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 시험 호락호락하게 생각하시면 안 돼요. 주변 한국인 중에 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본 적이 없습니다.” 또 시작됐다. 대뜸 몇 마디 인사와 소개를 나누자마자 잔뜩 겁을 주며 정보랍시고 조언을 쏟아내는 일은 독일에 온 후 꽤 익숙해졌다. 심지어 이번에는 나보다 늦게 독일어 공부를 시작한 사람으로부터 장황한 연설을 들었다. 타지 생활을 시작한 후로 나보다 먼저 적응해서 사는 한국인 지인들 중 처음 만나자마자 독일 생활이 얼마나 혹독할지 조언부터 시작하는 경우들이 종종 있었다. 올해는 꼭 독일어 공부에 집중하겠다고 마음 먹고 오랜만에 어학원을 등록하고, 독일 생활 3년 차에 처음으로 수업에서 만난 한국인이라 반가운 마음도 잠시, 처음 본 그와 거리를 둬야겠다고 생각했다.
회사 생활을 시작한 지 6년 차에 독일로 떠나오면서 프리랜서로 일을 시작했고, 독일 생활에 적응을 한 지 3년차가 됐다. 지독한 야근과 번아웃으로 시달리던 직장인 생활을 지나, 절박하게 매달리는 입시도 아닌, 외국어 공부에 집중하는 이 시기는 그저 나에게 황금같은 시기이자 다시 못 올 기회다. 똑같은 시험이라 할지라도 입시를 목표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는 절박한 만큼이나 어렵고 두렵겠지만, 얼마만에 나를 위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들뜬 나에게는 사실 시험 난이도 같은 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확신이 없을 때 조언을 찾아 헤매고, 모든 조언을 듣다 보면 더 불안해진다
지금에야 단번에 불필요한 조언에 선을 긋지만, 사실 독일에 온 첫 해에는 나도 여기저기 정보를 얻기 위해 모든 조언에 귀를 기울였고 그만큼 휩쓸리기도 했다. 사는 동네에 관한 이야기, 체류 허가를 잘 받기 위한 정보, 독일어를 공부하는 노하우 등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이것저것 물어보며 귀를 쫑긋 세웠다. 유학생도 있었고, 직장인도 있었고, 독일인과 결혼을 하기도, 아이를 낳기도 하는 등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양했기에 감안해서 걸러들어야지 하면서도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서는 동요되는 날들이 있었다.
걱정과 불안은 전염력이 강해서 아무리 거부하려 해도 누군가 끊임없이 귓가에 속삭이면 나도 모르게 조금씩 무력해진다. 호기롭게 올해는 독일어 공부에 집중해서 자격증을 따겠고 하면 “에고, 그거 그렇게 쉬운 일 아니에요.”하며 주변에서 2년, 3년을 공부해도 점수에 미치지 못해 유학을 포기하고 돌아간 사례들을 쏟아내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반면 “할 거면 좀 더 독하게 해야지. 겨우 그 정도로 투정부리면 원하는 성적을 못 받을거야"같은 채찍질도 내용은 다르지만 여전히 나를 무력하게 하기엔 충분한 힘을 갖고 있다.
다양한 사람과 교류를 하겠다고, 또 한 편으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보’라는 것을 얻어보겠다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또 그 때마다 나를 노출하다보면 응원을 하기보다는 조언을 하는 사람들을 더 쉽게 만날 수 있다. 그리고 그 조언이라는 것을 잘 들여다보면, 나의 상황에 대한 충분한 이해를 하려고 노력하기보다는, 대체로 자신의 경험에 강한 확신을 갖고 주장을 하는 경우가 많다. 독일어 실력이 부족해서 상사에게 조롱과 무시를 당했던 한 사람은 독기를 품고 아무도 만나지 않고 독일어만 공부해서 지금 좋은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의 이야기를 듣다보면 여유를 부리거나 친구를 사귀어서는 안 되고, 독방에 갇혀서 독일어만 공부하는 것이 정답일 것만 같다.
결국은 슬럼프가 왔다.
누굴 만나도 걱정하는 눈빛으로 쏟아내는 조언을 일상처럼 듣던 시절, 결국은 슬럼프가 시작됐다. 당연히 새로운 외국어를 공부하는 거니까 모르는 단어 투성이일텐데, ‘왜 나는 이렇게 모르는 게 많지?’로 시작된 스트레스가 점점 커지면서 독일어 책을 펴보는 게 스트레스가 됐다. “모르니까 배우러 다니는거지!”라는 남편의 위로는 들리지가 않았다. 그간 주변에서 듣던 독일어 괴담에 따르면, 독일어는 영원히 정복할 수 없고 수많은 사람들이 포기하고 공부하면 할수록 어려워서 우울증에 빠진다고 한다. 독일어 시험은 말도 안 되게 기이한 방식으로 출제되며, 족보 없이 단 번에 합격하는 경우는 절대 없다고 한다. 처음에는 나에 대한 불안에서 시작해 두려웠다면, 점차 독일어라는 산이 너무 거대해서 가까이 갈 수 없는 괴물처럼 느껴졌다.
아직 새로운 세상을 만나기 전의 상태에서 함부로 조언을 흡수하다보면 결국은 공포와 두려움만 남는다. 저 문을 열고 들어가서 만날 새로운 세상이 생각보다 걸을 법한 길일지라도, 한 번씩 저마다 넘어진 경험만 얘기하니 차마 문을 열 엄두가 안 나는 것이다. 한 번을 넘어지더라도 크게 다치지 않았다면 툭 털고 일어나면 그 뿐인데, 백 사람의 넘어진 얘기만 듣다보면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그리고 공포 괴담을 확산하는 것은 새로운 세상으로 넘어간 사람들보다는 아직 문도 채 못 열어본 사람들인 경우가 많다.
물론 섣부른 조언을 하는 마음도 모르는 것만은 아니다. 겁을 주고 기를 죽이려는 게 아니라, 자신이 걸어온 길이 너무 절박했기에, 또는 아직 그에게도 커다란 문제가 풀리지 않아서 여전히 두려운 마음에 나에게도 마음을 단단히 먹으라고 일러준 것일테니까. 나 역시 가장 서툴고 겁이 많던 시절에 어설픈 조언들을 많이도 늘어놓았는데 다시 생각하면 새삼 아찔하다. 그 때의 조언은 실제 상대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됐다기 보다는 내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만 고스란히 보여준 셈이 됐다. 조언은 때론 하소연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고, 나 이만큼 노력했다고 알아달라는 사인이라는 점에서 강력한 자기 긍정 최면일지도 모른다.
겁먹지 말고 그냥 꾸준히만 하라던, 격려만 해주던 사람이 결국은 해냈을 때
한참을 슬럼프에서 헤매다가 의외의 사건으로 다시 의욕을 되찾았다. 영어로 논문을 쓰는 남편은 독일에서 박사 과정 5년차이지만 아직 가장 높은 단계의 독일어 성적이 없었다. 그래도 독일에서 연구를 하면 독일어 실력이 늘 수밖에 없는데, 아직 시험을 보지 않았다는 이유로 남편은 종종 한국인 지인들에게 타박을 듣기도 했다. “네가 그 시험의 무지막지함을 몰라서 그래! 독일어를 아무리 잘해도 그 시험은 붙을 수 없다구!” 그런데 우연히 장학금 신청을 위해 독일어 성적이 필요했던 남편은 2주 정도 공부하고는 단 번에 높은 점수로 시험에 합격했다. 그리고 순식간에 모든 주변의 조언은 잠잠해졌다. 늘 남편 말만 절대 안 듣고 남의 걱정은 다 흡수하고 다녔던 나로서는 별 거 아닌 그 일이 다소 충격이었다.
그제서야 ‘독일어도 그냥 하나의 외국어일 뿐이야. 꾸준히 하면 당연히 잘하게 돼'라는 말을 믿고 다시 공부를 시작했다. 신기한 건, 아무리 어려워도 그 때만큼 괴롭지는 않았다. 왜 이런 것도 모르냐는 자책도 사라졌고, 엄청나게 높은 산을 넘어야 한다는 부담도 사라졌다. 그냥 모르는 걸 알기 위해 공부를 하다보니 점점 공부가 재밌어졌다. 물론 여전히 나의 독일어 실력은 한참 부족하고, 시험을 보기에는 못 미치지만 작년에는 엄두도 못 내던 기사문을 더듬더듬 읽는 것만으로도 꽤 흡족하다.
꼭 모든 조언하는 사람의 의도를 불순하게 의심하지 않더라도, 걱정과 불안이 가득 담긴 말들은 때론 물리적으로 거리를 둘 필요가 있다. 반대로 누군가에게 조언을 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나와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아온 그에게 충분한 결단력이 있을 거라고 무조건 믿고 말을 아껴보려 한다. 신입 혼쭐내는 조언 폭탄 같은 건 날리지 않고, ‘마음 편히 갖고, 그냥 지금처럼 하면 돼요' 같은 의미있는 격려를 하는 사람이 될 수 있기를.
* '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 글쓴이 - 메이
유학생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신혼 생활을 꾸리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이야기. 프리랜서로 일하며, 독일어를 배우면서, 일상의 풍경들을 낯선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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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미국에 사는 저도 공감합니다. 저는 미국에서 산 지 어언 20년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영어는 아주 자연스럽게~, 아무 문제없이~ 잘 할 줄 알겠죠? ㅎㅎㅎㅎㅎ 무슨 뜻이지 혹시 아실 지도... 그냥 애키우고 집안살림하며 살았죠. 큰애가 20살이 넘았으니 저도 미국생활 20년이 넘었겠죠~~? 그!러!나!! 이곳은 한국사람들이 많은 곳이라 영어를 한마디 쓰지 않아도 살수 있는 곳이예요~ 그러나보니 영어가 영~ 요즘 자괴감에 우울 모드였었습니다. 메이님 글을 읽고 다시 힘을 얻어갑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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