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닭이 아니라 수탉

2026년 4월 21일

2026.04.21 | 조회 145 |
0
|

 

첨부 이미지

 

 

나는 동네에 알리라는 이발사를 알고 있는데, 그는 수탉 울음소리를 잘 내요. 손님들은 흔히 그를 미친(deli) 알리, 델리 알리라고 불러요. 알리 씨의 이발소에 가려면 주상 복합 상가의 필로티 통로를 통과해야 해요. 이스탄불 사람들은 그 기나긴 회랑이 테살로니키의 건축물을 연상케 한다지만, 내 눈에는 홍제동 유진상가가 겹쳐 보여요. 상가 내 점포 구성도 한국 아파트 상가와 유사해요. 예컨대 알리 씨가 입점한 건물 옆면에는 은행과 프랜차이즈 도넛 가게가 붙어있고, 입구에는 되네르 케밥 집이 쿠민 향을 풀풀 내풍기며 허기진 행인들의 발목을 붙잡아요. 복도 초입에는 양동이를 놓고 꽃 파는 할아버지가 노상 앉아 계시고, 잡화상을 지나쳐 걸으면 복도 끝에 태권도 도장이 나와요. 열쇠를 가지고 가야만 하는 수세식 화장실도 있지요. 화장실 맞은편 구석에 알리 씨의 협소한 이발소가 자리해요. 이름하여 알리 이발소.

 

알리 씨의 외형을 간략히 설명해 볼게요. 160 센티미터 초반인 나와 비슷한 신장에 체구는 왜소해요. 하프 마라톤에 출전한다는 그의 말마따나 군살이라고는 전혀 없지요. 뼈대는 아주 얇고, 어느 틈이라도 매끄럽게 빠져나갈 듯 유연해 보여요. 그의 두상 중앙은 모발이 없어 반질거려요. 양옆으로는 백발이 쎈구름처럼 뻗쳐있지요. 알리 씨가 걸을 때면 백발이 날개처럼 나풀거리고, 그럴 때 그는 이발해 주러 지상에 강림한 요정의 풍모를 발산해요. 엉덩이까지 내려오는 흰 가운도 그 풍모에 일조하지요. 그의 번뜩이는 큰 눈은 늘 호기심에 가득 차 있어요. 일각에서는 알리 씨가 형이상학적 측면을 다분히 지니고 있대요. 델리 알리로 불리는 건 다만 수탉 소리를 잘 내서가 아니라고. 기실 나 역시도 알리 씨로 인해 깜짝 놀란 적이 있어요. 그의 이발소에서 읽은 신문 기사를 떠올리는데, 고개를 돌리니 그가 통신사 대리점에 앉아 있는 거예요. 또 언제는 거리에서 알리 씨를 생각하고 있을 찰나였어요. 잘 지내고 계시려나? 그런데 그가 모퉁이를 돌아 내 앞에 나타났어요. 나는 너무 놀라서 한국말로 외쳤어요. 아이고!

첨부 이미지

그가 언제 수탉 소리를 낼지는 아무도 몰라요. 이발이나 면도 도중 불시에 퍼포먼스를 선보이거든요. 마무리로 손님에게 등 마사지를 해주다 닭으로 변신할 때도 있지요. 고개를 훅 젖히고 고성을 내지르는데, 그 음량은 가히 도장과 케밥 집을 날려버릴 정도예요. 그의 이발소에는 잡동사니들이 동굴 속 벽화처럼 매양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어요. 올록볼록한 미쉐린 마스코트 엠블럼과 아타튀르크 초상, 유명 화학자 옥타이 시난올루가 이발하러 왔을 때 찍은 기념사진, 그가 응원하는 베쉭타쉬 축구팀 엽서, 스크랩한 신문 기사들, 이용사 면허증, 그를 똑 닮은 딸의 어릴 적 사진이 벽 여기저기에 붙어 있지요. 아령과 장우산, 키친타올, 향수병, 포장을 뜯지 않은 인조 장미, 지난 세기 탁상 달력도 산재해 공간의 틈을 메워요. 거기서 풍경의 밀도를 더 올리는 것은 수십 가지 닭 모형 장식품이에요. 도자기로 구운 닭, 유화로 그린 닭, 플라스틱 닭, 스테인드글라스처럼 오색으로 칠해진 스티커 닭···. 언젠가 퍼포먼스를 막 마친 알리 씨에게 물은 적이 있어요. 이 닭들은 다 어디서 모으셨어요? 그러자 그가 바리깡도 끄지 않고 매섭게 돌아보며 대꾸했어요. 이봐요, 닭이 아니라 수탉이에요! 그가 완강히 정정하는데, 머리 뒤편에 잠자고 있던 기억이 일순 솟구쳐요.

 

닭이 아니라 수탉이야! 베를린 시내의 어느 펜트하우스였어요. 목소리의 주인공은 데이팅 앱에서 만난 개발자 우우르였지요. 너무 선해 약간은 우유부단해 보이기까지 하던 그는 자신을 튀르키예인이라 소개했으나, 나는 우우르의 외형이 페르시아인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내 소견에 그는 일리 있는 관찰이라며 말을 이어갔는데, 이유인즉슨 자신이 툰젤리 출신의 자자족이기 때문이라는 거였어요. 자자족은 아나톨리아 동부 깊은 산악에 거주하는 독립적 민족인데, 이들은 이란어 계열의 자자어를 써요. 또한 알레비 전통을 유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요. 알레비즘은 시아파 이슬람과 수피즘, 아나톨리아 민속 신앙이 결합한 독특한 종교예요. 이들은 무함마드의 조카이자 사위였던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를 영적 진리의 수호자로 여겨요. 알레비라는 이름 자체가 알리로부터 유래했지요. 알레비 신도들은 일반적인 모스크에 가지 않아요. 대신 젬에비Cemevi라고 불리는 이들만의 예배당에 가지요. 의식을 뜻하는 젬은 알레비 문화의 핵심이라고 볼 수 있어요. 이들은 젬을 통해 공동체적 합일을 이룬다고 믿지요. 알레비 남성 신도 중 젬이라는 이름을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것은 이러한 배경 때문이에요. 세계적 인기를 얻은 베를린발 테크노 게이 파티 ‘남성 사우나Herrensauna’의 주최자 이름이 이라는 사실이, 우연치고 재미있지 않나요? 어떠한 그림도 찾아볼 수 없는 모스크와 달리, 젬에비에는 알리의 초상이 걸려 있어요. 또한 줄피카르라 불리는 전설의 검 상징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지요.

첨부 이미지

우우르는 두 번째 데이트 날, 옷장에서 긴 우쿨렐레처럼 생긴 전통 발현악기 바을라마를 꺼내 왔어요. 바을라마라는 악기를 실제로 본 것은 처음인 데다 그게 집에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지요. 그러나 정작 내 시선을 더 끈 것은 그가 입고 나온 샛노랑 원펀맨 티셔츠였어요. 이번이 아마도 마지막 데이트일 것 같다고 예측하는데, 바을라마 몸통에 붙은 야광 닭 스티커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나는 차분히 그가 한 곡을 마칠 때까지 기다린 후 물었어요. 닭은 왜 거기 붙여놨어? 그가 언짢은 기색으로 바을라마를 탁 내려놓으며 외쳤어요. 닭이 아니라 수탉이잖아!

 

우우르가 당시 설명한 것을 기억해 볼게요. 알레비 문화에서 수탉은 천사 가브리엘을 상징한다고 해요. 알레비 지도자는 이맘이 아닌 데데라고 불리는데, 데데로부터 기도를 받을 때 이 수탉을 제물로 바치는 경우가 왕왕 있다고요. 가브리엘이 신으로 다가서는 첫 번째 관문의 안내자이기 때문이라지요. 우우르처럼 이발사 알리 씨도 툰젤리가 고향이에요. 젬에비에 나갈 정도로 신앙이 깊지는 않지만, 알레비 전통을 따르는 가정 환경에서 자랐다고 알고 있지요. 하지만 그가 알레비즘 상징 때문에 수탉 상징을 잔뜩 모으고 수탉 울음소리를 내는 것인지, 그저 개인적 취향일 뿐인지는 알 수 없어요. 언제라도 유진상가를 닮은 그 건물 앞을 지날 때면 이유를 묻고 싶지만, 알레비즘에 대해 터놓고 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랍니다.

 

내 견해로 적어도 오늘날, 튀르키예에서 알레비인에 대한 일반적 인식은 긍정적인 편이에요. 정직하고 인심 좋으며 마음씨 따뜻하다는 평이 주를 이루지요. 그러나 불과 90년대까지만 해도 이들은 지속적인 탄압을 받았어요. 알레비즘의 뿌리가 정통 순니파 아닌 시아파에 있다는 이유 때문이지요. 차별의 역사는 무려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요. 이 시기에 바로 투르코만-이란계 출신 지도자, 이스마일 1세가 사파비 왕조를 세웠거든요. 사파비 왕조는 현대 이란의 전신이 되는 국가로, 대범하게도 시아파를 아예 국가 종교로 채택했어요. 이에 반기를 든 순니파 지지자들은 무참히 숙청당했지요. 시아파: 이란과 이라크, 순니파: 튀르키예와 아랍 국가들; 우리가 오늘날 익숙한 이 국가 구도가 이때 정립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해요.

첨부 이미지

투르코만 부족 기반의 시아파 군으로 무장한 사파비 왕조와, 셀림 1세가 이끈 순니파 오스만 제국은 찰디란에서 교전을 벌여요. 1514년의 일이지요. 알레비인들은 이 전투에서 사파비 왕조를 지지했어요. 당시 이스마일 1세의 추종자들은 기름하고 붉은 열두 각 모자를 썼고, 오스만인들에 의해 ‘붉은 머리’라는 튀르키예어, 크즐바쉬Kızılbaş로 불렸어요. 사파비 왕조가 패한 이후 아나톨리아에 남은 알레비인들은 험준한 산지로 피신해요. 국가 통제를 피해 그들이 대거 정착한 지역이, 과거 델심으로 명명되던 툰젤리 지역이지요. 그들은 역적이라는 불명예를 씻지 못한 채 크즐바쉬라고 불리며 모욕당했어요. 이단인 그들이 젬 도중 촛불을 끄고 음란 행위를 치른다는 낭설이 퍼지기도 했답니다. 근친 행위를 일삼는다고요. 오스만 제국의 탐험가 에울리야 첼레비는 1650년경 그의 책 《세야하트나메》에 이렇게 기록했어요. 결코 촛불을 끄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바그다드 정복 이후 그 지역을 구석구석 돌아다녔으나 그러한 행위는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험담을 일삼고, 남을 헐뜯고, 비난하며, 모든 이들의 결점과 흠을 드러내어 퍼뜨리고, 무자비하게 비아냥거리는군요.

첨부 이미지

그러나 첼레비의 쓴소리 이후로도 모욕은 오랜 세월 지속되었어요. 90년대 최고의 시청률을 기록하던 저녁 텔레비전 쇼, 투르니케에서 진행자 귀네르 위미트는 산모 관객에게 혹시 크즐바쉬 아니냐고 물으며 근친상간을 암시하는 농담을 던졌어요. 무려 2010년에도 이런 방송 사고가 일어났어요. 알레비인들이 다수 거주하는 지역, 에르진잔에 나가 있던 통신원에게 방송인 메흐메트 알리 엘빌이 거기 사람들 촛불 끄고 막 그러나요? 이런 실언을 저지른 거지요. 튀르키예에서 90년대에 학창 시절을 보낸 친구들은 알레비인 급우들이 정체성을 숨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실토해요. 알레비인이라는 사실을 알렸을 때 파혼을 당하는 경우도 파다했다고요. 오늘날까지도 이러한 편견 때문에 알레비 신분을 대놓고 먼저 드러내는 일은 거의 없어요. 심지어 외국인인 내가, 당신 알레비인인가요? 따져 묻기는 더더욱 어려운 분위기고요. 그러나 이런 제한적 상황에도 불구하고, 내게도 알레비 문화를 살짝 엿볼 기회가 있었어요. 지난 편지에서 언급한 에게해 마을, 닷차에서였지요.

 

겨울을 맞은 우리 별장 촌에는 단 네 가구 사람들만 남았어요. 우리집 뒤뜰 쪽으로는 대궐같이 거대한 저택이 우뚝 서 있었는데, 거기 사는 슈크란 아주머니와는 줄리네서 처음 만났어요. 그날 이후 그녀는 가끔 포도잎으로 감싼 밥이나 오렌지 쿠키 등을 만들어 내게 가져다주었지요. 그녀의 남편 테킨 씨와는 산책로에서 매일 아침 마주쳤어요. 금실 좋은 그들 부부는 줄리만큼이나 떠돌이 동물들을 살뜰히 살폈어요. 임신한 고양이들을 위해 차고 안에 쉼터를 지어놓거나 아픈 동물들을 병원에 데려갔지요. 지자체에서 주인 없이 홀로 나다니는 들개를 잡아가겠다고 지령을 내리자, 부부는 보살피던 들개들의 주인 행세를 자처했어요.

 

어느 날 부부로부터 저녁 식사 초대를 받았을 때, 왜인지 그들이 음주와는 거리가 멀 것이라고 여겨 내가 마실 와인만 달랑 들고 갔어요. 그런데 웬걸, 그들 저택에서는 다양한 주종의 술이 마르지 않는 샘처럼 솟아났어요. 대화는 아주 천천히 흘러갔어요. 호주며 유럽에 산다는 그들의 자식 농사 현황으로 시작해, 그즈음 감옥에 잡혀 들어간 이스탄불 시장 이마모을루의 전망을 점침으로써 서로의 정향을 가벼이 점검했지요. 혹시 종교가 있으신가요? 내가 물었을 때 이미 맥주의 출구를 닫고 위스키의 포문을 연 테킨 씨의 페이스 탓인지, 이런 대답이 나올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럼, 알라를 믿지. 알레비일세, 우리. 그제서야 나는 알레비인들은 음주를 할 수 있음을 알게 되었지요.

 

식사 자리에는 곧 줄리와 슈크란의 언니 부부도 동석했어요. 분위기가 무르익으며 나중에는 춤판이 벌어졌어요. 아나톨리아 술자리에서 으레 그렇게 되듯 말이지요. 그런데 슈크란과 그 언니가 재생한 노래가 놀라웠어요. 내가 지구상 어떤 술자리에서도 들어본 일 없는 유형의 음악이었지요. 십오 년 전 뉴델리 간디 기념관을 방문했을 때였어요. 거기서 간디 암살 사건을 애니메이션으로 구성해 놓은 걸 보았었지요. 영상에 배경으로 깔리는 음악이 황홀하고 성스러워, 전시장 지킴이에게 제목을 물었던 기억이 있어요. 외로운 백조야, 날아가렴Ud Ja Re Hans Akela. 슈크란 씨가 블루투스 스피커로 튼 노래는 그 인도 노래를 단번에 연상시켰어요. 두드러지는 현악기의 스트로크와 반복적 구조, 평안을 보장하는 부드러운 음성. 자매는 그 음악이 알레비 찬가인 세마흐Semah라고 했어요. 설명을 듣고 귀를 기울이니 정말 가사에 알리, 무함마드, 알라 등의 단어가 잔뜩 담겨 있었지요. 당신께서는 이슬람과 음악을 엮어 생각해 본 적 있는지 모르겠어요. 나는 그 순간 취기가 완전히 증발함을 느꼈어요. 그간 세상에 없으며 금기라 굳게 믿은 것이 놀랍도록 아름다운 형태로 존재하고 있었음에. 마치 문중의 묵중한 홀아비 어르신께 혼외 자녀가 있다는 비밀을 남몰래 발견한 기분이었지요. 그것도 어여쁘고 복스러운 어린 딸아이가.

 

슈크란과 그의 언니는 곧 신발을 벗더니 잔디 깔린 마당으로 나갔어요. 그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한 손을 바깥으로 뻗치고, 다른 손은 가슴에 얹었어요. 자매는 손을 교체해 가며 ‘둥글게 둥글게‘ 노래에 율동을 하듯 원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바을라마를 치고 세마흐를 부르며 남녀노소 하나되어 뱅뱅 돈다는, 젬의 축소판을 난 그렇게 목격한 거지요. 거나하게 취한 줄리도 런던 억양으로 외치며 의식에 합세했어요. 나는 순니파지만 누구보다 세마흐를 사랑하지! 땀까지 뻘뻘 흘려가며 의식에 혼신을 다하는 맨발의 세 여자를 보며 나는 더없이 겸허해졌어요. 내가 모르던 별들이 은하수를 이루어 그들 뒤로 흐르고 있었으니까요. 사는 동안 난 그 별들 중 몇이나 찾아갈 수 있을까요? 수탉은 그냥 닭이 아니지만, 수탉 또한 닭임을, 이러한 운율의 경구를 가슴에 얼마나 새길 수 있을까요?

 

사바하트 악키라즈 <하나됨>

자매가 재생한 노래가 이것이었어요. 사바하트 악키라즈는 대표적 알레비 가수이자 정치인이이에요. 제1야당 CHP의 국회의원을 5년간 역임했지요. 그는 아나톨리아 중부 시바스 출신이에요. 1993년, 시바스의 한 호텔에서 알레비 문화·종교 축제가 열렸다고 해요. 거기 참석한 인사 중에는 한글로도 여러 작품 번역된 튀르키예의 국민 작가, 아지즈 네신이 있었지요. 네신은 당시 살만 루슈디의 문제작 《악마의 시》를 튀르키예어로 번역하려던 참이었어요. 이에 발끈한 수천의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은 호텔로 몰려가 불을 질렀어요. 서른일곱 명의 알레비 예술가들이 사망했지요. 악키라즈는 이 비극적 사건 이후 소수자 인권 개선을 위해 정계에 입문했다고 해요.

 

 

다가올 뉴스레터가 궁금하신가요?

지금 구독해서 새로운 레터를 받아보세요

✉️

이번 뉴스레터 어떠셨나요?

아나톨리아 편지 님에게 ☕️ 커피와 ✉️ 쪽지를 보내보세요!

댓글

의견을 남겨주세요

확인
의견이 있으신가요? 제일 먼저 댓글을 달아보세요 !
© 2026 아나톨리아 편지

유럽이며 아시아고 지중해권인 이상한 땅에서

뉴스레터 문의minor.historia@proton.me

메일리 로고

도움말 자주 묻는 질문 오류 및 기능 관련 제보

서비스 이용 문의admin@team.maily.so 채팅으로 문의하기

메일리 사업자 정보

메일리 (대표자: 이한결) | 사업자번호: 717-47-00705 | 서울특별시 송파구 위례광장로 199, 5층 501-8호

이용약관 | 개인정보처리방침 | 정기결제 이용약관 | 라이선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