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아를 하다 보면, 물론 육아가 아니라 바쁜 하루를 보내다 보면 모두 마찬가지로, 끼니를 거르기 십상이다. 분주히 몸을 움직이다 보면 어느 순간 화가 치민다.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도대체 왜 내 밥은 못 챙기는 거야? 아기 맘마만 챙기다가 나는 굶어 죽겠어.’하고 말이다. 나는 특히 아침에 경고등이 깜빡거리는 편이다. 가장 배가 고픈 시간이다.
아기와 분리 수면에 실패한 나는 자연스럽게 남편과 분리되어 아기와 룸메이트가 되었다. 나의 룸메이트는 나의 허벅지에, 나의 뱃살에 따끈해진 손발을 올리고 곤히 잔다. 아기가 마침내 깊은 잠에 빠진 듯하여 남편이 있는 침실로 넘어가려는 순간, 동물적 감각의 아기는 기가 막히게 일어나 침대 입구로 따라 나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의 밤 시간은 길고 길어졌다.
아기의 일과에 맞춰 나도 이른 시간에 저녁을 먹게 되었고, 아기의 기상 시간인 오전 7시만 되면 동글동글한 아기가 내 얼굴을 빤히 바라보는 시선에 눈을 뜨게 되었다. 다시 눈을 질끈 감고 자고 싶다고 생각할 때 아기는 말간 눈망울에 미소 띤 표정, 잘 자고 일어난 발그스름한 볼을 하고, 오통통한 손바닥으로 내 얼굴을 챡챡 친다. 맘마를 달라는 신호일 것이다. 그대로 누워 수유를 하면, 아기는 내 가슴팍에 꼭 붙어 세상을 다 가진 표정으로 나와 눈을 마주치며 웃는다.
행복감도 잠시, 수유를 하고 나면 더 배가 고프다. 침실에서 자고 있는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아기가 먹을 분유를 더 가져다 달라고 요청한다. 남편은 눈을 비비며 젖병을 들고 아기방으로 들어온다. 우리 셋은 간단히(아기의 주도로 주로 역동적이며 신나게) 아침 인사를 하고, 나는 침대에서 벗어나 주방으로 향한다. 끼니를 제대로 먹지 않았을 때 오는 타격을 막기 위한 사전 방어 작전 출동이다.
주방의 창가에는 말랑하게 후숙된 아보카도, 검은 반점이 곳곳에 보이는 적당히 달콤할 바나나가 보인다. 냉장고에는 꾸덕한 그릭 요거트가 있고, 유통기한이 아슬아슬한 우유가 있다. 이 네 개를 조합하면 부드럽고도 행복한 하루의 시작이 가능하다. 아보카도 하나, 바나나 한 개 반, 그릭 요거트 한 스푼, 그리고 우유와 얼음을 넣고 갈면 달콤한 아보카도 바나나 스무디가 완성이다. (아보카도 바나나 스무디)
가끔은 쟁여둔 양배추와 냉장고 속 야채들을 털어 곁들이기도 한다. 실리콘 찜기에 양배추, 가지, 애호박처럼 냉장고에 상주하는 채소들을 넣고 5분간 전자레인지에 돌린다. 여기에 맛있는 올리브유, 소금, 후추만 뿌리면 이것도 별미다. 육식파 남편을 위해 닭다리살에 올리브유를 뿌리고, 간 마늘, 소금, 후추를 넣어 에어프라이어에 15분간 구워 함께 먹어도 좋다(중간에 대파를 넣어 구워도 풍미가 좋다). (닭다리살 구이와 야채찜)
느지막이 일어나던 늦잠쟁이 우리 부부는, 당연히 아침이라곤 챙겨 먹어본 적 없던 우리 부부는, 아기가 태어난 후부터 종달새가 되어 아침밥을 먹는다. 간단하게 통밀빵에 크림치즈를 발라, 방울 토마토를 올려 먹는 방법도 있다. 방울 토마토는 전자레인지용 용기에 담아 먹을 만큼 꺼내 반을 쪼개 넣고, 올리브유를 넉넉하게 넣고, 페퍼론치노, 소금, 후추를 뿌려 전자레인지에 4~5분 돌린다(여기에 마늘이나 바질을 넣으면 더 근사해진다). (크림치즈 방울 토마토 오픈 토스트)
사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기를 재우고 남편과 아기 옆자리 지키는 것을 바톤터치 한 뒤 주방에 숨어든 상태다. 애매하게 출출해 대충 배를 채우고 내일 먹을 닭곰탕을 끓였다. 유통기한이 내일까지인 닭고기에 대파와 마늘을 잔뜩 넣고, 약간의 간장과 액젓만 넣고 팔팔 끓였다. (닭곰탕)
사실 이 글은 끼니를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육아를 하고 있을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바치는 글이다. 조금이라도 쉽고 간단하게. 그러면서 속도 편하고 입도 즐거운 음식을 먹으며 육아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멋진 남편이라면 이 정도 요리는 금방 아내에게 차려줄 수도 있을 테니 남편들에게도 유용할 수 있다.
배고프면 화가 나서 슬픈, 엄마라는 생명체는 오늘도 뚝딱뚝딱 요리를 한다. 나의 배고픔을 달래기 위해, 괜한 화를 내지 않을 나의 하루를 위해, 나는 야밤에 닭곰탕을 끓였다.
* 글쓴이 - 보배
'세상의 모든 문화'에서 <탱고에 바나나>를 연재하다가 23년 12월 출산 후 <육아에 바나나>로 돌아왔습니다. 의지하고 싶은 가족 품에 있다가 지켜주고 싶은 가족이 생긴 요즘입니다. 공저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세상의 모든 청년>에 참여했습니다.
* 작가의 브런치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