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보는 배우, 믿고 보는 감독, 믿고 보는 작가 등 날마다 쏟아지는 수많은 영화, 드라마등의 볼거리를 선택하기 쉽게 만들어주는 존재들이 있다. 물론, 믿고 보는 배우가 감독을, 작가를, 혹은 제작사나 방송국을 잘못 만나 ‘망작’의 흑역사로 기록되는 작품들이 있기도 하지만, ‘믿고 보는’ 존재가 된다는 건 모든 설움을 잊게 해주는 찬사가 아닐까.
글을 쓰다보니 책을 찾아서 읽게 되었다. 예전엔 가까이 하기 어려웠던 ‘책 읽는 사람들’ 틈에 나도 살포시 끼어본다. 매일 책을 읽었다는 기록을 인증하는 클럽에 가입한지도 3년이 넘었고, 이제는 내가 추천하는 책을 ‘믿고 보는’ 사람들도 생겼다.
독서만큼 개인적 취향이 반영되는 취미가 또 있을까 싶기도 한데, 유독 어떤 분야의 책은 자신있게 믿고 거른다는 사람들이 눈에 띈다. 바로 자기계발서다.
자기계발서를 믿고 거르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1) 뻔한 이야기를 특정 필자만의 비법으로 포장해, 누구나 성공하는 지름길로 이끌어준다는 허망한 믿음을 갖게 만든다거나, 2) ‘성공’을 부의 축적이라는 단일 가치로만 보는 시각, 3) 지금 여기, 그대로의 삶을 불만족스럽게 만들고, 어디론가 달려가야만 할 것 같은 불안감을 조장하는데 있지 않나 생각한다.
실의에 빠진 나를 구원해 줄 해답이 적혀있는 책과 멘토를 만나기 위해 ‘이번에는’ 이라는 기대와 함께 또 한 권의 자기계발서를 집어든다. 한 권의 책을 다 읽기도 전에, 혹은 애써, 끝끝내 완독을 한 이후 ‘역시 난 틀렸나봐.’라고 중얼거리며 현생의 구렁텅이에 빠지게 되기 일쑤지만.
천편일률적이라고 폄하되는 자기계발서는 정말로 가치 없는, 믿고 걸러야 할 책일까? ‘그런 책’ 을 쓰고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진짜 가치 있는 책’을 만드는 사람들에 비해 덜 존중받아 마땅한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운다. 그렇다면, 진짜 가치 있는 책은 어떻게 정의내려야 할까?
읽어야 할 책 목록에 있던 고전들을 기피해오다 내 손으로 직접 고전을 고르고,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기는 경험을 하게 된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단순히 한 권의 책을 읽어내는 ‘완독’의 경험을 넘어서서 책을 쓴 작가가 참고한 시대적 배경, 책이 출간되었던 시점의 반응, ‘의심의 여지 없이 명작’인 작품이 출판될 곳을 찾아 몇 십군데, 몇십년을 헤매다가 결국 빛을 보게 된 스토리가 익숙해지고나니 ‘자신있게 걸러야 할 책’이라는게 정말 존재하는 걸까? 라는, 답이 없는 질문으로 다시 돌아오고 말았다.
모든 책이 우열을 가릴 수 없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은 아니다. 어떻게 이런 책이? 라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들이 분명 존재한다. ‘누가 해도 상관없는, 구구절절 옳은 말’이 담겨있는 자기계발서의 특성상 남의 책의 내용을 그대로, 혹은 적절히 카피해서 내놓는 책들도 있다. 심지어 같은 작가가 자기복제를 양산하는 경우도 있다. 한 때 자기계발서를 열심히 읽었다가 이제는 읽지 않게 된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은 ‘그 말이 그 말 같아서’ 다. 그런데, 표절과 자기 카피는 반드시 자기계발 분야에서만 일어나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어디서 본듯한 설정, 어디서 본듯한 메시지가 반복되는 것이 비단 자기계발 분야 도서만의 일일까?
‘자기계발서를 믿고 거르는’ 사람들과 ‘더 나은 자기계발서를 찾아다니는’ 사람들, 양측의 주장에는 공통적으로 이런 생각이 깔려있다. 읽을 책은 쌓여있고, 읽을 수 있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으니, 이왕 책을 읽을 거면 ‘좋은 책’을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좋은 책’을 보는 시각이 사람마다, 같은 사람에게도 상황에 따라, 시점에 따라 다르다는데 있다. 자기계발서를 ‘믿고 거르는’ 사람들은 그 시간에 문학이나 철학 등 조금 더 ‘깊이 있는 책’을 읽기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반대측에서는 ‘위대한 걸작’이 지금의 내 삶을 나아지게 하는데 어떤 도움이 되냐고, 시간이 있다면, 당장 내 하루를 나아질 수 있게 하는 가르침을 주는 책을 집어들고, 적용하고, 실천해야한다고 주장한다.
뻔한 소리의 반복이라는 자기계발서에도 트렌드와 역사가 있다. ‘OOOO하는 법’ 을 지나, ‘XX의 배신/비법/비밀’을 거쳐, 특정한 부류의 사람들을 한데 불러모으는 책들이 인기였던 것 같은데 얼마전부터는 ‘공부’ 혹은 ‘수업’이라는 키워드가 대세다.
기존의 자기계발서가 ‘내가 살아온 방식을 따르면 나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는데 주력했다면, 요즘의 자기계발서는 우리가 왜, 매일 실패를 되풀이하는지에 대한 분석을 개인적 차원에서 찾는다기 보다는 사회적 현상, 역사적 흐름, 과학적 분석을 통해 다양하게 짚어준다. 자기계발서를 굳이 찾아 읽지 않는 사람들도 우연히 접한 책 한 권에 담겨 있는 한 줄의 문장에서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과제’를 발견하게 되는 순간을 발견하게 된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마인드셋을 고쳐라! 라고 명령하지 않고 다시 생각해 볼 것을 권하는 애덤 그랜트나, 타인을 강제하는 기제로 쓰였던 수치심의 굴레에서 벗어나 용기있는 삶을 살아가도록 권하는 브레네 브라운을 사랑한다고 자주 말하곤 한다. 아마도 그들의 책을 읽으며 느꼈던 찰나의 위로가 주었던 기억 때문이 아닐까.
조심스럽게 당부하고 싶다. 실패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일단 눈 앞에 있는 책을 되도록 많이 읽어보는건 어떻겠냐고. 책 한 권을 집어들고, 읽어내는데 들인 노력이라는게 실패해 봤자 인생에서 얼마나 큰 타격이 있을까? 물론, 시간과 노력이 아깝긴 하겠지만, 우리가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하루의 시간을 양적으로 비교하면, 약 300 페이지, 한 권의 책을 읽어내려가는데 쓰는, 10시간 남짓한 시간이, 어쩌면 세상 쓸데없는 시간이었다라고 생각한 그 시간이, 나라는 사람을, 적어도 독서 취향을 알게되는 새로운 기회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믿고 보는’ 책을 더 많이 발견하기 위해서라도, ‘믿고 거른다’는 나의 무의식을 다시 한 번 점검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따지고 보면, 어떤 책이든 자기계발이라는 단어의 사전적 정의처럼, 내 안에 잠재해있는 슬기나 재능, 사상 따위를 일깨워주는데 도움을 준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읽고나서 잠시 후회할수도 있지만, 직접 읽고, 직접 사고하는 그 경험의 가치를 굳이 포기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한 번 쯤 생각해보면 좋겠다.
뻔한 새해 다짐, 운동, 다이어트, 독서, 또 실패하고 말더라도, 믿고 거르며 몸을 사리기보다는, 일단 부딪혀보자. 숨겨진 나를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만나게 될지도 모르니까.
[사이에 서서] 황진영
미국 Washington DC에 있는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 프로젝트에 참여했고, 신간 <나의 시간을 안아주고 싶어서> 에 세 편의 글을 담았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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