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소의 상함 정도를 중요시하거든요."
나는 시장에 갈 때마다 항상 들리는 밑 반찬 가게가 있다. 그 가게 메뉴는 일 년 내내 달라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가는 이유가 있다. 밑 반찬 종류가 시장에서 가장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모두 마음대로 사 먹을 수 있는 것은 아닌데, 반찬 값이 비싸기 때문은 아니다. 재래시장이니 가격은 싼 편이다. 하지만 장본 것을 상하기 전에 전부 먹을 수가 없다.
“아줌마, 양념 게장 5천 원 만 주세요.” “요새 물가가 마이 올라가, 만 원 부터다.” “아…... 그럼 파 김치 5천 원만 주시겠어요?” “파 김치 5천 원은 양이 작데이”
나는 생존을 위해 먹어야 한다. 하지만 고립 청년에게 식사는 매일 마주하는 문제나 다름 없다. 음식이나 밑 반찬을 만들어 먹는 것은 문제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만들어 먹기 위한 식재료를 냉장 보관하면 곧잘 상하기 때문이다. 나는 하루 두 끼를 챙겨 먹는데, 평일에는 저녁만, 주말은 두 끼를 집에서 먹는다. 일주일에 총 아홉 끼를 먹는 셈인데, 일주일 동안 상하지 않는 식재료만 사 먹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를 테면 대파 한 단은 1kg인데, 소포장 된 500g을 사더라도 상하기 전에 먹을 수가 없다. 양파는 개중에 낫다. 낱개로 팔기 때문이다. 마늘은 무르기 일쑤다. 하지만 채소만 쉬이 상하는 것이 아니다. 해산물은 두말 할 것도 없고, 육류도 시간에 따라 색이 변화하는 것을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다. 최대 아홉 끼 먹는 것을 가정하고, 최소한으로 장을 봐도 건강한 음식을 만들어 먹기는 힘들다.
나는 그럼에도 모든 식사를 직접 해먹는다. 짜장면, 짬뽕, 탕수육, 마라탕 등의 중식 요리부터, 해물볶음우동, 연어 초밥, 마제소바 등의 일식 요리와 스테이크나 파스타, 또띠아 피자 등의 양식 요리, 팟 끄라파오 무쌉, 분짜 등의 동남아시아 요리 뿐만 아니라 한식도 대부분은 해먹는다. 나는 요리에 진심임에도 식재료 관리는 쉽지 않다. '냉동실에 식재료를 넣으면 되지 않냐?'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얼마 전 화제의 요리 프로그램 <흑백 요리사>에서 최현석 쉐프가 말하지 않았는가. “주방에서 요리사보다 위에 있는 것은 단 하나, 재료.”
데이터로 보는 고립 청년의 식사 실태
고립 청년 중에 내가 유별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2022년 ‘서울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나는 지극히 고립 청년의 평균이다. 고립 청년의 평소 식사 횟수는 ‘하루에 2끼(56.8%)’가, 식사 차려 먹는 방식은 ‘혼자 직접 차려 먹는다(47.3%)’고 답한 고립 청년이 가장 많았다. 물론 다른 점도 있었다. 남성은 여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족과 같이 식사한다’의 비율이, 여성은 남성에 비해 상대적으로 ‘혼자서 직접 차려 먹는다’의 비율이 높았다.
눈여겨 볼 점은 가족과 동거하지 않거나 1인가구 응답자는 동거인이 있는 응답자 대비 ‘혼자서 배달시켜 먹는’ 경우가 월등히 많았다. 고립 청년 중에 1인 가구만을 대상으로 영양의 불균형 관련 실태조사나 연구가 없어 명확하게 확답할 수가 없겠지만, 1인 가구 전체로 확대해 자료를 찾아보면 편식이나 결식이 잦고 균형잡힌 식사를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식생활은 열량, 지방, 나트륨 섭취를 높이고 영양 불균형을 초래하여 비만과 고혈압, 대사증후군 및 우울증, 인지기능 저하 같은 질병을 유발한다고 전문가는 경고한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1 통계로 보는 1인 가구’에 따르면 1인 가구 42.4%는 균형 잡힌 식사가 어렵다고 응답했으며, 혼자 생활에서 가장 힘든 점을 ‘식사 준비’로 꼽았다. 뿐만 아니라 과일 및 채소 섭취 비율도 낮고, 혼밥은 정신건강에도 안 좋은 영향을 미친다. 이를 테면 수면부족, 우울한 기분에 빠질 가능성, 극단적 선택의 생각 정도도 높게 비율로 나타났다.
고립 청년의 식습관 개선은 남의 일 같이 여겨질지 모르겠다. 하지만 고립 청년 식습관은 사회 문제가 확실하다. 내가 불균형한 영양 섭취로 각종 성인병 진단을 받고, 건강보험을 활용하여 병원 치료를 평생 받아야 할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심지어 혼밥이 길어지며 우울에 빠져 하는 일마저 그만두고, 국가로부터 생활 지원을 받으면서 은둔에 접어들 수도 있다. 기본적인 자기 돌봄 조차 하지 못하게 되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그렇기에 사회 단위에서 청년 공동체를 장려하는 것이 중대한 과업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밥을 함께 먹는 것이라도 좋을 듯하다. 함께 밥을 만들어 먹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더할나위 없다. “밥 먹었나? 다음에 밥이라도 한 끼 하자”가 안부 인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경쟁하는 것만 배우며 자란 청년에게 공동체로 향하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청년 1인 가구가 모두 고립 청년은 아니겠지만, 1인 가구나 고립 청년의 식사 문제만 해결되어도 심각한 사회문제 일부는 사라질 것이라고 나는 굳게 믿는다.
저는 이번 회차를 마지막으로 '고립 청년' 연재를 저의 개인 채널에서 이어가려 합니다. 새로운 필진이 있어야 더 건강해 짐을 알기에 저는 <세상의 모든 문화>라는 안전한 공간에서 벗어나, 그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험지(?)에서 써나가려 합니다.
혹시 연재를 앞으로도 보고 싶으신 분은 아래 브런치 링크로 접속하시면 '고립 청년'의 연재를 읽으실 수 있습니다. 1년 동안 ‘고립 청년’ 연재인 <그럼에도 관계를>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새로이 다가오는 2025년에는 건강하시고, 저도 이제 다시 <세상의 모든 문화> 독자로 돌아가 진솔하게 읽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감사합니다 :D
<그럼에도 관계를>
앞으로의 연재는 자발적으로 고립을 꾸준히 선택했던 청년이, 고립의 다양한 형태에 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합니다. 자발적 고립을 개인의 문제로 바라볼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세상에는 다양한 형태의 고립이 존재합니다. 사회복지사인 동시에 고립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청년으로서 <그럼에도 관계를>을 쓰려합니다.
김재용
사회변화를 위한 글쓰기를 지속하며, 현재는 사회복지사로 노동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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