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구독자! 잘 지냈니? 이제 점점 날씨가 선선해져서 좀 살 만해진 것 같아~ 아직 극장에서는 에어컨을 빵빵하게 트는데 (당연함. 배우들은 더움.) 이제 짧은 옷을 입고 관극하면 추위에 떨면서 극을 보게 되더라고~ 다들 극장 갈 때 얇은 겉옷을 챙겨가길 바라며…
오늘은 극장 내 에어컨이 주는 추위보다도 더 무서운 이야기를 말해 볼까 해. 사회적 약자를 향한 폭력과, 폭력의 피해자 이야기를 담은 뮤지컬 <홍련>이야. 그럼 긴 말 않고 시작해 볼게!
뮤지컬 <홍련>은 한국 전통 설화인 장화홍련전의 ‘홍련’과 바리데기 설화의 ‘바리’가 사후 재판에서 만나게 된다는 설정의 한국 창작 뮤지컬이야.
죽은 영혼들이 모여 심판을 받는 곳, 저승 천도정에 끌려온 홍련은 아버지를 살해하고 남동생을 해쳤다는 혐의를 받고 있어. 하지만 홍련은 자신의 고통을 외면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은 하늘을 대신에 단죄한 것이니 무죄라고 주장하지. 그러나 홍련이 사건에 대해 진술하면 할수록 계속 허점이 발견돼. 이를 회피하는 홍련에게 바리는 차사 강림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강하게 압박해. 홍련이 외면하고 있는 진실, 그리고 바리가 13만 9998번째의 재판을 하게 된 이야기는 무엇일까?
이 극의 결말은 극장에 가서 보는 걸 추천하기 때문에 따로 스포하지 않을게😉
일단 장화홍련전과 바리데기 설화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 해줄게.
<장화홍련전>은 영화 등 다양한 콘텐츠에서 재해석 되는 이야기라 구독자도 잘 알고 있을 것 같아. 배무룡이 전처로부터 뒤늦게 얻은 장화·홍련 자매와 후처로 들이게 된 계모 허 씨 사이에 벌어진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이야기지. 계모 허 씨에게 학대를 당하던 장화·홍련 자매는 결국 음모로 인해 목숨을 잃게 되고, 이후 원귀가 되어 새로 부임하는 부사를 찾아가. 그리고 자신들의 억울함을 해소해 달라며 간청하여 결국 진실을 밝히게 된다고 전해지고 있어.
‘바리’는 ‘버려진’이라는 뜻으로, ‘바리데기’는 ‘버려진 아기’라는 뜻이야. <바리데기>의 바리공주는 불라국이라는 나라의 오구대왕의 일곱번째 딸로, 부인이 계속 딸만 낳자 결국 버려진 마지막 딸이야. 하지만 오구대왕은 자식을 버린 벌을 받아 불치병을 앓게 됐고, 이를 나으려면 저승에 있는 약을 가지고 와야 한다는 걸 알게 되지. 아무도 자신을 위해 저승에 가주지 않자 그제야 자신이 버린 바리를 다시 찾아 데리고 와. 착한 바리는 아버지의 불사약을 구하러 저승으로 향했고 이에 따라 아버지는 결국 살게 돼. 이후 바리는 저승에서 불쌍한 영혼을 인도하는 신이 되겠다며 떠나 *무조신이 되었다고 해.
*무조신: 무당의 조상이나 시조에 해당하는 무속 신격
<홍련>은 이 설화들을 현대적으로 해석하여, 홍련과 바리를 가정 학대의 피해자로 바라보면서 사회적 약자가 겪을 수밖에 없는 고통과 무력감을 보여줘. 장화홍련전을 활용해 만든 다른 콘텐츠들은 보통 굉장히 무서워서, 공포 콘텐츠를 잘 보지 못하는 나는 늘 기피하기 일쑤였어. 그래서인지 나는 장화·홍련 자매가 피해자라고는 생각했지만 ‘가정 학대의 피해자’라고 명확하게 인지하진 못했던 것 같아.
하지만 <홍련>을 보니 자매가 겪었을 고통이 너무 적나라하게 다가와서 마음이 아팠어. 자매가 얼마나 잔인하게 복수를 하는 지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들이 얼마나 힘들고 아팠는지를 아는 게 더 중요한데 그걸 몰랐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리고 홍련을 보면서 어린 시절의 자신을 떠올리는 바리 역시 꼭 안아주고 싶었어. 이날의 홍련한테는 바리가 있지만, 바리는 복수를 위해 저승으로 떠나 깊은 깨달음을 얻을 때까지 안아주고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었잖아.
다양한 감정을 설득력 있게 쏟아내야 하는 홍련과 바리를 연기한 배우분들이 참 대단했어. 그런 의미에서 내가 본 배우분들을 추천하고 칭찬하는 시간 한 번 가져볼게~
내가 본 홍련은 '한재아' 배우님이었어. 한재아 배우님은 다른 극에서 여러 번 봤지만, 대부분 사랑에 빠진 소녀 혹은 수동적인 역할로 많이 봐서 잘한다는 것과 별개로 크게 인상적인 적은 없었어. 그런데 악에 받친 홍련을 연기하는 모습을 보고 강렬한 인상을 받았어. 그리고 어린 시절의 홍련을 재현하는 모습에, 왜 바리 역의 지연 배우가 제일 안아주고 싶은 홍련이 재아 배우라고 말했는지 알 수 있었어.
그리고 천둥 호랑이, '이아름솔' 배우님의 바리를 놓치지 않고 봐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어! (극은 10월 20일까지지만 이아름솔 배우님은 9월 8일까지만 함께 하셨거든) 맡은 넘버에 고음이 정말 많은데 흔들림 하나 없이 안정적으로 소화하는 모습이 너무 신기했어. 또 노래 부를 때마다 성량이 압도적이라 소름 끼쳤어. 이아름솔 배우님의 바리를 한 번 더 못 보는 게 너무 아쉬울 뿐이야🥲
나에게 있어 뮤지컬 호불호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넘버야. 그런데 <홍련>은 기억에 남는 넘버가 매우 많아서 극호 뮤지컬이 되었어! 특히 두 여성이 보컬 차력 쇼를 하는 게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지.
홍련과 바리의 마음속에 있는 응어리를 록 장르의 넘버를 통해 내뱉게 하는 것이 아닐까 싶어. 소리를 지르는 넘버가 많아서 처음엔 다소 피로할 수 있지만,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계속 그렇게 소리 지르는 심정이 1000% 이해가 돼. 그들이 넘버를 통해 표현하는 감정들이 너무 인상적이었어.
그 무엇보다도 홍련을 위해 최선을 다해 *씻김굿을 하는 바리의 모습에 소름이 돋았어. 솔직히 씻김굿 장면에서 소품이나 연출같이 받쳐줘야 하는 것들이 별로 없는데, 오로지 에너지만으로 압도한 배우들(특히 이아름솔 배우)에게 감동했어.
이때 ‘씻김굿’ 넘버도 국악이 어색하지 않게 어우러진 넘버였기에 굉장히 기억에 남아. 진짜 이 부분부터 굿을 하는 장면까지가 최고의 장면입니다…
*씻김굿: 전라도 지역에서 죽은 이의 영혼을 저승으로 인도하기 위해 행하는 무속의례. 천도굿.
자주 언급되는 메시지이지만, <홍련>은 특히 이 주제를 풀어내는 방식이 신선했어. 신이 되어 저승에서 버려진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망자의 한을 씻어주는 바리에게 세상에서 목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죽은 홍련의 영혼을 만나게 해준다는 것 자체가 정말 새로웠어.
오늘날 홍련과 바리가 소리 내어 외친 말들을 듣고 또 다른 많은 피해자가 위로받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작가님의 말처럼 폭력에 노출된 이들이 자신의 탓을 하지 않길 바라고, 이 세상엔 분명 당신과 함께 울어줄 사람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주길 바랄 뿐이야. 또 이 극의 메시지가 많은 사람들에게 닿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라.
뮤지컬 <홍련>은 10월 20일까지니까 구독자도 얼른 달려가서 보고 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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