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에서서

한 장의 사진_사이에 서서

우리는 똑같은 이미지를 보고도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2024.08.08 | 조회 85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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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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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나 큰 반향을 일으킨 사진이 또 있었던가?

사진: Evan Vucci (AP NEWS)
사진: Evan Vucci (AP NEWS)

지난 7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유세 중 피격 사건 직후, 현장에 있던 기자들이 셔터를 바삐 눌렀다. 사진들은 핫스팟에 연결된 카메라에서 신문사 데스크로 전송되었다. 그 중 한 장의 사진은 대선을 약 100일 앞둔 시점, 후보 교체의 기폭제가 되었다.

누군가는 이 사진이 조작되었다고 믿고 싶어한다.

또 누군가는 이 사진을 보며 특정 후보에 대한 맹렬한 지지를 다짐한다. 

그리고 누군가는, 이 사진을 보며 자신의 지지를 철회한다.

부탁 받고 게재하는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어떻게든 피하고 싶은 주제가 있었다. 특히나 내가 살고 있는 미국의 정치 상황에 대한 분석을 담은 글을 써달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면,  대선 흐름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갈 때면 “제가 잘 몰라서요.” 라며 말을 흐렸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에도 망설여진다. 과연, 이 글을 끝까지 쓸 수 있을까, 쓰고 나면 과연 ‘발행하기’ 버튼을 누를 수 있을까, 이 글은 어떻게 읽힐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서라도, 일단 글을 완성해보기로 한다.

7월 중순 미국을 떠들썩하게 한 이 사진을 찍은 사람은 AP통신의 에번 부치 기자다. 수도 워싱턴을 중심으로 스포츠와 미국의 군사, 정치 기자로 활동하고 있으며 조지 플루이드 사건 이후 일어난 시위현장을 담은 사진으로 2021년 속보 부문 퓰리처 상을 받은 적이 있다. 피격 사건 사진이 화제가 된 이후, 그는 다수의 매체와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표지를 장식하며 많은 사람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게 된 계기가 된 타임(TIME) 지의 인터뷰를 읽어보기로 했다. 

아마도 해당 기사를 읽는 사람들이 가장 궁금했던 질문은 “어떻게 그 사진을 찍을 수 있었는가?” 가 아닐까. “그저 운이 좋았다” 라는 대답 대신 그는 그동안 쌓아온 현장 경험에 대해 언급한다. 

이라크 전을 포함한 전쟁 현장에 있었기에 불꽃놀이인지, 총격인지 모를 소리가 났을 때 침착할 수 있었다며, 본능적으로 이런 상황에서 본인의 피사체인 트럼프 전 대통령과 경호팀이 어떤 동선을 취할지를 예상할 수 있었다고 말을 이어갔다.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파악하는 것보다는 가능한 모든 각도에서, 더 많은 사진을 찍으려 애썼으며, 어디서 빛이 들어오는지, 구도가 어떤지에만 집중하며 셔터를 눌렀을 뿐이라고. 그러다가 트럼프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발견했다. 수없이 눌러댄 셔터 중 “뉴스 스토리텔링 이미지” 하나는 건졌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는 말로 당시의 상황을 전했다.

유세장 피격 사건이 일어난 것은 7월 13일이다.

에번 부치의 타임 지 인터뷰 기사는 7월 15일에 실렸고,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를 사퇴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7월 21일이다. 

그의 타임 지 인터뷰를 읽어내려가다 신기하다 느낀 점은, 마치 이후에 일어날 상황을 예상이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사진에 대한 대중의 반응’에 대해 언급한 부분이다. 인터뷰 당시 실제로 이렇게 발화 했을 것 같진 않지만, 정리 된 다음 대목은 그가 두번째로 퓰리처 상을 받는다면 했을 법한 수상 소감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다.

사진의 멋진 점 중 하나는 두 사람이 똑같은 이미지를 보고도 완전히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진기자로서 제 임무는 제 눈을 통해 세상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최선을 다해 전문적으로, 그리고 최대한 공정하게 하려고 노력합니다. 사람들이 이미지를 어떻게 보고, 어떻게 마케팅하고, 자신의 관점에서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제 관심사가 아닙니다. 제 관심사는 그 사건이 일어났을 때, 제가 미국 역사에서 중요한 순간을 잘 보여줬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에반 부치, Time 지 인터뷰, 2024년 7월 15일

그의 인터뷰를 읽기 전까지, 사진이 찍힌 상황에 대해 나름의 해석을 하고 있었음을 고백한다. 퓰리처 상을 받은 사진을 보며, 시위 현장에서 찍힌 직각으로 세워진 차 옆의 시위대 사진을 보며 내 나름의 해석을 굳히기도 했다. 이 사람은, 어떤 편에 서 있는 사람이구나, 라고 말이다. 


피격 사건이 일어난 다음 주, 백악관 근처 도로에서는 평소보다 더 자주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가끔 산책을 나가는 워싱턴 모뉴먼트 옆 기념품 판매상들은 재빠르게 사진을 프린트 한 티셔츠를 입고 있었다. 기념품 트럭엔 한쪽 후보자의 이름이 2024년 미국 대통령이라는 문구와 함께 적혀있었다. 

기자는 ‘일어난 일을 알린다’는 목적에 충실한 결과물을 내놓았을 뿐이라고 설명했지만, 사람들은 이 이미지를 활용해 각자의 스토리를 만들어냈고, '나와 같은 이야기를 믿고 있을법한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사람들이 갖고 있던 마음 속의 이야기를 증명해 주는 그 순간의 기록, 그 기록으로 인해 누군가는 계속 달려갈 힘을 얻었고, 또 누군가에게는 우려의 목소리가 더해졌다. 끝까지 완주하겠다고 다짐해왔던 바이든 대통령의 사퇴선언은, 아마도 자신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져가고 있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게 되는 여러 지표들 때문이 아니었을까. 

이 이야기가 불러일으킨 새로운 구도가 얼마나 지속될지, 아직은 모르겠다. 앞으로 세 달여 동안, 각각의 후보들은, 또 캠프를 채우고 있는 사람들은 계속해서 움직일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또 다른 스토리텔링의 순간이 포착될지, 과연 다음 순간 셔터를 누르는 이는 세상의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그 역시도 최선을 다해 공정하려 노력하는 마음을 갖고 있을지, 그리고 우리는 포착된 순간을 보며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진다. 


[사이에 서서] 황진영

미국 Washington DC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와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를 썼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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