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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주 들어 올해 첫 콩국수를 해 먹었어요. 미루고 미루다 결국 흰 콩을 한 솥 가득 끓였지요. 콩 껍질을 벗기고, 갈고, 식히고, 면 보자기에 짜고···. 먹을 때는 순식간이지만 품이 많이 드는 음식이에요. 독일에 살 때까지만 해도 계절마다 한국 별미를 악착같이 해 먹었는데, 이상하게도 아나톨리아에 온 이후로는 여기 식습관에 입이 더 맞아가요. 한식을 먹고 싶은 생각이 들다가도, 결국 차려 먹는 것은 여기 음식이지요. 왜 그런가 생각해 보니, (1)아나톨리아의 기후는 뚜렷한 특징을 가지고 (2)그 기후에서 파생된 식자재는 매우 풍요롭고 (3)그 식자재를 흡수했을 때 여기 환경에 몸이 맞아간다. 이런 삼자 순환 구조가 작용하는 듯해요. 내가 튀르키예에 온 이유는 다양하지만, 이곳 음식에 대한 궁금증도 한몫했어요. 진즉 말씀드렸듯, 베를린에서 튀르키예 마트에 다니며 아나톨리아산 만물의 정체를 샅샅이 다 알고 싶었어요. 말려놓고 절여놓고 빻아놓은 그 식자재들을 보며, 먹기 위해 한 계절 미리 재료를 준비해 놓는 걸 당연히 여기는 나라, 그런 나라에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종종 했지요. (1)에서 좀처럼 더 진전되는 일 없던 중유럽에서는 그러한 수고의 부재가 아쉬웠거든요. 각설하고, 오늘은 요즘 먹었던 음식들을 좀 알려드릴게요. 차갑게 먹는 아나톨리아의 여름 별미들을요.
1. 당근 호두 타라토르
요구르트의 근원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 이름만큼은 튀르키예식이지요. 주의할 것은, ‘ㄱ(ğ)’은 묵음이기에 현지에서는 요구르트가 아닌 요우르트라고 발음해요. 에르도간이 아니라 에르도안(Erdoğan)으로 발음하는 것처럼요. ‘요’에서 ‘트’까지는 매우 빨리 지나가서, 처음 여기서 요구르트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는 무엇을 지칭하는 건지 도통 헤아릴 수 없었어요. 이들 역시도 우리가 ‘요구르트 있나요?’라고 또박또박 물으면 전혀 알아듣지 못할 거예요. 요구르트가 본래 아나톨리아 것이든 아니든, 이 나라 사람들 대부분은 요구르트 없이 단 하루도 살 수 없어요. 이곳 요구르트는 여러 가지로 나뉘어요. 일반 요구르트, 꽉 짜서 유청을 제거한 요구르트, 오래 발효해서 신맛이 나는 요구르트, 표면에 유막이 있는 카이막 요구르트, 얕은 팬에서 발효시켜 윗면이 두꺼운 타바 요구르트, 양젖 요구르트, 염소젖 요구르트, 마시는 요구르트···. 요구르트는 흔히 밥이나 만두에 뿌려 먹고 심지어 수프로도 끓여 먹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방식은 타라토르를 만들어 먹는 거예요. 타라토르는 아나톨리아와 발칸 반도에서 두루 먹는 음식으로, 되직한 요구르트에 마늘, 견과류, 다진 야채를 섞어 차갑게 내지요. 우리가 생선까스에 곁들여 먹는 타르타르 소스가 이 타라토르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져 있어요. 내가 가장 좋아하는 타라토르는 당근과 호두를 넣은 버전이에요. 만들기도 쉽고 빵에 발라먹거나 튀김이나 크래커에 찍어 먹기에도 용이하지요. 당근과 호두 대신 애호박과 아몬드로 대체해도 맛있답니다.

재료: 요구르트, 당근, 호두, 버터, 올리브유, 마늘
산미가 없고 되직한 요구르트(그릭 요거트)를 골라요. 해외에 살아 주위에 튀르키예 마트가 있다면 쉬즈메(Süzme) 요구르트를 고르면 되어요. 일반 농도라면 면보로 유청을 약간 분리해주는 게 좋겠지요.
채칼로 썬 당근을 올리브유에 살짝 볶아요.
다진 마늘과 소금을 넣고 요구르트에 섞어줍니다.
버터에 다진 호두와 고춧가루를 살짝 뿌려 달달 볶아줍니다.(고춧가루 생략 가능)
호두를 요구르트에 올려줍니다.
2. 피야즈 샐러드
집에서 가까운 선착장에서 바다를 따라 걷다 보면, 요트가 빽빽이 정박되어 있는 마리나가 나와요. 마리나 근처를 걷다 우연히 발견한 식당, 다막(Damak)은 보물 같은 곳이었지요. 다막은 입천장이라는 의미예요. 미각, 입맛이라는 뜻을 담고 있기도 하지요. 다막은 주택가 모퉁이에 위치한 매우 소박한 동네 식당이에요. 들어서는 손님마다 잘 지내슈? 주인에게 살가운 인사를 건네지요. 케밥, 완자, 수프 등 고기 요리가 메뉴의 주를 이루는데, 그보다 더 놀라운 맛을 선사한 것은 피야즈 샐러드였어요. 피야즈란 페르시아어와 쿠르드어로 양파를 의미해요. 튀르키예 내에서는 양파와 삶은 콩이 들어간 샐러드를 통상 피야즈라고 부르지요. 여기에 토마토, 파슬리, 때로는 파프리카를 넣기도 해요. 소스도 다양하게 만들 수 있지만, 나는 중동의 참깨 페이스트인 타히니를 넣은 피야즈를 좋아해요. 식초를 넣어 새콤달콤한 이 샐러드는, 기름기 많고 무거운 고기 요리와 곁들이기에 참 좋답니다. 다막의 피야즈에는 검보라색 가루가 뿌려져 있었는데, 내 생각에 아무래도 이솟(İsot) 같았어요. 이솟이 무어냐고요? 이솟은 아나톨리아 동남부 샨우르파르 지역의 향신료예요. 튀르키예의 셀 수 없이 다양한 향신료 중, 단번에 그 맛을 이해하기 어려운 향신료가 바로 이솟이지요. 튀르키예인들조차 동남부 출신이 아닌 경우, 이솟을 아예 집에 두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이솟을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붉은 파프리카를 강한 햇볕에 말려야 해요. 이 건조된 파프리카를 일정 시간 이후부터는 밤마다 비닐 안에 밀봉해요. 그러면 그 안에서 파프리카가 낮 동안 품고 있던 열을 발산하며 땀을 흘려요. 비닐 안은 찜통이 되고, 파프리카는 숙성되지요. 낮이 되면 다시 건조한 땡볕에 노출되고, 밤에는 쪄지며 산화되고. 이 과정을 반복하며 파프리카는 점점 검어져요. 마치 흑마늘을 만드는 것과 비슷한 원리인 것이지요. 이렇게 검게 마른 파프리카는 훈연향과 약간의 초콜릿 향을 띠게 되어요. 거기에 식물성 기름을 발라 분쇄한 것이 이솟이랍니다. 이솟을 처음 맛보면 이게 뭐야? 맵지도 않고 시지도 않고. 그 향신료의 존재 당위성에 의구심이 들어요. 내가 비로소 이솟의 진정한 매력을 이해하게 된 것이, 다막의 피야즈 샐러드였답니다. 내가 피야즈에 들어간 게 이솟이냐 묻자, 안테프 출신 식당 주인은 고향에서 가져온, 아주 물건이라며 이솟을 일회용 용기에 담아 내게 건네었어요. 이솟을 내가 한국에 전할 수는 없겠지만, 이 피야즈 샐러드는 당신께서도 올여름 꼭 만들어 드셨으면 해요. 삶은 달걀까지 하나 올리면 든든한 한 끼로도 충분하지요.

재료: 흰 강낭콩, 달걀, 토마토, 양파, 파슬리, 타히니, 레몬, 식초, 다진 마늘, 올리브유, 고춧가루
밤새 불린 흰 강낭콩을 적당히 익을 때까지 삶아요. 녹두, 병아리콩, 동부콩도 잘 어울려요.
달걀도 같은 시간에 삶아줍니다.
토마토, 양파, 파슬리를 잘게 썰어요.
소스를 만듭니다. 타히니, 레몬, 식초, 소금, 다진 마늘, 올리브유. 여기서는 대체로 포도 식초를 쓰지만 사과 식초로도 충분히 맛있어요.
모든 재료를 섞어준 후 달걀을 썰어 올립니다.
이솟이 없다면 고춧가루를 톡톡!
3. 붉은 렌틸 완자
유럽의 바에서는 가끔 꽃이나 간식을 파는 행상들을 종종 마주쳐요. 나도 안주도 없이 술을 마시는 게 괴로워, 조리 과정 못미더운 사모사를 울며 겨자 먹기로 사 먹은 적 있었지요. 내가 베를린에서 마지막으로 머문 동네 릭스도르프는 보헤미아 출신 개신교 난민들이 이주해 정착한 지역이었어요. 지금이야 아랍인들이 점령했지만, 보헤미안 길, 보헤미안 광장 등 체코인들을 기린 지명들이 희미하게 남아 있어요. 보헤미안 광장의 술집에는 가끔 제이넵이라는 튀르키예인 아주머니가 행차하셨어요. 금발의 곱슬머리를 매력적으로 단장한 제이넵 씨는 쟁반을 하나 이고 다녔는데, 그 위에 꼭 있던 음식이 붉은 렌틸 완자(Mercimek Köftesi)였어요. 언제나 갓 만든 듯 신선했지요. 그렇게 붉은 렌틸 완자는 내가 기다리는 안주가 되었어요. 곡류로 고기 완자 비슷하게 모양을 만들어 페이스트로 양념한 튀르키예 음식에는 두 가지가 있어요. 불구르 밀로 만든 치 완자(Çiğ Köftesi), 붉은 렌틸과 불구르를 섞어 만든 붉은 렌틸 완자가 그것이지요. 처음 이 음식들을 먹었을 때는 고기도 아니고, 튀긴 것도 아니고, 튀겨야 할 반죽을 기름에 넣기 전에 먹는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 없었어요. 그러나 점차 그 고소함과 산뜻함에 익숙해져서, 제이넵 씨를 못 보는 날이면 서운해졌지요. 메르지멕 쾨프테시는 양상추나 상추에 올려 싸 먹으면 깔끔해, 손님 대접 음식으로도 적격이랍니다. 여담이지만 ‘치(Çiğ)‘라는 단어는 ’생(生)‘이라는 의미로, 원래 치 쾨프테에는 양고기 육회가 들어갔었어요. 오늘날에는 육회 판매가 금지되어 생고기를 빼고 곡류만 치대어 치 쾨프테를 만들게 된 거지요. 한번 생 양고기가 들어간 치 완자를 먹어본 적이 있는데, 그 역시도 정말 인상 깊은 별미였답니다. 소고기 육회를 이 곡류 완자에 넣으면 어떤 맛일지 궁금해지네요.

재료: 붉은 렌틸, 잘은 불구르 밀, 양파, 토마토 페이스트, 파프리카 페이스트(혹은 고추장), 파, 파슬리, 후추, 큐민, 레몬
붉은 렌틸 한 컵을 푹 익을 때까지 삶습니다.
익은 렌틸에 잘은 불구르 밀을 한 컵 반 넣고 물을 부은 후 뚜껑을 닫아요. 30분 기다립니다. 지점토 같은 점성이 우리의 목표예요.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다진 양파를 넣고 볶다가 토마토 페이스트와 파프리카 페이스트(혹은 고추장)을 한 스푼씩 더해요. 재료들이 어우러지도록 함께 볶아줍니다.
섞인 페이스트와 다진 파, 다진 파슬리, 후추, 큐민, 파프리카 파우더(없으면 생략)를 처음 삶은 재료에 넣고 섞어줍니다.
손으로 주물럭주물럭해 모양을 잡아줍니다.
레몬을 살짝 뿌려 양상추에 싸서 드세요.
* 현지에서 정확히 사용하는 불구르 밀은 ‘Esmer Çiğ Köftelik Bulgur’입니다. 아주 잘게 분쇄한 갈색 불구르예요. 이걸 구할 수 없다면 일반 불구르 밀을 약간 갈아서 사용하거나, 쿠스쿠스로 대용해 사용해 보세요.
한여름 부엌 노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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