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p6. 누구에게는 그럴듯한 이유가 있다.

2024.09.02 | 조회 1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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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ogue

공무원 의원면직&공공기관 퇴사 유경험자의, 최종꿈은 동네책방 주인인 잔잔한 글쓰기 모음

 

 

 

이번 회는 김나영의 플리를 들어주시길, 

 

 

기준: 은서야 만약 내가 돈을 많이 벌면 행복해질까?

은서: 물론, 살아가면서 어느 정도의 돈은 필요하지만 돈이 전부는 아니잖아. 그저 하루의 삶 속에서 작은 행복의 순간을 자주 발견한다면 그것이 행복한 삶 아닐까? 너무 현실성이 없는 답변인 걸까.

기준: 아니, 너다운 답변이야. 그런데 나는 돈을 벌어도 행복하지가 않아. 그렇다고 너처럼 삶 속에 소소한 순간을 맞이하며 행복을 느끼지도 못하고.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는 걸까? 나는 지금껏 앞만 보고 달리며 살아서 그런 걸까. 실은, 나 자신에 대해서도 어떤 삶이 행복한 것인지도 잘 모르겠어. 요즘 들어 때때로 무의미함을 자주 느껴.

은서: 살다 보면 그렇잖아. 사람이라는 게 그런 거 같아. 삶에 있어 끊임없이 무의미함과 권태로움을 느끼다가도 또 별것 아닌 일에 행복해하고 살아있음을 느끼는 것. 그게 사람이고 우리라는 생각이 들어. 그래서 너무 무겁게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하루에도 몇 번씩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마음의 온도를 지닌 것이 우리니까.

 

 

 

 

기준의 장례식장에 도착해 일을 돕고 이런저런 생각에 휩싸이다 보니 어느덧 밤 12시가 넘었고, 그제야 장례식장은 조금 잠잠해졌다. 기준의 회사에서는 아무도 오지 않았다. 분명 회사에서 무슨 일이 있었음이 분명했다. 함께 일한 직원이 세상을 떠났는데, 어떻게 한 명도 오지 않을 수가 있지? 무언가 이상했다. 늦은 시간이었지만 기준의 동생에게 물어봐야 할 것들이 있어서 기준의 동생이 자리한 방으로 향했다.

 

 

똑똑, 나 은서 누나야.

 

기준 동생: 아, 누나, 아직 안 잤어요? 무슨 일 있는 거예요?

 

은서: 혹시, 기준이가 쓰던 휴대폰을 좀 볼 수 있을까 해서. 내가 알기로 기준이가 쓰던 휴대폰이 2개였거든. 나랑 연락하는 번호는 기준이가 가까운 사람들끼리 연락할 때 사용했던 것이고, 회사 사람들이랑 연락할 때는 다른 휴대폰을 사용한다는 말을 들었거든. 그게 편하다고 해서. 혹시 그 회사에서 쓰던 폰을 내가 좀 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이상해서 말이야. 기준이 회사에서 분명 무슨 일이 있었던 것 같아. 알아내야 할 것 같아.

 

기준 동생: 안 그래도 저도 의문스러워서 가장 먼저 형 회사 폰을 켜서 이것저것 둘러봤는데, 메모장에 다 비밀번호가 걸려져있더라고요. 생각나는 번호들을 다 넣어봤는데도 풀리지가 않아서 단서가 될 만한 것들을 찾지는 못했어요. 혹시 몰라서 누나한테도 물어보려고 휴대폰 들고 왔어요.

 

은서: 그럼 내가 한 번 그 비밀번호 풀어볼게.

 

기준 동생: 누나, 여기 있어요. 이게 형이 회사에서 쓰던 휴대폰인데 충전기도 다 챙겨왔어요. 편하게 보시고 혹시 비밀번호 풀게 되시면 말해주세요..!

 

 

 

 

기준은 회사에 입사한 이후로는 늘 2개의 휴대폰을 사용했다. 하나는 가까운 이들과 사용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회사에서 사용하는 것이었다. 처음부터 분리해 내고 싶었다. 회사와 자신의 생활을. 회사는 기준에게 돈을 버는 곳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곳 안에서 맺는 관계 역시 진실한 관계가 아니었다. 진실되게 대할 에너지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준이 생각하기엔 은서는 그런 면에서 신기한 친구였다. 자신이 하는 일을 그렇게나 싫어하는 사람이 또 그 안에서 만난 인연들은 소중하게 여겼다. 직장 안에서 가까운 이들을 만난다는 것이 기준에게는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지만, 은서에게는 가능한 일이었다. 가끔은 그런 은서의 모습이 부럽기도 했다. 은서는 그런 친구였다. 악의 없이 늘 순수하게 사람을 대했다.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고, 그 사람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는 몇 안 되는 친구였다. 그래서 그것이 따뜻하고도 좋았다.

 

 

 

 

은서는 기준의 휴대폰을 가지고 장례식 안에 자리한 방으로 들어왔다. 휴대폰을 키니 배경화면이 떴다. 배경화면은 기본 배경화면이었다. 휴대폰을 구매했을 때 지정된 그 배경화면 그대로였다. 컬러링은 계절에 따라 바꾸는 이가 화면은 바꾸지 않는다는 것이 조금 이상했지만, 이해는 됐다. 이것은 회사 사람들과의 연락을 위해 사용하는 휴대폰이니 기준의 입장에서 정성을 들일 마음이 없었을 것이다. 번호로 전화해 보니 은서와 연락할 때 쓰던 휴대폰과는 달리 컬러링 역시 지정되어 있지 않았다.

기준은 그런 친구였다. 자신이 관심이 있는 대상과 관심이 없는 대상을 향한 온도차가 큰 친구였다. 그래서인지 평소에도 자신을 대할 때의 기준의 모습과 회사에서 급한 전화가 왔을 때 그것을 받아내는 기준의 모습은 너무나도 달랐다. 따뜻하고 다정한 친구가 회사 이야기가 나오거나 회사로부터의 연락이 올 경우 지나치게 차갑고도 사무적으로 변했다.

직장 내에서도 종종 좋은 이들을 마주하게 된 은서는 기준에게도 그런 인연이 존재하는지 궁금했다. 기준으로부터 회사에 대해 듣게 된 이야기 중에 일과 관련되지 않은 이야기는 없었다. 누군가에 대한, 사람에 대한 이야기는 늘 빠져있었다. 가끔 은서가 기준에게 “기준아 회사에서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없어?”라고 물어볼 때면 기준은 늘 너털웃음을 지으며 그런 말을 뱉었다. “사람이야 뭐, 회사는 일을 하는 곳인데. 마음에 안 드는 사람 많지. 그런데 그 부분은 나에게 상관없어. 회사는 단순히 일을 하고 돈을 받는 곳이니까.”

 

 

 

 

기준의 휴대폰을 둘러보니 실제로도 기준의 동생의 말처럼 별다를 것이 없었다. 사진첩에도 업무와 관련된 사진이나 캡처가 대부분 자리하고 있었고, 문자메시지와 카톡 역시 업무 이야기뿐이었다. 다만 메모장에는 온통 비밀번호가 걸려있었다.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기준의 동생이 기준과 관련된 대부분의 번호를 입력해 봤다고 했으니,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유서가 헤르만 헤세의 <수레바퀴 아래서>에 꽂혀있으니 아마 그와 관련 있지 않을까 싶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숫자는 수레바퀴 아래서의 출간일인 1906이었다. 처음에는 수레바퀴 수를 생각해 보다가 아무래도 4자리로 조합하기엔 무리가 있겠다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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