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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 문해력(Archival Literacy)에 대한 단상

문해력 시대, 아카이브의 새로운 역할을 상상하기

2024.08.07 | 조회 8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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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교육부는 2025년 1학기부터 인공지능(AI) 디지털 교과서를 시범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초등학교 3~4학년, 중학교 1학년, 고등학교 1학년을 대상으로 시작해 2028년까지 디지털 교과서 적용 학년을 단계적으로 늘리겠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도입을 8개월여 앞둔 지금 반대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교육부가 디지털 교과서를 제대로 운영할 만한 ‘시스템’을 갖추었는지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세계 최초’로 공교육에 디지털 교과서를 적용하는 데만 매몰돼 본질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문제일까. 우선 디지털 교과서를 기반으로 학생들에게 교육을 제공할 일선 교사 중 AI 기반 학습에 익숙한 이들이 많지 않다고 한다. 한국교육개발원에 따르면, 교사 1,000명 중 절반이 넘는 62.1%가 AI 서비스를 수업에 활용해 본 경험이 없었다. 또한 디지털 교과서의 실체가 모호하다는 문제도 거론된다. 도입 8개월을 앞둔 지금까지도 디지털 교과서는 프로토타입만 나와 있을 뿐 검정심사가 끝나는 11월에야 완전한 모습이 공개된다.

그중에서도 교육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주목할 만하다. 한정윤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원은 디지털 기기 과의존, 디지털 윤리 문제와 같은 부작용을 예방하는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 교육이 선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교과서의 도입은 단순히 동일한 교육 콘텐츠를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옮기는 과정이 아니다. 그보다는 정보를 인식하고, 편집하고, 공유하고, 해석하는 틀 자체를 변화시키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 학생들의 디지털 문해력이 OECD 회원국 평균에 미치지 못한다는 통계로 보아 디지털 교과서를 도입하기 전 디지털 콘텐츠에 대한 이해와 디지털 도구, 기술을 비판적으로 활용하는 교육이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디지털 리터러시 또는 디지털 문해력이라는 용어를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디지털 리터러시’‘읽고 쓸 수 있는 능력’이라는 리터러시(Literacy)가 디지털 플랫폼과 만나 다양한 미디어를 접하면서 명확한 정보를 찾고, 평가 및 조합할 수 있는 개인의 능력을 뜻한다. 관련 용어로 매체(영화, TV, 인터넷 등)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인 ‘미디어 리터러시’가 있다. 미디어 리터러시가 디지털 리터러시를 포함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고, 두 용어를 사실상 구분하지 않고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두 가지 모두 디지털 정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요즘 현대인이 갖추어야 할 필수적인 역량이다.

요즘 이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장소가 바로 도서관이다. 국제도서관협회연맹(International Federation of Library Associations and Institutions, 이하 IFLA)은 UN 2030 의제로 제시된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 달성을 위한 지침으로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를 포함한 보편적 리터러시 증진을 위한 도서관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 바 있다. 이에 발맞추어 싱가포르 국가도서관위원회(National Library Board, NLB)를 필두로 한 S.U.R.E(Source, Understand, Research, Evaluate) 캠페인, 미국도서관협회(American Library Association, ALA)가 2020년 발표한 ‘Media Literacy in the Library: A Guide for Library Practitioners’ 지침을 비롯하여 우리나라 국립중앙도서관 또한 2021년부터 대상별 맞춤형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강좌를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도서관에서 제공하는 리터러시 교육은 정보 출처와 신뢰성 평가, 정보 검색, 정보 및 데이터의 비판적 분석, 미디어의 영향력, 디지털 윤리 등을 포함한다. 시민들에게 이미 보편적인 공간으로 자리 잡은 도서관은 단순히 책을 대여하는 전통적인 역할을 넘어 디지털 환경에서 시민들의 적응력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와 함께 사서의 직업적 정체성과 인식에서도 변화와 확장이 일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나는 이 리터러시의 부상을 보며 아카이브와 기록전문가가 할 수 있는 역할을 상상해 봤다. 아카이브 또한 증거와 정보의 집합소로서, 아카이브를 더 잘 이용하기 위해 요구되는 역량이 결국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에서 말하는 역량과 근본적인 부분을 공유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는 도서관에서 주로 접할 수 있는 매체가 아닌 아카이브에서만 얻을 수 있고 발전시킬 수 있는 리터러시 역량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 가정했다. 이러한 공통점과 차이점 그 사이에 아카이브와 기록전문가의 정체성이 자리하고, 아직은 사람들에게 낯선 아카이브가 지역사회나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국내외 아카이브 리터러시 연구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을까. 우선 해외의 경우 SAA(Society of American Archivist) 아카이브 사전‘archival literacy’를 검색하면 ‘competence in or knowledge of archival terminology, organization, and reference tools’, 즉 ‘아카이브 용어, 조직 및 참조 도구에 대한 역량 또는 지식’이라는 결과가 나온다. 반면 우리나라 기록학계에는 정확하게 아카이브 리터러시라는 키워드로 진행된 연구가 없었다. 이는 아카이브 리터러시의 중요성을 인지하지 못한 문제라기보다는 아카이브와 기록을 접할 때 요구되는 기본적인 역량, 비판적 태도, 윤리 등을 아직까지는 ‘아카이브 리터러시’라는 용어로 개념화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

구체적으로 미국의 사례를 보면 2000년대 초부터 아카이브 검색 전략, 아날로그 및 디지털 액세스 도구들이 아카이브를 이용할 때 핵심적인 요소임을 강조하며 본격적으로 아카이브 리터러시라는 용어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후 2010년대에는 주로 대학교에서 역사학 전공자들을 대상으로 아카이브 리터러시를 교육하며, 연구자 및 이용자들이 아카이브에서 필요한 기술들을 함양해 나가면서 지식경제사회에서 필수적인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특히 아카이브 리터러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이용자뿐만 아니라 기록전문가 또한 아카이브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는 과정이 인상 깊었다.

디지털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에서 강조하는 정보의 신뢰성은 사실 아카이브에서 가장 핵심적으로 관리하는 기록의 출처와 맞닿아 있다. 또한 관심 있는 주제를 검색하고 원하는 정보를 찾아내는 능력디지털 아카이브의 편리함, 효율성과 실제 보존서고를 브라우징하며 경험하는 뜻밖의 발견 모두에서 길러질 수 있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능력은 기록의 사실과 진실,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과정과 연결되며, 기록과 기록 사이의 맥락을 발견하고 새로운 의미를 창출하는 데서 발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카이브에서만 배울 수 있는 문해력에는 무엇이 있을까. 나는 단순히 정보를 검색하고 활용하는 것을 넘어 기록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을 이해하고 기록의 장기적 보존 가치를 발견하는 과정이 아카이브 리터러시의 독특한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보고 있는 이 기록이 어떤 과정을 거쳐 아카이브로 인수되었는지, 아카이브가 누락했거나 애초부터 생산하지 않았던 기록은 무엇인지, 다양한 기록 유형과 매체는 그 기록이 담고 있는 내용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동일한 기록으로 얼마나 많은 의미와 해석을 창출할 수 있는지, 유일본인 기록을 다음 세대에온전히 전달하기 위해 우리 세대가 어떤 윤리를 갖춰야 하는지 배울 수 있는 곳이기 때문에 아카이브는 대체 불가능하다.

결국, 매체를 막론하고, 비판적 사고와 함께 콘텐츠의 생산자와 소비자로서 책임감을 갖추는 것이 리터러시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복잡하게 얽힌 기록의 출처와 계층을 이해하는 과정은 복잡하게 쏟아지는 정보의 위계와 우선순위를 구분하는 능력과 연결되어 있다. 또한 과거부터 오늘날까지 다양한 매체를 접할 수 있는 아카이브야말로 시대를 불문하고 변하지 않는 지식과 정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깨달을 수 있는 공간이다. 이미 많은 기록관에서 시민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문해력이 강조되고 있는 요즘 아카이브의 강점을 활용한 리터러시 교육을 제공한다면 시민들이 디지털 시대에 필수적인 역량을 기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함으로써 아카이브의 새로운 가능성 또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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