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10. 그리움은 쌓여가고,

2024.12.02 | 조회 7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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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ogue

공무원 의원면직&공공기관 퇴사 유경험자의, 최종꿈은 동네책방 주인인 잔잔한 글쓰기 모음

오늘의 글은 이 노래와 함께, 

https://youtu.be/Dfxi02kGbRE?si=mgqARYjtT-zzg9hB

 

 

은서는 그렇다면 자신의 삶은 어떠한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난 지금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 그저 주어진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더 도전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나의 진짜 꿈을 실현해 내야 하지는 않을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이제 진짜 중단해 내도 되지 않을까? 나의 삶이니, 조금은 나의 마음대로 움직여도 되지는 않을까.

기준의 죽음으로 인해 은서의 삶에는 겨우내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기만의 알을 드디어 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기준의 장례를 치르며 은서는 많은 것들을 생각했다. 그 생각의 끝 지점에서 어떠한 결정을 해내고, 그렇게 장례를 마치고 자신의 면직을 결정하게 되었다. 더 이상 이 직장을 다니는 것이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도 없다고 느껴졌다. 기준의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는 그저 다른 이들이 사는 모양과 같이 살아가는 것이, 그것이 부모님께도 또 그 무엇에게도 가장 기본적인 도리를 해내는 것이라 여겼다. 그런데 아니었다. 본인에게는 계속된 고통을 가하는 것이었다. 친구의 죽음을 마주하며 그제야 알게 되었다.

사무실로 복귀해 면직 의사를 표시했고, 인사과에서는 2주 뒤 즈음 사직서가 수리된다고 했다. 아직 부모님께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명확한 이유 없이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이, 직장으로부터 어떠한 의미를 부여받지 못해 그만둔다는 것이, 누군가에는 설득력을 잃는 말이기도 했다. 이해해 주지 않으실 부모님은 아니지만, 단지 미안했다. 이것밖에 버티지 못하는 자식이라 면목이 없었다. 지금껏 아낌없이 지원해 주시고 사랑을 주신 부모님께 끝없이 미안했다. 다만, 더 이상 감당해 내기 싫었다.

 

 

 

 

부모님께는 사직서가 처리되고 말하기로 마음먹었다. 아무래도 그 편이 더 마음이 편할 것 같았다. 주변 동료들은 은서의 결정에 부러워하는 마음을 내비치기도 했고, 더불어 너니까 뭐든지 잘할 것 같아 걱정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그런 말을 듣는데 기분이 약간 이상했다. 내가 꽤나 믿음직하고 곧은 사람이었나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고. 난 내내 나 자신이 연약하고 약한이라고 여겼는데, 다른 이들이 보는 나는 또 다른 것이었나 보다.

책상 속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인수인계 내용을 담은 한글 파일도 작성하기 시작했다. 휴게실 내 캐비닛 속에 담긴 물건들도 꺼내었는데, 역시나 은서답게 별다른 물건이 없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는 그 장면을 마주하고는 ‘역시 너답게 뭐든 정돈되어 있고 깨끗하네. 이렇게 짐이 없는 직원은 또 처음 본다’는 이야기를 건넸다.

 

 

 

 

2주가 남은 시간, 기분이 이상했다. 그렇게나 바라던 것이 이루어지는 순간들이 다가오는데 생각보다 그리 기쁘지 않았다. 부모님께 이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다른 이들이 나를 보는 것과 달리 나는 여전히 흔들리고 연약한 존재라서 그런 걸까. 사실 많은 이들은 면직이나 퇴사를 하기 전에 무엇이 확정되어야만 그것을 실행하곤 한다. 또 다른 시험에 합격했거나, 이직이 확정되었거나, 그것이 아니라면 도전하고 싶은 것들이 정해져있거나. 다만, 은서에겐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었다. 어쩌면 그래서 더 불안한 마음이 들었는지도 모른다.

 

 

 

 

일단, 가장 먼저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마음이 답답했기 때문이었다. 여행지는 늘 그렇듯 제주의 동쪽 마을 종달리였다. 고요한 그곳에 머물다 보면 어느새 마음이 잠잠해지는 것을 수차례 경험해온 은서라 면직이 확정되는 날에 맞추어 곧바로 제주행 비행기표를 예약해두었다. 돌아오는 날은 미정이라 일단은 편도로 끊어두었다. 2주 뒤에는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니니 출발일을 마음대로 설정해도 무방했다. 주말만을 바라보는 삶을 살아가는 것 역시 그만두어도 괜찮을 것만 같았다. 문득 마음이 뛰기 시작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긴장되던 마음이 스르르 녹는 기분이었다. 비행기표를 예약해둔 김에 숙소도 예약해두었다. 제주여행을 오면 늘 묵는 1인용 독채 숙소를 예약해두었고, 일단 일주일을 예약해두었다. 더 머물고 싶을 땐 연장을 하면 되는 터라-

 

 

 

 

2주간의 시간 동안 하던 일을 계속하면서도 인수인계서를 작성하고 해내야 할 서류철을 하기도 하고 작별이 필요한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렇게 시간을 보냈다. 다만 그 시간 속에서 드문드문 기준이 떠올랐다.

평생 가장 가깝다고 여긴 친구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니, 어려운 일이었다. 문득문득 기준과 함께 해온 삶의 장면들이 떠올랐고 그럴 때면 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가장 가깝다면서도 그 친구의 진짜 마음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렇게 힘들어했다는 걸 까맣게 알지 못했다. 분명 알 기회가 있었을 텐데, 기준이 나에게 자신의 사정을 털어놓을만한 기회가 있었을 텐데 왜 그러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몰랐을까. 그런 일들을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고 홀로 감당했을까. 그 시간들이 얼마나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을 하다 보니 지나간 시간들을 돌리고 싶었다. 다시 그 시간 속으로 돌아가 기준을 꼭 안아주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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