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Ep9.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

2024.11.07 | 조회 11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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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alogue

공무원 의원면직&공공기관 퇴사 유경험자의, 최종꿈은 동네책방 주인인 잔잔한 글쓰기 모음

이번 소설은 죠지의 노래와 함께하길, 

 

 

만약 기준이 이러한 마음을 안고 살았다는 것을 조금 일찍 알았더라면, 은서 또한 자신의 삶에 대한 생각들을 자신의 솔직한 감정들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었을 거다. 다만, 그것을 후회해 내기엔 이미 늦은 시간이었다. 기준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고, 이제 세상에 남은 것은 은서 홀로였다.

마음을 나누는 친구가 이 세상을 함께 살아가며 오롯이 나 홀로 나의 아픔과 고민들을 지니고 가는 것과 친구를 떠나보내고 그러한 감정들을 품으며 살아가는 것은 분명히 달랐다. 전자보다 후자가 훨씬 더 슬프고 외로운 시간이 분명했다.

 

 

 

 

어느덧 발인하는 날이 다가왔다. 기준의 가족들은 수목장을 하기로 택했는데, 그것은 평소 자연과 나무를 사랑해온 기준의 성향을 반영해온 장례법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수목장은 나무의 밑에 골분을 묻어 자연으로 다시 돌아가 회귀하는 뜻의 소박한 장례법인데, 기존의 무서운 느낌의 무덤과는 달리 수목장은 푸른 자연으로 둘러싸인 장소에 위치하기에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친숙한 방법이기도 했다.

인간은 자연에서 탄생한 존재이니, 자연으로 다시 돌아감을 의미하는 수목장은 의미하는 바가 분명 있었다. 덧붙여 늘, 자연을 사랑해왔던 기준이었다. 그런 기준이가 비록 가장 자연스러운 방식의 죽음을 택하진 못했다 하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족들은, 또 은서는 기준이 생전에 가장 편안해하고 좋아했던 방식으로 이 세상에서의 마지막을 마주할 수 있게끔 해주고 싶었다. 그렇게라도 해야만 무거운 마음들이 조금은 덜어지는 것만 같았다.

 

 

 

 

기준과 마지막 인사를 하고 화장 진행 후 수골 과정을 지켜본 다음 수목장으로 이동하는 것이 남은 장례의 일련의 과정이었다.

은서는 최근 외할머니의 장례를 치르며 이러한 시간들을 마주했던 경험이 있었다. 누군가의 죽음이 도통 믿기지 않다가도 발인 전 마지막으로 인사를 하는 시간 속에서는 그제야 온몸으로 느껴졌다. 이 사람의 죽음을, 또 이 사람과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것을.. 숨도 쉬지 않고 가만히 누워있는 외할머니의 마지막 모습을 마주하고는 은서는 그동안 잘 참아왔던 눈물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기준과의 마지막 인사를 할 때는 이보다 더 격한 감정들을 맞이할 것이라 예상되었다. 외할머니의 경우 순리에 따라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했다면, 기준의 경우는 아니었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중단했던 기준이었고, 그렇게나 힘든 과정을 겪고 있다는 사실을 가장 가깝다고 여긴 은서는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한 사실이 은서를 더욱 아프게 만들었다. 아무것도 몰랐다는 사실과 가장 가까운 친구가 그러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이 끝없이 사무치도록 슬펐다.

 

 

 

 

대체로 고인과 마지막 인사를 하는 것은 가족들에게 해당되는 일이었으나, 기준의 가족은 은서도 함께 참여하길 바랐다. 은서 역시 그러고 싶었다. 그렇게 기준을 보내줘야 하는 시간.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들을 하라고 하셨는데, 은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지금껏 잘 참아온 눈물을 꺼이꺼이 쏟아낼 뿐이었다. 그리고 무겁게 꺼낸 단 한 마디는 몰라줘서 미안했다는 말이었다. 그저 은서가 기준에게 건넬 수 있는 말은 그뿐이었다.

 

 

 

 

마지막 인사를 마친 뒤, 화장이 진행되었다. 이젠 진짜 기준이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니 주체할 수없이 눈물이 쏟아 나왔다. 자신에게 가장 정다운 친구가 이젠 한 줌의 재가 되어가고 있다. 허무하고 공허한 일이기도 했다. 이는 더 이상 친구의 체온을 느낄 수도 친구의 존재를 느낄 수도 없는 일임을 의미했다.

화장이 끝나고는 준비된 수목장 자리로 이동해 추모목 앞쪽으로 골분을 묻는 것이 장례의 마지막 순서였다. 자연에서 태어나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순간이기도 했다. 은서는 기준의 안녕을 바랐다. 비록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은 고되고 어려운 일이 많았지만, 이젠 그 어떤 고통도 느끼지 않고 편히 쉬길.

 

 

 

 

누군가의 장례를 마주할 때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떠오르게 된다. 삶은 무엇일까 또 죽음은 무엇일까. 삶과 죽음은 가장 가깝고도 또 가장 멀찍이 맞닿아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마음을 품게 된다.

살아가는 것은 죽음을 향해 가까워지는 시간들이기도 하다. 다만, 그렇다고 할지라도 잘 살아내야만 한다. 아무리 삶의 끝이 죽음이라 할지라도 자신에게 주어진 생의 시간 동안은 자신만의 방식대로 제대로 그 시간들을 보내야만 한다. 그래야만 후회가 없을 것이라고.

 

 

 

 

은서는 그렇다면 자신의 삶은 어떠한가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난 지금 과연 잘 살고 있는 것일까? 그저 주어진 시간들을 허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금 더 도전적인 삶을 살아야 하지 않을까? 더 늦기 전에 나의 진짜 꿈을 실현해 내야 하지는 않을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은 이제 진짜 중단해 내도 되지 않을까? 나의 삶이니, 조금은 나의 마음대로 움직여도 되지는 않을까.

기준의 죽음으로 인해 은서의 삶에는 겨우내 균열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자기만의 알을 드디어 깨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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