 정원 여행_이설아

2023.11.30 | 조회 1.56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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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요즘 지인들과의 만남은 주로 자연에서 이뤄진다. 올해 내가 전국으로 정원 여행을 다니는 걸 아는 친구들은 자신이 알고 있는 정원을 추천해 주기도 하고, ‘여기 함께 갈까?’라며 만남의 장소를 정원으로 제안하기도 한다. 4월엔 서울 경기권에 있는 정원을 세 곳이나 둘러보았다. 정원 여행을 다니면서 생긴 가장 큰 변화는 집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기분이 좋아진다는 사실이다. 점점 더 답답하게 느껴지는 콘크리트 상자를 벗어나 갈 곳이 있다는 사실, 시야를 가두는 빌딩 숲을 벗어나 꽤 먼 곳까지 뚫려있어 눈을 시원하게 해주는 교외로 달리는 순간은 매번 나를 흥분시킨다.

이국적인 느낌의 제이드가든 입구
이국적인 느낌의 제이드가든 입구

신록이 아름답게 번져가는 4월 초, 춘천에 있는 제이드가든을 방문했다. 제이드가든은 한화 솔루션에서 운영하는 사립 수목원으로 sns를 통해 이따금 접해본 곳이었다. 다녀온 이들이 올리는 사진은 거의 비슷비슷해서 유럽의 작은 마을을 연상시키는 붉은 벽돌 건물과 담쟁이덩굴, 이국적인 침엽수가 두 줄로 호위하는 느낌을 주는 입구 사진이 가장 많았는데 특별하고 아름다운 이미지를 찾아다니는 요즘 세대 감성에 최적화된 곳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 이유로 제이드가든을 정원 여행 리스트에 올려두지 않았다. 내가 보고 싶은 정원은 포토존이 넘치는 장식적인 정원이 아닌 생명력 가득한 생태계로서의 정원이었기 때문이다.

모처럼 만나게 된 친구들이 이 아름다운 봄날 이왕이면 좋은 데서 만나자며 제이드가든을 추천하길래 오케이 했다. 혼자 찾아갈 마음은 없지만, 친구들의 마음을 들뜨게 한곳을 딱히 거절할 이유도 없어 그러자고 했다. 정원 공부를 위한 진지한 자세 말고 친구들과 콧바람이나 쐬고 오자는 마음으로 춘천으로 나섰다.

체스판 모양으로 만들어진 장식 정원
체스판 모양으로 만들어진 장식 정원

sns 사진으로 익숙한 제이드가든 입구에 들어서는데 어라? 나도 모르게 기분이 들뜬다. 유럽의 작은 마을 로 향할 것 같은 문을 지나니 파란 하늘과 싱그러운 연둣빛 나무들, 그 아래 눈길을 잡아 끄는 장식 정원이 펼쳐진다. ...이래서 사람들이 이곳을 좋아하는구나. 예쁘게 꾸며진 정원 입구 여기저기를 보자니 나도 모르게 카메라 셔터를 누르게 된다. 그간 다양한 수종의 보존과 연구에 무게를 둔 점잖은 수목원을 주로 다니다 대중의 눈을 사로잡으면서도 정원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는 이런 정원을 마주하니 다양한 형태의 정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멀하면서도 장식적인 정원. 봄이라 더없이 화려하다.
포멀하면서도 장식적인 정원. 봄이라 더없이 화려하다.

제이드가든은 생각보다 규모가 크고 여러 테마로 다양하게 조성한 정원이었다. 163500부지에 자연 지형을 가능한 원형대로 유지한 채 조성된 24개의 테마 정원은 앙리스가든, 수생식물원, 꽃물결원, 나무놀이집, 피크닉 가든, 윈터 가든, 은행나무 미로원, 고산식물원, 이끼 정원, 키친 가든, 이탈리안 웨딩가든, 영국식 보더가든, 재배온실 등으로 모두가 기대 이상의 아름다움과 완성도가 있었다. 장식적인 요소로 꾸며진 정원 초입을 지나 점점 자연의 아름다움을 폭넓게 풀어내는 코스에 들어서자 나도 모르게 스스륵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다. 처음 보는 색감과 우아한 자태의 나무 앞에선 한참을 서 있기도 했고, 정원을 다채롭게 즐기도록 여러 요소가 가미된 공간을 볼 때니 ~ 좋네라는 탄성이 나오기도 했다.

정원에 온실이 빠지면 섭섭하지. 적당한 크기로 아름답게 자리잡은 온실
정원에 온실이 빠지면 섭섭하지. 적당한 크기로 아름답게 자리잡은 온실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할만한 공간. 나무로 만들어진 놀이터 그 아래는 온통 튤립 꽃밭이다.
어린이들이 무척 좋아할만한 공간. 나무로 만들어진 놀이터 그 아래는 온통 튤립 꽃밭이다.

제이드 가든에서 제일 좋았던 곳은 이끼 정원이었다. 나는 3월에 찾아갔던 제주 베케에서 이끼의 아름다움에 눈을 떴다. 뜨거운 태양 아래 비비드한 컬러로 반짝이는 나무와 꽃들에 행복해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그늘 숲으로 들어서다 이끼 정원과 만났다. 갑자기 태곳적 신비를 간직한 원시림으로 들어선 것 같은 낯설고도 신비로운 시각적 충격을 받았다. 시야를 가득 채운 이 형광빛 연두가 너무 낯설어 잠시 주춤했다가 천천히 그 사이를 걷는데 신기하게도 마음이 평화로왔다. 엄마의 자궁 속에서 아무 부담 없이 노니는 어린아이의 상태가 된 것처럼 몸과 마음의 긴장이 확 풀어지는 느낌이랄까. 아주 오래전 머물던 곳으로 돌아간 느낌 같기도, 나의 일부와 만난 느낌 같기도 했다.

다양한 이끼로 뒤덮혀있던 돌, 나무, 지표면
다양한 이끼로 뒤덮혀있던 돌, 나무, 지표면
그늘진 골짜기 주변이 모두 눈부신 이끼정원이다. 꽤 긴 구간이다.
그늘진 골짜기 주변이 모두 눈부신 이끼정원이다. 꽤 긴 구간이다.

이끼 정원을 빠져나와 숲의 오르막길을 걸어 올라가면 정원 전체를 조망할 만큼 높은 지점에 잘 꾸며진 휴식공간이 나타난다. 여유 있게 식재된 나무와 벤치가 건네는 한가롭고 평화로운 휴게 공간을 보는데 산 하나를 이용해 이토록 다채로운 정원을 만들었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놀라게 된다. 정원의 규모가 클수록 다양한 장면을 구상하고 그 모든 장면이 어떻게 하나의 이야기로 엮일지 생각하며 정원을 디자인하는 관점이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면에서 제이드가든은 다채로운 간식이 한상자 안에 들어있는 종합선물세트를 떠올리게 한다. 역시 정원에서도 발휘되는 대기업의 맛이란!

높은 산 꼭대기에 이런 평화로운 공간이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높은 산 꼭대기에 이런 평화로운 공간이 있을거라 생각하지 못했다.
자작나무와 붉은 벽돌, 오솔길이 잘 어우러진다.
자작나무와 붉은 벽돌, 오솔길이 잘 어우러진다.
가만히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연못과 분수
가만히 앉아서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연못과 분수

이젠 어디를 가나 단순 관람객이 아닌 직접 정원을 가꿀 초보 가드너로서 둘러보다 보니 쉽게 누리는 모든 자연 공간이 엄청난 시간과 자본, 노력으로 만들어졌다는 사실이 읽혀 마냥 신나지만은 않은 나, .. 대기업도 이 정원을 조성하는데 10년의 세월이 넘게 걸렸는데, 나같은 초보 가드너는 얼마나 오랜 시간을 쏟아부어야 비로소 이야기를 품은 정원을 갖게 되게 될까. 구석구석 감탄하며 둘러보았으면서 새카맣고 자글자글해진 얼굴로 정원을 거닐고 있을 내 모습이 떠올라 한숨과 웃음이 함께 터져나온다.

 

파란 하늘과 4월의 신록이 다했던 날
파란 하늘과 4월의 신록이 다했던 날

정상에서 내려오는 길은 또 다른 감성으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 각각 다른 풍경을 보면서 자연을 맞이하도록 고안된 코스를 내려오며 제이든가든은 아무리 봐도 참 똑똑하고 멋진 정원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입구의 화려한 볼거리를 시작으로 공간의 안으로 들어갈수록 나무의 건강한 아름다움, 숲의 깊이감, 대자연의 웅장함을 고루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된 정원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진다. 직접 경험해보지도 않고 몇몇 사진에 인스타용 정원이라 편견을 가졌던 내가 미안해진다. 자연과 정원의 아름다움에 한껏 취해보고 싶다면 사계절 언제가도 분명 아름다울 제이드가든이 좋은 선택이 될 것 같다.

 

 

 

*글쓴이  이설아

작가, 글쓰기 공동체 <다정한 우주>리더, 정원이 있는 시골 민박을 준비하는 초보 가드너. 저서로는 <가족의 탄생>,<가족의 온도>,<모두의 입양>,<돌봄과 작업/공저>,<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공저>가 있다.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juhamom0902/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11213142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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