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지난 4월 13일자 전자신문 기사 <尹이 받은 '英 국왕 한정판 위스키' 어디로…대통령기록관엔 '없다'>는 대한민국 대통령기록물 관리 체계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2023년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영국 찰스 3세 국왕으로부터 받은 '라프로익 15년' 한정판 위스키는 단순한 주류가 아닌, 양국 외교의 정수를 상징하는 '대통령선물'이다. 그러나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임기 종료 후인 지금, 이 선물은 대통령기록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
"尹이 받은 '英 국왕 한정판 위스키' 어디로…대통령기록관엔 '없다'"(전자신문 2026.04.13.)
이 기사만 보면, 대통령기록관에 '英 국왕 한정판 위스키'의 이관 제외 사유나 목록조차 존재하지 않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기록물의 생산부터 이관까지의 생애주기가 철저히 관리되어야 한다는 기록관리의 기본 원칙에 위배된다. 국가 수반이 받은 선물이 대통령기록관에 이관하기도 전에 증발해버리는 현상은 현행 대통령 기록관리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게 한다.
1. 대통령선물, 사유물이 아닌 '국가적 자산'의 법적 정의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이하 대통령기록물법) 제2조 제1호의2 ‘다’목에 따르면, 대통령선물이란 대통령의 직무수행과 관련하여 국내외 단체나 개인으로부터 받은 선물 중 국가적 보존가치가 있는 것과 「공직자윤리법」 제15조에 따른 선물을 의미한다.
여기서 핵심은 '직무 관련성'과 '국가 소유권'이다. 대통령이 받은 선물은 개인 '윤석열'에게 준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 대통령이라는 직위에게 부여된 역사적 상징물이다. 따라서 이는 사적 소유가 불가한 엄연한 국가 자산이며, 임기 종료 전 반드시 대통령기록관으로 이관되어야 하는 '공공의 기록'이다. 위스키 한 병일지라도 그것이 외교 현장에서 오갔다면 국가 기록으로서 목록화되고 관리되어야 마땅하다.
2. 판다부터 송이버섯까지... '특수 유형' 대통령선물 사례
역대 정부에서도 관리의 난점을 유발하는 특수한 유형(이 글에서는 동식물, 식음료 등 보존이 어려운 대통령선물을 의미한다)의 대통령선물은 꾸준히 존재해 왔다.
- 박근혜 정부: 중국 시진핑 주석이 계기로 약속한 중국 판다 한 쌍(아이바오, 러바오)을 선물하였다. 이 판다들은 민간 전문 시설인 에버랜드 판다월드에 위탁 관리되었다.
- 문재인 정부: 북한 김정은 위원장이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선물한 풍산개(곰이, 송강)는 문재인 전 대통령 퇴임 후 관리 주체 논란을 빚으며 광주 우치동물원으로 이관되었다.
- 역대 남북정상회담: 노무현, 김대중, 문재인 전 대통령은 북측으로부터 2톤에서 4톤에 달하는 대량의 송이버섯을 선물 받았다. 선물 받은 송이버섯은 주로 수천명의 이산가족들에 배분되었다.

3. 죽거나, 상하거나, 오염시키거나... 보존의 역설과 문제점
대통령기록관은 본래 종이, 필름, 디지털 매체 등 무생물적 기록물을 영구 보존하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다. 이 공간에 동식물이나 식음료가 들어올 때 발생하는 문제는 치명적이다.
- 생물학적 및 화학적 위협: 동식물의 배설물, 사체, 혹은 식음료의 부패 과정에서 발생하는 곰팡이와 해충은 인접한 영구보존 기록물에 치명적인 '생물학적 오염'을 일으킬 수 있다. 또한 주류의 휘발 성분이나 식품의 산패취는 서고 내 미세 환경을 교란한다.
- 환경 및 인력의 부재: 대통령기록관 직원인 공업·기록연구직이 풍산개를 직접 사육하거나 송이버섯의 신선도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다. 소수의 '특수한 유형의 선물'을 위해 고가의 사육 시설, 온실, 냉동 창고를 확충하고 전문인력을 배치하는 것은 국가 예산 운영 측면에서 지극히 비효율적이다. 오히려 '보존'을 목적으로 하는 대통령기록관이 '생존'과 '변질'을 감당하지 못해 다른 기록물을 방치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4. 실효성 있는 '특수 유형' 대통령선물 관리 방안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대통령기록관은 '물리적 소유'에서 '다각적 관리'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① 전문관리기관으로의 위탁관리 정문화
대통령기록물법 시행령 제6조의3(대통령선물의 관리)에 따르면, 동물 또는 식물 등이어서 다른 기관에서 더욱 효율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다른 기관의 장에게 이관하여 관리하게 할 수 있다. 풍산개나 판다처럼 특수한 돌봄이 필요한 경우, 동물원이나 수목원 등에 위탁하되 대통령기록관이 정기적으로 관리 상태를 점검하는 '위탁 관리 체계'를 더욱 공고히 해야 한다.
② 디지털 및 물리적 복제를 통한 기록 보존
위스키와 같은 주류나 식음료는 개봉 전 고해상도 3D 스캔 및 정밀 사진 촬영 등을 통해 '디지털 트윈'을 구축하거나 복제품을 제작하여 전시용을 활용하고, 원물의 성분이나 유래는 기록 DB로 남길 수도 있다. 다만 외교적 가치가 높더라도 유한한 수명을 지닌 동물 또는 식물의 경우에는 엄연한 생물이기 때문에 대통령선물로서 특별한 보호 및 보존방식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③ 자산가치의 전환 및 사회 환원 서비스
대량의 송이버섯 사례처럼 현실적으로 보존이 어려운 소모품(?)은 선물로서의 취지도 살릴 겸 '사회 환원'이 가장 실효성 있는 관리방식일 수 있다. 역대정부에서 선물로 받은 송이버섯을 미상봉 이산가족 등에게 배분한 것처럼, 그 배분 과정과 수혜자의 반응 등을 상세하게 '행정기록'으로 남김으로써 실물은 사라져도 '선물의 가치'는 영구히 보존하는 방식이다.
④ 법령 및 지침의 구체화
'보존하기 어려운 품목'에 대한 자의적 판단을 막기 위해 이관 제외 목록 작성 기준을 명문화해야 한다. 이번 영국 위스키 사례처럼 "액체라 휘발된다"는 막연한 이유로 이관 자체를 무작정 제외하는 것이 아니라, 대통령기록물생산기관은 이관 전 이력을 철저히 관리하고, 대통령기록관과 긴밀히 협의하여 처리 방식(위탁, 폐기, 기증 등)을 투명하게 결정할 수 있도록 법령 개정 및 세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나가며: 기록은 '물건'이 아닌 '역사'를 지키는 것
윤석열 전 대통령의 위스키 사례가 남긴 교훈은 명확하다. 관리가 어렵다는 이유로 이관제외대상이라는 명목으로 소리 소문없이 사라지는 기록물이 있어서는 안 된다. 대통령기록관에 위스키가 없더라도, 그 위스키가 언제, 어디서, 누구에게 전달되어 현재 어떤 상태로 관리, 처분되고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반드시 존재해야 한다.
대통령선물은 통치 행위의 부산물이자 국가의 얼굴이다. 이제는 박제된 보존에서 벗어나 생물학적 특성과 외교적·역사적 가치를 동시에 고려하는 스마트한 관리 체계로 진화해야 할 시점이다. 대통령기록관의 서고가 비어있더라도 대한민국의 역사는 빈틈없이 기록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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