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스탄불에서

2026년 3월 10일

2026.03.10 | 조회 1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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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톨리아 편지

유럽이며 아시아고 지중해권인 이상한 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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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로 오고 나서는 하루에 꼭 다섯 번 그레고리 잠자가 된 기분이 들어요. 무슬림들이 기도를 올릴 때마다, 매번 음조가 다른 기도문을 들으며 알라후 아크바르, 혓바닥을 천장에 굴릴 때마다 나방이나 풍뎅이가 되었다가, 이내 어떻게 이 먼 도시에까지 도달했나 자문해요. 한국을 여행하고 집으로 돌아온 지 사흘도 채 되지 않았어요. 그래요, 이 머나먼 도시를 나는 이제 집이라고 불러요.

 

서울에 도는 소문을 들었어요. 내가 위구르족 음악가와 혼인해 이스탄불로 간 것이다, 올리브유를 떼다 팔러 그리로 갔다, 이스탄불에 교구를 둔 어느 종교에 귀의했다더라···. 더러 맞는 말도, 그른 말도 있었어요. 한국에서 만난 친구들은 이스탄불이 어떤 도시인지 궁금해했어요. 궁금하기는 나도 매한가지에요. 나뿐 아니라 이스탄불을 집으로 삼은 모든 이들이 그럴 거예요. 이곳에서 땅은 들썩이고, 수증기의 무게는 모두의 콧날에 저마다 불균등하게 떨어져요. 신화와 풍문이 쌓아 올린 둘레길을 걷다 보면 불현듯 깨달을 수 있어요. 이 찬란한 도시에서 미궁으로 빠지기란 얼마나 쉬운지.

 

이스탄불. 그 이름은 중세 희랍어로 ‘도시로(to/into the city)‘라는 뜻의 ‘이스 틴 폴린‘에서 왔어요. 네아 로메, 콘스탄티노폴리스, 코스탄티니예, 콘스탄티노플 등으로 명명되던 이 땅은 오래도록 이 일대를 주름잡아왔어요. 기원전 7세기 이후로는 거점 도시 아닌 적이 없었지요. 때는 후기 비잔티움 시기. 비잔틴인들은 일을 보러 이스탄불로 떠날 때면 저 도시로 가요, 하고 말하곤 했어요. 희랍어로 에르호마이 이스 틴 폴린ἔρχομαι εἰς τὴν πόλιν. 그 문장 중 일부가 떨어져 나와 도시명으로 굳어졌어요. 희랍어에 능하지 않던 튀르크인들이 ‘도시로‘라는 전치사구를 지명으로 오해한 것이지요. 이스틴폴린, 한 단어처럼 봉제선 없이 연결되는 음성이 그들 듣기에 심히 좋았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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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at), ~위에(up), ~너머(over) 등 고정 전치사를 품은 지명은 동서고금 흔해요. 언더힐(underhill)이나 바이포드(byford) 같은 사례를 우리는 알고 있지요. 그 이름들은 완전히 마른 타블로에요. 닻을 내린 돛단배예요. 반면 ~로(to)처럼 방향성을 지닌 이동 전치사가 지명화되는 일은 드물어요. 해당 품사에 따라붙는 목적어들은 해초처럼 뿌리가 없어요. 전치사가 겨누는 각도는 조타수 마음먹는 대로 변경되지요.

이렇듯 가변적 요소가 지명의 구성 성분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일단은 셀 수 없이 많은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와야 할 거예요. 지형적 특징이나 수역의 구조나 이곳을 점령한 부족들의 이름을 무력화할 만큼, 이 구(句)는 빈번히 거리로 쏟아져 상인과 상인의, 소년과 노파의 노래가 되었어야 해요. 당김음 미세하게 섞인 그 가락을 나는 허공에 띄워보아요. 에르호마이 이스 틴 폴린. 그러면 또 하나 자연히 알 수 있어요. 거기 깔린 전주는 뚜렷한 물음의 형태였을 것임을.

당신 웬일로 차려입었네요. 오늘 어디 가셔요?

에르호마이 이스 틴 폴린.

기분이 좋아 보여요, 경사라도 있어요?

에르호마이 이스 틴 폴린.

오직 대화에서 유래할 수 있었던 이 도시명이 나는 쾌활하게 느껴져요. 가벼운 안부와 경미한 오해도 퇴적되면 역사의 척추로 거듭날 수 있음을, 이스탄불이 내게 알리는 듯해요.

이 땅에서 가장 고빈도로 쓰이는 식재료, 토마토나 파프리카 페이스트를 ‘살차salça’라고 해요. 우리말로 치면 고추장이나 된장의 ‘장’에 준할 거예요. 이들은 또한, 남의 일에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람을 가리켜 살차라 불러요. 여기저기 안 끼어드는 데가 없다고요. 사뭇 부정적으로 쓰이는 표현이지만, 나는 살차 정신이야말로 이 일대의 대표 정서라고 여겨요. 위구르족 대신 트라키아인 후손인 내 남편은 소크라테스야말로 희대의 살차였을 거라고 추측해요. 그가 어느 아무개와 무슨 사안을 놓고 통론했건 대화는 모조리 참견에서 발동되었을 거라고요. 에로스도 국가도 안부를 묻지 않고는 논해지지 않았을 거라고.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편지 쓰기를 택해요. 가벼운 안부와 경미한 오해를 당신 곁에 포개어 가려는 내 의도를 알아주기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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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도시는 대대로 나 같은 객들이 밀려와 머물던 곳이었어요. 누군가는 스쳐 지나갔으며 또 누군가는 눌러 앉았겠지요. 바로 이 창가에 앉은 나처럼요. 여느 저녁처럼, 나는 호두나무 책상에 앉아 주홍빛으로 물든 거리를 굽어보아요. 오늘은 시에서 공무원들이 나와 창가를 가리던 플라타너스 두 그루의 가지를 몽땅 쳤어요. 통행을 금해야 할 정도로 큰 작업이었지요. 나무를 둘러싼 건물 이웃들은 일동 창가로 나와 나뭇가지가 쿵쿵 떨어지는 모습을 염려스러운 얼굴로 지켜봤어요. 나처럼 거기에 둥지 틀고 살던 비둘기들이 걱정되었나 봐요. 그런데 우듬지 잘려 나간 자리에 의외의 풍경이 나타났어요. 동쪽 저 멀리 크날르 섬의 봉긋한 정수리가 보이기 시작한 것이지요. 서편으로는 성삼위일체 교회의 반구형 침탑이 드러나 느슨한 대칭을 이루어요. 두 돔의 중점에서 창문을 활짝 여니, 장대 다리에 오른 소녀가 가로등 옆을 뒤뚱거리며 지나요. 아, 무슬림들이 기도할 시간이 돌아왔군요. 훤해진 내 창 안으로 들어오는 이야기들을 당신에게 종종 전할게요.

 

피크렛 크즐로크 <카테리나>

노래는 19세기 이스탄불, 어느 배에서 시작되어요. 낚시에서 돌아온 두 어부, 그리스인 야니와 튀르키예인 메흐멧은 보스포러스 해협의 석양을 배경 삼아 술잔을 기울여요. 그들은 야니가 사랑에 빠진 여인, 카테리나에 관해 이야기하며 탄식하지요. 너는 예수를, 나는 알라를 믿으나 우리 마음에 똑같이 ‘아!‘하는 고통 있어라. 사랑과 와인에 네가 취하면, 나 또한 취하리. 다민족 체제였던 오스만 제국의 사회 단상을 보여주는 아름다운 노래지요. 그리스인들은 이제 거의 떠났지만, 그들이 오래도록 이 땅에 공동 주인으로 살며 지은 교회와 주거용 건물들은 이스탄불 곳곳에 아직도 굳건히 남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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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era의 프로필 이미지

    sera

    0
    29 minutes 전

    신재님 글 너무 좋아합니다. 매주 아나톨리아 편지를 받아볼 수 있다니 기뻐요. 언젠가 집으로 돌아오기 전, 정말 잠시 들렀던 도시 이스탄불.. 무슨 인연인지 그 짧은 만남으로도 그리운 곳이자 언젠가 꼭 더 깊이 만나게 될 곳이라 느껴지는 곳인데 이렇게 또 이야기를 전해들으니 너무 좋네요..!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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