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그렇게 다니면 무섭지 않아?
제주 오름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서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다. ‘오름’이라는 곳이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보니 사람들이 오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떠올리는 공통의 이미지가 아직 만들어져 있지 않다. 한라산이라는 말을 들으면 백록담 사진도 생각나고 귤, 귤밭, 한라봉도 생각난다. 귤밭을 둘러싼 제주돌담도 떠오르고 바다를 배경으로 한 빠알간 동백꽃과 돌하루방까지 선명한 이미지가 파노라마처럼 머리 속에 펼쳐진다. 그래서 한라산에 대해 이야기 할 때는 주고 받고 대화가 되고 화제가 풍성하다. 그러나 제주 오름은 사람들에게 상당히 낯설다. ‘화산 활동 시 만들어진 지형이다’, ‘경치가 좋고 공기도 좋고 조용한 산인데 높지는 않다’는 식으로 설명하다보니, 야트막한 산, 그런데 동네 뒷산은 아니고 뭔가 야생의 느낌이 나는 인적이 드문 산을 상상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그래서 ‘30개 정도 오름을 거의 혼자 올랐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질문은 ‘위험하지는 않아?’, ‘혼자 다니면 무섭지 않아?’ 였다.
꼭 제주 오름이 아니더라도 혼자 산에 갔다가 조난을 당하면 곤란하니 등산은 혼자 다니지 않는게 좋다고들 한다. 또 가끔 나오는, 홀로 등산로를 걷다가 범죄 표적이 된 사람들의 뉴스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나도 그 이야기를 들으며 무척 공감했다. 오름에 다니면서 나도 비슷한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상대방의 걱정을 덜어주기 위해 꽤나 진지하게 대답을 하곤 했다. 방문객이 어느 정도 있는 알려진 오름 위주로 다니니 괜찮다, 오름 관리 단체가 있어서 탐방로가 잘 정돈되어 있어 위험하지 않더라 등의 내용이었다.
오름 탐방 초기에는 이 말이 얼추 맞았다. 용눈이 오름이나 금오름처럼 관광객이 많은 유명 오름이거나 아부오름이나 당오름처럼 동네 주민들이 산책 삼아 즐겨 찾는 오름 위주로 갔기 때문에 항상 나 말고도 탐방객이 많았다. 관광지 특유의 약간의 흥분감과 기대감이 섞인 들뜬 분위기 혹은 동네 주민들이 가족들끼리 혹은 반려견들과 함께 산책을 하는 편안한 분위기 속에서 나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그런데 방문하는 오름의 갯수가 늘어나면서 그 분위기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오름을 오르며 처음으로 무척 낙담 했던 날은 정물 오름을 방문한 날이었다. 제주에는 300 개가 넘는 오름이 있고 나는 그 중 30개의 오름을 정상까지 올랐다. 그 외 정상에는 오르지 못하고 오름 입구나 탐방로 초입까지만 갔다가 돌아온 오름도 몇 개 있는데 정물 오름이 그 중 하나다.
정물 오름은 내가 오름의 존재를 처음 알고 느끼게 된 계기 중 하나였다. 난생 처음 제주를 방문 하고 흥분된 마음으로 제주 곳곳을 차로 누비고 다니던 시절이었다. 제주 동쪽에서 출발해서 서쪽을 향해 달리다 보니 지대가 점점 높아졌다. 항상 눈 앞에 보이던 자그마한 한라산이 잠시 숲에 가려 안 보이나 싶더니, 부드럽게 굽은 도로를 따라 크게 오른쪽으로 방향을 돌리는 순간 손에 잡힐 것처럼 바로 눈 앞에 거대한 백록담이 나타났다. 영화에 나오는 차량 추격씬처럼 차로 크게 점프를 하면 껑충 뛰어 백록담에 내려 앉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와아… 너무 멋지다’ 혼자 운전을 하면서도 육성으로 감탄이 터져나왔다.
그렇게 백록담을 지나치며, 아쉬워서 자꾸 뒤돌아 보며 계속 서쪽으로 향하던 내 눈 앞에 또 한 번의 놀라움이 등장했다. 오래 전 유명한 컴퓨터 배경 화면이었던 초록색의 아름다운 언덕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 않을 완만하고 초록으로 가득한 예쁜 야산이 도로 양쪽으로 두런두런 앉아있었다. ‘여긴 어디지? 나중에 꼭 다시 와봐야겠다’ 갓길에 차를 세우고 지도앱을 열어 지명을 확인 했다. ‘정물 오름’이라는 이름이었다. ‘아, 이런 곳이 바로 오름이구나’ 내 머리 속에 ‘오름’이라는 기호로만 존재하던 오름이 실체와 연결 되는 순간이었다. ‘오름이 이렇게 아름답고 초월적인 곳이구나’ 하는 놀라움과 감동이 가득 했던 날이었다.
그렇다보니 막상 시간을 내서 정물 오름을 다시 찾은 날, 정상에 오르지 못하고 탐방로 입구에서 차를 돌려야 해서 무척 아쉬웠다.
그 날 나는 세 번 정도 진입로를 놓치고 왔다 갔다 한 끝에 정물 오름 입구를 겨우 찾았다. 전날까지 며칠 동안 큰 비가 왔기 때문에 국도에 연결된 샛길은 수풀로 가득했고, 진입로는 진흙밭이었다. 주차장으로 마련된 공터에 차를 세우고 내리는데 발이 푹푹 빠졌다. 초가을 정오의 땡볕은 여름 못지 않게 머리가 따가웠고 들풀은 허리춤까지 올라왔다. 탐방로는 풀에 가려 어디가 길인지 알 수 없는 상태였고 살인진드기라 불리는 작은소참진드기를 조심하라는 표지판까지 붙어 있었다. 머리 바로 위에서 내리쬐는 볕에 그늘 한 뼘 찾기 어려웠고, 그렇게 땡볕에 서서 나는 ‘여기를 내가 오를 수 있나’ 한참 저울질을 했다.
정물 오름은 정물샘이라는 용천수 샘을 품고 있다. 제주에는 강이 없다. 제주 지질 특성 상 빗물이 하천을 이루어 흐르지 않고 지하로 흘러 들어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산에 가도 시냇물이 없다. 백록담이나 물영아리 오름처럼 화구에 물이 고여 화구호를 이루는 경우가 있고, 오름 정상에 화구호 규모는 아니더라도 작게 샘이 있는 경우가 가끔 있다. 제주는 물이 귀하기 때문에 오름에 있는 샘은 사람 뿐 아니라 그곳에 사는 동물들에게도 중요한 식수원이 된다. 많은 생명을 살리는 물인 것이다.
오름이 품고 있는 샘을, 그 귀하다는 샘을 실제 보고 싶은 생각과 ‘허리까지 차는 풀밭을 내가 헤치고 정상까지 갈 수 있겠나, 풀 밑에 뭐가 있을지 어찌 알아. 차로 도로를 오가며 오름의 아름다운 모습은 충분히 봤으니 정상은 안 올라가도 되지 않겠어?’하는 생각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다.
결국 현실적인 생각이 이겼다. 날도 너무 뜨거웠고 오름은 너무 야생의 상태였다. 아마 내가 30개의 오름을 오른 후 였다면, 그 날 그 상태의 오름도 올랐겠지만, 그 때는 공원처럼 잘 가꿔진 관광지같은 오름만 한 두 개 올라봐서 몸도 마음도 단련이 덜 된 상태였다. 돌아오는 내내 무척 아쉬웠다. 지금도 그 날을 생각하면 무척 아쉽다.
그 날 그렇게 차를 돌린 건 아쉽지만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그 날 이후 나는 여러 오름에서 난처한 상황들을 많이 만났다. 전화도 안 터지는 깊은 산 속을 헤메기도 했고, 탐방로를 실수로 벗어나 길도 없는 억새 들판을 건너느라 한참을 고생하기도 했다. 매끈한 관광지나 공원 같았던 초급 오름에서 점차 난이도가 높은 중상급 오름을 가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런 환경에서도 나는 무탈하게 잘 다녔는데, 난처한 상황을 만날 때마다 정물 오름에서 했던 결정이 쓸만한 기준이 되어 주었기 때문이다. 내가 이 길을 즐겁게 갈 수 있나? 내가 이 길을 안전하게 갈 자신이 있나? 나는 정말 이 길을 가고 싶나? 이렇게 질문을 던지고, Yes라는 확신이 있으면 멈추지 않았다. 뭐든 걸리는 게 있으면 아쉬워도 가지 않았다. 그렇게 했더니 안전하고 즐거운 길이 계속 되었다.
고생스러움과 위험함은 서로 다른 것이라, 고생스럽다고 위험한 것도 아니고, 편하다고 안전한 것도 아니다. 다소 고생스럽지만 위험하지 않은 경우도 많은데, 여기에 재미가 더해진다면, 어드벤처 즉 모험이 된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나는 정물오름에서 최초의 난관을 만나고, 혼자였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스스로, 내 나름의 ‘모험’을 정의했고, 그 모형을 잘 활용해 그 이후로도 효과적으로 위험을 피해다닐 수 있었고, 결과적으로 좋은 여행 경험을 쌓을 수 있었던 것 같다. 일종의 럭키비키랄까.
요즘은 사람들이 ‘혼자서 그렇게 다니면 무섭지 않아?’라고 질문하면 쾌활한 웃음과 함께 이렇게 답한다. ‘혼자라서 더 좋던데요?’
‘오늘도 오른다’
백 개의 제주 오름을 오르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고, 현재 스코어는 30/100 입니다. 제주 오름을 왜 오르게 되었는지, 제주 오름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오름을 오르면서 어떤 순간들을 만났고 어떤 생각과 감상이 있었는지 글을 통해 공유하겠습니다.
서하도
처음 방문한 제주도 동쪽 끝에서 ‘하도리’라는 자신의 필명과 동일한 동네를 우연히 발견하고, 그 곳에 정착할 꿈을 꾸게 된 초보 작가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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