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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와 기억, 그리고 기록하기

2024.08.26 | 조회 6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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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과 사회

기록에 대한 모든 이야기

참사의 기억은 강력하다.

나에게는 2014416일 세월호 참사의 기억이 그랬다. 실시간으로 보도되는 세월호 침몰 상황을 지켜보며 숨이 막힐 듯한 답답함을 견디기 힘들었고, 이제 막 말을 배우기 시작한 아이를 바라보며 안도와 슬픔이 교차된 깊은 우울감을 꽤 오랜 시간 경험해야 했다(물론 지금도 4월은 아프다).

세월호 참사 이후 10, 누군가는 애도에 유통기한이 있기라도 한 듯 이제 지겹지 않냐며 잊을 것을 강요하기도 한다. 그러나 304명이 우리 곁을 떠난 뒤 열 번의 봄을 맞이하는 동안 우리 사회는 얼마나 달라졌고, 얼마나 더 성숙해졌느냐는 질문에 자신있게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 있는 간 큰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동안 세 번의 특별조사위원회 꾸려져 진상규명에 나섰지만 여전히 그날의 진실은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고, 스텔라데이지호 침몰사고, 오송지하차도 등의 참사가 이어지며 우리 사회는 아직도 안전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오고 있다.

그리고 여기 또 하나의 참사가 있다. 20221029일 핼러윈 축제가 열리던 서울 이태원의 좁은 골목길에서 불꽃 같던 159명의 삶이 강제 종료되었다. 누구는 놀러 가서 죽었는데... 왜?”, “나라 구하다 죽었냐?”며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벌어진 전대미문의 참사에 대한 책임을 희생자에 떠넘기기 급급했다.

그런데 이런 분위기 속에서도 사회적 참사에는 사회적 애도가 필요하다며 이태원 기억 담기'에 나선 이들이 있었다. 인권활동가, 연구자, 시인, 음악가, 대학생, 다큐멘터리 감독, 문화공간 운영자, 고등학교 교사 등의 자발적 참여자로 구성된 기록보존활동팀은 참사 이후부터 현재까지 이태원역 1번출구, 시청앞 시민분향소, 기억소통공간 별들의집에 남겨진 시민들의 추모 메시지를 기록·보존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왔다. 이태원 참사와 관련된 장소가 슬픔의 공간으로만 남겨지는 것이 아닌, 참사에 대한 기억을 통해 좀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행동이었다.

이렇듯 그동안 이태원 기억 담기활동이 추모 메시지를 기록·보존하고 것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면, 지난 2024년 5월 2일 10.29 이태원 참사 피해자 권리보장과 진상규명 및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법(이하 “10.29 이태원 특별법”) 통과 이후 10.29 이태원 참사는 새로운 기록관리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이제 얼마 후면 10.29 이태원 특별법에 따라, 참사의 발생 원인과 책임소재 등에 관한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10.29 이태원 참사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이하 이태원 특조위”)가 출범하게 된다. 이태원 특조위는 특별법에 의해 설립되는 한시(폐지)기관으로, 한시기관의 기록물은 공공기록물법 제25(폐지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따라, 공공기관이 폐지된 경우 그 사무를 승계하는 기관이 없을 때는 관할 영구기록물관리기관으로 이관하도록 되어 있다. 국가기록원이 한시 및 폐지기관 기록관리라는 행정규칙을 통해 한시기관의 기록관리에 대한 전반적인 사항을 안내하고 있지만, 대상기관이 한시기관일 뿐 한시기관의 특성을 고려한 기록관리 방법은 제시되지 않고 있다. 특히 현행 법제가 참사관련자료의 보존과 활용에 관한 구체적 내용을 특별히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특조위와 같은 조사중심의 한시기관에서 생산, 접수된 기록을 추가 진상조사 및 피해지원 등을 위해 지속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사실상 어려운 현실인 것이다.

다행히 세월호 특조위 자료기록단의 경우, ‘자료기록단에서 수집한 자료는 추모 관련 시설에 보관·전시한다는 규정(세월호진상규명법 제48)를 두어 국가기록원 외 시설에서의 활용 가능성을 열어 놓았고, 10.29 이태원 특별법에서도 10.29 이태원 참사 자료가 관련 추모사업에 활용될 수 있도록 자료의 사본을 추모시설에 송부하도록 규정(10.29 이태원 특별법 제48)하고 있다. 가습기살균제사건 및 4·16 세월호 참사 등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의 활동 종료 후에도 참사관련 기록이 제대로 보존되어야 하고, 또 제대로 활용될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과 요구가 확대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물론 추모시설이 기록관은 아니기 때문에 참사 기록에 대한 보존, 접근, 열람에 있어 한계가 있지만 사회적 참사 관련 특별법에 자료기록단, 추모시설 등의 규정이 자연스럽게 반영되고 있는 것은 선배 기록전문가들의 앞선 고민과 헌신의 결과이기도 하다.

ICA <인권 옹호를 위한 아키비스트와 기록관리자의 역할에 관한 기본 원칙>에서는 기관, 아키비스트와 기록관리자는 인권을 기록한 보존기록을 보호하는 기록관리체제를 수립하고 유지해야 하며, 이 인권 보존기록의 관리가 보존기록으로서의 무결성과 증거로서의 가치를 보존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모쪼록 이번 이태원 특조위를 계기로 사회적 기억을 어떻게 형성하고, 관리하고, 활용할 지에 대해 기록인들도 함께 고민하고 방향성을 모색해 가길 바라며, 그 일환으로 지난 2022년 <사회적 참사 기록의 투명한 관리와 법제화 전문가 간담회>에서 조영삼 전 서울기록원장이 제안한 사회적 참사 기록의 접근과 열람 방안을 주목해 보았으면 한다. ‘기록관 또는 자료관’(Archives)의 설치·운영을 관련 법령에 반영하여 피해자에 기반한 아카이브 구축, 아카이브의 접근권 보장, 기록의 사회적 재맥락화(수집에서 접근까지 모든 기록관리의 절차와 방법을 피해자 중심으로 재구성)' 등을 실현해 가자는 의견에 대해 다시 한 번 공론화 할 수 있는 장이 열리길 기대해 본다.

마지막으로 지난 4월 세월호 참사 10주기를 앞두고 세월호 가족, 생존자, 형제자매의 육성을 기록한 책 <520번의 금요일>, <봄을 마주하고 10년을 걸었다> 출간을 알리는 기자간담회에서 단원고 2학년 5박성호군 누나가 밝힌 소감을 옮기며 글을 마무리 한다.

“참사를 둘러싸고 누군가는 정의와 단죄를 말하고 누군가는 회복과 화해를 이야기하지만, 그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 기억과 기록이라고 하더라고요. 세월호가 제대로 기억되고 기록돼야 또 다른 참사의 재발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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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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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구별여행자

    0
    2 months 전

    글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의 활동 응원합니다

    ㄴ 답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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