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꾸는 베스님의 글입니다.
"2024년 연말 잘 보내셨냐"는 인사와 "2025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인사가 무색할 정도로 혼란스럽고 또 슬픈 날들이 계속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25년 1월 1일자로 현장 업무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어 인수인계를 준비하면서 연말을 바쁘게 보냈다. 행정직들이 통상적으로 경험하는 과정들을 겪게 되면 자연스럽게 기록관리직과의 차이점과 공통점에 대해 생각하게 될 거라 기대하고 있다. 행정직들이 2~3년 단위로 경험하는 인사이동 프로세스를 나도 경험하면서, 인수인계 과정이 빈번하지 않은 기록관리 분야에도 반복 업무에 대한 정형화된 시스템이 구축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인수인계의 수준은 새로운 업무를 바로 시작해도 무리가 없을 정도의 폴더정리부터 컴퓨터 패스워드만을 인수인계 하는 상황까지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이렇게 다양한 인수인계를 경험하며 사람들이 매번 던지게 되는 원론적인 질문은 이런 게 아닐까?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인가 혹는 시스템이 하는 것인가?
답이 정해져 있지 않겠지만 업무와 케이스마다 다르고 절반 쯤에서 균형을 이루는 것이 이상적이지 않을까. 하지만 기록관리 분야는 사람 기반으로 운영되는 업무의 비중이 더 크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매뉴얼만 보면서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는 기록관리 업무 분야는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반적으로 행정직들이 인사이동 후 보통 1~2주, 길게는 한 달이 지나면 업무에 익숙하게 ”보일“ 수 있는 이유는 그 일이 사람 기반이 아니라 시스템 기반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새로 업무를 맡게 되면 발령 담당자는 업무관련 법령 체계를 공부하고, 운이 좋아 업무 매뉴얼이 존재한다면 매뉴얼을 숙지 한 후 바로 업무에 대입하여 추진을 해 나간다. 대부분의 업무들이 매뉴얼 또는 체계가 갖추어져 있으며 컨텐츠는 다를지 몰라도 일을 처리하는 프로세스가 거의 유사하기 때문에 잦은 인사발령에도 불구하고 큰 공백 없이 일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기록관리 업무는 그야말로 사람기반으로 이루어지는 업무이다. 물론 초기에 비해서 많이 발전되었다고 하지만 누가 하느냐에 따라서 그리고 업무 담당자가 자신의 열정을 얼마나 바쳤는지에 따라 그 결과는 천차만별이다. 열정은 양면의 속성을 갖고 있다. 타오르듯 번지는 불은 금방 식어버리기도 한다. 열정이라는 연료로 개인기를 발휘하며 수행하는 업무는 언젠가 지치기 마련이고, 지속가능성이 관건이 된다.
지금부터는 기록관리분야 전반의 실행과 관련하여 도움이 되는 시스템-체계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소위 '1세대 기록연구직'이 후배들과 업무를 인수인계 할 시간도 생각만큼 많이 남지 않았다. 각 기관별로 (거의) 한 명이 고군분투하며 경험한 노하우를 정리하고 활용할 수 있는 방안, 그 체계를 고민해야 한다. 당장의 문제가 아닌 미래를 대비하는 일이라 멀리 보며 준비해야 하는데 '기록관리 현장'에는 그런 여유가 없다. 시간을 내어 업무 시스템을 구축하자니 부담이 크고, 현실적으로는 기록관리 평가 지표 정비를 조심스럽게 제안하고 싶다. 즉, 기록관리 평가를 기관 줄 세우기가 아니라 모호한 평가기준의 정비, 기록관리 업무 체계의 실행 프레임을 만드는 방안으로 활용하면 어떨까?
기록관리 평가의 목적은 무엇인가?
기록관리 평가 시행 공문은 "공공기관 기록관리 역량강화 및 개선유도"의 목적으로 도착한다. 평가 초기에는 촘촘한 평가지표가 기관과 업무 관련자들의 관심과 참여를 유도하는데 일부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고, 평가의 목적에도 일정하게 부합했다. 하지만 안정적 기반을 마련한 중앙행정기관의 경우 개별 업무마다 공문으로 실적을 제출해야 하는 경직된 지표가 당초 평가의 취지와 어긋나는 것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한 현재의 지표는 기관의 특성이나 예산, 조직 규모 등의 차이를 반영하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평가의 책임은 오롯이 업무를 수행한 기록관리 전문가가 지게 되는 형태이다. 인력과 예산은 늘 부족하지만 충실히 업무를 수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기관 평가 결과가 개인 능력에 대한 평가로 이어지게 된다.
평가를 하는 국가기록원은 평가의 객관적인 지표로 공문을 선호할 수 밖에 없다. 그 점을 이해는 한다. 하지만 정보공개 영역과 비교하면 지표나 증빙 자료가 지나치게 많다. 정보공개 평가는 초기의 오류를 수정하며 지표가 대폭 수정되었다.
한편 현재 중앙행정기관의 점수 수준을 보면 기록관리 역량 강화와 관련된 실무 프로세스를 지표에 포함시키는 것이 타당한가 묻게 된다. 또한 매년 열심히 일하고도 평가 시즌이 오면 지나치게 세부적인 지표를 입력하면서 답답해지기도 한다. 거시적인 관점의 지표 개발이 필요한 시점이다. 그런 지표는 실무자에게도 업무에 대한 새로운 시선을 열어준다.
평가에는 다양한 관점이 존재하고, 객관성과 공정성은 늘 등장하는 '시비거리'일 수도 있다. 평가지표의 설계, 평가의 실행과 그 평가에 대한 평가(판단)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록관리 평가 지표는 지속적인 개선이 필요하다. 중앙기록물관리기관은 그것을 포기하면 안된다.
현 시점에서 내가 제안하고 싶은 개선방향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법적으로 수행해야 하는 이관, 정리, 평가심의회 등의 영역은 1점, 2점을 절차 하나별로 점수지표로 설정하지 말고 이관/정리/ 평가심의회 등 큰 카테고리 안에서 수행했을 경우 10점씩 주는 형식으로 수정하는 것이다. 이러면 세부적으로 불필요한 공문을 만들지 않아도 되고 법적으로 꼭 해야 하는 업무도 놓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우수사례 평가에서 자율성을 좀 더 인정해 주는 것이다. 현재는 첫 번째 영역과 겹치는 부분은 우수사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러다 보니 법적인 업무 프로세스와 관련해서도 기관의 특성상 개선이 필요한 부분에 대해서도 다른 우수사례를 발굴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실질적인 필요에 의해 개선할 수 있도록 우수사례의 영역을 제한하지 않았으면 한다. 즉, 법적 절차를 충실하게 수행하며 개선하는 것 또한 우수사례로 인정하는 것이 기록관리 시스템을 충실하게 구축해 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세 번째는 협업과제 영역을 도입하는 것이다. 혼자서 하는 일의 한계를 부쩍 절감한다. 기록물평가심의회의 민간위원들을 통해 자문을 얻기도 하지만 한계는 많다. 평가 범위에 협업과제 영역을 포함시켜서 국가기록원, 개별 공공기관 또는 연구기관, 대학과 함께 고민하고 실무의 문제를 풀어나간다면 관계는 넓어지고 새로운 협업, 협력의 경험을 갖게 될 것이다. 협업과제 또는 매뉴얼 공동 제작 등을 평가에 포함시킬 수 있는데, 1인 기록관리 체계에서는 어렵다. 효율적인 업무 수행과 공동체의 지식 수준 공유, 향상을 위해서는 반복업무의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매뉴얼을 만들어 일을 정규화하는게 필요하다. 경험과 노하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공유된다. 나는 이 과정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가끔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나면 이걸 기록으로 남겨서 이후에 참고하거나 누군가와 공유해야겠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다만 여유가 없어 기록으로 붙잡지 못한 경험은 증발하기 때문에 유사한 케이스가 생기면 또 그만큼의 노동력을 투입해야 하는 과정을 반복하기도 한다.
모든 업무는 나름의 애로사항을 갖고 있다. 내 일이라 더 크게 느껴지지만 기록관리는 공공의 영역에서 성과를 인정받거나 공감을 이끌어내기 참 어렵다. 대국민 서비스의 '탁월한 성취'는 애초에 어렵고, 다른 업무와의 연관성이 많지도 않아 정보 교류에서 소외되기도 한다. 기록관리 평가는 고단한 현장에서 내 실무를 돌아보고 성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그런 나름의 의미도 있다. 그래서 기록관리 평가는 더 개선될 필요가 있다.
칭찬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공허하고 의미없는 상찬은 덧없다. 국가기록원이 기록관리 평가를 깊이 고민하고 배려하면서 기록관리 평가가 본연의 목적을 충실히 이행할 수 있도록 더 노력하면 좋겠다. 덧붙이면 업무 노하우의 공유, 효율적인 기록업무 체계를 만들 수 있는 지표를 발굴하기를 바란다. 늘 국가기록원에 바라는게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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