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말년 병장을 목말 태워라

2026년 5월 5일

2026.05.05 | 조회 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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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가지 국가가 존재해요. 군대에 가는 나라, 군대에 안 가는 나라. 미국인이 독일인을 만나 모병제에 대해 논하며 반가움을 느낄 이유는 거의 없겠지요. 너희도 군대 안 가니? 그것 참 반갑네, 하고요. 튀르키예 남성들은 우리처럼 군대에 가요. 형제의 나라 운운할 것도 없이, 군대 얘기에서 벌써 그들은 우리와 동질감을 느끼지요. 튀르키예의 의무 복무 기간은 몇 년 새 급격히 줄어 2026년 현재 육 개월 남짓이에요. 비용을 지급하면 복무 자체를 아예 면제 받을 수도 있어요. 그러나 북한이라는 단 하나의 상대가 존재하는 우리와 달리, 아나톨리아를 둘러싼 지역 분쟁은 더 다중적이에요. 실전도 주기적으로 일어났기에, 군 생활이 마냥 더 편할 것이라 치부할 수는 없지요. 저번 주에는 군대에 다녀온 남자와 안 다녀온 남자, 두 남자와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어요. 군대에 다녀온 남자는 와인을 마시고 안 다녀온 남자는 위스키 사워를 마시더군요. 진부한가요?

 

와인 마시던 남자가 병영 생활을 주제로 시동을 걸어요. 남성 가족 구성원에 둘러싸여 자란 내 뇌는 운전대를 알아서 틀더니 자율주행 해요. 먼 곳으로, 더 머나먼 곳으로. 그러다 나를 다시 테이블로 잡아끄는 것은 이와 같은 단어들이에요. 새벽. 번호판. 행운. 말년. 목말. 문장을 이룬 단어들을 제대로 듣고도 나는 맥락조차 알아차릴 수 없어요. 군에서 번호판으로 새벽에 뭘 한다고요? 내 물음에, 위스키 사워 마시는 남자가 되물어요. 여기 번호판 체계에 대해서는 알고 있지요? 나는 고개를 주억거려요.

 

여든한 개에 달하는 튀르키예의 주에는 알파벳순으로 숫자가 할당되어요. 앙카라는 06번, 이스탄불은 34번, 코냐는 42번, 이런 식으로요. 이 번호들은 차량 번호판에 식별 숫자로 쓰여요. 예를 들어 이스탄불에 등록된 차량은 ‘34 ABC 123’ 같은 형식의 번호판을 달고 다니지요. 주 번호는 단지 행정 수단일 뿐 아니라 주의 정체성과도 같아서, 삶 구석구석에서 이를 코드처럼 활용한 예시를 쉬이 찾아볼 수 있어요. 지역 축구팀 응원 구호에 주 번호를 넣는다던가, 랩 가사에 도시명 대신 쓴다던가요. 여담이지만 베를린의 크로이츠베르크 구역에 가면 ‘SO 36’이라고 적힌 그래피티가 흔히 보여요. ‘SO 36‘은 ‘Südost 36‘, 즉 ‘남동 36‘이라는 의미로, 통일 이전 서베를린 크로이츠베르크 한 구역에서 쓰이던 우편번호였어요. 좌파 노동자 계층과 튀르키예 이민자들이 밀집해 살던 바로 그 구역에서 베를린 하위문화가 싹트기 시작했어요. 튀르키예인들이 하도 많이 정착한 지역이라, 크로이츠베르크는 번호 36으로 상징되는 튀르키예 주라는 농담이 돌았지요. 36 보이즈라는 튀르키예 이민자 갱단이 생겨나기도 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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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 마시던 남자는 아나톨리아 중동부 시바스에서 복무했어요. 겨울이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지역인데, 하필 그가 입대해야 했던 시점은 12월이었지요. 시바스에서는 삶은 양 머리를 망치로 깨서 그 머릿고기를 아침으로 먹는다고 해요. 비건이던 그에게 그 음식은 입대 자체보다 무시무시한 것이었대요. 시바스는 세바스토스라는 지명에서 변형된 것이에요. 로마 제국에 편입되며 아우구스토스의 이름을 따 도시명이 지어졌지요. 시바스의 문명 기원은 무려 9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요. 만 년 가까이 인류가 그 땅의 주산물과 부산물을 탈탈 털어간 탓인지, 시바스에 난생처음 도달한 남자는 이런 감상을 남겼어요. 빈 초지. 아무것도 없음. 산간벽지에 풀 한 포기 자라지 않음. 허옇게 맨살을 드러낸 골산 위에서 그는 청춘의 한때를 보내야 했어요. 새벽만을 간절히 기다리면서요. 새벽Şafak은 아나톨리아에서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군대 속어예요. 전역일까지 남은 날을 새벽이라고 부르지요. 며칠이나 더 새벽같이 일어나야 하는지 간절히 세어보다가 그런 말이 생겨났을까요. 군인들은 새벽 얼마? 라고 물으면, 스물아홉 새벽. 이렇게 답해요. 지금이야 복무 기간이 줄어 그런 요행을 벌이는지 모르겠다면서, 그는 새벽에 관한 이야기를 실타래처럼 풀어요.

 

새벽이 여든 하루 남았을 때부터 말년 병사는 누군가를 애타게 찾기 시작해요. 전역일까지 남은 일수, 그 숫자를 주 번호로 쓰는 지역 출신 병사를 찾는 거지요. 복잡하게 들리니 예시를 들어 볼게요. 병장 티무르는 이제 단 엿새 후면 전역해요. 그는 06을 차량 식별 번호로 쓰는, 앙카라 출신 병사를 찾아야 해요. 티무르는 어둠 깔린 생활관 복도를 어슬렁어슬렁 걸어요. 콧노래까지 흥얼거리며 그가 외치지요. 내 새벽 오늘로 여섯! 앙카라 사람 나와라! 내무반에는 안타깝게도 앙카라에서 온 신병 아흐멧이 쿨쿨 자고 있어요. 병사들은 아흐멧을 흔들어 깨워요. 앙카라 아흐멧, 일어나! 기나긴 복도에 군중이 일렬로 쫙 늘어서고, 영문 모르는 이병 아흐멧은 눈을 비벼가며 티무르를 목말 태워요. 그리고 복도를 질주하지요. 병사들은 환호하고, 티무르는 이미 바깥 공기를 들어마신 듯 환희에 물큰 젖지요. 군중 속 앞니로 입술을 살짝 깨물고 있는 것은 흑해 지방 아마시아에서 온 바투라이에요. 아마시아는 05번을 주 번호로 가지니까요. 별 탈 없이 사회로 돌아갈 수 있기를 기원하는 이 행운의 의식은 전역일까지 계속되지요.

 

목말도 목말이지만, 더욱 재미있는 건 이들이 목말을 태우기 전 이미 서로의 출신 도시를 훤히 알고 있다는 사실이에요. 관등성명 시 계급과 이름 뒤에 출신 도시명을 붙이기 때문이지요. 가여운 아흐멧의 성씨가 카야라면, 이병 아흐멧 카야 앙카라. 이렇게 외쳐야 하는 것이 튀르키예 군율이지요. 루이비통 파리도 아니고, 정말 매번 그렇게 도시명을 붙인단 말예요? 내 질문에 와인 마시던 남자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여요. 아예 이름은 생략하고 출신 도시명만을 부르거나, 출신지와 연관된 별명을 지어 부르는 경우도 있다고요. 실제로 그의 부대에서는 그리스와 가까운 이즈미르 출신 병사들에게, 어이, 그리스인. 이렇게 장난삼아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고 해요. 우리나라 군에서 철원 출신이라고 해 어이 인민군. 이렇게 부른다고 상상해 보세요. 용납되지 않을 터인 데다 별로 웃기지도 않지요. 사실 관등성명이라는 것은 개인성을 지우기 위해 하는 행위라고 볼 수 있어요. 복무 중 개인은 할당된 보직만을 위해 존재하지요. 그런데 출신 지명을 붙이면 개인의 색채가 외려 선명해져요. 아나톨리아에서는 왜 이런 문화가 싹텄으며 용인될까요?

 

별명 문화에 대해 적은 편지에서 말씀드렸듯, 이 독특한 관등성명 형식 또한 성씨가 부재했던 데에서 유래해요. 성씨를 사용하지 않던 오스만 제국 시절부터, 군대에서는 이름 뒤에 출신지를 붙여 개인을 구분했던 거지요. 아흐멧이나 메흐멧 등 동명이 숱한 지역이기도 해, 이런 제도에는 이점이 다분히 있었을 거예요. 이점은 그것 말고도 더 있을 것으로 추정되어요. 아나톨리아 영토는 매우 넓을뿐더러, 지역에 따라 문화가 완전히 달라져요. 와인 마시던 남자는 석 달간 조교로 복무했어요. 훈련병 중에는 소통이 안 될 정도로 강한 사투리를 구사하거나, 아예 다른 언어를 써서 기본적인 의사소통조차 불가한 경우가 있었다고 해요. 유사시 신속한 대처를 하는 데, 출신지를 알고 있는 게 도움이 된다는 게 그의 의견이었지요. 그래도 그걸 알면 지역감정으로 인한 차별이 있지는 않을까요? 물으려는데, 나 역시도 와인이며 위스키 마시는 이 남자들의 출신지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라요. 그뿐만 아니라 내 튀르키예어 선생님의 고향도, 이발사 알리의 고향도, 이웃 줄리의 고향도요. 생각해 보니 튀르키예에 온 이후 만난 모든 사람의 고향을 나는 알고 있어요. 과장이 아니라 전부요. 알다 뿐이랴, 그들 고향에 얽힌 이야기나 지역 문화, 전통 춤까지도 배운 바 있지요.

 

고향 얘기를 하니 베를린에서의 일화가 또 떠오르는 것을 어쩔 수 없네요. 내가 마지막으로 산 동네 노이쾰른은 인구 절반 이상이 이민자 배경을 지니고 있었어요. 그중 절반은 튀르키예인들이었지요. 내가 택배를 주로 맡기던 무인 로커는 거대한 야외 주차장 한가운데에 있었어요. 로커 바로 옆에 항상 낡은 승용차 한 대가 주차되어 있었지요. 마치 누가 버리고 간 듯 늘 같은 자리에요. 뒷면 유리에는 ’Sivaslı 58‘이라고 쓰인 빨간 스티커가 붙어있었어요. 정당 로고처럼 생긴 그 스티커의 정체를 알려 준 건 대학 동기 제밀이었어요. 튀르키예 3세 독일인이던 그는 짐 드는 걸 도와주러 주차장에 왔다가 그 자동차를 보고 함박웃음을 지었어요. 시바스 사람이랑 이웃이네, 너! 그것이 지명일 것이라 추측한 내가 그게 어디냐고 묻자, 그가 말해요. 우리 조부모님 고향. 내가 시바스 사람인 거 너 몰랐어? 무려 3세인데도 그는 자신을 시바스 사람(Sivaslı; ‘lı’나 ‘li’는 지명 뒤에 붙어 ~출신을 의미)이라고 정의하고 있었지요. 그는 매년 여름이면 시바스에 있는 친지들을 방문한다고 했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시바스 출신 사람들은 유독 애향심이 깊다고 해요. 시바스 출신이라는 소개는 마스터키와도 같아. 그걸로 열 수 없는 문은 없지, 하는 영화 대사도 있을 정도니까요.

 

정말이지, 아나톨리아에서는 때때로 향우 관계가 규율보다도 강력하게 작용하는 듯싶어요. 시장에서 흥정할 때, 택시 기사와, 박물관 검표원과, 보일러 기사와 초면에 고향이 어디요? 하는 질문이 오가요. 서로의 출신지를 알고 난 후에야, 상대를 어떤 포지션에 놓을지 결정했다는 듯 한시름 놓지요. 이 향우 관계는 비단 심리적 열쇠로 쓰일 뿐 아니라, 조직적인 사회 인프라 역할을 도맡기까지 해요. 도시가 급격하게 성장하며 인프라의 구축 속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했을 때, 친지나 아는 사람이 문제를 해결해 준 것이지요. 내가 튀르키예에 처음 와서 가장 적응하기 어려웠던 부분도 이것이었어요. 한국의 경우 어떤 행정 절차를 밟을 때 모든 정보가 기관의 웹사이트에 투명하게 나와 있지요. 이미 그 과정을 밟은 사람들의 경험담도 블로그에 상세하게 적혀 있어요. 거기 쓰여 있는 것 외에 예외는 허용되지 않아요. 독일의 경우 수집할 수 있는 정보가 덜 상세하고 담당 공무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는 경우가 허다했어요. 튀르키예에서는 사람이 필요해요. 이 분야에 대해 잘 아는 사람, 그 일에 종사하는 사람, 하다못해 그 자녀나 강아지라도요. 아는 사람이 정 없으면 그날에라도 관공서에 가서 하나 만드는 게 신상에 이롭지요. 비상식적이고 부정부패가 판을 칠 것 같지만, 여기 살다 보니 그 나름의 이유가 보여요.

 

도시화가 진행되며 아나톨리아 중부와 동부 시골의 다수가 대도시로 유입되었어요. 특히 이스탄불은 엄청나게 빠르게 팽창했지요. 이주민들은 별세계 같은 대도시에서 고향 사람들에게 의존했어요. 고향 사람들이 먼저 자리 잡은 동네에 셋방을 얻고, 그들이 알선해 준 일을 했지요. 내가 아는 이스탄불의 한 변호사는 흑해 출신이에요. 그는 오직 흑해 출신 고객들만 받지요. 그러고 싶어서가 아니라, 그들만 받아도 충분히 장사가 유지될 정도로 많은 동향인들이 그를 찾기 때문이에요. 또한, 내 튀르키예어 선생님 누라이는 아나톨리아 중부 초룸 출신이에요. 고대 국가인 히타이트의 수도였던 곳이라 유의미한 유적이 남아 있지만, 이렇다할 산업은 없는 곳이지요. 누라이는 이스탄불 내 대학에 진학했을 때 초룸 향우회에서 장학금을 비롯해 많은 도움을 받았다고 해요. 대도시에 정착하는 데 고향 사람들로부터 큰 보은을 입었다고요. 이런 향우회나 향우 장학재단은 이스탄불에만 무려 7천 개가 넘어요. 드넓고 복잡다단한 이 영토에서, 국가의 손이 미처 닿지 않는 영역을 이런 단체가 자구적으로 손보는 거지요. 물론 쉬이 예측할 수 있듯, 이 자구적인 손은 다시 정치로 영향력을 뻗쳐요. 선거에서 알레비인이나 쿠르드족 등 소수 민족의 표심만큼이나 흑해 사람들이, 혹은 시바스 사람들이 누굴 뽑을 것인지에 항상 귀추가 주목되는 이유가 이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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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 인구 중 열에 여덟은 타지인이에요. 그래서인지 이스탄불 토박이들은 푸념하지요. 타지인들이 대거 유입된 후 이스탄불은 옛날 이스탄불이 아니다, 이스탄불 특유의 매력을 잃었다···. 그러나 도시 구석구석에서 향우회 사무실 간판을, 퇴근 후 모여 고향의 전통 춤을 연습하는 사람들을, 부두에 천막을 쳐 놓고 고향 음식을 함께 만들어 먹는 사람들을 발견할 때, 나는 이런 생각을 해요. 어쩌면 그들에게 고향은 그들의 일상을 지탱하는 새벽일지 모르겠다고요. 새벽이 있다는 믿음. 그것이 타향살이를 버티게 해주는 희망일지 모르겠다고 말이지요. 목말을 탄 병장이 그렇게 믿었듯.

 

외즈데미르 에르도안 <타향>

아나톨리아에서 피어난 음악 중 단 한 곡만을 평생 들을 수 있다면, 난 이 곡을 꼽겠어요(참고로 에르도안은 꽤나 흔한 성씨랍니다). ‘구르벳gurbet’은 타향을 뜻하는데, 포르투갈어의 ‘사우다지saudade’처럼 번역으로는 명확히 옮길 수 없는 고유 정서가 서려 있어요. 구름아, 말해다오. 고향에서 온 소식은 없니? 이 타향에서 내가 홀로 뭘 어쩐단 말이니? 부드러우면서도 애절한 가사에는 언어유희적 표현이 얼기설기 얽혀있어요. 적당히 농익은 에르도안의 70년대 초반 목소리는 보석에 비할 만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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