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육코너에는 삼겹살이나 목살을 일정한 두께로 잘라 가지런하게 한 팩씩 포장해놓는다. 선홍색 살코기 사이사이에 빗살무늬처럼 촘촘하게 들어가 있는 마블링을 보면 군침이 돈다. 촉촉하고 육즙이 팡팡 터지는 고소한 돼지고기 맛에 감탄이 절로 나올 것만 같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목살에 3mm도 채 안 되는 작은 하얀색 동그라미가 보인다. 이건 주사 바늘 자국이다. 사람도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예방주사를 맞듯이 돼지들도 아프지 않고 튼튼하게 자라기 위해 주사를 맞는다. 물론 고기는 사람들이 섭취하는 음식이기 때문에 안전하게 고기 내 잔류물질의 정도를 법으로 정하고 있다. 도축하러 온 가축에 다양한 유해잔류물질을 검사하고, 이상 물질이 검출되지 않거나 일정 수준 이하여야 도축이 허가된다. 그러려면 돼지들은 주사를 맞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이후(약 한 달)에나 도축될 수 있다는 말이다.
“과장님! 목심에 ‘농’이요!”
5년 전, 도축장에서 한창 돼지를 판정하고 있는데, 뭔가 발밑으로 연두색 빛이 나는, 꾸덕하게 흐르는 하얀 물질이 보였다. 냄새는 가히 설명하기 어려울 정도다. 쉰내가 나기도, 토사물 냄새가 나기도 한다. 도축되면서 목살을 가득 메운 염증과 고름이 터진 것이다. 이걸 우리는 ‘농’이라고 부른다. 이렇게 겉으로 드러나게 되면 작업자분들이 도려낸다. 깨끗한 살코기만 남도록 농이 묻은 부분을 깔끔하게 전부 잘라낸다. 나는 농이 있었으니까 ‘농양 5번’으로 하자를 입력하거나 살을 도려냈으니 ‘근육 제거 9번’을 입력해 판정을 마무리한다. (정도에 따라 다르다)
하지만, 도축할 때에 이분할 된 돼지고기로는 농을 전부 확인할 수 없다. 농은 한쪽 다리를 다 제거해도 안 될 만큼 클 수도 있지만, 주먹만 한 크기일 수도, 쌀알 크기일 수도 있다. 간혹 갈비 쪽이나 더 깊숙한 곳에 농이 있거나 작다면 도축과정에서 우리가 알 방법이 없다. 그런 농은 나중에 가공장에 가서 뼈가 발골되면서 드러나기도 한다. 농이 있다면(대부분 없지만), 대분할, 소분할, 그리고 우리가 정육점에서 사 먹는 크기로 작게 가공되면서 숨어있던 농까지 드러나는 족족 제거가 될 것이다. 농이 아주 심하거나, 척추 안에서 농이 발견될 땐, 뼈를 타고 어느 부위로 농이 옮겨갔을지 몰라 폐기 처분한다. 지저분한 것들이 우리 식탁 위로 올라올 확률은 매우 낮지 싶다.
의사 선생님들도 환자의 염증을 보고 깨끗하게 치료해주면서 어떤 기분일까, 이런 느낌일까 싶다가도, 아니지, 의사는 생명체를 살려내는 직업이지, 하고 나의 현실로 돌아와 염증을 느낀다. 또다시 멀리서 레일을 타고 오는 돼지의 둔부, 돼지의 엉덩이 위로 볼록 튀어나온 것이 보인다. 농일 확률이 높다. 목심의 농이든 둔부의 농이든 대부분 주사로 염증이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주사를 잘못 맞았거나 비위생적으로 맞아서 고름이 생긴 것이다.
요즘엔 무침 주사같이 염증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으로 다양하게 시도하고 있다고 한다. 판정하는 사람으로서도 농이 보이지 않아서 좋다. 이렇게 계속 여러 사람의 노력으로 오늘보다 내일 더 안전한 축산물이 식탁에 오르면 좋겠다. 그냥 그렇게 웃음 가득한 행복한 식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글쓴이 - 오이
수능 성적에 맞춰 축산학과를 갔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다 보니 도축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죽음과 직업 사이의 경계를 방황하면서, 알고보면 유용한 축산업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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