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돼지를 실어나르는 트럭과 냉동탑차들은 새벽 4시부터 시동이 걸린다. 트럭들이 들어왔다 나가는 도축장도 함께 들썩이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살아있는 가축을 뜻하는 생축이 들어오는 곳과 도축이 된 고기가 나가는 곳이 가장 시끌시끌하다. 활기를 느끼려면 새벽 동대문 시장에 가라고들 하는데, 새벽 도축장도 활기로 치면 새벽 시장 못지않다. 레일에 걸려있는 가공(뼈를 발라 고깃덩이로 만드는 작업) 전의 돼지들은 보통 80kg~100kg 정도 되는데 이 돼지들을 줄줄이 트럭에 싣는 데 힘을 무진장 써야 하는 아저씨들의 활기가 장난 아니다.
냉동탑차는 뒷문을 활짝 열고 도축장 건물 밖 고기를 반출할 수 있는 통로에 엉덩이를 연결한다. 탑차 천장에는 레일이 있는데 도축장에서 고기를 걸어놓는 레일과 연결할 수 있어 돼지를 밀어서 옮긴다. 50마리는 거뜬히 들어갈 것 같다. 이렇게 무거운 돼지를 밀고 당기며 옮기는 직원들은 조심하라며 소리를 고래고래 지른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지라, 이렇게 차를 대고 저렇게 차를 대라며 단전부터 끓어오르는 성대로 한껏 외친다. 아저씨들 몸에서는 한겨울에도 김이 모락모락 난다. 이리저리 분주하게 다니는 아저씨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힘이 난다.
생축이 들어가는 곳도 똑같다. 아저씨들이 힘 있는 목소리로 소리친다. 2층짜리 트럭을 타고 온 돼지 80마리는 계류장이라고 하는, 도축되기 전 잠시 대기하는 공간으로 옮겨진다. 그곳은 미로같이 생겼지만 결국 마지막은 도축라인으로 향해있다. 돼지들은 천장에 달린 스프링클러로 샤워도 하고 친구들과 사이좋게 앞만 보고 걸어가면 갑자기 좁은 통로에 들어가 머리와 가슴에 전기가 쏘여지는 것이다. 왠지 돼지들은 그걸 아는 것 같다. 트럭에서 도무지 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120kg가 넘는 육중한 몸으로 버티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전기봉으로 따끔하게 돼지 엉덩이를 톡톡 치면 돼지들이 깜짝 놀라 우르르 계류장으로 들어갔었다. 2019년 동물도축세부규정이 개정되면서 제5조에 따라 동물의 이동을 위해 폭력 및 전기몰이도구 사용이 금지되어, 트럭에서 내리려고 하지 않는 돼지들을 옮기는 거대한 문제에 봉착하고 말았다. 이때 아저씨들은 돼지들이 스스로 걸어서 들어갈 수 있도록 워~라던지 야~라고 소리쳤고 빗자루로 계류장 울타리를 탁탁-하고 쳤다.
사실 이런 온화한 방법은 잘 먹히지 않았다. 높은 확률로 돼지들은 꿈쩍도 하지 않아서 아저씨는 방역복을 입고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화와 안전모를 쓰고는 돼지들이 있는 트럭으로 성큼성큼 걸어 들어갔다. 그리고 다시 워~ 하며 말을 건다. 돼지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힘이 세고 인간에게 얼마나 위협적으로 보이는지도 모르고 작은 인간에게 겁을 먹는다. 발이 미끄러져 바닥에 우당탕 나뒹굴면서도 계류장으로 열심히 도망친다.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 했던가. 멀리서 들으면 그 활기차고 커다란 목소리, 북적북적하고 우당탕하는 소리에 어디 축제라도 열린 줄 알겠다. 멀리서도 또렷하게 들릴 정도이고 바로 옆에서 들으면 고막이 터질 정도다. 어디서 그런 힘이 끓어오르는지, 움직이지 않는 돼지나 무거운 고깃덩어리를 조심하라는 그 조바심 때문인 것 같은데, 도라지 배즙이라도 드리고 싶은 심정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면서도 마음대로 되지 않은 상황에 얼마나 속이 탈까 싶다.
급박하고 정신없는 아침이 지나면 아저씨들은 휴게실에 누워 낮잠을 청하거나 줄담배를 피운다. 살아있는 돼지든 죽어있는 돼지든 옮기면서 떨어진 부산물들을 천천히 그리고 여유롭게 쓸고 닦는다. 폭풍우가 휩쓸고 간 듯 그렇게 고요할 수가 없다. 동시에 건물 안에서는 소돼지가 한 마리 한 마리 잡히고 있다. 가끔 돼지들이 꿰에엑-하고 지르는 소리와 돼지를 싣고 오는 트럭의 덜컹거리는 소리만 들릴 뿐이다.
*글쓴이 - 오이
수능 성적에 맞춰 축산학과를 갔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다 보니 도축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죽음과 직업 사이의 경계를 방황하면서, 알고보면 유용한 축산업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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