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듯하다가, 다시 겨울이 온 것처럼 추워졌다. 코로나는 오미크론이 대유행 단계로 접어들면서 상황이 점점 정점으로 가는 듯하고, 거리는 다시 조용해졌다. 오전은 그대로 이지만, 오후와 늦은 밤은 한가해졌다. 그럼에도 나는 별다른 글을 쓰지 못했다. 왜냐하면 몸의 어딘가 불편했기 때문이었다. 아픈 것에 대한 글을 쓰지 않고, 다른 무언가를 쓰고 싶어서 앉았지만, 글은 제자리 걸음을 반복했다.
부끄럽게도 혀를 좀 씹었다. 점심을 급하게 먹다가 씹은 곳이 곪아서 열이 조금 나기도 했었고, 며칠 동안 소염 진통제를 먹으며 일을 했다. 그렇게 불편한 그리고 한가한 어떤 날 로스팅을 하려고 원두 재고를 체크하는데 낯선 번호로 문자가왔다. 발신자는 우리 카페에서 잠시 일했던 현진이었다.
안녕하세요, 저 잠시 알바했었던 박현진입니다. 잘 지내셨죠? 요번에 삼정동에 작은 가게 시작하게 됐어요. 혹시나 시간 여유가 되실 때 한번 놀러 와주세요. 여전히 코로나가 나아지질 않네요. 항상 건강 잘 챙기시고 올해도 좋은 일 많으셨으면 좋겠어요. 저도 장유 갈 일 있을 때 놀러 가겠습니다. 글에는 웃는 이모티콘이 두 개 있었다.
평소 같으면 바로 확인하는 것도, 답장을 보내는 것도 어려웠지만, 요즘 같은 날에는 그렇게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해서 로스팅 기계를 잠시 끄고, 잠깐 문자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녀가 말하는 우리 카페에서 받은 좋은 영향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궁금하기도 했고, 무엇보다 우리 카페를 빛내주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잘 풀렸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 대화 끝에, 나는 글을 쓰기 위해서 일찍 퇴근하는 목요일에는 그곳으로 가야지 하는 다짐이 섰다.
새로 오픈 그녀의 작은 가게는 우리 카페와 다소 떨어진 곳에 있었다. 주소를 보니, 인제 대학교에 인접한 곳이었다. 그래도 고속도로를 타면 30분 안에도 당도하는 거리였다. 고속도로는 빠르게 달렸고, 내려서는 내비게이션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꾸물꾸물 운전했다. 몇 번 와보았던 도로와 생전 처음 보는 도로를 거쳐서 그 카페의 조그마한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Deep in roasters.
열 평정도 규모의 작은 공간이었다. 꽃샘추위로 노면이 살짝 언 듯한 날이었지만, 그 안은 계절을 앞선 듯 따뜻했다. 남쪽으로 난 큰 유리창 덕분인 듯했다. 그 유리창 너머 높은 곳에 경전철의 고가 선로가 보였고, 그 앞 좋은 자리에 입지한 맥도날드 간판도 보였다. 난생처음 카페 사장이 된 그녀는 그 공간의 온도에 어울리는 구김 없는 라벤더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바에는 먼지 한 올 없는 검은 에스프레소 기계가 자리 잡고 있었고, 묵직한 맛과 고소한 맛에 어울리는 안핌 그라인더가 그 옆에 앉아 있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었다. 하루에 몇 시간 영업하는지, 쉬는 날은 언제인지, 매출을 어떻게 되는지, 주문한 아메리카노와 라떼를 마시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직 혼자서 일을 한다고 했다. 내가 물었다. 밥은 어떻게 드세요. 냄새 안나는 음식으로 바 안에서 간단하게 해결한다고 했다. 노파심에 나는 괜한 말인 것 같지만, 컨셉과 친절을 유지하기 위해서 건강을 잘 챙기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침 일곱 시 즈음에 여는 그녀의 식사 시간이 보이는 듯했다. 아직 온기 없는 바 안에서 샌드위치나 누룽지를 조용히 먹는 모습이 그려졌다. 카페를 운영한 지 오래되었지만, 나도 형편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었다. 나 역시 점심은 어김없이 혼밥이고 식사 시간은 이십 분이 넘기는 경우가 없었다. 일하는 날의 점심은 늘 욱여넣는 느낌으로 간단하게 해결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날도 있지만, 때때로 서글프게 느껴지는 날도 있었다. 해서, 직원에게는 한 시간씩의 시간을 꼭 준다. 그들은또 나와 입장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녀는 10%의 설렘과 90%의 두려움으로 이른 아침 카페를 연다고 한다. 뭐가 두려우냐고 물어보니, 알려지지 않을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고 했다. 사람들이 여기에 있는 것을 모를까 봐, 걱정이라고 했다. 오래도록 카페에는 우리밖에 없었고 충분히 공감되었다. 그런데 나 같은 경우는 알아차릴까 봐 두렵다고 말했다. 약간 주저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내가 진지하게 커피를 하지만, 언젠가는 부족한 부분을 들켜버릴 것 같다는 예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힘들다고 말했다. 그 뒤에 창밖을 바라보았다.
다른 카페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위풍당당한 카페들도 제법 있다. 공간이 압도적으로 넓고, 값비싼 장비를 구비한 신상 카페는 사람이 흘러넘친다. 구석구석 숨은 자리에도 빈 자리가 없다. 코로나 상황이 심각하지만, 그런 카페가 우리 동네에도 몇몇이 있다. 아마도, 압도적인 무언가가 결국은 손님들의 심미적 취향을 자극하기 때문이지 싶다. 하지만, 나는 시간이 흐르면 드러나게 되어있는 것들, 이를테면 본질적인 것이 여전히 더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나에게 그것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두려움을 잊지 않는 것이라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싶다. 손님의 시선을 잊지 않고, 직원의 시선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그것을 귀하게 여길 것. 내 몸의 일부인 것처럼 귀하게 여기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해야, 힘든 시절도 바쁜 시절도 지나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언젠가 꽃 피는 봄이 오면, 쉽지 않겠지만 꽃이다 하면서 흥분하지 않을 요량이다.
잊지 않으려 한다. 고민하는 마음을 잊지 않고 부족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 한다. 그런 마음을 유지하는 것이 오히려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추웠던 계절을 기억하는 것, 나의 출발점을 기억하는 것은 힘든 일이다. 비약하자면, 산정에서 가파른 비탈면을 따라 굴러떨어지는 거대한 돌덩이를 밀어 올리는 어떤 영웅을 닮아가는 과정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불가능한 일인 듯하지만, 돌덩이를 작은 마음으로 바꾼다면 누구나 가능한 일.
커피 두 잔과 허브차를 모두 비우고 그런 생각이 들었다. 우리 카페와 그녀의 카페는 멀리 떨어져 있지만, 비슷한 시간에 불을 켜놓고 있다는 사실이 작지 않은 위로가 될 것 같았다. 창밖에 있는 낡은 멘션의 이름 모를 사람들이 언젠가는 이 카페를 알아주는 날이 왔으면 했다. 이 동네 깊이 스며들길 바랐다. 마침, 남향으로 난 창밖 높은 언저리에 지나가는 경전철의 모습이 보였다. 우르르 내린 사람들이 이곳으로 왔으면. 그래서 그녀가 웃으며 바삐 움직였으면, 계절을 마중할 준비가 된 그녀에게 진정한 봄이 왔으면 하고 속으로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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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핀로스터스(Deep in roasters)
경남 김해시 활천로10번길 29 더스테이 1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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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
*‘카페 인사이드’ 글쓴이 - 정인한김해에서 작은 카페를 2012년부터 운영하고 있습니다. 경남도민일보에 이 년 동안 에세이를 연재했고, 지금도 틈이 있으면 글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무엇을 구매하는 것보다, 일상에서 작은 의미를 찾는 것을 더 좋아합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ung.inhan
댓글 3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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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아
시댁이 김해인데 언젠가 카페에 들려봐야겠어요. 기성작가가 쓴 글보다 더 좋았습니다.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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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odenough
마음이 따뜻했다가 저렸다가 공감도 했다가 마지막엔 힘주며 응원하고 싶어 지네요~두분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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뽀짝
글 잘 받아보고 있어요. 잠시 같은 공간에서 일을 했던 그 사람, 지금은 다른 공간에서 같은 시간에 불을 켜고 있는 그 사람이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요. 경전철타고 꼭 찾아가볼게요. 김해 좋아서 하는 카페도 지인이랑 꼭 가보기로 했어요. 부산이랑 김해 먼 거리는 아닌데 참 맘 먹기가 쉽지 않네요. 따뜻한 봄에 찾아갈게요. 좋아서 하는 카페 지나친 적이 있는데 산책하기에도 딱 좋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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