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토닥이는 것들에 대하여_슬기로운 고딩생활_은호랑이

2022.06.08 | 조회 80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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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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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닥 토닥.

누군가가 잠에 드는 것을 돕는 일은 꽤나 생경하면서 동시에 굉장히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졸리지 않은 상태에서 억지로 누워 자는 척을 하는 것도 힘든 일일뿐더러, 반대로 자신이 졸린 상태에서 옆에 있는 누군가를 먼저 재워야 하는 일도 고역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만 4년 차 ‘토닥이’. 아이가 태어난 후, 엄마가 없으면 울기만 하고 잠을 자지 않는다는 이유로 아이를 토닥이는 일은 거의 엄마인 나의 몫이었다. 어젯밤도 역시나 아이의 가슴을 토닥이다가, 토닥이다가, 또 토닥이다가 잠시 생각해보았다

 

규칙적인 리듬감의 토닥임.

나는 신참 ‘토닥이’로서 나의 손놀림을 아이의 호흡에 맞춰야 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보다 더 천천히 두드려 긴 호흡으로 연결해 잠에 들게 하는 것인지 고민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만 4년 동안 깨달은 바로는 아이는 단지 규칙적인 두들김에 금세 편안함을 느껴 단잠에 빠진다는 것이었다.

 

나의 반복되는 하루의 일과 그리고 일 년.

교사가 되어 매일 아침 일어나는 일은, 내가 교사가 된 것을 가장 후회하게 만드는 점 일일만큼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몸이 익숙해지는 일은 말 그대로 시간 문제였다. 어느새 오전 8시가 되면 목이 잠기기는커녕 빈속에도 쩌렁쩌렁 복식 호흡을 하며 수업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사실 나의 하루는 정말이지 빽빽하여 학교에서 휴대폰을 만지고 있는 시간을 합쳐도 채 20분이 되지 못할 것이다. 육아 시간을 쓰고 남들보다 이른 퇴근을 하려다 보니, 학교에 머무는 동안 수업은 쉼 없이 이어진다.

50분 밖에 없는 공강 시간엔 매 차시 수업의 핸드아웃과 PPT를 만든다. 영어 교사의 숙명이 참 그렇다. 모국어도 아닌 외국어를 내가 뭐 얼마나 더 이해한다고 설명하는지 어이없기도 하고, 독해와 문법 위주로 수업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우습기도 하다. 나름 열심히 교과서를 재구성하여 만든 매일의 핸드아웃은 수업 시간이 끝나자마자 바로 걷는다. 몇 년 전부터 그래오고 있다. ‘오늘 수업은 좀 피곤하니 쉬어볼까?’ 하는 마음을 원천봉쇄하기 위함이다.

매 차시 핸드아웃에 내가 반드시 넣는 것이 있다면 바로 본문 내용과 관련해 새로 알게 된 사실이나 자신의 소감에 대해 자유롭게 쓰는 칸이다. 이 칸을 읽어가며 확인 스탬프 찍는 시간은 내가 학교에 있는 시간 중 가장 천천히 흘렀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시간이다. 아이들은 이곳에 질문을 남기기도 하고, 자기 나름대로 배운 내용을 요약하기도 하고, 나에게 하고 싶은 말을 솔직하게 남기기도 한다. 그 코멘트가 반갑고 고마워 결국 모두에게 짤막한 편지를 쓰게 된다. 학교에서의 나의 시간은 모두 그렇게 쓰여지고 있다. 읽고 쓰며, 짧은 수업 시간 내에 주고받지 못한 크고 작은 감정들을 서로에게 슬쩍 보여주며 말이다.

 

삶을 토닥임.

그야말로 정신없는 하루가 분주히도 흘러간다. ‘To do list’에 적힌 것들을 모두 지워낼 쯤에는 언제나 해야 할 일들이 또 쌓여있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꽉 찬 하루가 만들어내는 삶의 일정한 리듬감이 이상하게 나를 무척이나 살아있다고 느끼게도 한다. 오히려 농밀한 하루가 해먹같이 늘어지는 방학보다 편안하기까지 하다. 밀도 높은 교사로서의 나의 일과야말로 나의 삶을 토닥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오늘밤도 아이를 토닥이면서 나를 토닥여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이 더 있는지 생각해본다. 토닥일 땐 다른 생각에 빠지기 딱 좋다.

 

(개인 사정으로 발행이 하루 늦었습니다. 양해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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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소개 - 은호랑이

서울 현직 고등학교 영어교사로 고딩들과 소통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학생들에게 언제나 accessible한 존재이고자 노력합니다.

페이스북 - http://facebook.com/eunho.kim.77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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