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예정된 삶은 무의미할까?’ 이 책 3장의 제목이기도 한 이 질문이 조직문화를 연구하는 내겐 ‘퇴사가 예정된 회사생활은 무의미할까?’로 읽혔다. “회사생활, 뭐 별거 있어? 너무 열심히 하지 마. 어차피 얼마간 일하다가 그만둘 건데. 받는 만큼만 해.” 주변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이런 이야기의 연장선에 있는 질문처럼 보였다.
새뮤얼 셰플러의 용어를 쓰자면, 우리 자신이 죽은 후에도 계속되는 삶(나 이외의 다른 인간의 삶)이 존재한다는 의미의 후생(afterlife)을 믿을 때, 죽음이 예정된 삶이라도 삶은 의미를 지닐 수 있다. 우리의 삶이 세상을 지속시킬 ‘집단적 후생(collective afterlife)’에 대한 암묵적 믿음에서 많은 의미를 얻는다는 셰플러의 말을 저자 딘 리클스가 인용했는데, 이 문장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미안한 얼굴이 떠올랐다.
얼마 전 소설가 장강명 작가의 글쓰기 강연에 참여했다가 말미에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다. “작가님은 내세를 믿지 않는다고 최근 출간한 책에 쓰셨는데요. 오늘 강연을 들으면서 작가님의 동시대 노동과 시스템 문제를 다룬 작가로 기억되고 싶어 하는 욕망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둘은 서로 상충하는 것 아닌가요?” 공격하려고 했던 건 아니지만 자칫 도발적으로 비췰 수도 있었던 질문에 작가는 성실하게 답을 했다. 논지가 잘 기억나지 않는 걸 보면 그 답에 진정으로 수긍하진 못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를 읽다가 장강명 작가의 욕망과 믿음이 서로 상충하지 않는다는 점을 새롭게 발견했다. 이 지면을 빌어 그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조직의 한 구성원으로서, 내가 일하는 동안만 일 잘 처리하고 월급 받으면 됐지, 뭐 그렇게 진지하게 고민할 필요가 있어?’라는 의문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오늘 하는 일과 그 결과물이 내일의 나와 동료들의 일에 영향을 미치고, 결국 이 조직을 떠난 뒤에 이곳에서 일하게 될 이들의 일과 삶에 영향을 준다는 점에서 ‘조직에서의 후생(afterlife)'을 떠올려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내 일의 무게를 느끼게 되고 의미 추구 활동이 이어지리라 본다. 그 깨우침을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가 내게 선사했다.
그뿐만 아니라, 4장에 등장하는 ‘현재 자아는 곧 과거 자아의 미래 자아다.’라는 문장은 미래의 모든 시간을 현재와 똑같이 대해야 할 당위를 전해주기도 했다. 허준이 교수가 서울대 졸업식 축사 말미에 이야기했던 문장과도 연결되어 보인다. “타인을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먼 미래의 자신으로, 자신을 잠시지만 지금 여기서 온전히 함께하고 있는 타인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우리 각자가 일하고 있는 일터에서 현재를 살며 일하고 있지만 이는 미래의 나를 위한 일이기도 하며, 내 뒤에 올 이들의 일터에서의 삶과 일에 큰 영향을 미치는 사건들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짧은 인생을 살면서 일터에서 자신만의 의미를 추구하고 오늘 하루를 오롯이 살아낼 힘을 얻게 된다.
덧.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에도 언급된 알베르 카뮈의 <행복한 죽음>과 함께 페어링해서 읽어도 좋을 것 같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성실하게 읽고 쓴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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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이
인생여행자 정연
이십 년 가까이 자동차회사에서 HR 매니저로 일해오면서 조직과 사람, 일과 문화, 성과와 성장에 대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몸으로 답하는 시간을 보내왔다. 지층처럼 쌓아두었던 고민의 시간을 글로 담아, H그룹 칼럼니스트로 활동하며 칼럼을 쓰기도 했다. 10년차 요가수련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을 인생여행자라고 부르며, 일상을 여행자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글을 짓는다. 현재는 H그룹 미래경영연구센터에서 조직의 나아갈 방향을 고민하며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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