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다섯 시. 화장실에 가고 싶어서 계속 눈치만 보던 중이었다. 그냥 이부자리를 확 걷어내고 일어나면 되는 일이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하지만은 않았다. 나와 한 방에서 잠을 자던 막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대성통곡을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34개월 막내는 감기에 걸려서 몸이 좋지를 않았다. 밤새 선잠을 자며 나를 괴롭혔다. 그런 저를 방에 두고 화장실에 다녀오던 날에는 이부자리에 구토를 할 때까지 울음을 터뜨리고는 했다. 햇빛이 반짝이는 낮에는 괜찮다가 꼭 정신이 왔다 갔다 하는 새벽만 되면 그렇게 나를 붙잡고 나동그라졌다. 아니 정 그러면 화장실에 같이 가줄 수도 있잖아. 그것까지 싫다고 해버리면 이모는 어떡하라고.
더 이상은 참을 수가 없었다. 막내야 이모 화장실에 갔다 올게. 이모 어디 가는 거 아니야. 문을 열고 마루로 성큼성큼 걸어 나가는 사이 뒷전에서 막내의 울음소리가 온 집안을 때려 부수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울든지 말든지 어쩔 수가 없었다. 이모 금방 왔잖아. 막내야 괜찮아. 자자. (자식. 또 한바탕 이불 위에 토를 해놓았다.)
다시 눈을 뜨자 큰 아이들은 교복을 다 입은 채로 내 방문 앞을 어슬렁거리고 있었다. 깜짝 놀라 확인한 시계. 일곱시 십삼분. 둘째와 셋째가 학교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었다. 이모 일부러 안 깨웠어요. 우리가 아침 못 먹고 나간다고 속상해하지 마세요. 오늘 점심엔 맛있는 거 먹을 거예요. 학교 다녀올게요. 나오지 마세요. 밤새 시달리다가 그만 아침나절에 한잠이 든 모양이었다. 내가 속상해하는 걸 어떻게든 달래 보고 싶었는지 아이들이 애써서 웃는 얼굴을 만들고 있었다. 어찌어찌 집을 나서는 아이들을 배웅하고 나서도 마음이 영 좋지를 않았다. 그 와중에도 막내는 나를 부르며 신경질을 내었다. 그래 막내야 이제 이모 너한테 간다.
다리를 조금 휘청거렸던 것도 같다. 그래서 더 급하게 의자에 앉으려던 찰나였다. 아야. 화가 난 막내가 내 의자 위에 빨대물병을 던져놓은 모양이었다. 물병 손잡이의 모서리가 엉덩이뼈를 콕 하고 찔렀다. 하. 온통 막내 물건으로 어질러진 방안도 전쟁터 같았지만, 잠도 못 자고 할 일도 제대로 못 해낸 내 마음도 전쟁터가 된 것 같았다. 막내는 또 울었다. 곁에 와서 누우라고. 이번엔 초등학교 2학년인 넷째를 학교에 보낼 시간이었다. 막내야 이제 제발 그만해.
웬만하면 꺼내지 않는 초코맛 시리얼을 끄집어 내었다. 그것을 본 아이들이 반색을 하며 식탁 앞에 앉았다. 넷째가 그릇 안에서 분홍색 별 모양 마시멜로를 찾아내어서는 “우와” 하고 소리를 내며 웃었다. 막내도 넷째를 따라 하얀색 마시멜로를 꺼내들고 나를 보며 웃었다. 그러나 시계를 보니 더 이상 이렇게 하하호호 시간을 보낼 때가 아니었다. 늦게 일어난 넷째를 서둘러 학교로 보내려면 머리 묶는 시간이라도 줄여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넷째가 시리얼을 떠먹는 동안 꼬리빗과 고무줄을 갖고 와서 서둘러 머리를 빗겼다. 넷째 예쁘네. 넷째 머리를 멀끔하게 빗기고 나니 이제는 머털도사처럼 꾀죄죄한 막내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썹 위로 딸름하던 앞머리가 두어 달 사이 눈을 찌르지 않을까 싶게 자라있었다. 그걸 보는 내 눈이 괜히 찔리는 것처럼 애가 쓰였다. 내 밥그릇에 부으려던 시리얼 통을 다시 내려놓고, 잡기도 어려울 만큼 가늘고 보들보들한 막내의 머리카락을 붙들어 사과 꼭지 모양으로 묶어주었다.
막내 예쁘네. 동생이 생겨서 좋다던 때는 언제고, 주말 내내 막내가 미워죽겠다고 광광거리던 넷째가 제법 언니 같은 말투로 칭찬을 했다. 그 말을 들은 막내가 다리까지 흔들면서 소리를 내어 웃음을 터뜨렸다. 새벽 내내 패악을 부리고 사람을 괴롭히던 녀석의 표정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가장 사랑스러운 막내의 얼굴이었다. 마음속 어떤 덩어리 같은 것이 사르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막내 이쁘네. 내 밥그릇에도 시리얼을 부어서 숟가락을 들고 아이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코밑으로 진득하고 누런 콧물을 잔뜩 묻힌 막내가 함박웃음을 지으며 나를 쳐다보았다. 내 몸을 쓰다듬고 얼굴을 문지르고 또 내 얼굴을 보며 웃음을 지었다. 배알도 없이 웃음이 실실 나왔다. 그 순간 아이들이 이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별 모양 마시멜로를 집어 들고 똑또구르르 웃음소리를 내고 있는 아이들이 곁에 있는 지금 이 순간이 참 행복하다는 생각을 한 것 같기도 하다. 발끝에서부터 곰지락곰지락 어떤 것이 조금씩 차오르는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가슴’
그룹홈에서 일하는 보육사의 눈으로 바라본 세상에 관해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그룹홈에서 일하는 나의 이야기가 당신과 우리의 이야기로 나누어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수영
아동그룹홈에서 일하는 사회복지사입니다. 내 시간의 45%는 네 아이와 함께 그룹홈에서 보내고, 나머지 55%는 내가 낳은 두 아이와 남편이 있는 집에서 보냅니다. 집과 일터, 경계가 모호한 두 곳을 오가며 겪는 분열을 글쓰기로 짚어보며 살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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