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의 유산, Omeka
2007년 여름, 조지메이슨대학교 연구동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센터 창립자이자 디렉터인 로이 로즌즈와이그(Roy Rosenzweig)가 폐암 진단을 받았다. 57세, 디지털 역사학의 개척자가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로이에게는 미완의 프로젝트가 있다. 얼마 전 IMLS(박물관도서관서비스협회) 그랜트를 받아 막 시작한 Omeka라는 소프트웨어였다. Omeka는 스와힐리어로 "전시하다", ”세상에 알리다”란 뜻으로, 작은 박물관들도 쉽게 온라인 전시를 만들 수 있게 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이었다. 이제 막 개발이 시작되었는데 그에게 남은 시간은 얼마 없었다.
역사는 오픈소스가 될 수 있나?
로이는 1994년 조지메이슨대학교에 역사와 뉴미디어 센터(CHNM, 현재는 RRCHNM)를 설립하며 "역사를 모든 사람에게."라는 비전을 만들었다. 상아탑에 갇힌 역사가 아니라 시민들이 참여하고 만들어가는 역사, 그게 그가 꿈꾼 디지털 역사학이었다.
그의 대표 프로젝트인 September 11 Digital Archive가 그 철학을 보여준다. 2001년 9.11 테러 직후, 로이는 시민들이 직접 찍은 사진, 이메일, 보이스메일, 블랙베리 메시지를 수집했다. 전문 역사가가 아니라 사건을 목격한 사람들이 만드는 역사 아카이브, 여기에 15만 건의 자료가 모였다. 당시로서는 놀라운 시도였다.
2006년, 로이는 《미국역사저널》에 「역사는 오픈소스가 될 수 있는가?(Can History Be Open Source?)」라는 도발적인 논문을 발표했다. 위키피디아를 분석하며 집단지성으로 만드는 역사의 가능성을 탐구한 글이었다. 역사학계는 발칵 뒤집혔다. 위키피디아를 학술 자료로 인정하자고? 아무나 편집할 수 있는 걸?
하지만 로이의 질문은 깊었다. "역사는 소수 전문가의 전유물이어야 하는가? 대중이 역사 서술에 참여할 수 없는가?" 그는 위키피디아가 완벽하지 않지만, 브리태니커보다 포괄적이고 접근하기 쉽다는 점을 인정했다. 게다가 무료였다.
September 11 Digital Archive.
240x360픽셀, 93KB.
누군가 기증한 9.11 현장 사진이다. 구급차 한 대가 먼지 구름을 향해 남쪽으로 질주하고 있다. 이 아카이브의 컬렉션은 저품질, 작자미상이 특징이다. 피쳐폰이나 똑딱이 사진들이기 때문이다. 2001년 당시 인기있던 블랙베리는 문자만 보낼 수 있었고, 노키아 3310 이나 모토로라 스타택(StarTAC)은 흑백에 카메라가 없었다. 그즈음 등장한 교세라 VP-210이나 샤프 J-SH04는 카메라 기능이 있었지만 11만 화소로 352x288 픽셀이 최대치였다. 인터넷 게시판의 글이나 이미지를 제출한 것도 많았다. 이런 특성을 분석한 논문을 본 적이 있다. 아카이브에서 보통 취급하지 않는 저품질, 작자미상의 본 디지털 기록 더미가 신기했나 보다. 2003년 9월, 미국 의회 도서관은 이 아카이브를 영구 소장하기로 했다. 이는 의회 도서관 최초의 대규모 디지털 자료 수집이었다.
짐머만은 녹음기를 가지고 부모나 조부모의 생애를 기록하는 방법을 제시했다. 짐머만의 '실용적 구술 가이드'는 로이가 추구했던 '역사의 대중화'를 뒷받침하는 사료로 그의 컬렉션에 보관되어 있다. 로이 로즌즈와이그 컬렉션 (C0038)상자 78, 폴더 16
이 책은 재미있는 인터뷰 기법을 통해 독자들이 추억을 되살리고, 소중한 이야기를 떠올리고, 오래된 가족 일화, 속담, 레시피 등을 공유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또한 가보와 같은 소품을 활용하여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녹화하는 아이디어도 제공한다.
박물관의 워드프레스
Omeka는 이렇게 탄생했다. 2000년대 중반, 박물관과 도서관들의 웹사이트에는 깊이 있는 콘텐츠가 부족했다. 수상 경력 있는 디지털 전시도 플래시나 멀티미디어 래퍼에 싸여 있어 접근성이 떨어졌다. 구글 검색도 안 되고, 북마크도 안 되고, 공유도 안 됐다. 무엇보다 제작비가 비쌌다. 작은 기관들은 엄두도 못 냈다.
로이와 동료들은 생각했다.
“블로그처럼 쉽게 온라인 전시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떨까?”
“연구자나 큐레이터도 블로그는 작성할 수 있을 테니 말야.”
2007년, 로이는 프로젝트 디렉터 톰 샤인펠트(Tom Scheinfeldt)와 샤론 레온(Sharon Leon), 그리고 개발자 제레미 보그(Jeremy Boggs)를 중심으로 한 팀을 만들었다.
Omeka의 철학은 명확했다. 더블린 코어라는 메타데이터 표준을 사용하되, 사용자가 쉽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워드프레스처럼 테마를 바꾸고 플러그인으로 기능을 확장할 수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오픈소스여야 한다. 돈 없는 작은 역사협회도 쓸 수 있게.
"박물관의 워드프레스를 만들자." 로이의 동료 댄 코헨(Dan Cohen)이 한 말이다. 블로그 혁명이 글쓰기를 대중화했듯, Omeka로 전시를 대중화하자는 것이었다.
안녕, 로이
2007년 10월 11일, 로이가 세상을 떠났다. Omeka 베타 버전 출시를 넉 달 앞둔 시점이었다. 남은 팀은 망연자실했다. 프로젝트를 주도하던 사람이 사라졌다. 그랜트는 받았지만 리더가 없었다. 중단해야 하나? 하지만 로이가 그토록 바랐던 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없었다.
톰과 샤론이 팀을 이끌었다. 댄 코헨이 로이의 후임으로 센터 디렉터를 맡았다. 팀은 밤낮없이 일했다. 로이가 남긴 설계도를 따라, 그가 꿈꿨던 방향으로 달렸다.
2008년 2월 20일, Omeka 0.9.0 공개 베타가 출시되었다. 출시 발표문에는 로이의 이름이 없었다. 하지만 모두가 알았다. 이건 로이의 프로젝트라는 걸.
반응은 뜨거웠다. 출시 10주 만에 다운로드 1,000건을 돌파했다. 팀이 3년 목표로 잡았던 숫자였다.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사진 갤러리부터 뉴욕 공공도서관까지, 크고 작은 기관들이 Omeka를 도입했다. "5분이면 설치할 수 있다"는 캐치프레이즈가 허언이 아니었다.
하지만 성공은 씁쓸했다. 로이는 이 광경을 보지 못했다. 자신이 꿈꿨던 "박물관의 워드프레스"가 현실이 되는 걸 보지 못한 채 떠났다.
고마워, 로이
2011년 4월 15일, 조지메이슨대학교는 센터 이름을 바꿨다. Center for History and New Media에서 Roy Rosenzweig Center for History and New Media로. 로이의 이름을 영원히 새긴 것이다.
로이 없는 Omeka는 어땠을까? 첫 성공 덕에 명성을 얻었지만 발걸음은 더뎠다. 댄 코헨은 2013년 디지털 공공도서관(DPLA) 창립 디렉터로 자리를 옮겼다. 톰 샤인펠트도 코네티컷대학교로 떠났다. 샤론 레온이 Omeka 디렉터를 맡으며 프로젝트를 이어갔지만, 로이의 빈 자리는 컸다.
Omeka는 살아남았다. 2026년 현재 전 세계 수만 개 사이트가 사용 중이다. 워드프레스처럼 폭발적으로 성장하지는 못했지만 아카이브와 박물관의 워드프레스로 자리잡는 데는 성공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플러그인 생태계는 제한적이고, 사용자 포럼은 우리들만의 리그이다. 로이가 살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공공 역사에 쏟아지는 돈
AtoM을 떠올려 보자. 초기 개발 후 ICA의 자금이 끊겨 아티팩추얼의 피터는 바운티 모델로 고군분투하며 살아남았다. 피터는 매년 돈을 구하기 위해 고객을 설득해야 했고, 커뮤니티도 관리해야 했다. AtoM 3로 넘어가기 위해 재단도 만들었지만 8년째 AtoM은 버전 2에 머물러 있다.
Omeka는 달랐다. 조지메이슨대학교라는 안전지대가 있었다. NEH(국립인문기금)와 IMLS, 멜론 재단 같은 곳에서 매년 그랜트가 들어왔다. 미국은 공공 역사에 돈이 쏟아진다. 대부분의 주립대에는 공공 역사를 지원하는 디지털 인문학 센터가 있고 역사학과나 아카이브 전공생들은 Omeka로 공공역사 프로젝트하며 풍족하게 학교를 다닐 수 있다. 2010년엔 Omeka.net이라는 유료 호스팅 서비스도 시작했다. 수익보다는 지속가능성을 위한 선택이었다. Omeka.net은 전 세계 누구나에게 디지털 전시 소프트웨어와 500MB의 무료 공간을 제공한다.
더뎠지만 혁신도 있었다. Omeka Classic에서 Omeka S로 넘어가는 데 10년이 걸렸다. 링크드 오픈 데이터를 도입한 건 2017년이었다. Daniel KM과 같은 뛰어난 커뮤니티 개발자의 노력에 힘입어 시맨틱 메타데이터 기반으로 넘어가는 데 성공했다. Omeka S를 사용하면 RiC이나 PREMIS, FRBR 등 시맨틱 보캐뷸러리, 게티의 AAT 등 그 어떤 어휘집도 쉽게 불러와 사용할 수 있다. 고해상도 이미지를 IIIF 뷰어로 보여주는 것도 간단하다. 심지어 Omeka 서비스 페이지는 HTML에 JSON-LD가 자동 임베딩되어 AI 봇들이 해석할 필요도 없는 가장 머신 리더블한 웹페이지가 된다.
Omeka를 모두에게
로이의 비전은 얼마나 실현됐을까?
그는 2006년 논문에서 이렇게 썼다. "위키피디아의 성공은 전문가 독점에 대한 도전이다." 하지만 Omeka는 여전히 전문가의 도구에 가깝다. 메타데이터 표준이니 더블린 코어니 하는 개념 자체가 장벽이다. 워드프레스처럼 아무나 쓸 수 있는 도구가 되지는 못했다.
어쩌면 로이의 진짜 유산은 Omeka라는 소프트웨어가 아니라, 질문 자체일지 모른다. "역사를 모든 사람에게"라는 비전은 Omeka 곳곳에 녹아 있다. 표준, 접근성, 오픈소스 라이선스, 무료 배포.
그의 물음은 아직도 유효하다. Omeka는 그 실천일 뿐이다.
로이를 추모하는 디지털 아카이브.
Omeka의 기본 테마로 제공된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아카이브를 만들고 싶다면 Omeka.net 회원가입 후 Thanks Roy 테마를 선택하시라.
Refere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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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진. (2019). 기록시스템의 오픈소스 전략 연구. 박사학위논문, 명지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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