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에서서

저녁에 등교하는 날, Back to School Night_사이에 서서

중학생이 된 아이, 이번 Back to School Night은 뭔가 달랐다.

2024.09.12 | 조회 84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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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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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중순, 낮 기온이 36도를 기록하던 날은 아이의 초등학교 졸업식이었다. 8월 중순, 아이가 중학교에 입학했다.

스쿨버스를 타는 아이의 뒷모습 (직접 촬영)
스쿨버스를 타는 아이의 뒷모습 (직접 촬영)

겨울 코트를 입고 알싸한 공기에 빨개진 볼, 입김이 나오는 날로 기억되는 겨울의 방학과 졸업, 그리고 봄이라기엔 쌀쌀한 3월 초의 입학식을 기억하던 우리와는 너무나 다른 아이의 새학기가 낯설다.

미국 학교의 여름방학은 두 달이 넘는다. 지역과 교육구(school county)에 따라 다르지만 6월에 방학을 시작해 8월 중순, 혹은 9월 초에 새 학년을 시작한다.

여러가지 설이 있지만, 농업이 중심이었던 초기 미국의 경제구조상 학생들이 농번기인 초여름엔 집안일을 도와야 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가장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진다.

긴 여름 방학은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도시 노동자들이 휴가를 즐길 수 있는 시간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도시와 농촌 모두 긴 여름방학에 익숙해지게 되자 수업 결손으로 인한 학습 능력의 급격한 저하를 의미하는 여름 슬럼프(Summer slide) 를 최소화하고자 학년의 시작점을 방학이 지난 늦여름으로 정했다는 설이 일반적이다.

새 학년이 시작되면 몇 주 후 학교에서 Back to School Night이라는 행사 초대장이 날아온다.  수업이 끝난 후, 학부모가 아이의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게 연결해주는 시간이다.

유치원부터 초등학교까지, 매년 이 행사에 참여해 1년동안 아이를 맡게 될 담임 선생님과 인사를 나누고, 학생들이 앉는 자리에 앉아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교육과정과 학교 생활에 대한 안내를 듣곤 했다.

준비된 안내가 끝나고 나면 아이에 대해 칭찬을 하시는 선생님을 만나 잘 부탁한다며 악수를 나누고, 학교에 필요한 부품이나 각종 서식을 작성하고, 학부모 봉사활동이 필요한 부분에 대한 안내를 받고 돌아오면 되는 날로 기억한다.

그런데 중학교의 Back to School Night은 조금 다른 데가 있었다. 아이가 전해준 안내문에는 아이의 시간표와 과목별 설명시간, 그리고 각 세션 별 이동시간이 적혀있었다.

입학 후 반 배정이 되고, 같은 반 학생들이 교실에 앉아 있으면 선생님이 각 반을 찾아가는 한국의 중고등학교와는 달리 미국의 중학교는 입학결정 후 학생 개개인이 들을 과목을 선택하고, 선택 과목에 따라 개인별로 시간표가 달라진다.  

중학교 학부모의 Back to School Night은 아이의 학교에서의 하루를 부모가 미니버전으로 체험하는 것이 주요 목적인 것처럼 느껴졌다.

각 과목 선생님에게 주어진 시간은 약 12분이다. 시작 벨이 울리면 선생님은 자기 소개를 시작으로 해당 과목에서 다뤄지는 내용, 수업시간 및 평가 방법, 교사로서 학부모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들에 대해 설명했다.

종료 1분 전이라는 중앙방송을 들으며 선생님들은 서둘러 소개를 마무리했다.

이제는 우리가 서두를 시간이다. 교내 지도와 다음 수업 교실을 번갈아가며 보고 있는데 아이가 구세주처럼 나타나 “따라와.” 라고 말했다.

아이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직접 촬영)
아이를 따라 복도를 걸었다. (직접 촬영)

아이의 등을 바라보며 복도를 지나, 계단을 올랐다. 종료 벨이 울리면 교실을 나서서 다음 교실로 향했다. 매번 이동할 때마다 7분이라는 시간이 그리 긴 시간이 아니었음을 새삼 실감하게 되었다. 더불어 사물함이 있어도 매 시간 사물함에 들를 수 없어 매일 무거운 가방을 들고다녀야 한다는 아이의 말이, 그제서야 이해가 되었다.

원칙적으로 Back to School Night 행사는 교사와 학부모의 만남이 중심이다. 학교에 학생을 데리고 올 수 없다 라고 강하게 공지하지는 않지만, 선생님이 부모에게 설명을 하는 자리에는 학생들이 동석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아이는 우리를 교실로 들여보내며 “끝날 때 데리러 올게” 라고 말하고는 사라졌다. 그렇게 8개 과목 교실을 차례로 방문하고 나니 두 시간이 훌쩍 넘어갔다. 9시가 다 된 시간,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파왔다.

매일 이런 하루를 씩씩하게 보내고 있었구나, 라는 뿌듯하고 대견한 마음을 그대로 말로 전하기엔 내 안의 한국인 마인드가 나를 붙잡는다. 매 시간 숙제를 내준다는 수학 선생님의 말을 전하며 왜 숙제가 없다고 했냐며 아이에게 눈을 흘겼다.

ack to School Night의 끝을 알리는 방송을 들으며 아이와 학교 문을 나섰다. 더이상 잔소리를 할 힘도, 집에 돌아가 밤늦게 저녁을 차릴 힘도 없을 것 같아 근처 햄버거집으로 갔다. 키오스크에서 각자의 메뉴를 고르고, 번호표의 숫자를 주문 내역에 입력하곤 자리에 앉았다. 셋다 말없이 햄버거를 먹다가 어느정도 배가 차고 나서야 얘기를 시작했다.

어떤 선생님이 가장 재밌었냐고 묻는 아이의 질문에 나와 남편이 꼽은 선생님은 달랐다. 아이는 아빠가 꼽은 선생님이 더 재밌다며 하이파이브를 했다. 이렇게 엄마껌딱지였던 아들은 아빠 판박이 아들이 되어가나보다. 오히려 반가워 해야하는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A선생님은 진짜 네 말대로 Zen A말투를 쓰던데? T선생님은 네가 좋아하는 가수 잭을 닮았어, B선생님은 아빠 지도교수랑 닮은 것 같지 않아? 라며 대화를 이어나가는 도중에도 교실을 나서며 아이를 찾던 우리의 모습이, 우리를 기다리던 아이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랐다.

아이의 손을 잡고 앞서 걷던 나의 모습보다는 오늘처럼 아이의 등 뒤를 따라가는 장면이 우리 앞에 더 많이 펼쳐지지 않을까.


[사이에 서서] 황진영

미국 Washington DC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와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를 썼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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