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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관리전문가에서 기록전문가로

2024.10.01 | 조회 7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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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들어가며,

일에 매진하다가도 가끔 다람쥐 쳇바퀴 도는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럴 때면 나는 누구지? 뭐하는 사람이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기록관리 일을 하다보면 그저 절차를 따라가는, 마치 네비게이션이 안내하는대로 운전하는 사람이 된 것 같습니다. 길을 모르는 운전자차럼 기록을 보지 못하고, 기록관리 행위를 수행하기 바쁩니다. 공공기관의 기록관리 업무들이 정형화되어 있기 때문에, 단순히 그 기준을 얼마나 잘 따라 오류없이 잘 수행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기도 합니다. 가끔 문제점이 보이고, 비효율적인 면이 보여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법령과 표준, 그리고 시스템 환경에 따라 일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마다 스스로의 정체성과 전문성을 의심하게 되곤 합니다.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기록연구사, 기록전문가, 아키비스트. 우리를 지칭하는 말은 많습니다. 아카이브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여 곳곳에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에 대한 소개와 자세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 일까요?"

출처: 서문. (2017.8.8.). Archivist Lounge. https://archivist.co.kr/2017/08/08/서문/에서 발췌

 

공공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서는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으로 명명하고 있지만, 채용공고가 아니면 그 명칭이 쓰이는 일이 흔치는 않습니다. 아래 Archivist Lounge의 서문에서처럼 우리를 지칭하는 여러 명칭이 있지만, 이 모두를 포괄할 수 있는 단어는 기록전문가또는 기록인정도가 되겠습니다. 다만 이 글에서는 직능과 전문성에 대해 이야기를 할 예정이므로 기록전문가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기록전문가의 전문성은 어디로부터 비롯될까요?

 

"기록전문가는 주로 기록을 관리·보존하며, 이용·서비스를 제공하는 업무를 수행하는 전문기관의 기록전문직을 의미한다."

출처: 한국기록전문가윤리강령. (2014.7.8.). 한국기록전문가협회, https://www.archivists.or.kr/795 

 

"(전문성은) 어떤 영역에서 보통 사람이 흔히 할 수 있는 수준 이상의 수행능력을 보이는 것 …<중략>… 매우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훈련을 통해 획득될 수 있다고 본다."

출처: 곽호완 외. 2008. 『실험심리학용어사전』. 시그마프레스. 네이버 지식백과에서 재인용 및 편집

 

한국기록전문가윤리강령의 정의에 보면 기록전문가는 주로 기록을 관리·보존, 이용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주체입니다. 저는 기록의 이용 관점에서 기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연구자나 전문적인 기록 수집가나 활동가 분들도 기록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전문성은 아무나 할 수 없는 특정 분야에 대한 지식과 경험, 기술 및 역량입니다. 두 용어의 정의를 서로 대입해보면, 기록관리에 대한 전문성은 기록관리에 대한 체계적인 교육 또는 훈련으로 해박한 지식을 갖추고, 기록관리 절차와 방법론에 대한 경험 및 노하우를 가진 상태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기록관리의 전문성: 방법과 절차

기록관리의 전문성은 기록을 보존·관리하는 방법과 절차에 대한 이해, 그리고 실제 수행에 있어서의 노하우와 숙련도에 달려있다고 생각합니다. 각 단계에서 기록 목록의 작성과 활용, 보존과 향후 활용을 고려한 효과적인 기록 분류 및 정리 방법, 서고 공간을 고려한 서가배치와 보존상자 편성 및 라벨링, 절차에 따른 공개재분류와 평가·폐기 등 기록을 실질적으로 보존하고 관리하는 세부적인 절차와 노하우를 얼마나 잘아고 있는지,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하는 지에 따라 전문성을 가늠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특히 기록관리 업무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큰 그림에 맞춰 순차적으로 그리고 유기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지가 상당히 중요합니다.

공공영역의 경우 지난 20여년에 걸쳐 기록관리체계를 다져왔습니다. 주무기관인 국가기록원의 정책 수립과 연구, 학계의 전문인력 양성과 연구, 각 기관에 배치된 기록관리 담당자들의 노력과 실무경험이 켜켜이 쌓인 결과입니다. 이것들은 법령과 표준, 지침과 매뉴얼의 형태로 정제되어, 공공기관에서 기록을 어떻게 보존하고 관리해야하는지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 법제가 완벽하지는 않고, 부족하거나 모순된 부분도 있지만 여기서는 논외로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관련 법제를 잘 준수하면 공공기록관리에 전문성이 있다고 할 수 있을까요? 물론 지켜야할 기본을 지키지 못한다면, 전문성이 있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법제를 잘 지키는 것만으로 전문성이 있다거나, 전문성이 높다고도 하기 어렵습니다. 기록관리 법제가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차치하더라도, 법제에 명시된 바는 어디까지나 방법과 절차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기록관리전문가에서 기록전문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기록관리 방법론과 절차에 대한 전문성에 더하여 대상 기록에 대한 이해가 필요합니다.

 

기록관리전문가에서 기록전문가로 거듭나기: 기록의 내용과 구조, 맥락에 대한 이해

 

기록전문가라면 자신이 다루고 있는 기록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기록물관리기관에서 근무하는 전문가라면 기관에서 보유하고있는 기록에 대해 소개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용자나 방문객이 보유기록에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얼마나 있는지, 주요한 기록은 무엇이 있는지 물어봤을 때, 대답을 할 수 없다면 아무리 기록관리 절차와 방법에 숙련되었다고 하더라도 전문성을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최소한 보유하고 있는 기록의 구성과 양상은 파악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려면 기록을 꾸준히 들여다보고 분석해야 합니다. 목록을 만들고, 분류하고, 정리하고, 여러 기록관리 절차를 수행하면서 꾸준히 기록의 존재 양상과 구조를 면밀히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관이 어떤 기록들을 보유하고 있고, 주된 형태가 어떠하며, 어떻게 구조화되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나아가 대상 기록에 대한 전문성을 더욱 높이려면, 기록의 양상과 구조는 물론 기록의 내용과 맥락까지도 알아야 합니다. 앞서 언급했듯이 기록전문가는 기록물관리기관의 전문가 외에도 기록을 활용하는 연구자, 기록을 수집하고 남기는 수집가 및 활동가일 수도 있습니다. 저마다 주제나 영역은 다르지만 그 분야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 그리고 해당 기록의 내용과 맥락에 대한 이해를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기록연구자는 본인 연구주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 즉 맥락을 기본적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지식을 활용하여 누구보다 쉽게 기록을 찾고 활용합니다. 연구자는 기록의 내용을 들여다보고 연구를 하기 때문에 기록의 내용과 구조, 맥락 모두를 상세하게 알 수밖에 없습니다. 기록수집가나 활동가도 관심 주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경험, 마찬가지로 맥락을 꿰고 있습니다. 관심사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토대로 필요한 기록을 수집해서 모으거나 직접 기록화하기 때문에 역시 기록의 내용과 구조, 맥락 모두를 잘 알 수밖에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기록물관리기관중에서도 수집형 아카이브는 대상 기록과 그 주제에 대한 해박한 지식, 즉 맥락을 기본적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그 대상이 인물이라면 그 인물과 그 인물의 행정에 대해 상세히 알아야 하고, 특정 주제나 사건이라면 그 주제나 사건에 대해 해박한 지식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후 수집을 진행하고, 이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기록의 내용과 구조, 맥락을 모두 파악하게 됩니다.

남은 것은 기관형 기록관 또는 아카이브입니다. 공공기록을 관리하는 대부분의 기록물관리기관이 이에 해당합니다. 특정 주제에 대한 수집이나 기록화, 연구가 주된 것이 아니라 기관이 생산·보유한 기록을 선별하여 이관받는 형태이므로, 위에 열거된 다른 기록전문가나 아카이브와는 다른 접근이 필요합니다. 이 경우 기록의 맥락이 특정 주제나 분야에 대한 해박한 배경지식이 아니라 기록의 생산맥락이 중요합니다. 이관받는 기록은 모기관이 업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관의 연혁, 주요 기능과 수행 업무 등을 파악해야 합니다. 그래야 기록이 언제 누가 무슨 일을 하는 과정에서 만들어졌는지를 알수 있습니다. 즉 분야 전문가가 아니라 기관 전문가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기관의 기록전문가가 절차에 따라 기록관리 업무를 체계적으로 잘 수행하면서, 동시에 그 기관의 연혁과 업무, 역대 정책 또는 사업, 주요 이벤트들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때, 그 기관이 수행하려는 여러 업무에 참고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때, 나아가 외부 이용자들에게도 전문적인 기록정보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고, 전문성을 더 크게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맺으며,

현실은 녹록치 않습니다. 전담조직이 갖춰진 곳은 극히 드물고, 충분한 예산은커녕 기록관리 업무에 집중하기도 어렵습니다. 짜여진 프로세스를 따라가기도 벅차단 것도 알고 있습니다. 위에 열거한 전문성을 기록전문가 개인의 힘만으로 갖추기는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시스템의 문제입니다.

하지만 이렇게 정해진 프로세스에 매몰되어 기계적으로 일하는 환경이 계속된다면, 특히 전자적으로 기록이 생산·관리되는 시대에, 기록관리 프로세스는 AI로 대체될 수 있는 일에 가까워질 것입니다. 정해진 기준과 제한된 변수를 가지고 대량의 데이터를 처리하는 일은 기계가 더 잘하기 때문입니다. 그랬을 때, 우리는 우리의 전문성을 어떻게 주장할 수 있을까요? 프로세스도 중요하지만 우리가 기록전문가로서 어떠한 역할을 해야 전문성을 확보하고 살아남을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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