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의 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

계산할 때마다 머뭇거리는 이유_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_메이

2024.09.11 | 조회 9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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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총 20여명의 작가들이 세상의 모든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매일 전해드립니다.

처음 독일에 와서 가장 어색했던 것 중 하나는 인사였다. 어딜가든 누굴 만나든 눈이 마주치면 무조건 인사를 해야한다. 커피 한 잔을 주문할 때도 인사부터 하고, 주문을 한 뒤,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작별 인사를 꼭 한다. 식당에서 음식이 나와도 감사합니다 라고 반드시 인사하고, 지나가던 사람과 눈이 마주쳐도 인사를 한다. 당황스러웠던 건 헬스장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는데도 ‘할로(만났을 때 인사)’ 하는 인사를 건네고, 탈의실을 나가면서도 ‘츄스(헤어질 때 인사)’를 한다. 옷을 미처 다 입지 못한 상태일 때면 내 시선은 길을 잃고 어색하게 나도 인사를 건넨다. 수영을 마치고 샤워를 하는데 알몸으로 내 눈을 보며 친절하게 인사를 건넨 할머니의 미소를 잊을 수 없다. 샴푸 거품으로 가득한 머리를 감다가 얼떨결에 알몸으로 인사를 하고는 급히 샤워를 마치고 나왔다.

사소한 문화 차이에 익숙해질 즈음, 독일의 한 카페를 방문했다가 어디선가 ‘안녕하세요’라는 한국어 인사가 들렸다. 아는 사람인가 싶어서 봤더니 처음 보는 중년의 한국 여성이 자리에 앉아 지나가는 나에게 인사를 건넨 것이었다. 순간 상황 파악이 바로 되지 않아 멍하니 그 사람을 바라보다 어색하게 ‘안녕하세요’하고 인사를 하고 발길을 재촉했다. 혹시나 싶어 남편에게 아는 분이냐 물었더니 그건 아니라고 했다. 동양인이 없는 동네에서 어쩌다 한국어 말소리가 들리자 반가운 마음에 지나가는 우리에게 인사를 건넨 것 같았다. 매일 하는 인사에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독일어가 아닌 한국어로 지나가는 사람과 인사를 하는 건 처음이라 어쩐지 어색했다.

한국어로 ‘안녕하세요’와 독일어로 ‘구텐탁’은 같은 의미인 것 같지만 사용 상황은 꽤 다르다. 한국에서는 모르는 사람과 인사를 할 일이 거의 없고, 특히 문자 그대로 ‘안녕하세요’라는 말은 흔히 사용하지는 않는 것 같다. 매일 보는 사람과는 ‘오셨어요’하며 고개를 꾸벅하거나, 반가운 친구에게는 ‘왔어?’, 우연히 만난 지인에게는 ‘어? 여긴 어쩐 일이야’같은 말로 인사를 대신한다. 그게 매번 ‘안녕하세요’ 하는 것보다는 자연스럽다. 당연히 헬스장 탈의실이나 샤워실에서, 길에서 오가며 인사를 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물건을 사거나 음식을 주문할 때면 가볍게 목례를 하거나 서로 눈을 마주치지 않은 채 주문만 한 적도 많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안녕하세요 라는 인사는 처음 만나서 서로 소개할 때 정도 쓰지 않나 싶다. 하지만 독일어로 ‘구텐탁’은 일상 생활에서 정말 많이 쓰이는 인사말이다. 정확히 말하면 구텐탁은 좋은 하루라는 뜻인데, 독일인들은 ‘모겐(좋은 아침)’ ‘아벤(저녁 인사)’과 같은 시간대에 맞는 인사를 더 많이 사용한다. 독일어를 처음 배울 때 교과서에 나오는 그 인사말들을 실제로도 일상 생활에서 흔하게 사용한다. 하루에도 아무리 적어도 5-6번은 꼭 인사를 한다.

그런 점에서 ‘안녕하세요’는 ‘구텐탁’으로 설명하기는 어려운 문화적 차이가 있고, 이러한 단순 번역으로는 정확히 그 의미를 전달하기 어려운 점이 있다. 한국어를 유창하게 하는 독일인 친구가 나를 만날 때마다 ‘안녕하세요’ 하고 허리를 숙여 인사할 때마다 그 모습이 어색해서 나는 ‘모겐’하고 독일어로 인사를 건넨다. 그 친구는 한국식 인사를 ‘안녕하세요’로 배웠기 때문에 매주 보는 나에게도 허리를 숙여 그렇게 인사를 하는 것이다. 아마도 학교에서 처음 한국어를 배웠을 때 ‘안녕하세요’는 ‘구텐탁’이라고 배웠을테니까. 어려운 한국어 문법과 어휘, 한국사와 한자까지 수준급인 그 친구조차도 아직 한 번도 한국을 가보지 않았기 때문에 그 미묘한 차이를 알 리가 없었다. 언어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과 별개로 그 사람들의 문화와 습관을 이해하는 것은 꽤 어려운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요즘 가장 내적으로 갈등에 시달리는 것은 팁 문화다. 아직까지도 계산할 때마다 매번 고민을 한다. 독일은 그래도 팁을 강요하는 분위기가 아니고, 일부 관광지를 제외하고는 팁을 지불하는 것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 물론 팁을 지불하지 않겠다 할 때약간의 어색함은 감수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말도 없이 영수증에 추가금을 붙여서 요구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사실 없다고는 못하겠다). 하지만 팁을 안 낼수도 없는 미묘한 상황들이 발생한다. 예컨대 식당에 가서 기본적인 서비스 외에 추가적인 서비스를 적극적으로 제공하는 경우에 암묵적으로 팁을 지불하는 것이 예의다. 고수를 못 먹으니 스프에서 빼줄 수 있냐고 묻자 웨이터가 쉐프와 한참을 이야기하고는 나에게 ‘우리 식당에서는 처음부터 고수를 넣어서 만들기 때문에 빼줄 수는 없어요. 하지만 당신을 위해 새 스프를 따로 만들어 드릴게요’라는 말을 들었을 때, 무조건 팁을 지불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다른 스프를 주문하겠다고 했지만 오히려 나를 만류하며 적극적으로 새 스프를 만들어오고 재차 만족스러운지 묻는 그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지 않는 것은 어쩐지 무례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만약 한국이었다면 내가 친절한 서비스를 받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정말 맛있었습니다. 너무 감사했어요’하는 극진한 인사로도 충분히 마음을 전할 수 있었을텐데 독일에서는 말로만 인사하고 팁은 지불하지 않는 게 묘하게 무례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서비스를 받았다면 감사의 마음으로 팁을 지불하는 것이 당연하게 느껴지다보니 차라리 키오스크 주문이나 셀프로 음식을 받아오는 식당이 마음이 편하다. 친절하게 서비스하다가도 팁을 지불하지 않으면 인사도 없이 냉랭하게 돌아서는 경우가 너무 많았기 때문에 그 어색함을 피하고 싶어서다. 한 번은 단골 아이스크림 가게에서 민망해졌던 적이 있다. 자주 가다보니 사장님도 우리를 기억하고 늘 주문하는 메뉴나 요청 사항을 챙겨주셨다. 가격이 비싼 편이지만 맛있는 디저트와 친절한 서비스에 자주 갔던 곳이다. 거스름돈을 받지 않는 것으로 팁을 지불하곤 했었는데, 그 날은 별 생각없이 동전을 모아 정확한 금액을 지불했다. 남편과 대화가 삼매경이다보니 계산을 하면서도 깔깔대다 그날따라 17.95유로를 소수점까지 맞춰서 지불했다. 묘하게 사장님 표정이 싸늘해졌다. 불과 옆 테이블에서도 친절하게 인사하던 사장님을 본 지라 어쩐지 우리는 민망해졌다. 내가 말을 꺼내기도 전에 남편이 물었다. ‘금액 정확히 맞춰서 냈어?’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 어색한 공기를 똑같이 느끼고 있었고 우리의 칼같은 계산 때문이 아닐까 라는 걱정을 하고 있던 것이다. 정확한 금액을 지불했지만 어쩐지 실수를 한 것 같은 찝찝함에 어색한 침묵이 흘렀다. 물론 다른 이유로 사장님이 표정이 안 좋았을 수 있고 타지에 사는 처지라 괜히 눈치를 본 걸 수도 있지만, 마음은 영 편하지 않았다.

가끔은 억울한 마음이 들어 투덜대기도 한다. 독일처럼 최저 임금 높고, 음식 가격 높은 나라에서 대체 왜 팁까지 지불해야 하는지 이해가 안 되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카페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 내가 했던 서비스들을 떠올렸다. 멤버십 적립을 할 줄 모르는 나이 지긋한 손님 옆에 서서 회원가입을 직접 해드리느라 20분을 서서 설명했던 그 날 ‘고마워요’ 한 마디에 뿌듯했었다. 전화번호가 뭐더라, 방금 내가 비밀번호를 뭐라고 썼더라를 재차 묻는 어르신에게 귀찮은 내색없이 도와드리고 돌아왔을 때도 돈을 더 받겠단 생각을 하진 않았다. 그 얘길 할 때면 독일 사는 이웃은 나에게 ‘너는 독일에서 일했으면 팁으로 부자 됐을 거야’란 농담을 하기도 했다.

논리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그것이 문화적으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것이라면 반박을 하고 토론을 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 친절하고 극진한 서비스를 받았을 때 말로만 표현하고 팁을 지불하지 않으면 정작 서비스를 제공한 사람은 마음이 상하기 때문이다. 마치 독일에 와서 ‘나는 아는 사람 아니면 절대 인사하지 않아’하고 고집을 부리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러면 그저 무례한 사람이 될 뿐이다. 가뜩이나 무섭게 오르는 물가 때문에 외식도 자주 하지 않는 우리 부부는 불편한 공기를 감수하느니 차라리 팁으로 감사를 표현하고, 외식 횟수를 더 줄이는 쪽을 택했다. 서비스에는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독일의 공기에 조금씩 적응해가고 있지만 아직 마음 깊숙한 곳에서 불편함이 꿈틀거린다. 다른 문화에 적응한다는 것은 언어를 공부하는 것 만큼이나 어려운 일이다.

 

 

* '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 글쓴이 - 메이

유학생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신혼 생활을 꾸리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이야기. 프리랜서로 일하며, 독일어를 배우면서, 일상의 풍경들을 낯선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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