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일이다. 발산하는 듯한 나의 관심과 그에 따른 활동들을 곰곰이 되짚어보면서 하나 발견한 게 있다. ‘나는 창작자가 자신의 창작물에 대한 이야기하는 걸 듣고, 그에 대해 질문하고 답을 들으며, 그와 관계 맺기를 좋아하는 사람이구나.’라는 사실이다. 나아가 창작자에 대한 매혹의 근원이 ‘나 스스로가 창작자가 되고 싶은 욕망’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도 발견하게 되었다.
그러면 나는 왜 창작자가 되고 싶은가? 나를 표현하고 싶어서, 내 생각과 감정이 타자에게 어떻게 가닿는지 알고 싶어서, 그 과정에서 타자에게, 커뮤니티에, 사회에 작지만 소중한 영향을 미치고 싶어서 정도가 아닐까 싶다.
20년 동안 HR 영역에서 일해오면서 개인으로서 나의 삶은 일터와 사회와 긴밀하게 상호작용을 해오고 있음을 발견했다. 그 여정에서 자연스럽게 요즘 나는 ‘일터에서의 다양성 포용(Diversity-Inclusion)’이라는 주제로 연구하고 있다. 관련해서 다양한 분야에서 변화를 만들고자 노력하는 분들과 연결될 수 있었고, 그 점들이 이어져 IVE 컨퍼런스에도 참석하게 되었다.
‘내가 경험한 아이브’라는 선명한 글자 아래 임재성 변호사의 인트로로 시작해서, 뮤지션&작가 요조, 뉴닉 김소연 대표, 개항로프로젝트 이창길 대표, 사회학자 오찬호 작가, EBS 이미솔 프로듀서의 스피치로 거침없이 달려 나갔다. 인터뷰 영상에 이어진 강연들은 고도의 기술로 압축된 알약 같았다. 연사별로 십 분 정도의 짧은 스피치였음에도 그 안에는 깊고 넓은 바다들이 있었다.
요조의 공연 전,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잡은 사람은 IVE Corporation의 송주환 대표였다. 얼굴이 잘 알려지지 않은 그는 내게, 마치 한때 ‘얼굴 없는 가수’였던 조성모 같은 느낌이었는데 (작품은 알지만 노래한 뮤지션의 얼굴은 모르는 그런 기분), 20분 동안 IVE Corporation의 과거, 현재, 미래를 전하는 그의 응축된 이야기에서 그를 오래 안 것만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의 이야기와 함께 얼굴과 목소리도 각인된 시간이었다.
2시간 넘게 이어진 연사들의 응축된 강연과 요조님의 공연 모두 좋았지만, 적어도 내게 이 자리의 화룡점정은 위 문단의 말이었다. “성찰 없는 통찰을 어디다 쓰죠?”, “통찰은 과잉됐고 성찰은 결핍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망치처럼 쿵쿵 내려치는 이 말에 마음속 깊은 곳으로부터 공감이 가서 고개가 절로 끄덕여졌고, 무엇보다 나를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통찰에 써왔던 시간과 에너지를 줄이고 성찰에 나를 더 머물게 하리라 다짐했다.
일터에서 문제의식이 발아되어, 내가 속한 커뮤니티와 사회의 변화를 만들어가고 싶다는 바람이 커다란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관계와 연대를 떠올리곤 했다. 하지만 나는 참 작았고 나의 힘은 미약했다. 그렇게 부유하던 마음에 송주환 대표의 마지막 말은 커다란 횃불처럼 다가왔다. ‘열망을 공유하고 싶은 관계’를 만들고 증진해 보고 싶다는 그의 외침은 마르크스의 연설 같아서 ‘주류 속 비주류’로 살고 있는 내게 강렬한 울림을 주었고, 최근 몇 년 동안 들었던 그 어떤 강연과 연설보다 선동적이었다. 그 선동에 깊이 매료되었다.
* 글쓴이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 가까이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10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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