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독자님은 어떤 취미를 가지고 계신가요?
취미 활동 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사진이죠. 한 순간의 감정이 살아 숨 쉬는 그 순간을 담아내는 사진은 우리 삶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친구와의 소중한 시간, 특별한 여행의 순간들을 자세히 기억하게 만들어 줌과 동시에 우리가 어떤 경험을 했는지, 어떤 사람들과 함께 했는지를 상기시켜 줍니다. 사진이 매력적인 이유 중 하나는 그 안에 찍는 사람의 시선이 담겨 있다는 점이죠. 사진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니라, 사진을 찍는 사람의 시각과 감성이 담겨 있습니다.
각 사진은 사진작가의 시선을 통해 그 순간을 재현합니다. 그 시선은 감정과 경험을 반영하여 사진을 통해 우리에게 새로운 이야기를 전달하죠. 하지만 여기서 주목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과연 누구의 시선으로 사진을 읽어내고 있을까요? 안타깝게도 아직 사진계는 남성 중심적입니다. 지난 12월 발표 된 뉴스 사진 현황에 관한 최근 글로벌 보고서에 따르면 여성 사진작가의 69%가 직장에서 차별을 당했다고 답했습니다. 성공의 장애물에 대해 추가로 질문했을 때, 응답자 중 54%는 성차별을, 53%는 업계 고정관념이나 관행을, 49%는 여성을 위한 기회 부족을 꼽았죠.
상업 사진계에는 불평등과 편견이 만연합니다. 연구에 따르면 사진 업계 전반에 걸쳐 여성차별이 발견되었습니다. 사진작가협회의 공인 회원 중 단 18% 만이 여성입니다. 광고 산업 평등 이니셔티브인 Equal Lens의 조사에 따르면 업계 최고의 에이전트 70명이 대표하는 상업 사진작가 중 25% 미만이 여성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1년 7월 14일, 캐논은 필리핀에서 Crusader of Light 프로그램을 다시 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습니다. 프로그램의 브랜드 홍보대사가 모두 발표되자 많은 독자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홍보대사 전원이 남성이었기 때문이죠. 유명 브랜드에서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습니다. 유명 카메라 브랜드 대부분의 앰버서더 목록을 살펴보면 대부분 남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죠. The Phoblographer의 기사에 따르면 캐논 여성 엠버서더 통계는 다음과 같습니다.
여성 캐논 대사 수
• 캐논 필리핀: 0/11 여성대사
• 캐논홍콩 : 1/14 여성대사
• Canon India: 여성 대사 1/10
• 캐논 멕시코: 여성 대사 1/6
• 캐논 말레이시아: 여성 대사 2/10
• Canon EMEA(유럽, 중동 및 아프리카): 34/113 여성 대사
• 캐논 캐나다: 9/29 여성 홍보대사
• Canon USA: 12/38 여성대사
이에 논란이 일자 캐논에서는 아래와 같은 입장문을 냅니다.
이러한 차별은 대형 브랜드뿐만 아니라 잡지와 뉴스 매체에 의해 이어지고 있습니다. Women Photograph는 이러한 문제에 대응하기 위해 설립된 웹사이트로, 사진작가를 고용하는 회사와 그들이 돈을 기부하기로 선택한 회사에 책임을 묻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사이트에는 매월과 연도별로 여성 작가의 비율을 보여주는 데이터 스프레드시트가 있는데요. 이 데이터에 따르면 2019년에는 여성 작가가 찍은 사진이 전체의 21.31%에 불과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반발 덕분일까요? 다행히도 상황이 서서히 개선되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예가 매년 7월부터 9월까지 열리는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사진 축제인 Les Rencontres d'Arles입니다. 2018년에는 전시에 선정된 사진작가 중 34%만이 여성이었습니다. 그 이후, 300명이 넘는 유명한 크리에이티브 전문가들이 예술 감독 Sam Stourdzé에게 공개서한을 보내어 페스티벌 프로그램을 비판하고, 2019년 페스티벌의 50주년을 맞이하여 성평등을 추구하길 촉구했습니다.
MALE GAZE (남성 시선)이란?
"Male gaze(남성 시선)"는 영화, 사진, 문학 등의 예술 작품에서 나타나는 특정한 시각이나 시각적 표현 방식을 가리키는 용어입니다. Male gaze 라는 개념은 페미니스트 영화 이론가 로라 멀비(Laura Mulvey)가 1975년 자신의 에세이 "시각적 즐거움과 내러티브 영화"에서 처음 소개했습니다. 이 용어는 일반적으로 남성의 시각이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 멀비는 주류 영화가 남성의 즐거움을 위해 여성을 대상화하는 가부장적 시스템을 중심으로 구조화되어 있다고 주장했죠. 그는 카메라의 시선은 본질적으로 남성적이며 우리가 화면에서 보는 이미지는 이러한 관점을 반영한다고 지적했습니다. 여성을 성적 대상으로서 묘사하거나, 그들의 외모와 몸매를 강조하는 이미지들은 Male Gaze의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Male gaze는 여성의 복잡한 인격이나 내면적 가치를 무시하고, 단순히 남성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한 대상으로 여성을 다루는 시각을 비판하는 데 사용되죠.
패션 사진은 오랫동안 남성의 시선과 연관되어 온 사진 장르입니다. 20세기 후반에는 Male Gaze가 패션 사진을 지배했으며, 남성의 욕망의 대상인 여성의 신체를 중심으로 한 불편한 미학을 만들어냈습니다. 이에 따른 결과로 우리가 쉽게 접하는 광고, 영화, 드라마, 잡지 등에서 여성은 보통 털이 없는 부드럽고 매끈한 피부를 뽐내며 몸매를 부각하는 수동적인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사진 속 도달하기 어려운 완벽한 아름다움에 대한 이상화는 여성들의 자존감 저하를 초래했죠. 이상적인 체형과 외모에 부합하지 않는 여성들은 자신을 부족하다고 느끼고, 외모에 대한 불안과 비교에 시달리게 됩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여성 작가들은 예술가로 거듭나기 전에 종종 성적 대상화나 객체화의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Male Gaze가 당연한 상황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예술적 업적과 창의성을 충분히 발휘하기 어려워지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악습에 반기를 든 여성 작가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작품을 통해 Male Gaze에 대한 대안적 시각을 제시하고, 여성의 현실적인 이미지를 탐구하며, 사진 업계에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습니다. 그 중 에디터 D가 가장 존경하는 사진 작가 한 명을 소개해보고자 합니다.
살아있는 전설 애니 레보비츠 -Annie Leibovitz (1949-)
가장 유명한 여성 사진작가는 누구일까요? 살아있는 전설이라는 수식어를 가진 애니 레보비츠 (Annie Leibovitz)가 아닐까 싶습니다. 1949년생인 그는 1970년 음악 잡지 '롤링 스톤스'의 포토 저널리스트로 처음 사진에 발을 들인 후, 3년 만에 ‘롤링 스톤스’의 메인 사진작가가 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자랑했습니다. 이후 ‘배너티 페어’, ‘보그’ 등 다양한 사진작가로 활동하며, 버락 오바마, 힐러리 클린턴, 믹 재거, 베트 미들러, 브루스 스프링스틴 등 유명 인사들의 인물사진을 찍은 사진작가로, 현재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예술가로 평가받고 있죠.
여성의 시선으로 본 여성의 몸
1991년, 애니 레보비츠가 데미 무어의 누드 만삭 사진을 촬영했고, 이 사진이 '베니티 페어' 잡지의 커버에 실리면서 '만삭 사진'이란 개념이 새롭게 정립되었습니다. 일부 사람들은 이 사진을 통해 임신한 여성의 몸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고 축복하는 긍정적인 메시지로 받아들였지만, 다른 사람들은 이를 과도하게 선정적이라 여겼습니다. 특히 일부 보수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은 이 사진을 불건전하다며 비난을 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와 같은 데미 무어의 사진 이후, 여성들이 임신한 배를 굳이 감추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만삭 누드를 촬영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습니다. 이 사진은 2005년에 미국 잡지편집인협회에서 선정한 '과거 40년간의 가장 유명한 40컷의 커버 사진' 중 2위에 올랐습니다. 사진 한 장으로 임신과 여성의 몸에 대한 태도가 변화하고, 여성들이 자신의 몸을 더욱 자신있게 표현하는 문화가 확산된 것이죠.
오노 요코와 존 레논의 사진이 어색한 이유?
1980년 12월, 전 세계를 충격에 빠뜨린 사건이 있었습니다. 비틀스의 멤버 중 한 명인 존 레논이 낯선 이의 총격으로 갑작스레 사망한 사건이죠. 이 비운의 사건이 있기 다섯 시간 전, 애니 레보비츠가 촬영한 사진이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습니다. 사진 속에는 존 레논이 속옷 하나를 걸치지 않은 채 검은 스웨터를 입은 오노 요코를 열정적으로 키스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이 사진은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큰 화제를 일으켰습니다. 이 사진이 어색해 보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키스하거나 껴안는 모습은 보통 남성이 강하고 지배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그러나 이 사진에서는 껴입은 오노 요코가 헐벗은 존 레논에게 키스를 받고 있습니다. 이는 여남 기존의 전통적인 이미지를 파괴하며, 여러 시대를 걸쳐 깊은 인상을 남겨 끊임없이 회자되고 있죠.
엘런 드제너러스 (Ellen DeGeneresd)의 초상
엘렌 드제너러스는 미국의 토크쇼 호스트, 코미디언, 배우로, '엘렌쇼'를 통해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인물입니다. 1997년 시트콤 '엘렌'에서 자신이 레즈비언이라는 사실을 커밍아웃한 엘렌 드제너러스는 미국 텔레비전 방송에서 자신이 성소수자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힌 연예인이기도 하죠. 하지만 커밍아웃 이후, 엘렌은 사회의 맹비난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던 엘렌쇼의 광고가 끊기는 등, 힘든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위의 사진은 엘렌의 커밍아웃 이후 애니 레보비츠가 찍은 사진입니다. 이 사진은 1997년 4월 "Time" 잡지의 커버를 장식했죠. 분명 우스꽝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지만 반항적이고 도전적인 분위기가 풍기지 않나요? 맹렬한 비난에도 굴하지 않았던 엘렌은 사진에서 자신감과 품격을 발산하고, 자신의 결정을 자랑스럽게 받아들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WOMEN: New Portraits
작가이자 문화평론가인 수잔 손택(Susan Sontag)과의 협업으로 시작된 오리지널 여성 프로젝트는 여성이 어떤 모습인지, 그들이 누구인지,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에 대한 원초적인 궁금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수잔 손택이 세상을 떠난 후, 애니 레보비츠는 이 프로젝트를 혼자서 지속하고 있죠. 애니 레보비츠의 "WOMEN: New Portraits"는 2016년부터 시작된 전시회로, 홍콩, 멕시코, 뉴욕, 런던을 비롯한 총 10개 도시에서 글로벌 투어를 성공적으로 마쳤습니다. 최종 쇼케이스는 UBS의 본거지인 스위스 취리히에서 열렸으며, 뛰어난 성취를 이룬 여성들의 모습을 담고 있습니다. 예술가, CEO, 정치인, 자선가 등 각 분야에서 정상에 있는 여성들의 기존 사진과 아델, 비너스, 세레나 윌리엄스, 셰릴 샌드버그 등 뛰어난 인물들의 새로운 초상화 22점이 전시되었죠. 이를 통해 여성들의 다양성과 힘을 보여주며, 그들의 이야기를 전 세계에 알렸습니다. 애니 레보비츠는 자신이 살아 있는 한 이 프로젝트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남성의 시선에서 벗어난 우리의 진정한 모습이 궁금하지 않나요? 전시회에 걸린 애니 레보비츠의 작품으로 이번 주 뉴스레터를 마무리 하도록 하겠습니다.
댓글 1개
의견을 남겨주세요
유자
찾아보니 십여년 전에 애니 레보비츠의 사진전을 했었네요. 다시 한 번 국내에서 진행하면 좋겠어요.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