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의 이유
‘옛말 틀린 것 없다’는 말은 틀렸다. 내가 ‘틀렸다’ 고 말하고 싶은 옛말 중 하나는 ‘억울하면 출세해’ 라는 말이다. 대학을 졸업한지 약 20년이 되었다. 그동안 거쳐간 기관들에서 내가 만났던, 스무명이 훌쩍 넘는 나의 상사들은 하나같이 내게 멈춰 있지 말라고, 위로, 더 위로 상승해야 한다고 말했다. 안그러면 억울할 일이 많아진다며. 억울하지 않으려면 얼른 관리자가 되라고들 말했다. 선뜻 납득하기 어려운 말이었다.
크게 사고만 치지 않으면 입사 후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된다는 공공기관에 다녔기때문이었을까, 생존을 위해서도 아닌데 승진에 목숨 거는 선배들을 보면 어쩐지 답답했다. 얼마 안되는 승진의 기회를 잡기 위해 다들 각자의 방법으로 고군분투했다. 누군가는 시험 성적을 잘 받으려 업무를 놓고 독서실로 들어갔다. 누군가는 야근을 자처했다. 누군가는 윗사람들의 비위를 맞췄다. 그런 선배들의 모습을 보며 ‘저렇게까지 해서 승진을 해야하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철이 덜 들어서일까, ‘저는 그냥 자동승급 되는 자리까지만 가고, 이대로 쭉 있다가 정년 채우고 나갈래요.’ 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들은 선배들은 네가 뭘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출세에 뜻이 없다고 말하는 ‘낭창한’ 후배를 보고 혀를 찼다.
실제로 그런 말을 할 기회는 없었지만, 출세하고 싶지 않은 이유를 구체적으로 설명하라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노력대비 성과가 미미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다. 승진의 사다리를 올라가는데 드는 비용은 실로 거대해보였다. 경쟁상대가 될 수 있는 동료를 깎아내린다거나, 가시적 성과를 내기 위해 누군가 해낸 일을 가로챈다거나, 자존심 같은건 회사 문턱 앞에 벗어두고 내게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사람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겠다’ 고 선언하고 실제로 간도 쓸개도 내줄 듯 행동하는 선배들처럼 살고 싶지는 않았다.
억울함을 감수하고, 비인간적 관문을 통과해서 승진해서 진짜로 얻을 수 있는 건 뭘까. 월급통장에 찍히는 숫자가 조금 더 커진다거나, 나를 부르는 호칭이 달라지는, 목에 조금은 힘을 줄 수 있게 되는 자리, 그 자리라는게 뭐가 그렇게 중요한걸까 하며 승진에 목숨거는 선배들을 남몰래 미워하곤 했다. 승진을 하면 하는대로, 못하면 못하는대로, 출세하느라 쌓아둔 억울함을 푸는 대상이 되는, ‘부하 직원’의 입장이었기에 ‘그런 출세는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듯 말한게 아닐까 싶다.
가늘고 길게, 정년까지 다니겠다던 공공기관에서의 10년이 조금 안되는 커리어를 접고 한국을 떠나면서 ‘이래도 되는걸까’ 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거짓말일거다. 어쩌다 접하게 되는 동기들의 승진 소식, 드라마나 영화에 비치는 내 또래 직장인들에게 붙여진 ‘팀장’이라는 호칭 앞에서 어쩐지 초라해지는 나 자신을 발견하기도 했다. 임시직을 거쳐 파트타임, 정규직이 되었다고 기뻐하는 내가 세상 물정을 모르는 ‘정신 승리’의 표본인건 아닐까 고민하기도 했다. ‘출세’를 꿈꾸지 않았는데도 내가 조직에서 1인분의 몫을 해내는 사람이라는 인정을 받기 위해 억울함이 가득한 하루를 견뎌냈다.
모집공고 요건의 한 축, ‘관리자’의 무게
내가 몸담았던 미국의 직장은 굳이 말하면 공공영역에 속하는 주립대학과 국제기구다. 한국에서도 사기업에서 일한 적은 없어서 사기업의 승진 체제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미국의 공공영역에서의 승진의 기회는 모집 공고에 지원한 사람에게 한정되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승진 적체’가 심한 기관일수록 ‘승진이 인생에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같은, 혹은 비슷한 자리에 10년, 20년동안 머물러 있는 사람들 말이다.
‘성장 마인드 셋’이 기본 가치인 미국사회에서 '승진에 관심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다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승진하고자 하는 욕구’를 개인의 선택으로 간주하곤 했다. 승진이 인생에 있어 중요하지 않다는 사람들의 논리는 대체로 “매니저가 되기 위해 쏟아부어야 하는 나의 시간과 노력이 내 삶에 가져다 주는 이점이 미미하다” 는 거였다. 새로운 자리가 생기면 모집공고가 올라온다. 모집 공고에는 해당 자리에서 일할 사람에게 기대되는 직무, 계약 기간, 근무 장소, 자격 요건등이 기재된다.
내 눈길을 끈 것은 ‘관리여부’를 명기한 “Managerial/Non-Managarial”이라는 항목이었다. 직급이나 직책과 상관없이 표시되는 “관리 여부” 항목은 누군가를 지휘/통솔하는 권한과 책임을 의미한다. 같은 직급이라 할지라도 관리자(매니저)인지의 여부에 따라 연봉액에 상당한 차이가 있고, 해야하는 직무의 범위도 달라진다. 매니저가 되면 본연의 업무 외에 ‘팀원의 업무 지휘’, ‘채용 및 인사성과기록 관리’, ‘팀 내 업무분장’, ‘예산 관리’ 등의 ‘잡무’가 더해진다. 이 ‘잡무’를 잘 수행해 나갈 자신이 있는지의 여부가 ‘매니저’라는 타이틀을 달 수 있는지를 가른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여기에도 본인이 마땅히 해야할 ‘매니저’의 임무를 타인에게 은근슬쩍 떠넘기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하지만, 팀원에게 주어진 일이 해당 직원의 권한을 넘어서는지를 가늠하고, 일이 처리 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성과를 측정하고 보고하는 것이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이라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공유하는 잍터에서의 가치다. 자기 일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함량 미달'의 매니저가 설 자리는 점점 좁아진다. 조직에서는 주기적으로 매니저가 해야 할 일을 다하고 있는지를 다각도로 점검하고, 매니저로서 역량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이 있다면 교육이나 특별 연수를 통해 보완 할 것을 지시받는다. 부족한 부분이 잘 채워졌는지의 여부는 보직 계약기간 만료 이후의 행정 처리, 그러니까 ‘매니저’ 자리를 유지 할 수 있는지를 통해 이내 체감할 수 있다.
한국에도 이런 제도들이 도입, 시행되는 조직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승진해서 얻을 수 있는 타이틀의 무게가 점차 무거워지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자신이 해야 할 일을 여전히 타인에게 미루는 ‘치사한 상사’들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학교의 경우 발령 받은지 얼마 안되는 저연차 교사들이 각종 ‘부장’ 업무를 담당하고 있다고 한다. 누구도 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다 보직에 따르는 금전적 보상에 비해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지는 '부장' 자리를 기피하게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싫은 소리를 해야 하는 ‘학생부/인성부장’ 등의 업무를 할 교사가 없어 퇴직한 교사를 기간제로 불러 해당 업무를 맡기는 학교도 있다고 한다. 회사나 기관도 점차 젊은 ‘팀장’이 늘어가지만, 이들은 예전의 관리자가 그랬듯 ‘내 말을 잘 듣는 팀원’에 둘러싸여 출세의 기쁨을 누리기보다는 팀원들이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데 온갖 노력을 쏟느라 에너지가 고갈되는 ‘번아웃’ 상태를 호소하고 있다.
어른이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승진하는 일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 중 많이 등장한 단어는 ‘판타지’다. 주인공인 우영우 뿐 아니라 우영우를 팀원으로 받아들이게 된 정명석 변호사에게도 ‘판타지’ 라는 수식어가 사용되었다. 마뜩치않았던 팀원을 결국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권모술수를 발휘하는 동료 직원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고, 자신의 한계를 딛고 성장하기를 주문하는 상사가 세상에 존재하냐는 이야기들이 들려왔다. 내가 근무했던 필리핀, 한국, 미국의 직장에서 만났던 상사들을 떠올려봐도 ‘정명석 변호사’ 같은 상사는 없었기에 나도 ‘정명석은 세상에 없는 유니콘 같은 존재다’ 라는 ‘우영우 판타지 설’을 주장하는 대열에 동참했다.
‘많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 정명석 같은 팀장들이 존재한다’는 조심스러운 어조의 다른 의견들을 보며 나의 편견 가득한 말들이 부끄러워졌다. 소수의견이기는 하지만, 드물게, 어디선가, 팀원을 휘두르고 군림하려 하지 않는, 임원들에게 힘껏 소리내 싸우지는 못해도 적어도 팀원들에게 자신의 무능함을 덮어씌우지는 않는 팀장들이 존재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며, ‘판타지’ 라며 치부하기 전에 어딘가 존재할지도 모르는 ‘정명석’들에게 응원을 보내고 싶어졌다.
드라마 <신사의 품격>에서는 건축사무소 대표인 장동건이 자신의 팀원에게 ‘갑질’을 일삼는 건물주를 찾아가 그가 소유한 건물의 헛점을 나열하며 ‘더이상 내 팀원을 건들지 말라’는 말을 남기고 돌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그렁그렁한 눈으로 감격해하는 팀원에게 “내가 그런 일 하라고 너보다 월급을 더 많이 가져가는 거야” 라고 말하는 그의 모습에, 그가 로맨틱한 사랑을 뽐내는 장면에서보다 더 감동했던 기억이 난다. 물론, 건물주에게 큰 소리를 치고 돌아오는 장면은 좀 너무 ‘판타지’같긴 하다. 그러나 현실은 때로 ‘꿈’을 좇아가는 과정이기도 하지 않을까.
팀장이든 임원이든, ‘승진으로 얻은 알량한 권력’을 제대로 활용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금 더 많이 발견하고 싶다. 팀원 위에 군림하기 위해 ‘억울함을 견디고’ 출세하는 사람들 말고, 자신의 자리가 가지는 무게를 실감하는 사람이 더 많아져졌으면 좋겠다. 어려운 일을 부하직원에게 떠맡기는 것이 아니라, 알량한 권위를 자신을 떠받드는데 쓰라고 큰 소리를 치는게 아니라, 부하직원이 맡은 일을 제대로 해낼 수 있게 도와주는 것이 ‘매니저’의 할일이라고, 신입 직원이 차마 하지 못하는 어려운 말을 대신 해주는 게 ‘팀장’의 역할이라고 생각하는 상사가 많아졌으면 좋겠다. 팀장이 해야 할 ‘어렵고 큰 일’에 집중하는 대신 작은 일에 꼬투리를 잡는 걸 ‘micro-managing (마이크로 매니징)’이라는 표현을 사용해 비꼬기도 한다. 업무 지시를 하며 “내가 마이크로 매니징하려는건 아니고,” 라며 운을 떼는 상사가 많다는 건, 매니저가 할 일이 ‘완장 놀이’와는 다른 차원의 것이어야 한다는 공통된 인식을 반영한다고 생각한다.
‘부장, 실장, 본부장의 ‘-장(長)’도, 영어권에서 승진시 주어지는 직책명 ‘senior’도 모두 ‘어른’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어린아이에게 칼을 쥐어주지 않듯, 어른이 해야 할 일을 해내는 사람들이 승진하는 일터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래서 ‘정명석’ 캐릭터가 ‘판타지 속 유니콘’이 아닌 팀장이라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있는 평범한 모습으로 그려지는, 너무 흔한 클리셰적 캐릭터라고 볼멘소리를 하는, 그런 날이 왔으면 하는 소망을 던져본다.
황진영
미국 수도에 있는 한 국제기구에서 프로그램 코디네이터로 일하고 있습니다. 더 많은 ‘우리’를 발견하고 싶은 마음을 담아 공저 <세상의 모든 청년>프로젝트에 참여했습니다. [사이에 서서]를 통해 '어쩌면 우리일 수 있었던' 사람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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