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멸 앞에서 아키비스트는 어떻게 대처하는가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반드시 소멸합니다. 태어나는 순간, 우리는 살아가는 것 같지만 죽어가는 겁니다. 봄에 움튼 새싹은 여름을 무럭무럭 자라다가 가을에 씨앗을 남기고 겨울에 스러집니다.
그런데 좀 더 들여다보면, 찬 겨울을 지나고 나면 다시 봄이 오고, 죽은 듯 몸을 누인 풀꽃들이 다시 싹을 틔웁니다. 소멸은 분명하지만 그것은 형태의 문제이고 존재의 에너지량, 지구, 우주 생명체의 전체 질량은 변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한 사람은, 엄연한 소멸과, 그보다 더 분명한 '보존된 질량'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을까요?
저는 그 연결고리가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생을 꿈꾸는 자들은 많았지만, 모두가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른 물성으로 존재합니다. 그것은 기억입니다. 기억되는 한 소멸하지 않습니다. 소멸한대도 그것은 형태의 전환입니다. 기록은 그 기억을 보좌하는 유일하고 쓸모 있는 매개자입니다.
그러니, 기록을 다루는 우리 아키비스트들은 소멸 앞에서 무엇이든 해야 합니다.
그 일은 말 그대로 무엇이어도 상관없지만, 저는 그중에서 '사라질 위기에 처한 기록을 구조하는 일'로 대처해 보려고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아키비스트가 비단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말도 안 되었지만 소리를 내어 보니 듣는 이들이 있었고, 손을 잡아 주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소멸의 시대에 기록을 구출해 두는 것으로, 함께 대처해 나갈 '기록구조대'를 소개합니다.
기록을 구조하려는 자 #1, 말자
민지는 청주 출신인데 대전에서 더 오래 살았고 애정이 있습니다. 학부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했는데, 새로운 걸 배우는 걸 좋아해서 기록학을 공부하는 대학원으로 진학했습니다. 그런데 대학원은 배우는 곳이 아니고 알아서 공부하는 곳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답니다. 다시 문헌정보학으로 돌아가 박사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개인기록을 보존하는 일에 관심이 많은데 대학원은 그 일에 크게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민지는 학교다닐 때 청년단체 활동을 했는데, 청년들은 활동하다가 에너지가 소진되면 흐지부지 되다가 단체가 없어지는 일이 종종 있는데, 그런 기록들이 사라지는 것이 아까웠다고 합니다. 그래서 기록구조하는 일에 관심이 생겼답니다.
기록을 구조하려는 자 #2, 나경
나경은 중학생 때부터 출판편집자가 꿈이었어서 출판학교를 다니기도 하고, 동네 서점에서 알바도 했습니다. 선배들이 여성구술사로 사회적기업을 만들겠다고 꼬셔서 10개월 정도 일하면서 여성구술사로 자서전을 만드는 일을 했습니다. 2016년부터 2017년 사이 페미니즘을 들여다보다가 도피성?으로 기록대학원에 진학했고, 지금은 박물관에서 소장기록을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나경의 취미는 식물을 키우거나 그 식물을 뜨개로 만드는 일이라고 합니다.
나경은 어릴 때부터 모으는 걸 좋아해서 주고받은 편지나 일기를이 모은 보물상자를 아직 버리지 못하고 간직하고 있습니다. 엄마의 생애를 인터뷰해 놓기도 했고요. 친구나 가족들이 지금보다 더 나이 들면 분명 지금 이 순간의 모습이나 나눴던 이야기들을 남겨 놓지 않은 걸 분명 후회하게 될 거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한답니다. 그런데 생각만 그렇게 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던 차에(많은 것을 하고 있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쿨럭) 기록구조대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실천할 기회가 될 거 거 같다는 기대로 함께하게 되었답니다.
기록을 구조하려는 자 #3, 마달
마달은 도봉구에 살고 있습니다. 마침 기록구조대 출정식을 도봉에서 하게 되면서 동네 마실 오듯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시민들을 대상으로 역사탐방을 진행하고 그 장소의 역사적 맥락을 알려주는 강의를 하던 중에, 동네 도서관에서 마침 지역을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을 뽑길래 함께하게 되면서 도봉구를 좀 더 들여다보게 되었답니다.
도봉에는 샘표간장공장, 삼양라면, 미원, 삼화페인트, 인켈 등의 공장도 있었고, 응팔에 나오는 쌍문동과 꼭 같은 골목과 사람들, 분위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 게 다 사라지는 게 아쉬워서 마을을 아카이브하는 일에 뛰어들기도 했습니다.
기록구조대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 마달은 '위급함, 절박함'이 떠올랐다고 합니다. 도시는 자본에 의한 물리적 변화가 자연스러운 현상일 텐데,, 그래도 그 변화 속에서 사라지기 전에 기억을 기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고 가치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기록구조대가 마을의 기록을 계속해서 지켜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함께하게 되었답니다.
기록을 구조하려는 자 #4, 혜록
혜록은 '소멸하는 거'가 너무 아쉽다고 합니다. 왜 그런 아쉬움이 생겼나 생각해 보면, 사는 동안 내내 한자리에 오래 머물러 있어서 그런 것 같답니다. 충북 괴산에서 19년을 살고, 식구들은 그보다 더 오래 살아왔고, 대학에 진학하면서 서울로 오긴 했지만, 서울로 와서도 안암동 한곳에서만 8년 넘게 살고 있습니다.
시골에 살 때는 변화가 크진 않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작은 변화라도 생기면 아쉬웠습니다. 서울에 와서도 한 동네에 오래 있다 보니 동네 변화들을 보게 됩니다.나주에 다 잊혀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보니, (어리지만) 라떼마인드가 생기곤 했답니다.
2018년부터 네이버 블로그를 시작해 지금까지 꾸준히 기록하며 살고 있는데요, 적성에도 맞고 돈도 벌면 좋겠다 싶어 기록학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혜록'이라는 이름은 기록구조대원용 예명인데요. '지혜를 기록하는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기록을 구조하려는 자 #5, 아톰
아톰의 식구는 모두 6명인데 벌써 2명이 돌아가셨답니다. 삶 속에서 가족이 없어지고 기록이 없어지고, 물성이 사라진다는 것을 몸소 겪으며 산 거지요. 아무것도 영원하지 않다는 생각을 하면서 점점 기록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답니다.
학부에서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하고, 디지털이나 디바이스에 관한 작업을 많이 했습니다. 정리하는 거를 좋아하고, 기록의 맨 끝단의 작업, 이를테면 기록을 정보화하거나, 정보화한 것들을 시각화하거나, 그걸 모아 콘텐츠로 만드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기록을 구조하려는 자 #6, 츄츄
츄츄는 대학 다닐 때 언더에서 활동하는 예술가들을 소개하는 독립예술잡지 보일라VoiLa를 만들었습니다. 20세기는 아직 인터넷이 발달되지 않았던 시대라 혼자서 꼼지락거리며 작업하는 예술가들을 잘 기록해서 선보이는 일이 정말 의미있고 즐거웠다고 합니다. 이후에 책 만드는 일을 했는데, 거기서 상상해서 쓰는 글 말고, 직접 보고, 듣고, 손수 한 일들을 기록하고 책으로 만드는 일을 꾸준히 해왔답니다.
독립예술축제를 만드는 일, 재활용자선가게, 청년들에게 먹고, 짓고, 빚는 삶의 기술을 가르쳐 삶의 자립도를 높여주는 일, 등 언뜻 보면 각각은 너무 뜬금없지만, '자립하는 삶'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치밀하게 계획된 행보라고 주장하는 일들을 하며 살았습니다. 사람은 그저 태어나기만 해도 자기 앞가림하며 살 수 있다고 믿으며, 그렇게 사는 데 도움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 기록학을 공부했고, 논문도 '자립하는 삶을 위한 도구와 기술 아카이브'라는 주제로 썼다고 합니다.
디지털아카이브에서 웹콘텐츠 만드는 일을 하다 책이나 영상, 전시, 굿즈 등 다양한 기록콘텐츠를 만들고 싶어서 '한사람연구소'라는 기록콘텐츠전문회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양한 콘텐츠는 다양한 한 사람 한 사람에게서 나온다는 믿음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기록을 구출하는 일에 뛰어들었답니다.
기록계의 젝스키스, 기록구조대!
지구에 위기가 찾아오면 구하는 영웅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겐 박씨부인, 홍길동, 전우치, 마루치 아라치, 임꺽정이, 머털도사가 있습니다. 아, 우뢰매도 있고 로보트 태권브이도 있습니다. 어떤 나라에는 수퍼맨, 베트맨, 아이언맨, 캡틴 아메리카,,, 메칸더, 아톰, 철이와 메텔도 있습니다.
기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 기록구조대가 출동합니다.
제가 아는 6명의 영웅은 당장 젝스키스, 육각수,,,,,,, (쿨럭!ㅋ)
여튼 용맹하고 불의에 맞서 싸우며, 누군가 도움을 요청하면 어디든 언제든 달려갑니다.
기록구조대가 딱 그렇게 활동합니다!
여러분의 기록이 사라질 위기에 처하면, 그저 외쳐 주십시오.
"도와줘요, 기록구조대!"
그리고 아래 링크를 클릭해 주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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