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검푸른 계곡에 이어)
객실에 들어선 나는 창문을 활짝 열었어요. 캅카스의 무자비한 겨울바람이 방 안으로 쏟아졌지요. 솜이불로 몸을 칭칭 감고 딱딱한 매트리스에 누우니 할 일이 속속들이 떠올랐어요. 나는 먼저 휴대폰을 꺼내 백십오 불 상당의 아제르바이잔 급속 비자를 신청했어요. 아침에 일어나 문서를 어디서 출력할지도 검색해 두었지요. 운수가 얼마나 더 사나울지 점치기 위해 온라인 무료 사주를 보기도 했어요. 이번에는 기필코 넘어가야만 했으니까. 동이 트자마자 나는 도주하듯 호텔에서 뛰쳐나와, 출력한 비자 확인서를 손에 쥐고 검문소를 찾아갔어요. 그새 교대가 이루어졌는지 낯선 얼굴들이 나를 맞이했지요. 그들이 내 서류를 들여다보는데, 반대쪽에서 넘어온 승합차 한 대가 저 멀리 멈춰 서요. 운전석 창문이 열리니 드러나는 것은 지난밤 나를 국경에까지 떨구어 준 운전수의 얼굴이에요. 그는 별일 다 보겠다는 듯 웃음을 터뜨리며 오늘은 기어코 바쿠까지 갈 수 있겠냐고 외쳐요. 아니요. 내 답은 그러했어요. 아니요.
내가 매캐한 객실에서 신청한 것은 비자만이 아니었어요. 바쿠로 직행하는 대신 국경에 인접한 산악 마을, 셰키에서 이틀 머물기로 결심하고 에어비앤비를 예약했지요. 악취에 잠이 통 오지 않아 지도를 켜고 여로 탐색에 돌입한 게 화근이었어요. 18세기 칸국이던 도시가 바쿠 가는 길목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거지요. 실크로드 거점이던 셰키에는 상인들이 여독을 풀던 카라반사라이가 남아 있다고 했어요. 사라이에 묵을 수 있을 리 없었지만, 그곳에서라면 내 여독도 녹여버릴 수 있겠다는 막연한 기대감이 생겼어요. 보호 구역에 묵었더라면 그런 선택을 내리지 않았을 테죠. 기절한 듯 잠에 들었을 테니. 그러나 당시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비보호 구역에서 내린 선택들만으로 밤하늘에 바다뱀자리를 그릴 수도 있었어요. 그렇게 그린 별자리를 길잡이 삼아 밤길을 서성이기도 했지요. 검푸른 수풀 속에서 환시를 보거나 마법이라도 맞닥뜨리기를, 난 바랐던 걸까요.

고생 끝에 도착한 셰키는 평화로웠어요. 내가 예약한 숙소는 양치기 가족이 사는 집이었는데 가옥 1층은 양을 가둬두는 축사였어요. 언젠가 메노파[1] 교도들이 축사와 주거 공간을 결합한 건축 양식을 발전시켰으며, 그 기원은 무려 청동기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읽은 적 있어요. 가축의 체온이 실내 온도를 높여주기에 이와 같은 방식이 자연스레 고안되었다는 것인데, 현대를 사는 양치기네 방바닥은 양모 덧신 없이는 발을 내디딜 수조차 없었어요. 결혼식을 앞둔 양치기의 어린 딸은 한국인을 처음 만난다고 신기해했어요. 그녀의 안내에 따라 짐을 푼 후, 읍내로 나가 심카드를 새로 사고 길거리 음식점에 가서 주린 배를 채웠어요. 거기서 만난 십 대 소녀들은 블랙핑크 팬이라며 나를 졸졸 따라다녔어요. 소녀들의 청에, 우리는 마을버스를 타고 산꼭대기에 있는 고급 리조트에 가 볼링을 쳤어요.
시간은 그런 식으로 흘러갔어요. 나는 모스크에 기도하러 온 노인들의 베레모 모양을 살피고, 백반집에서 그들이 신 몰래 따른 보드카를 받아 마셨어요. 고대 알바니아 교회를 무대로 전쟁놀이하던 꼬마들에게 콜라를 사주고, 이슬람 궁전 못에서 나뭇잎을 건지던 청소부를 거들었어요. 그해 나는 베를린에서 위태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어요. 범죄에 노출되었고 공황장애에 시달렸으며 친구의 황당무계한 죽음을 받아들여야 했어요. 나는 어느 새 안주머니에 힙 플라스크를 상비하고 다니는 사람이 되어 있었지요. 학교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보이지 못했어요. 개인사와 내가 쓰는 이야기를 분리하고자 고군분투했지만, 그렇게 나온 시나리오와 소설은 억지스러웠어요. 자의식은 넘치고 진정성은 결여되어 있었지요. 나도 소리를 낼 수 있노라고, 이쪽에서 포탄을 발사하고 저쪽에서 사이렌을 울렸지만 그 소리들은 어느 귀에도 가닿지 못한 채 휘발했어요. 나는 내가 깊게 판 잡음의 구덩이에 홀로 갇혀 있었어요. 그리고 내심 모르지 않았어요. 그 잡음들조차 복제품 혹은 모조품 신세에 지나지 않음을.

당신은요, 삶이 연속 유기체가 아니라 사건의 종합체처럼 느껴진 적 있나요? 나는 한참 후에야 이것이 얼마나 아찔한 신호인지 깨닫게 됐어요. 그 무렵 나는 내 출신지, 내 과오, 내 관계, 내 이야기들을 마음대로 떨쳐내고 떠날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편이 편리했음은 물론이요 스스로 부작용 없는 체질이라고 자만했어요. 그러니까 그 겨울, 나는 열어젖힌 사건들을 전부 접고 아무도 나를 유형화할 수 없는 곳에 가 표류하고 싶었던 거예요. 셰키와 나 사이 헐거운 고리, 열거할 거라곤 블랙핑크뿐이던 그 고리는 상황에 최적격이었어요. 양치기의 딸이 끓여주던 홍차와, 그 어머니가 토기째 내오던 양고기스튜, 그 아들이 양들을 언덕 위로 몰 때 목청 높여 부르던 노랫가락. 그 무엇도 나와는 연관 없었어요.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내가 캅카스에 바라던 바였어요.

이틀은 순식간에 흘러갔어요. 떠날 날이 밝았을 때는 발길이 쉬이 떨어지지 않더군요. 여태 얼굴 한 번 본 적 없다는 예비 신랑 얘기를 구구절절 늘어놓던 양치기 딸도 아쉬워 보이기는 마찬가지였어요. 우리 기념품 사러 가요. 그새 정든 그녀의 제안에 따라, 우리는 버스 정류소로 향하기 전 마을 시장을 찾았어요. 시장 입구에는 반신 욕조만큼이나 큰 양동이 여남은 개가 정렬되어 있었어요. 거기 양모가 뭉게뭉게 쌓여 있었죠. 한쪽 통로에는 거꾸로 매달린 양 사체가 손님 요청에 따라 절단되고 있어, 샤임 수틴의 그림 속으로 걸어 들어온 듯했어요. 매대에는 용도를 가늠할 수 없는 건초가, 찻잎이, 향신료가 함에 담겨 있었어요. 상인들은 고래고래 선전하고 손님들은 흥정하는 풍경은 여느 재래시장과 다르지 않았어요. 나를 빤히 응시하던 그녀만 빼고는, 그랬어요.
발치에는 한 노파가 나를 잘 안다는 듯 올려다보고 있었어요. 유리병에 담긴 잼인지 피클인지를 보자기 위에 잔뜩 깔아 놓고요. 흰 머리칼을 스카프로 동여맨 그녀가 미소 지으며 말해요. 카자흐 사람? 그렇게 말하는 그녀 눈에 확신의 전깃불이 탁 켜져요. 노파가 삽시에 결론에까지 도달한 그 찰나, 내 안에 피어나는 것은 기이한 소속감이에요. 하나의 사건일 뿐이던 시장 구경에 갑자기 원인과 결과가 따라붙고, 낙타를 타고 이 마을을 지났을 대상들에게도 떠나온 곳과 닿을 곳이 있었음이, 이 삶에도 시말이 있음이 상기된 거예요. 그녀의 말은 너무도 틀린 말이었잖아요. 내가 카자흐스탄 사람이냐니. 그런데 나는, 나를 식별하고자 한 그녀 의지에 그만 무너져 내린 거예요. 양치기의 딸이 손을 내저으며 노파의 말을 정정하는데, 뒤에서 나는 순종적으로 고개를 끄덕였어요. 대관절 내가 왜 그랬을까? 나는 이후로 몇 년이나 그날의 끄덕임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러다 최근, 이스탄불에서 그 이유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됐어요.
데니즈Deniz는 튀르키예어로 바다라는 뜻이에요. 또한 남녀 공용 쓰이는 이름이지요. 데니즈 게즈미쉬Deniz Gezmiş라는 좌파 혁명가의 영향으로, 70년대에는 운동권들의 자녀 이름으로 사랑받았어요. 데브림(Devrim, 혁명), 에일렘(Eylem, 실천), 에멕(Emek, 노동) 등의 이름도 그런 예로, 우리나라로 치면 겨레나 민주 같은 이름에 비할 수 있을 거예요. 이 노래를 내게 처음 알려준 것은 데니즈라는 지휘자였어요. 그를 처음 만나자마자 꽉 막힌 이스탄불 한복판을 택시로 함께 이동해야 했는데, 그는 이 노래를 크게 틀더니 창문을 열고 따라 불렀어요. 운전석에 앉은 다른 친구와 택시 기사마저 데니즈를 따라 합창하더군요. 알고 보니 세상을 떠난 지 얼마 안 된 페이크의 보컬을 그들 방식으로 기린 것이었어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나는 모스크 돔 무더기 앞에 잔잔하던 여름 바다와 택시 안을 메우던 노랫소리를 떠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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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chun
그 여행의 여정이 이렇게 험난 했다니…
아나톨리아 편지
그러게나 말입니다 정말이지… 근데 더 무서운 건 이 여행 이후 흐른 시간… 마치 전생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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