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오겹살이 유행했던 것 같다. 요즘도 삼겹살보다 오겹살을 더 찾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왜 사람들이 오겹살에 열광했을까? 아마 쫀득한 껍질이 붙어 있고 지방과 살코기가 삼겹살보다 더 겹겹이 쌓여있어 더 맛있어 보였고 맛있게 느꼈던 것 같다. 사실 그 차이는 도축 과정부터 차이가 난다.
돼지고기를 먹기 위해서는 털을 벗겨야 하는데, 그 방법은 ‘탕박’과 ‘박피’로 나뉜다. 요즘 대부분의 돼지는 ‘탕박’이라는 과정을 거친다. ‘탕박’이라는 것은 뒷발의 아킬레스건을 도축 라인에 걸어 매달린 돼지를 60~65도 되는 뜨거운 물에 3~5분 정도 담가 털을 제거하는 방법이다. 피부가 살짝 익은 돼지는 커다란 솔이 휙휙 돌아가는 구조물에 통과하면서 털이 몽땅 뽑히고 벌거숭이가 된다. 남은 털은 화염방사기가 쐬이는 곳을 통과시켜 태워 없애고, 그래도 남은 굴곡진 부분의 털은 작업자들이 칼로 깎아 제거한다.
내가 17년도에 근무하던 작업장에서는 90%는 탕박 돼지였지만 중간중간 박피 돼지들이 번갈아 나왔다. ‘박피’는 탕박과 다르게 뜨거운 물에 담그지 않는다. 대신 기계에 털이 붙어 있는 껍데기 한 부분을 걸고 돌돌 말아 피부를 벗겨내어 털을 깔끔하게 제거한다. 그래서 박피 돼지는 껍데기가 없어서 오겹살로 만들 수가 없다. 오겹살은 탕박 돼지에서만 생산되는 것이다. 하지만 탕박 돼지의 껍데기는 따로 벗겨내어 삼겹살로도 만들 수 있다. 삼겹살은 박피 돼지이기도 탕박 돼지이기도 한 것이다.
피부, 껍데기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등급판정 기준에도 적용이 된다. 보통의 돼지 등급은 돼지 도체(내장과 머리를 제거한 돼지)를 이분할하여 왼쪽의 반도체에서 정해진 척추 부분의 등지방 두께를 재는 것인데, 껍데기까지 포함하여 두께를 잰다. 하지만, 박피 돼지는 껍데기가 없는 부분을 감안한 등지방 두께 기준이 따로 있다. 박피 돼지와 탕박 돼지를 번갈아 판정한다는 것은, 오른손은 배를 시계방향으로 문지르고 왼손으로는 머리를 통통 치다가 양손의 위치를 자유자재로 바꿔도 똑바로 해내야 하는 것과 같았다. 이게 참, 사람 피 말리게 했다.
등급평가사는 레일에 걸려있는 돼지를 보고 몇 등급인지 바로바로 평가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는다. 예를 들면, ‘80kg, 17mm’면 무게는 1등급이고, 등지방 두께는 1+등급이라서 낮은 등급인 1등급이 1차 등급이 되는데, 이런 것이 무릎반사처럼 툭 치면 바로 튀어나올 수 있게끔 계속 훈련을 하는 것이다. 도축장마다 다르지만, 한 시간에 느리게는 200두, 빠르게는 400두 정도 돼지를 잡는다. 그 말인즉슨 1분에 6마리를 보면서 1차 등급을 내고, 2차 등급을 판단하고, 최종 등급을 내어 도장을 찍고, 결함이 있는지 보고, 판정 결과 데이터를 컴퓨터에 입력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 작업은 꽤나 정신없이 바빴다.
요즘엔 박피 돼지를 다루는 곳이 거의 없어서 탕박 기준만 잘 외우고 있으면 되지만, 그 당시 나는 각각의 기준에 맞춰 다른 판정 기준을 바로바로 적용하고 판정하는 게 아주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도축 라인을 멈출 수 있는 빨간 버튼을 얼마나 열심히 눌렀는지 셀 수가 없다. 레일이 멈추고, 처음 한두 번은 라인의 앞부분에 서서 돼지를 잡는 작업자분들이 하나같이 뒤돌아서 내 쪽을 바라보았는데, 세 번이 넘어가면 도대체 왜 그러느냐며 멈추지 말라고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그 도축장에 온 돼지는 당일에 모두 도축을 해야 해서, 내가 멈추는 만큼 작업 시간이 지연되어 야근이 되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쭈글쭈글한 할아버지들이 피범벅된 팔토시를 걷어 올리며 성큼성큼 내가 있는 쪽까지 쫓아오면 그건 공포영화나 다름없었다.
탕박과 박피에는 다양한 의견이 여전히 분분하다. 탕박조라는 뜨거운 물을 담아놓은 통에 돼지들이 계속 들어가서 비위생적이라는 둥, 박피 하면 작업 중 폐기물이 증가하여 환경오염이 된다는 둥, 빨리 작업하기 위해선 탕박이 필수라는 둥, 탕박을 하면 살짝 익히는 거라 품질이 안 좋아진다는 둥, 돼지 껍데기가 없으니 유통 중엔 박피가 더 안 좋다는 둥, 등등 많은 의견이 있지만, 어쨌든 지금 한국의 도축장은 대부분 탕박 돼지를 생산하고 있다. 판정하는 입장에선 헷갈리지 않게 판정할 수 있어 좋고, 소비자 입장에서는 삼겹살이든 오겹살이든 같은 돼지인 걸 알았으니 쫀듯한 식감의 오겹살, 그냥도 맛있는 삼겹살, 취향껏 즐기면 될 뿐이다.
*글쓴이 - 오이
수능 성적에 맞춰 축산학과를 갔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다 보니 도축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죽음과 직업 사이의 경계를 방황하면서, 알고보면 유용한 축산업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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