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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올해도 벌써 3월에 접어들었습니다. 어제는 개구리가 겨울잠에서 깨어난다는 경칩이었고, 얼마 전에는 학교들이 개학을 했죠. 많은 시작이 있는 달이 3월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날이 있습니다. 바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입니다. 작년 3월 8일에는 서양의 참정권 운동과 스페인의 여성 파업 그리고 한국의 여성소피총파업에 대한 글을 보내드렸죠.
잊혀진 여성들 57번째 뉴스레터, 오늘은 아시아 국가들의 잘 알려지지 않은 여성 참정권 운동에 대한 이야기 들려드릴게요.
2018년 이후 한반도에 새로운 페미니즘 물결이 시작되었던 시기, 여성 인권에 대한 한 기사를 읽다가 이런 댓글을 마주한 적이 있습니다.
‘한국 여자들은 유럽이나 다른 나라처럼 운동을 통해서 참정권을 획득한 것도 아니면서 바라는 것이 많다’.
마치 참정권을 본인이 모든 한국의 여성들에게 나눠준 것같은 그 태도가 참 우스우면서도, 저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게 씁쓸했습니다. 세계 여성의 날을 비롯하여 여성 인권 운동을 이야기 할 때 주로 유럽이나 미국의 역사를 언급하고는 합니다.그렇다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 국가의 여성 인권 운동은 어떻게 전개가 되었을까요?
인도에서의 여성 참정권 운동
인도의 참정권 운동은 애니 베상트와 사로지니 나이두와 같은 여성들에 의해 20세기 초에 시작되습니다. 인도의 독립을 위해 싸운 정당인 인도 국민회의도 여성의 참정권을 지지했죠. 사로지니 나이두는 인도 국민회의 최초의 여성의장으로 활동하였고, 인도의 독립 운동에서 중요한 인물로 꼽힙니다. 하지만 사로지니 나이두의 정치적 활동과는 별개로 인도의 여성들은 투표를 위한 싸움에서 많은 장애물에 직면했습니다. 여전히 공적인 영역과 교육에서 배제되었고, 정치 참여에 대한 문화적, 사회적 장벽에 부딪혔죠.
이러한 어려움에도 여성 인도 협회와 전 인도 여성 회의와 같은 여성 단체들은 여성의 권리를 위한 운동을 이어나갔습니다. 그리하여 1917년, 몬태규-첼름스퍼드 개혁은 소수의 여성을 포함한 인도인들에게 제한된 참정권을 부여했습니다. 이것은 여성 참정권을 향한 중요한 단계였습니다.
이후에도 인도의 여성들은 참정권을 위해 탄원서와 보고서를 제출하고 운동을 계속했습니다. 여성의 참정권이라는 정치적 목적이 독립이라는 민족주의 운동의 목적과 연결이 되어있다는 것을 인식한 그들은 공통의 문제를 명확히 하여 더 많은 지지자를 확보했습니다. 여남평등을 독립 운동과 연결하여, 여성 참정권에 대한 반대를 완화할 수 있었던 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반대는 존재했습니다. 사로지니 나이두와 함께 독립 운동을 이끈 간디의 경우, 사회경제적 그리고 정치적 투쟁에 여성의 참여를 장려했지만, 여성 참정권 캠페인은 지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반대와 무시 속 인도 여성들의 계속 된 참정권 운동은 결국 1950년 인도가 독립하면서 비로소 목표를 달성할 수 있었습니다.
동남 아시아에서의 여성 참정권 운동
동남아시아의 여성 참정권 운동은 이 지역의 반식민지 투쟁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여성들이 독립 운동에 적극적인 역할을 했고,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후 1945년에 선거권을 부여 받았습니다. 그러나 선거권을 부여 받은 자체만으로 여성의 권리가 자연스럽게 향상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기혼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결혼법과 일부다처제 금지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참정권이 부여되었다고 해도 실제로 선출되는 여성은 없었습니다. 사회적으로 여성 운동에 대한 탄압도 이어졌죠. 그럴 때마다 인도네시아 여성들은 더 강력하게 요구사항을 주장하고 활동하는 새로운 단체들을 만들고 성장해나갔습니다.
이외에도 필리핀의 여성들도 호세파 라네스 에스코다와 푸라 빌라누에바 칼라우와 같은 여성 단체와 지도자들의 오랜 선거 운동 후에 1937년에 투표권을 얻었습니다. 태국 여성들은 1932년에 절대 군주제에서 입헌 군주제로 전환한 후 투표권을 얻었죠. 이는 아시아 국가에서 처음으로 여성에게 참정권이 주어진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여성 지위 증진 협회(Association for the Promotion of the Status of Women )와 같은 여성 단체들은 그 후 수십 년 동안 계속해서 여성의 권리와 양성 평등을 옹호했습니다.
한국에서의 여성 참정권 운동
한국 여성들은 참정권을 위한 싸움에서 많은 난관을 마주했습니다. 특히 한국은 1910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의 식민 통치 하에 있었고, 이것은 여성들의 정치적 참여를 훨씬 더 어렵게 만들었죠. 하지만 근우회 등 여성단체들은 여성 인권 운동을 계속 해나갔습니다.
1948년,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후 첫 선거를 치렀습니다. 제헌헌법에 따라 모든 국민에게 평등한 참정권이 보장되었습니다. 해방 직후 그간의 노력들이 결실을 얻은 것이었죠. 구한말부터 일제 강점기에도 한국에서 여성 운동은 계속 되어왔으나, 해당 시기의 여성 운동이 탈식민과 민족 해방을 기치로 내걸었기 때문에 참정권 운동은 상대적으로 결여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한국 여성 운동은 해방을 통해 자연스럽게 얻은 권리 위에서 이루어졌다는 오명을 쓰게 되었다고 여겨집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1898년 발표한 성평등 선언문인 <여권통문>을 비롯하여, 여성 교육의 현실화를 위한 후원단체인 <찬양회> 설립, 그리고 상당수의 여학교 설립과 같은 여성 운동들이 해방 전에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를 발판삼아 성장한 여성들이 <근우회>의 주축이 되어, 전국 규모의 여성 단체로 활동하였죠. <근우회>는 자주독립과 정치/경제/사회 전반의 여성 해방을 추구했습니다. 근우회의 행동 강령은 해방 전부터 여성 운동의 바람이 한반도에도 확실하게 불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오늘날 아시아의 여성 참정권
아시아의 여성 참정권을 위한 투쟁은 길고 어려운 것이었지만, 지역의 정치와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성평등을 향한 갈 길이 아직 멀지만, 많은 나라에서 여성의 정치 참여가 증가했죠. 여성 단체들은 계속해서 여성의 권리를 옹호하고 있으며, 여성 지도자들은 정부와 시민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가야할 길도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사회 속 만연하여 인지하지 못하는 여성에 대한 차별과 부당함을 발견하고, 인지하고 있으나 바꾸기엔 너무나 거대한 차별의 구조를 바꾸자고 목소리를 높여야하죠.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고 답답하다 느낄 때, 오래 전 나와 같은 길을 걸었던 여성들을 통해 다시 한 발짝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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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기
미국과 유럽의 여성 참정권 운동의 역사만 알고 있었는데 아시아 여성들의 역사를 알게 되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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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결
서프레제트를 통해 미국과 유럽의 여성 참정권 운동만 알고 있었는데 이렇게 많은 국가에서, 다양한 곳에서 여성 참정권을 위한 운동이 펼쳐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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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
우리나라의 경우는 여성단체에서 주장하는 바가 받아들여지지 않거나 했던건 없었군요. 내가 바라고자 하는 것이 있다면 그 사회의 구성원들이 전부 동의하는 방식으로의 절차를 밟아 단계적으로 진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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