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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 작품 속에서 발견한 아카이브

미디어에서 아카이브는 어떻게 비춰질까?

2024.05.18 | 조회 70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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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가끔 영화나 드라마, 애니메이션 등에서 아카이브가 언급되거나, 기록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눈과 귀가 번쩍 뜨이는 거 저만 그런거 아니죠? 오늘은 작품 속에서 기록과 아카이브가 어떻게 비춰지는지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재밌는 작품들이니 한번 찾아보셔도 좋아요^^

 

1. [영화]타인의 삶(2006, 독일)

공식 포스터
공식 포스터

줄거리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 5년 전, 비밀경찰 비즐러는 동독 최고의 극작가 드라이만과 그의 애인이자 인기 여배우 크리스타를 도청 감시하는 임무를 맡습니다. 그러나 도청 과정에서 비즐러는 드라이만과 크리스타의 삶에 감동 받고 나중에는 드라이만이 동독의 인권에 대한 글을 작성하는 데 사용한 보안용 타자기를 직접 숨겨주기까지 합니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고 몇 년 뒤 자신도 감시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드라이만은 슈타지문서관리청(BStU)에 찾아가 자신에 대한 도청 보고서 내용을 보고 비즐러(요원명 HGW/XX7)의 존재와 그가 자신을 보호했음을 알게 됩니다.

슈타지문서관리청(BStU) http://www.stasi-mediathek.de

슈타지문서관리청에서 자신의 도청 보고서를 보고 있는 주인공 드라이만
슈타지문서관리청에서 자신의 도청 보고서를 보고 있는 주인공 드라이만

슈타지는 동독에서 반체제 인사 감시 및 탄압, 국경 경비, 해외정보 수집, 대외 공작 등을 주 임무로 하여 활동한 기관이었어요. 1989년 말 기준 공작원 8만5천명, 비정규 정보원 10만9천명, 그밖에 50여만명의 각종 정보제공자를 고용 또는 포섭해 전국민 감시체제 가동했는데, 내 가족, 이웃, 친구 중에 정보원이 있었던 셈입니다. 그래서 이 기록이 공개된 후에 이혼하는 부부가 많았다는 놀라운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통일을 앞두고 일부 폐기된 기록물이 있지만 동독 시민들이 기록물 파기를 막기 위해 슈타지 부서를 점령함으로써 다량의 기록물이 보존되었다고 합니다. 뼈아픈 역사를 증거하는 기록물이 시민들에 의해서 남겨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영화]에린 브로코비치(2000, 미국)

공식 포스터
공식 포스터

줄거리

경력 단절 여성인 에린은 본인의 교통사고를 통해 알게 된 변호사 사무실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어느 날 서류 더미 속에서 이상한 의료 기록을 발견하고 대기업 PG&E의 공장에서 유출하는 성분이 수질을 오염시켜 힝클리 마을 사람들을 병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에린은 600명 이상의 마을 주민과 대기업을 상대로 엄청난 소송을 시작하고 결국 보상하라는 대법원의 판결을 받게 됩니다. 이 영화는 실화를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입니다.

수도국 자료실

에린이 수도국 자료실에 직접 들어가 자료를 찾아내는 장면
에린이 수도국 자료실에 직접 들어가 자료를 찾아내는 장면
직원은 복사를 저지하지만 에린은 공공 기록을 열람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한다.(좌) 서류를 폐기하지 않은 직원이 진술하는 장면(우)
직원은 복사를 저지하지만 에린은 공공 기록을 열람할 권리에 대해 이야기 한다.(좌) 서류를 폐기하지 않은 직원이 진술하는 장면(우)

에린은 대기업의 불법 오염물질 유출의 증거를 찾기 위해 수도국 자료실을 찾았으나, 자료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로 쌓여 있어 직접 뒤지며 관련 자료를 찾습니다. 수도국에서 자료 복사를 제한하려고 하지만 이 자료들이 공공 기록물이며 열람권이 있다는 것을 주장하며 복사를 끝까지 해 중요한 문서를 획득합니다.

숨겨져 있던 기록물 획득

이 사건의 재판에서 승소할 수 있었던 결정적 증거는 그 공장에서 일하던 직원이 가지고 있던 기록이었습니다. 유해물질 불법 유출과 관련한 기록을 폐기하라는 명령을 받은 한 공장 직원은 그 기록물을 폐기하지 않고 몰래 가지고 있었다고 해요. 우리나라의 예술가 블랙리스트 사건이 드러난 사례와 비슷한 상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기록물 폐기 명령에 소속된 개인의 어려운 결단이 있었으리라 생각됩니다.

 

3. [소설]다윈 영의 악의 기원(2016, 박지리, 사계절)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책 표지
<다윈 영의 악의 기원> 책 표지

줄거리

제이, 니스, 버즈는 16살 삼총사였으나 어느 날 밤, 제이가 하위 지구에서 일어난 ‘12월 폭동’의 선동대 후디에게 살해되면서 모두의 운명이 뒤바뀝니다. 30년 후, 상위 1지구 엘리트 학교 프라임스쿨을 다니며 모두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우등생 다윈은 아버지 니스의 절친한 친구였던 제이의 추도식에서 제이의 조카 루미와 만나고, 둘은 미제 사건으로 남은 제이의 죽음을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국립 기록물 보관소

내용 중 다윈과 루미가 제이의 죽음과 관련한 자료를 찾기 위해 '국립 기록물 보관소'를 찾아갑니다. 소설에서는 국립 기록물 보관소를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화거리에 있긴 했지만, 사람들에게 인기있는 기관이 아닌 데다 후미진 곳에 위치해 찾아가는 길이 한산했다

몇 페이지였더라?

이들은 기록물 열람 PC를 통해 ‘12월 폭동’과 관련한 사진 기록물에서 자신들이 만났던 의문 속 인물의 실체를 확인하게 됩니다. 이 책을 유작으로 남기고 떠난 박지리 소설가가 아카이브를 어떻게 접하고 자료 조사를 했는지 궁금했지만 더 알 수가 없어 아쉽네요. 인기 없고, 후미진 곳에 있지만 중요한 기록을 찾을 수 있는 곳. 청소년 아이들이 이곳을 찾아갔다는 설정도 재밌었는데요, 청소년 독자들이 이 책을 읽고 아카이브를 어떻게 생각하게 됐을까 궁금하기도 합니다. 청소년 이용자가 늘었을까요? 일단 이 책을 읽어야....

 

4. [드라마]무인도의 디바(2023, tvN)

공식 포스터
공식 포스터

줄거리

15년 만에 무인도에서 구조된 가수 지망생 서목하의 디바 도전기를 담은 12부작 드라마입니다. 

아카이브가 쓰레기통? 시궁창?

9화에 아카이브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요. 여기서는 의미가 이상합니다. 주인공 서목하는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계약을 하게 되는데, 회사는 새로운 곡을 주지 않고, 아카이브에 있는 곡에서 쇼케이스 무대 곡을 고르라는 제안을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런 대사가 나옵니다.

시궁창 같은 작곡가의 대사 
시궁창 같은 작곡가의 대사 

야 너 정신차려. 그 아카이브 그거 쓰레기통이야. 다른 가수들 줬다가 버려진 곡들 모아 놓은 시궁창 거기서 노래 고르란 소리는 너도 별 볼 일 없다는 얘기고 얘나 나나 너나 그냥 다 그냥 다 시궁창이라고, 알아?

<무인도의 디바> 9화 중

이게 무슨 소리인가요? 우리는 아카이브가 영구적으로 보존해야할 가치를 가진 기록으로 배웠는데, 쓰레기통, 시궁창이라니요! 진정 이 업계에서는 아카이브라는 단어를 이렇게 쓰고 있는지 무척 궁금한데 누구한테 물어봐야 하나요? 하이브, YG, SM... 제보 바랍니다.

애니웨이, 주인공 서목하는 아카이브에 있는 곡을 하나하나 들으며 이것은 쓰레기통, 시궁창이 아니라 보물 창고라며 긍정 마인드로 곡을 하나 정하고 편곡하여 성공적으로 쇼케이스를 마치게 됩니다.

 

5. [애니메이션]오오쿠(2023, Netflix)

공식 포스터
공식 포스터

줄거리

청년이 되면 죽는 병이 남성들에게만 전염되어 남성이 여성의 1/4 수준으로 남게된 세계에서 여성이 쇼군(일본의 무사 정권인 막부의 우두머리)이 되는 시대가 열립니다. 오오쿠는 쇼군을 섬기는 남성들을 모아 놓은 공간입니다. 새로 즉위한 쇼군 이에츠구는 여성이지만 공식적으로는 남성의 이름을 써야 하고, 쇼군과 처음 잠자리를 하는 오오쿠 남성은 처형 해야 하는 등 이유를 알 수 없는 오오쿠의 전통에 의문을 품습니다. 그 기원을 찾기 위해 오오쿠의 비망록을 적는 이를 찾아 '몰일록'이라는 책을 펼치며 대서사극이 시작됩니다.

몰일록

몰일록을 발견하는 쇼군
몰일록을 발견하는 쇼군

'몰일록'은 남성이 사라져 나라가 망해가는 과정을 기록으로 남기라는 카스가노 츠보네의 유언으로 작성되었는데, 카스가노 츠보네는 첫 여성 쇼군의 유모이자 평생 쇼군을 보좌했던 이로 이 애니메이션의 배경에서 이루어지는 전통들을 만든 장본인입니다. 현재의 불합리한 전통의 기원을 과거의 역사에서 찾으려고 하는 쇼군의 행보가 흥미진진했는데요, 기록을 찾기 위해 찾아간 공간 묘사도 재밌습니다. 책들이 쌓인 어두운 공간을 한 노인이 글을 쓰며 지키고 있는데요. 쇼군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렸다며 몰일록을 건넵니다.

한편으로는 우리는 무엇을 위해 기록을 하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지역의 역사를 재발견하고 숨겨진 이야기를 찾아내는 게 어떤 의미를 지닐까요? 도시재생사업 등에서는 기록을 지역 활성화를 위한 문화 자원으로 활용한다는 목적을 내거는 경우가 많은데요. 지방 소멸 시대에 과연 그것이 가능할까 의문이 드는 요즘입니다. 소멸해 가는 것도 기록하는 것. 오오쿠 애니메이션에서도 많은 시간이 지났지만 나라가 망하지는 않았어요. 소멸했을 경우, 기대(?)와는 달리 소멸하지 않았을 경우에도 소수의 인원으로라도 살아가는 인류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만한 경험을 전달하며 삶을 이어가는 힘과 지혜를 건네는 것이 기록의 소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이와 관련한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글을 써볼까 합니다.

이렇게 다섯 개의 작품을 살펴보았습니다. 여러분이 발견한 미디어 작품 속 아카이브가 있다면 댓글로 추천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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