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축장에서 일합니다

나는 오늘도 돼지와 눈이 마주친다 _오이_도축장에서 일합니다

2023.07.31 | 조회 1.17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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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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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구루루 돼지가 굴러온다. 머리와 가슴팍에 기절할 정도의 전기 충격이 가해진 돼지들은 정신을 잃고 110~120kg 되는 육중한 몸을 힘없이 늘어뜨린다. 그러면 작업자들은 재빠르고 정확하게 경동맥을 찌르고 아킬레스건에 구멍을 뚫어 고리에 건다. 고리에 다리가 걸린 돼지는 레일을 따라 줄줄이 이동하게 되고, 머리가 아래쪽으로 향한 채로 피가 8초 안팎으로 빠진다. 그래야 냄새가 안 나고 좋은 품질로 유통할 수 있단다. 이 일련의 과정을 1시간 동안 250두(마리) 정도 진행한다.

간혹 기절하지 못한 돼지들은 일어나려고 발버둥 치기도 한다. 하지만 능숙하게 칼을 슥- 한 번 휘두르면 돼지는 다시는 일어나지 못할 만큼 피를 흘리면서 거꾸로 매달린다. 그때까지도 숨이 붙어있는 돼지들은 한쪽 다리가 단단하게 고리에 걸렸는데, 남은 한 다리로 허공을 뻥뻥 차 본다. 죽음 앞 마지막 발악인지 발작인지 알 길은 없지만, 젖 먹던 힘까지 그곳을 벗어나려고 하는 것 같다.

저 공간에 나는 들어갈 필요도 볼 필요도 없다. 내가 하는 일은 다 죽은 돼지를 깨끗하게 씻어, 반으로 갈라 냉동창고에 들어가기 바로직전에 품질을 평가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계류장에서 내 자리까지 오는데 20분 정도 되는데, 그 말인즉슨 내가 판정하고 있는 돼지는 고작 20분 전에는 살아있었던 돼지라는 말인 거다. 이미 머리가 잘리고 내장을 적출당한 돼지는 그저 고기일 뿐이지만, 그 온기는 그대로 남아있다.

냉동 터널 앞에 서서 일하는 작업자들은 여름엔 시원하고 겨울엔 눈보라가 몰아치는 시베리아 산꼭대기 추위에서 일하게 된다. 위험하다는 이유로 전기난로를 현장에서 사용할 수 없어 양쪽 장화에 핫팩을 하나씩 넣고, 양쪽 주머니에도 하나씩 꼭꼭 챙겨 어떻게든 추위를 이겨보려고 한다. 장갑도 두 겹 세 겹 껴보지만 어쩐지 손가락은 점점 얼어가는 느낌이다. 그럴 때면 도축 라인에 걸려 이동하는 돼지를 품질평가라는 핑계로 슬쩍 잡아본다.

'이 정도면 삼겹살이 너무 얇겠어. 1등급으로 낮추자. 다음 돼지는 엉덩이도 빵빵하게 잘 들었네.' 하면서 말이다. 돼지 몸뚱어리 이곳저곳을 만지다 보면 온기가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느낌이다. 어쩐지 돼지를 놔주기가 싫어진다. 곧 냉동 터널로 들어가 유통하기 좋은 만큼 언 돼지고기가 될 텐데 말이다.

가끔은 데굴데굴 굴러오는 돼지를 보러 계류장을 넘어 도축이 처음 시작되는 위치까지 가본다. 한 줄로 차례차례 전살기로 들어가는 돼지들은 그 육중한 몸으로 겨우 비집고 들어갈 수 있는 좁은 통로를 통과한다. 돼지 장기를 사람한테 이식이 가능하다더니 어쩐지 돼지 눈도 사람 눈 같다. 그 공간에 몸을 맡긴 돼지는 멀리서 도축 라인은 둘러보는 우리랑 눈이 마주친다. 그리고 전기 충격이 왔는지 스르륵 눈을 감는다. 자꾸만 다음 돼지들이 바보같이 차례를 지켜 스르륵 눈을 감는다. 또다시 구역질이 난다.

도축장 한구석엔 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죽은 동물들의 넋을 위로하는 비석이다. 연례행사로 도축장 사람들은 그 앞에 옹기종기 모여 술도 따라보고 향도 피워보면서 묵례를 한다. 생각보다 엄숙한 분위기에 아무도 바스락거리는 소리조차 내지 않는다. 주변엔 수만수억 마리의 죽은 돼지들이 올 자리도 없어 보이지만.

순수하게도 작업장 사람들은 도축장에서 당직 서기를 꺼려 한다. 돼지 귀신이 있다나. 누군가는 해야 하는 도축이라는 작업이 양심의 가책 없이, 내 손으로 직접 고기를 만드는 것이 로봇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누가 가축을, 동물을 죽이고 싶어서 죽이겠는가. 도축장 또한 생계를 위해 돈을 주는 또 다른 회사인 것뿐이다. 모두가 마음 한구석엔 미안함과 역겨움을 덮어두고 묵묵히 오늘도 고기를 만든다.

 

*글쓴이 오이

수능 성적에 맞춰 축산학과를 갔고, 안정적인 직장을 찾다 보니 도축장에서 일하게 되었다. 익숙해지지 않는 죽음과 직업 사이의 경계를 방황하면서, 알고보면 유용한 축산업 이야기를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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