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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기]도시를 기억하는 도서관

캐나다 밴쿠버공공도서관에서 만난 느긋하고 너그러운 로컬아카이브

2025.01.23 | 조회 6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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썬데이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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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썬데이아카이브가 기록과 관련해 할 수 있는 최대한 잡스러운 것을 모아보려고 하다 보니, 이번에는 '아카이브 탐방기'를 공유합니다. 저는 요즘 바람 따라 구름 따라 기록이 모여진 전시, 공간, 사람, 작업들을 쫓아다니고 있습니다. 지난번 실었던 >전격 기록구출작전 Save The Memory<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으니 많은 제보 바랍니다.


어느 도시에나 도서관이 있습니다. 도서관에는 책이 있습니다. 그런데 책은 어디에나 있습니다. 심지어 장소가 아닌 곳에도 있습니다. 유령처럼 떠다니다가 장바구니에 담으면 하루 안에 손에 쥐어지기도 합니다. 그러니 도서관이 '거기' 놓여 있을 이유가 무엇일까요?

저는 지난가을, 그 도서관이 꼭 거기 있어야만 하는 이유가 연신 납득이 되는 도서관을 하나 만났습니다. 다른 어디에서 만날 수 없는 그 도시의 기록과 흔적이 가득했던 곳. 캐나다 밴쿠버에 있는 공공도서관이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밴쿠버 공공도서관 바로가기)

 


밴쿠버공공도서관Vancouver Public Library

밴쿠버공공도서관은 캐나다에서 두 번째로 큰 공공도서관으로, 밴쿠버공립중앙도서관 1개와 21개 지역에 분관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밴쿠버공공도서관은 1869년에 처음 만들어져 운영되다가 미국의 사업가 앤드류 카네기(Andrew Carnegie)의 기부와 밴쿠버 시티의 지원에 힘입어 점차 확장되었습니다. 밴쿠버 중심가 한가운데인 지금의 자리로 옮겨온 것은 1995년입니다. 

밴쿠버공립중앙도서관 @썬데이아카이브
밴쿠버공립중앙도서관 @썬데이아카이브

콜로세움을 연상하는 독특한 외관과 총면적 3만 8,000평방미터에 달하는 규모, 이민자지원센터, 문화예술프로그램, 지역아카이브 등으로 구성된 다양한 자료와 서비스를 갖추고 있어 캐나다 전체에서 하루 이용자 수가 가장 많은 도서관으로 꼽히고 있습니다.

 

그 도시를 기억하는 도서관

밴쿠버공공도서관 가운데서 핵심 허브 역할을 하는 밴쿠버공립중앙도서관 7층에는 지역아카이브 <스페셜 컬렉션Special Collection>이 꾸려져 있습니다. 밴쿠버와 브리티시 컬럼비아주 일대의 지역 유산과 역사적으로 중요한 기록을 소장하고 있지요. 도서관에 이 도시를 만들고 꾸리고 살아온 사람들, 원주민과 이민자들의 기록과 이야기들로 가득 차 있는 겁니다. <스페셜 컬렉션>은 이 지역의 기록 묶음 그 자체이자, 그 기록을 보존, 서비스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밴쿠버공립중앙도서관 지역아카이브 <스페셜 컬렉션Special Collection> @썬데이아카이브
밴쿠버공립중앙도서관 지역아카이브 <스페셜 컬렉션Special Collection> @썬데이아카이브

 

<스페셜 컬렉션>에 들어서면 입구 양옆으로 옛날 약방에서 보았던 작은 서랍이 빼곡이 박혀 있는 서랍장이 보입니다. 거기에는 기록의 카드들이 들어 있습니다. Northwest Index는 Northwest History Collection에 포함된 항목에서 발견되는 다양한 주제, 장소, 사람들의 이름을 참조할 수 있습니다. 이 기록 카드에서는 1998년까지 살았던 원주민과 이민자들의 이름을 모두 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게 완전한 기록은 아닙니다. 1998년까지 수기로 기록카드가 작성되고 그 이후로는 기록카드가 더 만들어지지 않았고, 수집도 모든 기록을 다 수집했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여튼 Northwest History Collection에는 책, 정기간행물, 지도, 오디오 및 비디오 자료, 팸플릿 및 마이크로필름 등과 출판된 자료들이 기증 및 구매, 수집 등의 활동을 통해 소장되어 있습니다.

 

Northwest Collection을 찾아볼 수 있는 색인카드장 @썬데이아카이브
Northwest Collection을 찾아볼 수 있는 색인카드장 @썬데이아카이브
색인카드 하나를 열어 보니 밴쿠버 북서부 지역에 살았던 윌리엄 허버트 씨의 기록카드가 있었다. 윌리엄 허버트 씨는  1886년에 태어나 1965년에 죽었다는 사실과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등이 나온다. 청구기호가 옆에 쓰여 있다면 해당 기록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썬데이아카이브
색인카드 하나를 열어 보니 밴쿠버 북서부 지역에 살았던 윌리엄 허버트 씨의 기록카드가 있었다. 윌리엄 허버트 씨는  1886년에 태어나 1965년에 죽었다는 사실과 직업이 무엇이었는지 등이 나온다. 청구기호가 옆에 쓰여 있다면 해당 기록물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썬데이아카이브

 

스페셜 컬렉션에는 Northwest Collection 말고도 Historical Photograph Collection, Rare Book Collection, 초기 영어로 된 어린이책 모음인 Marion Thompson Collection, Literary Canadiana Collection 등 다양한 지역자료들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지역 내 소식지와 홍보물들은 제각각 모양이 다른데 파일케이스를 잘라서 정리하고 원본을 열람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썬데이아카이브
지역 내 소식지와 홍보물들은 제각각 모양이 다른데 파일케이스를 잘라서 정리하고 원본을 열람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고 있다. @썬데이아카이브
지역 공간, 랜드마크, 주요 사건 들을 조명한 출판물들 @썬데이아카이브
지역 공간, 랜드마크, 주요 사건 들을 조명한 출판물들 @썬데이아카이브
지역주민들을 아카이빙한 지역사전. 우리의 옛 전화번호부처럼 모든 사람을 이름순으로 찾아볼 수 있다. @썬데이아카이브
지역주민들을 아카이빙한 지역사전. 우리의 옛 전화번호부처럼 모든 사람을 이름순으로 찾아볼 수 있다. @썬데이아카이브
책으로 된 사전에서 정보가 중복될 경우, 한 번 설명하고 중복된 표제어에는 해당 페이지로 가서 보라고 안내하고 있다. @썬데이아카이브
책으로 된 사전에서 정보가 중복될 경우, 한 번 설명하고 중복된 표제어에는 해당 페이지로 가서 보라고 안내하고 있다. @썬데이아카이브

 

스페셜 컬렉션에서 가장 흥분되었던 지점은 기록의 목록과 기록 실물(비록 해상도는 낮지만)을 한자리에서 바로 확인하며 살펴볼 수 있다는 거였습니다. 커다란 타공클리어파일에 해당 목록을 제시하고 사진 및 문서 기록을 함께 철해 두었습니다. 정말 복사 용지에 흑백으로 대충 출력해 놓은 상태입니다.

첨부 이미지
기록목록과 기록실물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카탈로그 @썬데이아카이브
기록목록과 기록실물을 함께 확인할 수 있는 기록 카탈로그 @썬데이아카이브

 

하지만 목록만 가득하고 그 실물을 보기 위해 정보공개청구를 하거나 열람절차를 밟거나 수장고를 거쳐야 하는 것보다는 훨씬 직관적이고, 내게 필요한 기록인지에 대해 확인하기가 쉽습니다. 단순한 방식이지만, 기록목록과 실물을 함께 제공한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습니다. 

보다 높은 해상도의 기록물은 일정 비용을 책정해서 유료로 서비스하고 있습니다.

 @썬데이아카이브
 @썬데이아카이브
 @썬데이아카이브
 @썬데이아카이브
 @썬데이아카이브
 @썬데이아카이브

 

제공자가 달라도 이용자가 불편하지 않게

밴쿠버공공도서관에 설치된 지역아카이브 서비스공간 옆에는 캐나다국가기록보관소(LAC)에서 제공하는 국가기록원문열람서비스 공간이 나란히 설치되어 있습니다.

밴쿠버도서관의 스페셜 컬렉션 정보서비스와 캐나다국가기록보관소(LAC)의 정보서비스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썬데이아카이브
밴쿠버도서관의 스페셜 컬렉션 정보서비스와 캐나다국가기록보관소(LAC)의 정보서비스가 나란히 설치되어 있다. @썬데이아카이브

 

밴쿠버공공도서관 스페셜 컬렉션 담당자 앤젤Angel이 두 기관의 기록서비스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말해 주었습니다.

"캐나다 도서관 및 국가기록보관소(LAC)는 스페셜 컬렉션 내에 서비스 데스크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화요일부터 목요일, 오후 12시 30분부터 3시 30분까지 직원들이 배치됩니다. LAC데이터베이스와 기타 전문 구독데이터베이스에 액세스할 수 있는 두 대의 컴퓨터 워크스테이션이 설치되어 있고, 이를 원활하게 사용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LAC직원은 도서관 직원이 아니며, LAC의 기록들이 스페셜 컬렉션 내 자체자료로 공유되고 있지도 않습니다. 두 기관은 다르고 제공하는 시스템 또한 다르기 때문입니다. 두 기관의 컬렉션은 어떤 방식으로도 중복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도서관 직원과 LAC 직원이 한 서비스 지점에서 이용자들에게 접근할 수 있도록 협업하는 것은 이용자들에게는 무척 편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앤젤의 말처럼 기록을 소장하는 기관, 관리주체, 서비스를 제공하는 시스템 등은 달라도 그것은 제공자의 문제이고 이용자들의 프로세스는 동일합니다. 기록을 찾고, 어떤 기록인지 확인하고, 이용하는 것. 그런 의미에서 아카이브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원포인트로 서비스하고 있는 겁니다. 어떤 이용자는 두 기관이 서로 다른 기록을 다루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한자리에서 편리하게 여러 기록을 살펴보기도 했습니다.

밴쿠버도서관에서는 스페셜 컬렉션으로 수집된 기록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디지털화된 기록은 웹페이지에서 검색 및 열람이 가능하고, 원하는 해상도에 맞춰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다. @썬데이아카이브
밴쿠버도서관에서는 스페셜 컬렉션으로 수집된 기록을 디지털화하는 작업을 지속하고 있다.
디지털화된 기록은 웹페이지에서 검색 및 열람이 가능하고, 원하는 해상도에 맞춰 다운로드 받을 수도 있다. @썬데이아카이브

 

그 도시를 이해하는 도서관

밴쿠버공립중앙도서관 화장실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습니다.

"Trans People Welcome"

남자, 여자, 장애인 등의 표시에 이어져 있으니 아마도 성별이 전환되어 남자 화장실도 여자화장실도 쓰기 애매한 이들을 위한 칸이라는 안내일 것 같습니다.

'트랜스 피플 웰컴'이라고 말할 줄 아는 도서관 @썬데이아카이브
'트랜스 피플 웰컴'이라고 말할 줄 아는 도서관 @썬데이아카이브

 

그리고 한편으로 이런 생각도 해 봅니다. 캐나다는 이민자의 나라입니다. 정복자기이도 하고, 이주민, 이민자이기도 합니다. 원래부터 거기 살고 있던 이들은 멀리서 날아온 이들에 의해 또 어떤 곳으로 이주하거나 내몰렸을 겁니다. 'trans'라는 말에는 그렇게 이동과 전환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것은 아닐까. 그것이 이 나라의 정체성이자, 이 도시의 근간이고, 이 장소의 본질이기도 하니까.

여러 가지 젠더와 다양한 상황에 처한 이용자를 다 고려한다는 말을 하기 위해, 여러 가지 방식으로 표시할 수 있었을 겁니다. 그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선정되어 쓰여진  'trans'를 보면서, 도서관 한 층을 통째로 들여서 만든  <스페셜 컬렉션> 만큼이나 거대하고 상세하고 전범위적으로 서비스 되고 있던 이민자지원센터, 노숙자지원센터가 운영되고 있는 것도 연결지어졌습니다. 밴쿠버의 도서관에서는 밴쿠버에 사는 이민자들을 위한, 이민자들 때문에 밀려난 자들을 위한, 이민자들 사이에서 나가떨어진 소외된 이들을 웋한, 그래서 어쩌면 전 시민들을 위한,, 행정적인 것, 정서적인 것, 생활적인 것, 관계적인 것, 거의 전방위 영역에서 돌봄과 케어와 훌륭한 서비스들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별것 아닌 문구 하나로, 나와 같은, 그저 구경하러 열 시간을 트랜스해서 날아든 관광객에게도 웰컴을 전해주는 것 같았습니다. 

스페셜 컬렉션에서 웰컴에 이르기까지. 이 지역과 여기 사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고, 현재의 파편화된 공간과 관계를 이어주는 도서관. 이 도서관은 여기 있어야 마땅하구나, 무릎이 탁 쳐졌습니다.

 


밴쿠버공공도서관은 실은 2023년에 관광객 모드로 밴쿠버 다운타운을 걷다가 우연히 알게 되었습니다. 잠깐 둘러보아도 별천지였던 도서관에서 '우와, 우와!'를 연발 내뱉으며 종횡무진 돌아다녔습니다. 그래도 여러 사람들과 함께한 그 자리에서는 진득하게 앉아서 살펴보기가 쉽지 않았지요. 그것이 너무 아쉬워서, 언젠가, 다음엔, 이 도서관 죽순이를 하러 이 도시에 오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그러고 이듬해 2024년, 정말로 이곳에서 죽순이를 하였습니다.

느긋하고 다정한 사람들.

짧은 영어로 대면 인터뷰는 깊이 있게 진행하지 못해서, 못다한 말들은 서면질의서를 따로 보냈더랬습니다. 그 질의서를 받고 담당자는 한 달여 만에 답장이 왔고, 그나마도 한 달 정도 휴가를 갈 예정인데 그사이에 임시 담당자가 답을 줄 수도 있고, 혹시 주지 않고 있다면 돌아와서 답장을 주겠노라 하였습니다.

해가 바뀌고, 드디어, 물었던 질문들이 답이 되어 왔습니다. 담당자의 이름도 Angel이었습니다. 진짭니다. 천사 같은 그이는 제가 질의서를 보낸 지 반 년만에 차근차근 스페셜 컬렉션의 베일을 벗겨 주었습니다. 아직도 궁금한 것이 많지만, 다음번 죽순이를 때릴 때에 그 자리에서 다 물어보고 알아내고 말겠습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더 궁금해진 것이 생긴 분들은 질문거리를 보내주시면 보태기해서 물어보겠습니다. 물론, 그날이 언제가 될지는 불분명합니다.

느긋하고 너그러운 캐나다 문화를 담뿍 이해하고 받아들여 차근차근 천천히, 그러나 반드시 다녀오겠습니다.

기록열람을 요청할 때 쓰는 쪽지와 연필 @썬데이아카이브
기록열람을 요청할 때 쓰는 쪽지와 연필 @썬데이아카이브

[추신]

  • 재미있는 아카이브나 전시, 모임 있으면 초대해 주셔요. 작고 사소할 수록 열심히 달려갑니다.
  • 전격 기록구출작전 대원 출정식을 합니다. (2025년 3월 20일(목) 11:00) 함께하고 싶은 분 누구나 환영입니다! 
  • 아카이브 제보 및 기록구출작전 출정식 참여는 모두 메일로 주시면 됩니다.(sssunday.archiv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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