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치 못하게 독일에서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2년 반이 지나서야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두 달이라는 시간동안 남편과 나는 각자 본가로 들어가 모처럼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러가는 길, 기차 창문 밖으로 올 겨울 첫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한국도 엄청 춥다던데, 같은 생각을 하며 무려 24시간이나 되는 이동 시간과 대기 시간을 지나 고된 몸으로 집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일하러 나가는 길 잠깐이라도 나를 보겠다며 역까지 마중 나온 엄마를 봤을 때도 사실 덤덤했다. 너무 멀다 정말, 살벌하게 춥네 같은 소리를 하며 집에 도착했다.
곧장 출근한 엄마와 인사를 하고 혼자 현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서는데, 어쩐지 기분이 이상했다. 이 집이 이렇게 적막했던가. 한 때는 할머니까지 모시고 다섯 식구가 전쟁터처럼 정신없이 치열하게 살았던 이 집을 이제는 엄마 혼자서 여유있게 누리고 살 줄 알았는데, 사람의 흔적이 느껴지지 않는 어색한 썰렁함만이 감돌았다. 물건으로 가득찼던 수납장들이 텅 빈 채로 남겨져있는데, 당연히 식구가 줄었으니 짐이 줄었겠거니 하면서도 이상하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순간적으로 몰아치는 적막이 너무 숨이 막혀서, 이 집에서 혼자서 앉아있었을 엄마를 생각하니 미안하고 안쓰러운 마음에 엉엉 울었다.
너무 갑작스럽게 독일로 떠난 것 같아서, 좀 더 자주 찾아오지 못한 것에 대해서 미안함에 마음이 무너졌다. 그 마음을 채워보려고 집 안 구석구석 뒤지며 망가진 채로 방치된 것들을 찾아 하나하나 수리를 하고, 업체를 부르고, 물건을 새 것으로 바꿨다. 몇 주간 머물면서 눈에 보이는 것마다 새 걸로 교체를 하니 돈을 왜 이렇게 펑펑 쓰냐고 엄마는 못마땅해 했지만 사실 그건 어쩌지 못하는 내 미안함을 돈을 써서 상쇄해보려는 수작일 뿐이었다.
엄마의 외로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자 나는 엄마가 더 불편해졌다. 몇 년만에 한국에 와서 만나야 할 사람들, 해야할 일들, 처리할 수많은 용건들에 바빠 집에 오면 쓰러져 잠들기 바빴고 그 때마다 나를 보며 한달음에 달려나오는 엄마에게 더 미안해졌다. 내가 만약 결혼하고 서울에서 신혼 생활을 했더라면 엄마가 이렇게 외롭지는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불쑥 들 때면 어찌할 바를 모르고 더욱 마음을 외면했다. 사실 엄마는 굉장히 잘 지내고 있을지도 모른다며, 속 얘기는 하지 않고 결혼 전 툴툴대던 그 모습 그대로 엄마 곁에 머물렀다.
이번달은 나갈 돈이 너무 많아서 스트레스야, 한숨 푹 쉬며 요즘 고민을 털어놓으면서 그 날도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이어나갔다. 요즘 경기도 어렵고 물가는 높고 쉬운 게 없다, 엄마도 고충을 털어놓으며 서로 복잡한 돈 얘기를 하다가 답답하다며 드라이브나 가자고 엄마가 데이트 신청을 했다. 그래 좋지, 이런 얘기 말고 기분 전환 하자며 따라나섰다. 통유리 너머로 강이 보이는 양수리의 카페에 앉아서 커피를 마시니 그동안 하지 않았던 새로운 이야기가 쏟아졌다. 나는 독일에서 이런 고민을 했고, 앞으로는 이렇게 살고 싶어, 같은 속 얘기들을 꺼냈다.
한참을 대화가 이어지던 중에서야 가장 하고 싶은 말을 꺼냈다. 엄마 외롭지는 않아?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엄마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 가고 나서 1년은 어쩔 줄을 모르겠더라. 바쁘게 살아도 집에 오면 그 적막함을 견딜 수가 없었어. 엄마의 고백에 차라리 내 마음이 편해졌다. 그 때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집은 사람을 닮는다던데, 이 집이 너무 적막하고 외로워서 엄마가 오래 외로웠구나 싶었어. 그걸 느꼈냐면서 엄마는 그간의 외로움을 이기려는 노력들에 대해 말해줬다.
“문화센터에 가서 난타를 배우고, 드럼을 치고, 요즘은 미술학원을 다녀. 일하는 시간이 전보다 줄어드니까 그 시간을 뭐라도 채워야겠더라고. 하루종일 정신없이 보내다보면 에너지를 다 써서 집에오면 기절하지. 어떤 날은 에너지가 남는지 사람이랑 말을 하고 싶어지는데 그럴 때면 누구에게든 전화를 해. 전에는 전화기 붙잡고 몇 시간 통화하는 사람들보면 무슨 할 말이 그렇게 많은가 싶었는데 이제는 알겠더라고. 사람이랑 말이 너무 하고 싶은거야.”
섣불리 더 바쁘게 살자거나 친구를 많이 만나라는 말 같은 건 하지 않았다. 사람들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어쩐지 더 외로운 날도 있지 않아? 내가 묻자 엄마는 그렇다고 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사람을 만나면 그 날은 마음이 더 외롭다고도 했다. 사실 엄마, 나도 외로운 순간들이 있었어. 내 안의 외로움을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다. 대학 시절 혼자 자취했던 기간에 자취방이 너무 외로워서 매일 친구들을 불러내며 마음을 달랬던 시간들, 가끔 남편이 출장가면 일주일씩 독일 집에서 혼자 있을 때 적막함, 그리고 지금도 엄마가 출근하면 혼자 빈 집에서 일을 하면 적막함이 견디기 힘들어 티비 소리라도 작게 틀어놓는다고 얘기했다.
“너도 그러니?” 하면서 한순간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나 없는 동안 분당에서 자취하는 동생이 가끔 들러 비슷한 말을 했다고 한다. “엄마 나도 퇴근하면 그 적막함이 견딜 수가 없어서 티비라도 켜" 아마도 사무치는 외로움에 어쩔 줄 몰라하는 엄마를 위로하기에 공감만한 것이 없을 거라고 동생도 생각했나보다. 신기해하는 엄마 눈에 조금은 생기가 돌았다. “나는 너희 키우는 동안 외로움 같은 건 모르고 살았어. 사는 게 너무 치열하고 고돼서 외로움은 먹고 살 만한 사람들이나 누리는 사치인 줄 알았지. 근데 난 나이가 들어서 내가 외로운가 했는데 젊은 너희도 외롭니?” 외로움이 나이랑 무슨 상관이냐며 한참을 우리는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했다.
사람은 언젠가는 혼자가 된다, 지금 누군가와 살아도 사실 혼자 있는 시간을 잘 견디지 않으면 언제든 외로울 수 있다며 엄마와 나는 외로움이란 감정 앞에서 한 편이 되었다. 모든 사람이 사실은 다 외롭다는 말은 이상하게도 힘이 있었다. 나 혼자 외로운 것 같을 때는 적막함이 칼이 되어 가슴을 베는 것 같다가도 사실 모두가 외로움을 잘 견디고 있을 뿐이라는 걸 떠올리면 조금은 괜찮아진다. 남은 삶은 외로움을 어떻게 다루느냐에 달린 것 같다며 해가 질 때까지 대화를 이어갔다.
상황은 아무것도 달라진 건 없다. 문득문득 차오르는 외로움에 아마도 엄마는 혼자 남겨진 집에서 몇 날을 더 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건 누군가의 부재 때문도 아니고 인생을 잘못 살아서가 아니라, 사실은 그게 삶의 가장 중요한 과제인 것 같다고 생각하면 어쩐지 마음이 가벼워진다. 엄마만 외로운 건 아니니까, 외로운 사람들끼리 더 자주 안부 묻고 공감하며 잘 살아보자고 위로를 던지는 게 나의 일이 되었을 뿐이다. 곧 다시 독일로 돌아가야 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지만, 앞으로 남은 삶은 외로운 누군가를 위로하는 데 더 마음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얼굴 마주볼 때 서로 더 환대하고, 가끔은 혼자 있을 법한 시간에 안부를 묻고, 서로를 더 필요로 하며 살아보자고. 위로하는 법이 곧 사랑하는 법이 아닐까, 곱씹는다.
* '독일에서 살게 될 줄은' 글쓴이 - 메이
유학생 남편과 함께 독일에서 신혼 생활을 꾸리며 보고 듣고 경험하는 이야기. 프리랜서로 일하며, 독일어를 배우면서, 일상의 풍경들을 낯선 시선으로 관찰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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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days
아침에 배달된 메이님 글 읽으며 엄마의 부재와 아빠의 외로움을 생각하며, 이국땅 프랑스에서 또 한움큼 눈물을 쏟네요.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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