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진 않는 병_아픔에 이름이 생겼다_허태준

2024.01.19 | 조회 1.01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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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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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가 좋지 않네요. 검사 기록을 확인하던 의사가 말했다. 피 검사랑 객담 검사 결과가 나와 봐야 확실하겠지만, CT 사진으로는 99퍼센트 폐결핵이라고 보는 게 맞아요. 되도록 빨리 입원하는 게 좋은데, 결핵이 전염성이 있는 병이라 우선 1인실이 있는지 확인해줄게요. 그가 어딘가 전화를 거는 동안, 나는 환자가 볼 수 있도록 앞으로 기울어진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불투명한 갈비뼈의 윤곽 너머로 하얗게 뜬 얼룩이 선명했다.

저기…… 수화기를 내려놓은 그에게 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지금은 일 때문에 혼자 지내고 있어서 입원을 하게 된다면 본가에서 가까운 병원으로 하고 싶다고 했다. 그는 잠시 고민하더니 이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최근에는 코로나 때문에 다른 병원에도 1인실이 없을 수 있으니까 알아보고 다시 와도 돼요.

그는 일주일치 약을 먼저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복용 시 주의해야할 점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약에는 부작용이 많았다. 소화불량, 피부 가려움, 시력저하, 요산수치 증가로 인한 통풍 발작 등등. 부작용이 심하면 약을 끊어야 한다고 했다. 2차 약은 효과가 더 떨어진다고. 그러니 다른 병원에 가도 몸에 이상이 생기면 작은 것 하나 빼먹지 말고 담당의에게 자세히 이야기하라고 했다.

괜찮을까요? 질문하는 나의 목소리가 잠겨 있어서였을까, 그는 나를 안심시키려는 듯 마스크 밖으로 드러난 눈으로 다정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6개월 정도 약만 잘 먹으면 나아요. 그동안 면연력이나 체중이 더 떨어지지 않게 잘 관리해야 하고, 한 달에 한 번씩 피검사랑 x-ray 찍는 정도에요. 죽는 병이 아니니까 걱정 말아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검사를 더 받고 병원을 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근처에 있는 병원으로 가서 약을 받았다. 가끔씩 편의점에서 사던 두통약과 비슷하게 생긴 붉은색 약을 아침 공복에 두 알씩 매일 먹으라고 했다. 약사는 결핵에는 이 약이 가장 중요하니 반드시 잊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 외에도 아침 점심 저녁으로 챙겨 먹어야 하는 약이 몇 가지씩 있었다. 일주일치 인데도 종이재질의 약봉투가 제법 두툼해졌다.

7월의 끝에 바짝 다가선 달력과는 다르게, 여름은 게으름을 부리며 한낮에나 존재감을 드러냈다. 덕분에 오전에는 긴 팔을 입고 있어도 덥지 않았다. 점심시간도 되지 않은 평일 거리는 한산했다. 문득 이 시간에 바쁘지 않은 게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약국을 나와 잠시 멍하니 있다가, 기지개를 한 번 켜고, 발걸음을 옮기며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폐결핵이래요. 나는 병원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그는 한숨을 쉬더니, 집 근처 병원을 알아볼 테니 우선 본가로 넘어오라고 했다. 나는 코로나 때문에 병실이 없을지도 모르고, 지내는 곳에서 짐을 정리해두는 게 좋을 것 같아 내일 오전에 가겠다고 했다. 계약기간이 얼마 남지 않은 터였다. 아버지는 정해지는 게 있으면 곧바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나는 감사하다고 했다.

니 진짜 괜찮나? 잠시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질문에, 나는 할 말을 찾지 못해 머뭇거리다 습관적으로 대답했다. 죽진 않는데요. 그런 말이 누구도 안심시킬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정말로 죽진 않을 테니까. 그게 괜찮은 상태인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갑자기 죽어버리지는 않을 테니까. 아버지는 너무 무리하지 말라며 더 이상 묻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돌아와 짐을 다 정리해 저녁이 될 때까지, 자신이 질문에 맞는 대답을 한 것인지 계속해서 고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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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은 갑자기 찾아왔다. 기침을 할 때마다 누군가 고무망치로 갈비뼈를 내려치는 것처럼 가슴이 아팠다. , , 울림이 커질수록 통증이 심해서 목 안쪽에 압력이 차오를 때마다 손으로 가슴팍을 짓누르고 있어야 했다. 뭘까. 도대체 내 몸에 무슨 문제가 있는 걸까.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이질적인 아픔에 겁이 난 나는 이불 속에서 자신의 증상을 검색해봤다. ‘기침 가슴통증’, ‘기침 갈비뼈 통증’, ‘코로나 증상’, ‘열 없이 기침’, ‘결핵 증상등의 검색어를 휴대전화 화면에 늘어놓고 단편적인 정보를 확인했다. 출처가 불분명해도 신경쓰지 않았다. 당장의 불안을 조금이나마 잠재울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확실히 무리하고 있기는 했다. 런칭한지 얼마 되지 않은 가구조립 사업에 계속해서 신경을 쓰고 있었고, 출간 예정으로 연재 중이던 글도 일주일에 한 편씩 마감해야 했다. 일정한 소득이 없는 상태다 보니 생활비를 벌기 위한 일도 따로 해야 했다. 오전에 나갔다가 자정이 넘어 돌아오는 경우가 흔했다. 혼자 지내는 방에서 씻고 대충 밥을 먹고 나면 금세 새벽이 왔다. 매일매일이 막다른 곳에 몰려있는 기분이었다.

그날도 아침부터 나갈 준비를 했다. 코로나 19로 인해 달라진 사업 방향에 대한 회의가 잡혀 있었다. 감염병 확산으로 대면 서비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커지면서, 직접 조립기사가 방문해야 하는 가구조립 사업은 시작부터 난항을 겪고 있었다. 팀원들의 얼굴에도 눈에 띄게 어두운 그림자가 짙어졌다.

현관을 나설 때 얕은 두통이 있었지만 그리 심각하게 여기지는 않았다. 수면부족 때문이겠지. 오늘은 빨리 돌아와서 조금이라도 자자, 혼자 생각해볼 뿐이었다. 그런데 회의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작스럽게 시야가 흐려졌다. 두통에 메스꺼움이 더해지고, 조명이 꺼지 듯 주변의 색채가 갑자기 어두워졌다. 앞자리에 있던 팀원이 안색이 좋지 않다며 걱정하는 소리만 어렴풋하게 들렸다.

나는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하며 팀원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괜찮아요, 상황이 나쁘다보니 마음이 약해진 것뿐이에요. 이런다고 죽지 않아요. 그리고 곧장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옷도 갈아입지 않고 그대로 침대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끝없는 구덩이로 떨어지는 듯한, 어지럽고 깊은 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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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정리하는 건 의외로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책과 옷가지를 박스에 담고, 큰 가구는 업체를 섭외한 후 어쩔 수 없이 가족들에게 부탁해야 했다. 팀원들에게는 뭐라고 말해야 할까. 고민해보아도 별다른 수가 없었기에 곧장 전화를 했다. 격리실에 2주 정도 입원해야 한다고, 퇴원 후에도 몸 온전히 낫는 게 아니라 앞으로도 일을 진행하는 건 어려울 거라고 했다.

너무 편의 좋은 변명 같아서 마음이 불편했는데, 전화기 너머의 그는 오히려 나의 상태를 걱정했다. 꼭 건강 잘 챙기라고. 치료 잘 받고 회복하는 일만 생각하라고 했다. 나는 고맙다고, 혹시라도 도울 일 있다면 언제든 연락하라고 했다. 그게 얼마나 불편한 일일지 알면서도 그랬다.

창밖으로 작은 물방울이 맺히기 시작해서 우산을 하나 빼두었다.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내일부터 본격적인 장마가 시작된다고 했다. 변덕스러운 날씨처럼, 하루 만에 너무 많은 것들이 결정되고 바뀐 것 같았다. 그래서일까. 검은 도화지 같은 창문에 비친 자신의 실루엣이 무척 낯설어 보였다. 마치 형태감이 없는, 길게 늘어진 그림자 같았다. 그 모습이 점점 희미해지다 곧 사라져버릴 것만 같아서 나는 혼자 중얼거렸다. 괜찮아. 죽진 않아.

죽진 않아. 죽진 않아. 죽진 않아…… 가만히 되뇌어 볼수록 나는 점점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죽지는 않는다, 라니. 삶의 마지노선이 언제부터 죽음이었나. 누군가의 아픔에 그게 올바른 대답이 될 수 있는 건가. 그게 이유가 되고, 변명이 되고, 위로될 수 있는 건가. 세상에는 도대체 얼마나 터무니없는 대답들이 당연하는 듯이 존재하고 있는 걸까. 죽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걸로 괜찮은 걸까.

나는 괜찮지 않다. 사실 알고 있었다. 내 몸인데, 모를 리가 없었다. 몰랐던 건 오히려 타인의 삶이었다. 나는 모두가 마지못해 사는 줄 알았다. 다들 너무 평범하게, 죽음만큼 힘든 게 당연하게 사는 줄 알았다. 다들 그런 식으로 말하니까. 그러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니까. ‘죽음이 흔하게 널려 있으니까. 정말 그렇게 살아야 하는 줄 알았다.

하지만 그건 잘못됐다. 잘못되어도 한참이나 잘못됐다. 오히려 누구도 그렇게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겨우 숨이 붙어 있는 채로, 당장 내일 죽어도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다. 누군가 죽진 않는 병을 앓고 있다면, 그는 괜찮은 게 아니라 당장 치료 받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괜찮아질 수 있을까. 입원 치료를 잘 받으면, 몸 관리를 잘하며, 약을 잘 챙겨먹고 식사를 거르지 않으면, 정말로 나아질 수 있을까. 다른 누군가의 삶도 그렇게 치료될 수 있을까. 삶이 죽지 않은 것을 넘어설 수 있을까. 점점 커져가는 빗소리를 들으며 나는 골몰했다. 그것이야말로 우리를 둘러싼 질문에 가장 적합한 대답일 것 같았다.

'아픔에 이름이 생겼다'

결핵 환자로 지냈던 경험을 진솔하게 전달하는 에세이입니다. 단순한 치료 과정보다는 ‘환자’라는 정체성이 어떻게 생겨나는지, 자신의 아픔을 말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허태준

직업계고등학교를 졸업하고 현장실습생을 거쳐, 산업기능요원으로 지역 중소기업에서 근무했다. 당시의 경험으로 <교복 위에 작업복을 입었다>를 썼다. 회사를 그만둔 후 모든 삶은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으로 우리 사회의 이름 없는 시절에 대해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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