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으로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다. 1박 2일 여행 채비를 다 마치고 집을 나왔는데, 중학생이 된 아들 재혁이는 여행가기 싫다고 단호히 이야기한다.
“며칠 전부터 엄마가 분명히 여행갈거라고 이야기했었고, 너도 통영 너무 가고 싶다고 말했잖아. 여행 가서 고등어회도 먹고 배도 타니까 좋다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가기 싫다고 하면 엄마가 화가 나겠어? 안 나겠어? 너는 왜 이랬다 저랬다 하는데?”
이렇게 윽박을 질렀다. 아이가 약속을 깨뜨린 상황에 대한 분노다. 고속도로 톨게이트 입구까지 갔음에도 “이번 여행 진짜 싫다”고 반복해서 말을 했다. 싸늘하게 감정이 식어진 나는 여행 갈 기분이 사라졌기에 차가운 목소리로 나는 “그럼 차 돌려? 집에 내려줘?” 라고 했다. 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말하면서 서러운 듯 우는데 뭐라고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도대체 나는 엄마로서 무엇을 잘못한 걸까.
중학생이 된 재혁이는 점점 자신의 뜻을 단호하게 드러낼 때가 많다. 주말에는 가족과 함께하는 것보다 친구들과 PC방 가는 것을 더 좋아한다. 대안학교를 다니기 때문에 버스를 타거나 지하철 타고 여기 저기 다니는 것도 익숙해졌다. 자신의 세상이 넓어지고 있다. 어디든 스스로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이에게 제한을 두려고 하는 것 자체가 문제일까.
아이에게 내 기준에서 최상의 것을 주려고 해왔다. 여기서 엄마인 내가 최상이라는 기준으로 삼은 것은 여행이다. 사교육이나 학습지를 하는 것 대신 여행을 다녔다. 시간과 여건만 된다면 이곳 저곳 다니면서 자유롭게 배울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또한 다양한 세상과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고자 했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라 여행으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정말 많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떠나는 데는 큰 결심이나 계획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다.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을 배울 수 있는 여행자의 모습으로 살아가길 바랬다. 언제든 떠나고 싶을 때 “지금 가자!” 라고 말하면서 실행으로 옮길 수 있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자신만의 길을 찾아나가는 방법을 여행에서 가르쳐주고자 했다. 그것이 맞다고 생각하고 중학생이 된 지금까지 어느 정도 아이와도 잘 맞았던 것 같다.
그런데 이제 아이는 부모 뜻을 거부하려고 한다. 중학생이 되어 사춘기에 접어드니 엄마가 주는 사랑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아니, 엄마의 사랑을 억압이나 강압이라고까지 생각한다. 우리는 서로 다른 모습의 사랑을 하고 있는 걸까.
그렇다면 오늘 나는 왜 화가 났을까?
화가 날 때마다 그 이유를 잘 모를 때가 많다. 아이와의 관계에 있어서 말이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지 않은 채 그저 화가 난 상황에만 머무른다. 이럴 때 나홀로 셀프 상담을 위해서 타로카드를 펼치곤 한다. 화가 났던 내 감정을 생각하며 뽑은 한 장의 타로카드.
6번 컵 카드가 나왔다. six of cups이라는 이름의 카드다.
아름다운 정원이 있는 집이 있고, 꽃이 담긴 커다란 컵이 6개 그려져 있다. 소년은 소녀에게 커다란 꽃이 든 화병을 전해주고 있다. 분위기는 동화 속 한 장면같다. 등장하는 인물이 동심을 표현하는 듯한 어린아이 모습이라서 그런가. 과거의 추억이나 행복했던 기억이 떠오르는 듯하다. 그런데 이 카드 그림의 왼편에는 창을 들고 있는 한 인물의 뒷모습이 있다. 어떻게 보면 마냥 행복한 상황만은 아니라는 뜻일까.
6번 컵 카드의 그림이 나에게 묻는다. “당신이 주려고 하는 사랑은 어떤 사랑입니까?” “만약에 상대방이 당신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요?” “과거의 로맨틱한 추억에만 사로잡혀 사는 건 아닐까요?” 라고 묻는다.
컵 안에 든 꽃을 상대방에게 주려고 하는 소년은 아마도 기대에 찬 모습일 거다.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마음을 전하려고 한다. 아직까지 소녀는 꽃을 받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둘은 잘 통하는 사이처럼 보인다. 곧 소녀는 꽃을 받을 것이며 둘의 사랑은 완성되지 않을까. 온 세상이 온통 노란 색의 밝고 환한 느낌이다. 낭만적인 두 사람의 관계는 행복해보인다. 타로카드의 그림처럼 내가 갈구한 것은 서로 통하는 마음이다. 바로 내 아이에게서 사랑을 주고 받으려 했다.
‘영원히 내 사랑을 받아줘’ 라고 하면서... 나는 언제나 아이가 나와 로맨틱한 사랑을 주고받는 사이라고 생각했나 보다. 내가 가득 사랑을 주었으니 너도 엄마에게 사랑을 가득 주어라고 무언의 압박을 했던 것 같다.
타로카드가 나에게 조용히 대답하는 듯하다. ‘과거의 사랑에 사로잡혀 살지 마세요! 둘의 따뜻했던 추억을 마음 속에 간직하세요. 그 기억만으로도 행복은 사라지지 않으니까요. 지금 당장 상대방이 내가 전해주는 꽃을 받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세요. 이미 서로의 마음은 충분히 애정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요.’ 이렇게 말이다.
“나는 사랑을 이만큼이나 주고 있는데 상대방은 모르는 것 같아요” 라는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연애를 하는 남녀사이에서나 부모와 자식 관계에서나 친구관계에서나... 사랑은 받은 만큼 주어야 하는 계약관계는 아니다. 사랑을 주었다고 받길 기대해서는 안된다. 또한 나는 ‘사랑’ 이라는 이름으로 상대방에게 전해주는 그 무엇이 ‘폭력’ 이나 ‘강요’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가끔 소유욕을 지나치게 발휘하면서 집념을 표현하는 관계에서 자신만의 방식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말한다. 명품백, 보석과 같은 비싼 선물을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많이 해 줬는데 상대방이 떠날 수 있는가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 이는 사랑을 계약관계 혹은 주종관계라고 여기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선물을 사랑의 언어라고 이야기하지만 상대방은 ‘함께하는 시간’ 이나 ‘인정하는 말’을 사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비싼 명품백을 안겨주었기 때문에 ‘너는 내가 하는 말을 언제나 들어야 해’ 라고 명령한다면 그건 사랑이 아니다. 준 만큼 받으려고 하는 지극히 이기적인 마음이다.
이제야 내 마음이 정리가 되는 것 같다. 아이가 엄마인 내 마음에 들지 않다고 하여 화가 난 것이라니. ‘나처럼 최고의 엄마가 어디있는가’ 라는 자뻑과 같은 생각을 고스란히 아들에게도 전달하려고 했다. 오늘만큼은 엄마랑 여행가는 것보다 친구들이랑 놀고 싶다는 거였는데 나는 근원적으로 ‘네가 내 사랑을 거부했어’ 라고 생각했다. 내 사랑을 거부한 아들에게 분노심을 느끼고 결국 내 존재가 무시당했다고 느낀 것이다.
이렇게 타로 카드를 뽑으며 셀프 리딩을 해본다. 그리고 나의 기분이나 감정을 들여다 본다. 질문 한 가지를 생각한 다음 타로 카드를 뽑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스스로 찾아나가는 과정은 그 자체로 나를 들여다보면서 스스로의 감정을 정리하는 시간이다. 타로카드의 그림을 찬찬히 살펴보며 나의 상황에 투영해보는 것. 그리고 스스로 답을 찾아나가며 해결책을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는다. 잠시 타로카드와 함께 명상하듯 머무르며 떠오르는 대답을 기다린다. 타로카드는 이렇게 나의 성찰을 돕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타로카드 컵6번은 이런 뜻!
컵6번은 행복했던 유년시절에 대한 기억과 그것을 추억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 때 그 시절의 인연을 기분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는 뜻.
순수했던 그 시절의 사랑이나 순수함의 상징이다. 추억과 향수의 카드라고도 한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으로 동심의 마음을 잃지 않는다는 뜻도 있다. 주변 사람들과의 우정과 친밀한 관계를 원하며 과거의 인연을 다시 만나게 될 수도 있다.
글쓴이 : 김소라 작가
『타로가 나에게 들려준 이야기』『좋아하는 일을 해도 괜찮을까』 『여자의글쓰기』 『바람의끝에서마주보다』 『사이판한달살기』 『맛있는독서토론레시피』 등 다양한 책을 썼습니다.
수원에서 작은 책방 ‘랄랄라하우스’를 운영하며 타로카드로 마음공부하는 글을 씁니다.
<타로카드 럭키박스>는 타로카드가 주는 의외의 기쁨과 성찰의 순간으로 위로받으며 잠시 쉼을 얻도록 도와주는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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