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내 최대 관심사는 ‘1인 기록관을 벗어나기 위한 전략 설정’과 ‘일 잘하는 방법’이다. 얼핏 보면 두 주제가 동떨어져 보이지만 나름 관련이 있다. 일단 우리 기관에는 필자 혼자 기록물관리전문요원으로 근무 중이라 예산, 행정 등 기본 업무부터 전시실 운영, AM, RM 등 기록관리 고유의 영역까지 도맡아 한다. 대학에서 근무하다 보니까 학생 관리, 행사 등 부수적인 업무도 많다. 매일이 시간관리와 생산성 향상과의 싸움이다. 월급 루팡의 세계는 꿈도 꾸지 못한다.
어차피 당장 1인 기록관을 벗어나기 힘든데 적당히 일하며 워라밸을 챙기자는 마음과,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며 시간과 체력으로 밀어붙이자는 마음 사이에서 오랜 시간 고민해왔다. 이제는 둘 다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는 걸 안다. 물론 연차와 직급이 상대적으로 낮아 스스로 미숙하거나, 내게 몰리는 일들은 정규 근무시간 외 시간을 투자하는 성실함(또는 노예력…)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시간외근무가 과도해서도 안된다. 1인 가구인 내가 없으면 우리 집이 무너지듯 1인 기록관은 나 한 사람 없어도 위태롭기에 나의 안위는 스스로 지켜야 한다.
몇 년 동안 예산팀을 설득한 끝에 드디어 분류체계 예산을 따냈고, 기록관리시스템 자체개발을 시작한 건 큰 성과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올해는 또 얼마나 바쁠까 두려운 마음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업무량이 과도하다며 경영진에 인력 충원을 어필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더 무리해 열심히 일함으로써 기록관리의 필요성을 증명해야 하는 현실이 야속하다. 업무적인 고민을 나눌 딱 한 명의 동료만 있어도 얼마나 행복할까. 풀리지 않는 문제를 혼자 끙끙 앓다가 집에 와서도 회사의 잔상이 떠나지 않아 잠을 설치는 날도 종종 있었다.
1인 기록관이기에 일을 더욱 잘해야 하고, 일을 잘해서 기록관리의 가치를 증명해야 기록관이 조직 내에서 제대로 자리를 잡을 수 있다는 압박감과 함께 살아가는 것 같다. 물론 머리로는 알고 있다. 일을 잘하는 것이 기록관 인력 충원, 인식 제고에 유일한 요소가 아니며, 그보다는 경영진의 인식과 의사결정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 부분은 당장 내가 어찌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내 존재를 잊을 만하면 찾아가 주기적으로 잽을 날려야 겠지만,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할 일을 묵묵히 해내는 것 뿐이다.
마침 인사팀에서 내부 교육(강의)을 진행해준 직원들을 대상으로 1인당 도서구입비 10만 원을 지원해줬다. 인사팀에서 직접 도서를 주문하고 수령한 뒤 각 부서에 전달해주는 방식이라, 이왕 회사에서 구입해주는 책이니 나의 업무력 향상에 도움이 될 만한 실용서들 위주로 골랐다. 그중에서도 맥킨지 컨설턴트 출신인 김재성 작가가 쓴 <슈퍼업무력 ARTS>이라는 최근 책을 재밌게 읽었다. 특히 사회초년생 기록인들, 나처럼 일을 잘하는 방법을 늘 고민하는 기록인들에게 추천한다. 읽은 내용을 소화할 겸 주요한 내용을 간추려 정리하였다.
우선 이 책의 제목이 왜 <슈퍼업무력 ARTS>인지 궁금할 것이다. 일단 저자는 일을 이성적 영역(전략, 전술, 업무 스킬 등) 과 감성적 영역(관계, 태도)으로 분리한다. ARTS는 바로 일의 이성적 영역과 감성적 영역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으로, ARTS는 각각 Attitude(태도), Relationship(관계), Tactics(전략, 전술), Skills(스킬)을 의미한다. 이 네 가지 키워드를 이성적 영역, 감성적 영역으로 분류하여 도식화하면 아래 그림과 같다. 저자는 이 네 가지 영역을 균형있게 발전시킬 수 있는 실제적인 팁들을 제시한다. 영역별로 기억해두면 좋을 내용들을 요약하여 정리하였으니 각자의 상황과 비교해보고 놓치고 있는 부분은 없는지 진단해보자!
1. Attitude: 태도가 당신의 조직과 성패를 가른다
▪️관련 실적·경험이 없거나 적을수록, 직급이 낮을수록 태도가 중요하다.
▪️압도적으로 성과를 낼 자신이 없다면 열심히 하자. 열심히 하는 태도는 적어도 손해를 보게 하지는 않는다.
▪️콜센터에서 일하는 마케터를 생각해보자. 하루 열 통의 전화만 돌리는 사람의 계약 성사 건수가 많을까, 하루 백 통의 전화를 돌리는 사람의 계약 성사 건수가 많을까? 적극적인 태도는 보다 많은 기회를 접할 수 있어 자연스레 성공하는 절대량을 늘리는 데 도움을 준다.
▪️태도의 대상은 일 자체여야 한다. 직장 상사나 고객을 태도의 대상으로 삼지 말자.
▪️일에는 감정을 섞을 필요가 없다. 어떤 이슈가 발생했을 때 불필요한 감정과 짜증보다는 마치 게임의 퀘스트를 깨듯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하라.
▪️‘일을 한다’는 마음가짐보다는 ‘문제를 해결한다’고 생각하라.
▪️명확성: 내가 이해하고 있는 상황과 다른 사람이 이해하고 있는 상황이 일치하는지 확인하고, 공통으로 사용되는 용어를 사용해라. (대화를 나눌 때 각자 사용하는 용어와 개념에 차이가 없는지 확인해라.)
▪️일관성: 관리자의 경우 일의 디테일보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방향성은 일관성있게 하라.
▪️기록성: 우리가 하는 일은 언제나 복기 가능하도록 사안이 발생한 즉시 기록하라.
▪️신속성: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지 말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라고 판단되면 나보다 능력이 뛰어난 주변의 동료나 상사에게 재빨리 알려라.
▪️협업성: ‘나의 일’이 아니라 ‘우리 일’이다. 회사는 공동의 목표를 효율적으로 이루기 위한 집단이지, 책임을 미루기 위해 모인 집단이 아니다.
▪️워라밸을 따질 때도 주어진 업무의 결과를 낸 이후에나 말할 수 있다.
2. Relationship : 관계가 당신을 위대하게 만든다
▪️천재로 알려진 스티브 잡스도 다른 똑똑한 사람(스티브 워즈니악)과 일하면서 애플을 개발했다. 아무리 뛰어난 개인도 갖추고 있는 능력치에는 한계가 있고, 체력이나 물리적 시간에도 제약이 따른다.
▪️직장 선배는 부모나 학교 선배, 또는 선생님이 아니다. “이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해요?”라고 묻는 것보다 “이 문제는 A와 B의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 혹시 더 좋은 방법이나 제가 놓친 부분이 있을까요?”라고 물어라.
▪️나이가 많다고 후배에게 말을 놓지 말아라. 상대방이 먼저 “말 편하게 하세요”라고 이야기하면 그때부터 말을 편하게 할지 고민해라. 후배가 “당신은 나를 편하게 대해도 좋아요”라고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이지, 나이가 많다고 누군가를 편하게 대할 권리는 없다.
▪️권위를 가진 사람이 지켜야 할 일은 권한을 넘는 일을 상대방에게 요구하지 않는 것이다.
▪️요즘 젊은 세대가 자기주장이 강하다는 말은 크나큰 오해 중 하나다. 젊은 세대는 과거 세대와 비교해 기질이 달라진 게 아니다. 단지 ‘이 상황을 부당하다’고 느끼는 것이 나만의 생각이 아님을 다양한 소스로부터 확인했으니 더 당당하게 말할 뿐이다.
▪️갈등 초기: 함께 일하면서 어려움을 느끼는 요소에 대해 솔직히 말하고, 나 역시 상대방의 불편한 점이나 견해를 확인한 후 개선을 위해 노력한다.
▪️갈등 중기: 솔직한 대화로도 갈등이 풀리지 않을 경우 갈등 당사자들보다 직급이 높거나 권한이 많은 사람을 중재자로 찾는다.
▪️심각한 갈등: 조직을 옮기는 일을 고려한다. 당신은 가치 없고 보잘것없는 사람이 아니다. 우리는 일을 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지, 인권을 침해받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 아니다.
▪️퇴사할 때는 은혜를 입은 사람들에게 회사 생활을 하면서 감사했던 점과 앞으로 하게 될 일을 메일로 남기고, 개인적으로 연락할 수 있는 이메일 주소와 휴대폰 번호를 남긴다. 마지막까지 좋은 인상을 남기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다.
3. Tactics: 계획 없이 승리하는 전쟁은 없다
▪️나는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과 시스템을 만드는 사람 중 어느 쪽인가? 문제 해결사는 특정 부분이 아플 때 고쳐주는 의사와 같은 역할을 수행한다면, 시스템 설계자는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벽돌을 하나하나 꼼꼼하게 쌓아나가는 건축가와 같다.
▪️당신은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인가, 스페셜리스트(Specialist)인가? 제너럴리스트라면 ‘기능 전문성(Functional specialty)’에 집중하면서 일하고, 스페셜리스트라면 특정 ‘산업에 대한 전문성(Industry specialty)’을 갖고 일하라.
▪️안정적이면서 많은 부를 가져다주고 적게 일하고 늘 정시 퇴근하며 해고될 걱정도 전혀 없는 직장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파르지만 달콤한 보상이 따르는 길을 원하는지, 완만하지만 상대적으로 보상이 적은 길을 원하는지 선택해라.
▪️일할 때 가설을 먼저 세우고 이후 가설을 검증하는 방식으로 수행해라. 가설을 검증하는 단계에서 어려움이 있으면 전문가에게 도움을 청하라.
▪️내 일에 전문성을 갖추고 있는 상태에서 다른 동일 직급 업무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개략적으로 파악하라. 더 가능하다면 사원이라면 대리처럼, 대리라면 과장처럼, 과장이라면 부장처럼, 부장이라면 임원처럼 생각해라.
▪️역설적이게도 전략의 핵심은 전략이 아니라 실행에 있다. 완벽한 전략이 아니더라도 계획을 세웠으면 일단 실행하고, 문제가 발견되면 수정하자.
4. Skills: 숲을 위해 한 그루 나무가 소중하다
▪️스킬에는 근본 스킬(Core skills), 기능 스킬(Functional skills), 산업 스킬(Industrial skills), 행정 스킬(Administrational skills)이 있다.
▪️전체를 아우르는 스킬은 근본 스킬이다. 커뮤니케이션 능력, 프레젠테이션 능력 등 산업, 직급, 일하는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공통으로 필요한 스킬을 먼저 키워라. 본인의 가치를 더 높이고, 비슷한 수준의 기능/산업 스킬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돋보이기 위한 기술이다.
▪️일할 때 효율만을 따지지 말고 특히 사회 초년생이라면 절대 시간을 더 투자하라.
▪️멀티태스킹은 없다. 한 번에 하나의 일만 처리하라.
▪️상사에게 보고할 때는 두괄식으로 말하라. 즉, 결론부터 말하라.
▪️어떤 일에 근거를 댈 때 최소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하라.
▪️성과를 말할 때는 애매모호하거나 불필요한 수식어를 줄이고 숫자로 표현하라.
▪️회의할 때는 한 가지 주제를 반드시 완결한 후 다음 주제로 넘어가라.
▪️일과 관련된 대화를 종료할 때 3W(누가(Who), 무엇을(What), 언제까지(Until When)를 반드시 확인해라.
▪️회의 시간·장소·주제는 미리 공유하고, 자료는 회의 시작 한 시간 전에 미리 공유한다. 필요한 사람만 참석하고, 정해진 주제만 회의하며, 마감 시간을 정해놓고 회의한다.
▪️할 일 목록을 작성할 때는 ‘당일 반드시 끝낼 업무’와 그날 꼭 할 필요 없는 일을 구분하라.
▪️할 일 목록에는 ‘할 일’이 아닌, 일을 한 후 도출되는 ‘결과물’을 적는다. 단순히 뭐라도 했다는 만족감으로는 일을 완결할 수 없다. 일을 했다면 ‘결과물’이 나와야 한다.
▪️일을 위임할 때는 한두 번의 인수인계로 일을 통째로 부담시키는 것이 아니라, 단계적으로 위임해라. (기본 교육 실시-일의 일부 위임-미팅 및 인터뷰 동만 참석-위임하는 일의 양 증대-질의응답을 통한 최종 위임)
우리는 조직 내에서 특수한 업무를 맡고 있지만, 일의 문법은 기본적으로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어떤 작은 일도 나 혼자 기획, 검토, 결재, 실행, 보고, 피드백까지 모든 것을 처리하는 일은 없지 않은가. 저자가 말한 것처럼 기록학과 기록관리에 대한 산업 스킬(Industrial skills)도 중요하지만, 어딘가 2% 부족한 느낌이 든다면 해답은 다른 곳에 있을지도 모른다. 꾸준히 다른 분야의 전문가가 쓴 책을 읽고, 가끔씩은 기록학 담장 바깥 영역을 내다보아야 하는 이유다.
세상에 완벽한 직장은 존재하지 않으므로, 이곳이 아니었더라도 나는 아마 또다른 불만을 품었을 것이다. 심각한 불합리함을 버티면서 회사를 다닐 필요는 없지만, 당장 이직이나 퇴사를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면 조금은 정신승리로 버티면서, 주어진 조건에서 열심히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무엇보다도 나의 능력을 높이면 그 보상은 회사보다는 나에게 더 크게 돌아올 것이기에. 새해에는 일잘러 기록인으로 거듭나 보아야겠다!
의견을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