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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이브는 정치를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

- 대한민국 4월, 호명된 아카이브 -

2024.05.17 | 조회 6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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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Y.J

기록을 다루는 일을 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많은 경우 기관 내 비주류로 일해야 한다는 한계로 인해 비관이 일상적인 것이 현실입니다. 예컨대 초콜릿을 만드는 공장에서는 원료인 카카오와 그것을 가공한 제품을 만들고 판매하는 일을 해야 대접을 받는데, 노하우가 적힌 매뉴얼과 같은 기록물은 결국 필요할 때만 꺼내 쓰는 존재이다보니 가치가 있다고 해도 늘상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기 마련입니다.

그에 비해 기록과 기억, 아카이브와 같이 '우리에게 친숙한' 이 존재들은 어느새 사회적으로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사실 그 '존재'들은 전용(專用)되지 않을 수록 좋은 일이죠. 모두에게 미치는 것. 기록을 직업삼아 하는 이들이 궁극적으로 바라는 일입니다. 이처럼 기록을 전문적이고 기술적으로 다루는 우리의 일은 여러 의미와 목적을 두고 다양한 영역에서 필요성이 거론되고 있습니다.

기록의 필요성은 특히 사회적 또는 조직적으로 커다란 사건이 발생할 때 두드러집니다. 이 때문에 우리는 그러한 필요에 충족할 준비를 단단히 하고 있어야만 돋보입니다.

물론 우리는 아카이브가 특별한 순간만이 아니라 흐르는 시간 속에서 삶과 사회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습니다.

지난 4월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군 국회의원 선거가 그 사례입니다.

무릇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거는 가장 중요한 제도 중 하나이지만 그 한계 또한 명확합니다. 투표를 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10분이고 선택 이후의 영향은 훨씬 더 긴 시간이 따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후보로 나선 이들의 정견과 사상을 잘 검증해야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선거에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습니다. 각 정당이 후보를 정하는 과정에서 이미 후보로 정해진 이들이 과거의 언행으로 공천이 취소되거나, 공천을 취소하라는 요구가 생겼던 것입니다.

더불어민주당의 정봉주 전 의원, 조수진 변호사, 국민의 힘의 장예찬 전 최고위원, 도태우 변호사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이후 존칭 생략). 정봉주는 2017년 자신의 개인방송에서 2015년 8월 파주시 DMZ 수색작전 중 목함지뢰 폭발로 다리를 잃은 군 장병을 염두에 둔 '목발 경품' 발언과 관련된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되었습니다. 조수진은 (이후 다수의 정정보도를 통해 제기된 논란이 해명되었으나) 과거 초등학생 성폭행 가해자 변호를 맡은 일과 관련된 논란으로 공천이 취소되었습니다. 

장예찬은 적지않은 막말을 소셜네트워크에 쏟아낸 과거 전력으로, 도태우는 5.18 폄훼발언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한편 결국 신승(辛承)을 했지만 역사학자인 김준혁 후보(현, 당선인)는 김활란 이화여대 초대학장의 친일행적 논란을 성적(性的) 쟁점으로 주장했던 과거 발언으로 역시 논란이 일었습니다.

이들의 발언은 짧게는 몇 년 전 길게는 십수 년 전에 했던 말 또는 글, 소셜네트워크에 올린 글 등 공개적으로 했던 말들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정치인들이 각자의 '시민'들에게 듣기 좋은 말들을 쏟아내는 선거 시기에 수년 전의 행적으로 어렵게 얻은 후보자리에서 낙마하는 일들이 벌어진 것입니다.

이때, 방송에서는 '디지털 아카이브'라는 익숙한 단어가 등장했습니다.1) 이들의 언행과 역사가 담겨(아카이빙) 있는 아카이브를 통해 시간을 넘어서 '들통'이 난 것이지요.

이와 같은 맥락에서 대중적으로 등장하는 아카이브라는 말은 반드시 검색과 활용, 보존의 측면에서 기능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전문적 분야에서 알고 있는 형태를 갖춘 아카이브는 아닐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정치ㆍ사회적으로 가장 첨예한 시기를 맞아 아카이브는 어쩌면 가장 정확하게 호명되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아카이브의 정의 처럼 축적되어 있으므로 쓰일 준비가 되어 있고, 권력을 감시하며 권리를 보호하는 데 적극적으로 쓰인 셈입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천 속에서 그것이 폭넓게 쓰인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이번 총선 시기를 예시로 한 만큼 건강하지 못한 공격과 논쟁으로 확장된 점도 분명히 있겠지만, 어쩌면 이조차도 아카이브의 본질적 특성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록이 세상을 좀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요? 기록이 세상을 나아지게 하고자 하는 '정치'에 도움이 되느냐고 묻는다면, 여러 사례를 통해 그렇다고 답변할 수 있겠습니다.

한 개인 정치인의 과거 발언과 행동이 어쩌면 그저 눈살 찌푸리게 하는 뉴스의 소재가 될지 모르지만, 이들이 탄로났던 지점들을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하지 말아야 할 언행이 사회적으로 어떤 파장을 미치고 또 무엇을 반영하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정치적 견해와 개인의 의도를 떠나 국가에 헌신하던 사병들을 조롱하거나 가해자의 변호 받을 권리와 무관하게 잘못된 방식으로 가해자를 변호하면서 제2, 제3의 피해를 낳게 되는 일, 5.18 민주화운동을 왜곡하고, 혐오하는 발언들 …

이는 표현의 자유와는 아무 관계가 없고 누군가를 혐오하는 것입니다.2) 오로지 얻고자 하는 바를 위해 미움의 프레임 속에서 그야말로 '잘못'을 양산하는 것입니다.

5.18민주화운동 속 국가폭력의 피해자, 여성, 장애인, 특정 인종을 비하하고 폄하하는 발언들을 제재하는 제도와 법의 부재는 논외로 치더라도2) 이같은 발언과 표현이 심각한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게 하는 데 아카이브는 분명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다만, 아카이브가 힘을 갖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것이 잘 작동할 수 있도록 해야합니다. 그리고 기록을 다루는 일을 하는 이들이 해야 하는 실천적 역할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아카이브와 그것을 다루는 이들은 정견과 입장, 대안을 둘러싸고 활발한 토론을 통해 더나은 정치를 구현할 수 있게 하는 데 기여합니다.

그래서 필자는 설령 때때로 일상적으로 느끼는 직업적 비관에 빠져듦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는 태도를 가질 때, 아카이브가 사회를 나아지게 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1) 김현정의 뉴스쇼, 2024년 3월 15일자 방송 (https://www.cbs.co.kr/board/view/cbs_P000246_interview?no=168571)

2) “현재 한국에는 혐오표현을 명시적으로 금지하는 법률이 없으며, 집단에 대한 명예훼손죄도 인정하고 있지 않음으로 인하여 이를 통한 혐오표현의 간접적 통제도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는 한국 정부가 유보없이 가입하고 있는 유엔의 『시민적 · 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협약(International Covenant on Civil and Political Rights)』제20조 제2항에 규정된 “차별, 적대감 및 폭력을 선동하는 국적, 인종 또는 종교에 대한 증오의 옹호(advocacy)”를 법으로 금지할 의무를 이행하고 있지 않은 것이다. 한편 독일을 비롯한 영국, 캐나다, 호주, 프랑스 등 주요한 ICCPR 체약국들은 일정한 유형의 표현을 소위 “혐오표현(hate speech)”이라고 하여 형사처벌하는 입법례를 두고 있다.”(박지원(2016), 혐오표현의 제재 입법에 관한 소고, 미국헌법연구, 27(3), 103-136.)

3) “이성으로 비관하더라도, 의지로 낙관하라(I’m a pessimist because of intelligence, but an optimist because of will)”, (안토니오 그람시의 ‘감옥에서 보낸 편지’(in a letter from prison)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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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헤드라이너

    0
    7 months 전

    작성하신 내용 중 조수진 변호사 사례는 본문에 기재하신 '과거의 언행으로 공천이 취소되거나, 공천을 취소하라는 요구가 생겼던 것'으로는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글쓴이께서 "조수진은 인권변호사로 자신을 소개한 것과는 달리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의 가해자를 변호하는 과정에서 2차 가해 등의 논란을 빚으면서 공천이 취소"되었다는 내용으로 작성하셨는데, 이에 근거가 되는언론보도는 오보였습니다.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2024년 5월 3일 기준, 이투데이, 뉴스워커, 서울경제, 아주경제, 매일경제, 아시아투데이, 뉴시스, 경향신문, 서울신문, 세계일보에서 정정보도문을 게재했습니다. 참고로 해당 재판에 피해자를 2차 가해했다는 것은 1심 재판의 변호사였고, 조수진 변호사는 2심 재판을 담당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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