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의 고통은 지옥 같았지만, 아기는 귀여웠다. 귀여움이 세상을 지배한다는 말처럼 내 몸은 귀여움에 지배당했는지 그 지옥 같던 산고를 아주 금방 잊어버렸다. 이 아기를 만날 수만 있다면, 그깟 출산의 고통쯤이야 충분히 견딜 만하다.
아기용 면봉 꼬다리보다 조그만 발톱, 아기새처럼 꼼작거리는 입술, 몸통 전체로 들숨날숨 숨쉬는 호흡, 그리고 응가에서 풍기는 분유 꼬순내까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범접 불가 존재가 있다면 그건 바로 신생아가 아닐까.
우리 부부는 출산 후에 조리원에 가지 않았다. 혹시 산후조리가 잘 되지 않을까 조금 겁이 나기는 했지만, 미리 잘 준비해 두기만 한다면 탄생 후의 귀한 첫 시간을 타인에게 맡기지 않고 남편과 아기, 나 셋이서 함께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는 출산 후 3일 뒤에 퇴원해 집으로 왔다. 아기를 낳은 직후에 밥을 먹으려고 몸을 일으키다가 기절하기도 하고, 처음 화장실을 갈 때에도 눈앞이 캄캄해져 간호사 선생님을 안고 바닥에 주저앉아 버리기도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기절이야 금방 정신 들 때까지 기다리면 되고, 새근새근 잠들어 있는 아기도, 든든한 남편도 내 곁에 있으니 말이다.
병원에서부터 모자동실을 하던 아기는 두 시간에 한 번씩 울었다. 몸이 지치는 느낌은 있었지만, 출산 직후에 폭발하는 옥시토신 때문인지 정신은 말짱했다. 아기를 낳고도 한동안 친구랑 메시지를 주고받고, 가만히 앉아서 아기 얼굴을 한참이나 구경했다. 뱃속에 있던 아기가 이런 목소리를 가졌구나, 발가락이 이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차근차근 살폈다.
출산 직후에는 호르몬 작용 때문에 아기와 엄마가 처음 피부가 닿는 순간 서로에게 사랑에 빠진다고 하는데 정말 그랬다. 아기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내 품에 안겨 엄마 냄새를 찾아 입을 뻐끔거렸고 그런 아기를 보면서 이 세상에 나와 연결된 단 하나의 존재를 품에 안은 것 같아 신비로웠다.
아기를 낳고 딱 한 달이 되었다. 돌이켜보면 참 정신없었고, 예민했고, 피로했다. 연달아 8시간 정도는 푹 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고, 하루에 7~8번 수유를 하면서 머리가 지끈거리고 어쩐지 고개도 추수철 벼처럼 푹 떨어져 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안겨 있는 아기를 보고 있자면 이제 더 이상 갖고 싶은 것 따위 없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것도 필요한 게 없다고, 이 정도면 내 인생은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하게 가득 찼다고 말이다.
아기와 붙어 있는 지금 이 순간, 지난 모든 순간들이 우리 가족 모두에게 주는 첫 선물이 아닐까 싶다. 손을 벌벌 떨면서 처음 분유를 먹였던 순간, 태어나자마자 눈을 뜨고 아빠를 응시하던 순간, 토끼 딸랑이에 처음으로 고개를 돌리던 순간, ‘뿌엥’ 하고 울다가 품에 안으면 울음이 잦아들던 순간. 귀중한 찰나의 순간들에 우리 부부는 벌써 매료되어 버리고 말았다.
* 글쓴이 - 보배
'세상의 모든 문화'에서 <탱고에 바나나>를 연재하다가 23년 12월 출산 후 <육아에 바나나>로 돌아왔습니다. 의지하고 싶은 가족 품에 있다가 지켜주고 싶은 가족이 생긴 요즘입니다. 공저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세상의 모든 청년>에 참여했습니다.
* 작가의 브런치 https://brunch.co.kr/@se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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