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만든다는 것
가끔 "게임을 만들면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니 일이 재미있고 좋으시겠어요?"라는 질문을 받곤 합니다. 그럴 때면 저는 게임을 만드는 것과 게임을 하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집에 사는 것만큼이나 다르다고 설명하곤 했습니다. 게임에 대한 이해가 높아진 지금은 이런 질문을 듣는 일이 많이 없지만, 아무래도 비디오 게임이라는 새로운 미디어가 낯설다 보니 들 수 있었던 호기심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저는 게임회사에서 일하면서도 게임을 만드는 것이 정확히 어떤 과정을 수반하는지 잘 알지 못했었습니다. 20년이 넘도록 지속되어 온 농구게임 시리즈 NBA2K 에 참여했었을 때는 NBA2K는 이미 농구게임으로서 완숙한 단계에 접어든 지 오래였습니다. 게임의 핵심적인 부분은 모두 이미 만들어져 있었고, 저는 게임 외적인 부수적인 부분에 참여할 수밖에 없었죠. 또 NBA2K는 그 본질상 실제로 존재하는 게임인 농구를 모방하는 시뮬레이션의 성격이 강한 게임이다 보니, NBA2K의 개발에 참여하는 것은 독창적인 세계를 만드는 것보다는 농구 시뮬레이션 플랫폼을 유지하고 확장하는 느낌이 강했습니다.
게임 제작에 처음부터 참여하고 싶었던 마음이 컸던 저는, 다니던 회사의 지사에서 새로운 게임 프로젝트를 시작한다는 말을 듣고 프로젝트에 지원하여 샌프란시스코에서 오렌지카운티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습니다. 그 프로젝트가 지난 5월 발매된 <레고 2K 드라이브>인데요, 게임 개발에 초창기부터 끝까지 참여해 보면서 강렬하게 느낀 점 중 하나는 이것이었습니다.
'보이는 모든 것이 정말로 만들어져야 하는구나'
무슨 당연한 소리인가 하실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없던 게임이 하나하나 만들어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막연하게 느끼고 마법처럼 생각했던 부분이 모두 사람에 의해 생각되어야 하고 일일이 쓰여야 한다는 것이 제게는 제법 충격이었습니다. 예를 들면, 실시간 온라인 게임에서 여러 사람이 있는 가운데 내가 조종하는 캐릭터가 점프를 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내가 점프하는 것을 보려면, 각 사람의 컴퓨터에서 내 캐릭터가 점프했다는 신호를 받아 각 컴퓨터 상에서 보이는 내 캐릭터에게 점프 애니메이션을 적용해야 비로소 모든 사람들이 같은 장면을 보고 '동시성'을 느낄 수 있게 되는 것이죠. 온라인 게임이 제공하는 이러한 환상이 너무나 자연스럽기 때문에 저는 이 모든 것이 일일이 사람 손으로 쓰여야 한다는 것을 망각한 것입니다. 애니메이션을 볼 때 우리가 보는 것이 여러 장의 그림이 빨리 재생되는 것이라는 걸 잊게 되는 것과 비슷합니다.
집이 지어질 때 문 손잡이부터 전기 배선까지 사람 손이 거치지 않는 것이 없는 것처럼, 게임도 눈에 보이는 부분은 물론이고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모두 사람 손을 거친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게임을 만드는 것과 하는 것은 다를 수밖에 없죠.
게임 개발자, 환상에서 빠져나오다
법에 관한 유명한 한 경구입니다. 법이라는 것이 제정되어 법전에 올라간 후에는 그 자체로 권위 있고 신성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이 통과되는 과정은 조잡하고 때로는 구질구질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법 체계에 대한 막연한 신뢰를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법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았을 때 충격을 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저는 위 경구에 법과 소시지 외에 현대의 비디오게임도 추가하고 싶다는 욕심이 듭니다. 현대 비디오게임이 제공하는 세계가 워낙 그럴싸하기 때문에 플레이어는 추상적으로 그 세계를 받아들이지만, 그 환상을 유지하기 얼마나 많은 예외조항과 임시방편적 조치가 이뤄지는지 알게 되면 환상이 조금은 식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확실히 저도 게임을 만들게 되면서부터 게임에 깊이 몰입하기가 더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비디오게임이 방대해지고 복잡해지면서 "게임을 만드는 사람들이 만드는 게임을 플레이하지 않는다"는 비판이 점점 더 많이 보이고 있는데요, 저도 게임을 예전처럼 많이 하지 못하는 터라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복잡한 마음이 듭니다. 게임이 제공하는 것은 어떤 환상이고, 환상을 만들어내기 위해서는 그 환상을 이루는 요소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죠. 다시 말해 환상에서 벗어나야만 게임을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다룰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랫동안 게임을 개발해 왔음에도 게임을 진심으로 즐길 수 있는 소수의 개발자들이 위대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사람들에게는 아는 것을, 혹은 이미 알아버린 것을 제쳐놓고 원하는 때에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듯합니다. 아이스크림을 한 트럭으로 사 먹을 수 있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려서 처음 아이스크림을 먹었을 때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죠. 그런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저는 여전히 알아가는 중입니다.
게임이라는 고립된 세계
모든 게임이 제공하는 것 중 하나는 바로 '고립된 세계'입니다. 혼자 하는 게임은 말할 것도 없고, 온라인게임조차도 현실세계에서의 고립을 제공합니다. 게임개발자들은 플레이어들이 해당 게임이 제공하는 세계를 '그럴싸하게' 느끼게 하는 데 엄청난 노력을 기울입니다.
현대 비디오게임 개발의 저주라고 할만한 지점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게임 개발이 정말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할 일이 너무나도 많다는 겁니다. 게임업계에는 다음과 같은 유명한 경구가 있습니다.
"누군가는 돌과 나무를 만들어야 한다."
게임 세계에 널려 있는 하찮은 돌과 나무도 누군가는 만들어야 존재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몇 개의 선만으로도 몰입할 수 있었던 과거와는 달리, 사실적인 세계를 제공하기 위한 경쟁이 나날이 강해졌기 때문에 해야 할 일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습니다. 그럼에도 게임세계가 제공하는 규칙을 그럴싸하게 만드는 일은 중요합니다. 고립된 세계에서 몰입이 깨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게임이 제공하는 핵심적 기능이기 때문이죠. 작든 크든 사람들은 게임을 할 때 항상 어떤 정도의 고립을 원합니다.
그 고립의 세계에 들어서서, 환상을 믿는 순간 그 세계는 실재의 세계가 됩니다. 게임이 가진 힘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게임은 플레이어로 하여금 해당 세계에 대한 강한 믿음을 갖게 합니다. 적어도 그 세계에 몰입한 순간만큼은 말이죠.
게임이 세상을 반영하고, 게임이 세상을 다시 변화시키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모든 매체가 마찬가지겠지만, 게임이 제공하는 환상이 강력하기에 그 힘은 더 강합니다. 그렇기에 게임이라는 매체를 경계하는 세간의 눈길은 당연한 것일 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임제작과 양육
우리가 고립된 세계에 들어서는 것은 게임을 할 때뿐만이 아닙니다. 사실 우리는 누구나 태어나면서 한 고립계를 경험합니다. 바로 '가정'입니다.
어떤 형태의 가정이나 환경에서 태어나 자라더라도, 우리는 고립계에서 자라게 됩니다. 시장 한 바닥에서 누워 자랄 수 있는 아기는 없습니다. 이러한 고립계에서 우리는 크고 작은 도전들을 마주합니다. 젖을 빠는 것부터 요람에서 몸을 뒤집는 것, 마룻바닥에서 일어나 걷는 것까지, 성장 환경이라는 고립계에는 수많은 도전이 순서대로 우리에게 준비되어 있습니다. 갓난아기에게 지게차를 운전하라거나 미적분을 풀라고 하는 어른은 없습니다.
적절한 고립계는 성장을 위한 환경이 됩니다. 현대의 거의 모든 게임이 차근차근 게임을 배울 수 있는 '튜토리얼'을 제공하는 이유입니다. 온라인게임에서는 소위 '고인물'으로부터 뉴비(초보 플레이어)를 고립시키는 것이 중요한 과제 중 하나가 됩니다. 주어진 환경에서 성취 가능한 과제에 도전함으로써 게이머는 성장하게 되는 것이죠.
타인의 성장을 계획한다는 것은 매 순간 타인에게 어떤 고립계를 제공할 것인가와 같은 말입니다. 그렇기에 게임 제작은 양육과도 닮은 면이 있습니다. 어찌 보면 게임을 만드는 것은 놀이터를 만드는 것과 유사합니다. 어린이의 놀이 경험이 깨지지 않도록 미끄럼틀에 삐져나온 못을 손질하고, 나무가 갈라져 손에 박히지 않도록 마감해야 하는 것처럼요. 고장난 놀이기구가 있으면 빨리 고쳐야 하고, 술에 취한 어른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통제해야 합니다.
양육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생각해보면, 게임 제작이 어렵고 많은 일을 수반하는 것이 당연한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이와 잘 놀아주는 어른을 보신 적 있으신가요? 그는 아이와의 게임에 몰입하면서도, 아이에게 상처를 줄 만큼 몰입하지는 않습니다. 그에게는 자신이 이미 졸업한 게임, 이미 떠나온 고립계에 선택적으로 뛰어들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수십 년의 게임 개발 경력을 가지고도 진심으로 자신의 게임을 즐기고 좋아하는 <발더스 게이트 3> 개발사 라리안 스튜디오의 대표 스벤 빈케나, 제작한 게임을 경험 단계에서 정말로 이해하고 게이머와 소통하는 <로스트 아크>의 금강선 디렉터 같은 사람이 위대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마치며
게이머를 자꾸 아이에 빗대는 것에 기분이 나쁜 분도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어디까지나 게이머는 환경을 '제공받는' 입장에 있다는 뜻에서 사용한 비유임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격투기장이나 스키점프대를 만드는 사람의 입장도 게임 개발자와 비슷할 겁니다.
아이와 놀이터 비유를 통해 제가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게임이 주는 환상에서 벗어난 상태에 있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좋은 양육을 하는 것과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 모두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좋은 양육자나 게임 개발자 모두, 고립계를 벗어난 상태에서 고립계에 몰입하는 사람 (자녀 혹은 게이머) 의 입장이 되어 보는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습니다.
그러고 보면 요즘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 개발자와 게이머 간의 갈등이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과 닮았다는 생각도 듭니다. 게임 개발 방향이 맘에 들지 않는 게이머들의 가장 큰 불평이 '개발자들이 우리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인데요, 이 말은 시대를 막론하고 자녀들이 부모에게 늘 하는 말이죠. 그래서 계속해서 게임을 업데이트해야 하는 라이브 서비스 게임 개발자와 게이머 간의 갈등은 부모와 자녀 간의 갈등처럼 본질적으로 해소하기 어려운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게임제작이 어떤 성격의 활동인지 조금 감이 오시나요? 사실 게임개발은 워낙 방대하고 세분화되어 있어 큰 그림을 보는 것이 어렵지만, 오늘 뉴스레터를 통해 게임개발이 어떤 활동인지 어렴풋이나마 전달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오늘의 글은 좋은 게임을 만드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에 대한 제 푸념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떤 문제가 왜 어려운 지를 알면 우리는 그 문제의 해결에 다가갈 수 있기 때문에, 오늘의 사유가 좋은 게임이 탄생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보며 오늘의 글을 마칩니다. 😄 🎮
* 글쓴이 - 지민웅
미국 게임회사에 취업하기 위해 미국에 온 뒤, 게임을 만들며 게임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 게임 개발자입니다.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에서 취미로 음악과 서핑을 하고 있습니다. <레고 2K 드라이브>에 게임플레이 프로그래머로 참여했습니다.
인스타그램 : @jdminoong_public
브런치: https://brunch.co.kr/@jdmin
밴드 둥둥: https://www.youtube.com/@doong_doong_music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