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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추억과 여러 사람의 권리

졸업앨범 열람 요청이 던진 질문

2026.08.04 | 조회 6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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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기록관에서 근무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문의를 받을 때가 있다. 이번 고민은 얼마 전 연달아 받은 졸업앨범 관련 문의 전화 두 통에서 시작되었다.

 

문의 1. “저희 돌아가신 아버지가 진짜 XX대학교 출신인지 확인해주실 수 있나요?”

사연을 들어보니 아버지가 젊었던 시절에는 대학을 졸업한 사람이 흔하지 않았다고 한다. 대학 졸업 후 귀향한 아버지는 살아계실 때 자신이 XX대학교 출신이라는 이야기를 자주 하셨는데, 이를 증명할 만한 자료가 남아 있지 않아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싶다는 문의였다.

 

문의 2. “제가 어렸을 때 형편이 좋지 않아 졸업앨범을 구입하지 못했는데요.”

두 번째 사연은 더욱 마음을 약해지게 했다. 어렸을 때 형편이 어려워 졸업앨범을 구입하지 못했는데, 옛 동기들의 얼굴도 보고 대학 생활을 다시 추억하고 싶다고 하셨다. 비용은 얼마든지 지불할 테니 졸업앨범을 복제해 한 부 보내줄 수 있느냐는 요청이었다.

 

결론적으로 두 분 모두에게 앨범을 공유해드리지 못했다.

첫 번째 문의자와는 추가 정보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연락이 끊겼다. 서로 다른 날 세 차례 전화를 시도했지만 연결되지 않았고, 필요한 신원 및 관계 확인을 진행할 수 없어 문의를 종결 처리를 했다.

두 번째 문의에는 기록관이 보유한 앨범의 수량이 제한적이고, 오래된 앨범을 복제하기 위해 해철하는 과정에서 기록물이 훼손될 수 있다는 이유로 사본 제공이 어렵다고 답했다.

 

전화를 끊은 뒤에도 여러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1. 첫 번째 문의는 정말 유가족이 맞았을까?
  2. 두 번째 문의자의 졸업앨범이 디지털화되어 있었다면 답이 달라졌을까?
  3. 기록관이 고려해야 하는 개인정보와 초상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4. 기록관 내부에서의 열람과 졸업앨범 전체 파일의 제공은 같은 서비스일까?
  5. 이 모든 내용을 고려할 때 아키비스트는 이용자의 요구를 어디까지 들어주어야 할까?

 

첨부 이미지

 


전화기 너머의 이용자

 

첫 번째 문의에서 마주한 문제는 단순히 졸업앨범의 존재 여부가 아니었다. 전화기 너머에 있는 사람이 누구이며, 기록 속 인물과 어떤 관계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우리 기록관은 온라인 아카이브가 없고, 규모가 큰 기록관처럼 외부 이용자가 상시 방문할 수 있는 열람실도 마련되어 있지 않다. 따라서 대부분의 외부 문의가 전화로 들어온다. 

따라서 내부 교직원이 아닌 외부 이용자가 개인정보나 초상 정보가 포함된 기록물의 열람을 요청하면, 이용자의 신원과 요청 목적을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국가기록원의 원내표준인 「NAK/A 16:2011 국가기록물 열람서비스 실무매뉴얼」에서는 기록물 열람서비스를 방문·우편·팩스 열람, 온라인 열람, 정보공개시스템을 통한 열람 등으로 구분하고 있다. 국가기록원에서 비공개기록물을 제한적으로 열람하거나 이해당사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이용자의 신원과 자격을 확인하는 절차가 수반된다.[1]

물론 이 매뉴얼은 국가기록원 내부의 열람서비스를 대상으로 작성된 것이므로 우리 대학기록관에 그대로 적용되는 지침이라고 볼 수는 없다. 다만 외부 이용자의 신원과 이해관계를 어떠한 방식으로 확인하고, 열람 요청을 어떤 절차로 처리할지 판단하는 참고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다.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5조에서도 정보를 공개할 때 청구인 본인 또는 정당한 대리인인지 신분증명서 등을 통해 확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청구인 본인, 법정대리인, 임의대리인에 따라 확인해야 할 서류도 구분되어 있다. 물론 본인이나 대리인 여부를 확인할 필요가 없는 정보라면 그 절차를 생략할 수 있다.[2]

 

첫 번째 문의자는 동문의 자녀라고 주장한 사람이었다. 단순히 문의자의 신분증만 확인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유가족인지, 망인과 어떤 관계인지, 정확히 어떤 정보를 확인하려는지 등을 별도의 서류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가 생긴다.

바로 개인정보 보호법은 개인정보를 ‘살아 있는 개인에 관한 정보’로 정의한다는 점이다. 따라서 이미 사망한 아버지의 졸업 사실 자체를 살아 있는 사람의 개인정보와 완전히 동일하게 볼 수는 없다.

그렇다고 사망한 사람에 관한 기록을 아무런 제한 없이 공개할 수 있다는 뜻은 아니다. 그 기록에는 생존해 있을 가능성이 있는 다른 사람의 이름과 얼굴이 함께 포함되어 있을 수 있고, 망인에 관한 정보 역시 유족의 사생활이나 명예, 다른 이해관계와 연결될 수 있다. 사망 여부만으로 기록의 공개 가능성을 단순하게 판단하기 어려운 이유다.

 

또 한 가지 깨달은 점이 있다.

첫 번째 문의자가 궁금했던 것은 졸업앨범 자체가 아니라 아버지가 실제로 대학을 졸업했는지 여부였다. 그렇다면 반드시 졸업앨범을 열람하거나 앨범 사본을 제공해야만 요청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번 케이스는 1940년대라 학적부가 남아있을 가능성이 없지만, 보통의 경우에는 학적 관련 기록이나 졸업명부가 남아 있는지 확인하거나, 졸업증명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에 문의하도록 안내할 수도 있다.

기록정보서비스에서는 이용자가 처음 제시한 수단을 그대로 제공하는 것보다, 이용자가 궁극적으로 확인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파악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정보를 가장 적게 노출하면서도 그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필요하다. 이용자가 원한 것이 ‘졸업 사실의 확인’이었다면, 앨범 한 권 전체를 보여주는 것보다 졸업 여부만 확인해주는 방식이 더욱 적절하지 않을까?

 


한 사람의 추억과 여러 사람의 권리

 

졸업앨범은 한 사람의 기록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사람의 기록이다. 앨범 한 페이지에는 같은 학과 학생들의 이름과 얼굴이 함께 실려 있고, 단체사진 한 장에도 여러 사람이 등장한다. 누군가는 자신의 젊은 시절을 다시 보고 싶어 할 수 있지만, 당연히 또다른 누군가는 자신의 얼굴과 이름이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용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다.

 

관련 기사를 찾아보니 대학뿐 아니라 중·고등학교 졸업앨범 역시 개인정보 유출과 악용 문제에서 자유롭지 않았다.[3]

졸업앨범에 수록된 이름과 얼굴은 특정 개인을 알아볼 수 있게 하는 정보이므로, 생존한 인물에 관한 것이라면 개인정보 보호법상 개인정보에 해당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졸업앨범이 제작·배포될 것을 전제로 사진을 촬영했다면, 앨범 자체가 졸업생들 사이에서 유통되는 것만으로 곧바로 개인정보 유출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견해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과거에 졸업앨범 제작을 전제로 사진 촬영에 동의했다는 사실이 수십 년 뒤 기록관이 해당 사진을 디지털 파일로 만들어 제3자에게 전송하거나, 온라인에서 제공하는 것까지 동의한 것으로 볼 수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특히 사진이 원래 예상된 범위를 벗어나 영리적으로 이용되거나 불특정 다수에게 재배포된다면 초상권 침해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법원도 사회관계망서비스에 공개된 사진을 당사자의 동의 없이 영업 홍보에 이용한 사례에서, 사진이 공개되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영리적 이용까지 허락한 것으로 볼 수 없다며 초상권 침해에 따른 손해배상책임을 인정한 바 있다.[4]

 

졸업앨범은 개인정보로서 보호해야 할 기록과 일정한 조건 아래 이용할 수 있는 기록의 경계에 놓여 있는 듯하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졸업앨범의 관행이 점차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모든 학생이 졸업사진을 필수로 촬영하지는 않으며, 개인정보 유출에 특히 취약한 주소, 전화번호, 이메일 주소 등도 최근 졸업앨범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디지털화는 만능이 아니다

 

우리 기록관은 거의 모든 연도의 졸업앨범을 보유하고 있지만 연도별 보유 수량이 제한적이다. 오래된 앨범은 제본 상태가 약해 펼치거나 복제하는 과정에서도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당시에는 기록물의 보존을 우선해 앨범 복제를 허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모든 졸업앨범이 고해상도로 디지털화되어 있었다면 어땠을까? 디지털 파일이 있다면 앨범을 해철하거나 반복해서 펼칠 필요가 없으므로 원본 훼손 문제는 상당 부분 줄어든다. 그렇다면 두 번째 문의자에게 사본을 제공할 수 있었을까? 아쉽게도 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기록이 디지털이 되는 순간 새로운 문제가 생긴다. 한 번 전송된 파일은 손쉽게 복제될 수 있다. 이메일로 보낸 사진이 인터넷 게시판에 올라갈 수도 있고, SNS를 통해 예상하지 못한 사람들에게 확산될 수도 있다. 얼굴을 합성하거나 다른 목적으로 재사용하는 것도 실물 훨씬 쉬워진다.

기술은 기존의 문제를 해결해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책임을 만들기 때문에 늘 주의해야 한다. 디지털화는 서비스의 가능성을 넓혀주지만 기록관의 책임을 줄여주지는 않는다. 디지털화가 곧 전면 공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다시 한 번 인지해야 한다.

 

기록관 내부에서 앨범을 열람하는 것과 앨범 전체의 디지털 사본을 전달하는 것도 위험의 정도가 다르다. 직원의 안내 아래 기록관 안에서 실물이나 디지털 이미지를 확인하는 경우에는 이용 범위가 비교적 제한된다. 반면 전체 파일을 이메일이나 저장장치로 제공하면 기록관이 이후의 복제와 재배포를 사실상 통제하기 어렵게 된다.

기록관 내부에서의 감독 열람, 신청자 본인이 등장하는 면의 제한적 열람, 특정 사진이나 페이지만 복제하는 방식, 다른 사람의 이름이나 얼굴을 가린 뒤 제공하는 방식 등 여러 대안을 검토할 수 있다. 이용 목적과 재배포 금지 사항을 안내하고 확인서를 받는 방법도 가능하다. 물론 확인서만으로 기록의 남용을 완전히 막을 수는 없지만, 기록관이 제공 범위와 이용 조건을 올렸다는 점은 명확히 할 수 있다.

 

세대가 바뀌면서 개인정보와 초상 정보의 활용에 민감한 분위기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와 기관마다 판단은 다를 수 있지만, 질문을 거듭할수록 기록을 제공했을 때 얻는 이익보다 남용되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피해를 더 조심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선의가 아닌 기준으로 제공하는 서비스

 

기록관에서 일하다 보면 이용자들은 대부분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한다.

“한 번만 부탁드립니다.”

“이번만 예외로 해주시면 안 될까요?”

“비용은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흔들린다. 나 역시 두 번째 문의를 받았을 때 그랬다. 형편이 어려워 졸업앨범을 사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어떻게든 도와드리고 싶었다.

 

그러나 곧 다른 생각이 들었다. 만약 이분에게만 예외를 인정한다면, 다음 이용자에게는 어떤 기준으로 설명해야 할까? 기록관의 서비스는 담당자 개인의 선의에만 기대어서는 안 된다. 누구는 사연이 안타까워서 허용하고 누구는 그렇지 않아서 거절한다면 공정한 서비스라고 말하기 어렵다.

물론 가장 좋은 방법은 졸업앨범을 보존 목적에 맞게 디지털화하고, 신청자의 신원과 이용 목적을 확인한 뒤 가능한 범위에서 열람을 제공하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졸업앨범 디지털화는 한정된 예산과 인력을 고려할 때 당분간 우선순위가 되기 어렵다. 또한 직접 방문해 제한적으로 열람하는 것과 디지털화한 전체 파일을 제공하는 것은 다른 문제이므로, 파일 공유 여부에는 더욱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또한 요청을 전부 수용할 수 없더라도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고, 가능한 다른 방법을 안내하는 것 역시 기록정보서비스의 중요한 부분이다. 선의는 모든 요구를 들어주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용자가 납득할 수 있도록 판단 과정과 가능한 대안을 설명하는 전문성에 있을지도 모른다.

 


좋은 아키비스트는 어떤 사람일까?

 

처음에는 우리 기록관에 들어오는 모든 열람 요청을 해결해주고 싶었다. 원하는 기록물이 없거나 절차상 도움을 드리지 못할 때면 괜히 죄송스러웠고, 동문에게까지 신원 확인과 열람 절차를 요구하는 일이 불필요한 행정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기록을 쉽게 보여주는 것만이 좋은 서비스는 아니다. 한 사람의 이용 편의뿐 아니라 이 기록을 둘러싼 다른 사람의 권리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좋은 아키비스트는 친절과 공정 사이에서 일관된 기준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이용자의 사정을 듣되 판단은 기준에 따라 하고, 요청의 목적을 파악해 필요한 정보를 가능한 범위에서 안전하게 제공하는 아키비스트가 좋은 아키비스트 같다. 그 판단의 근거와 과정도 기록으로 남기고 공유한다면 더욱더 좋다. 그래야 개인의 경험이 조직의 기준이 되고, 다음 이용자에게도 일관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으니까.

이번 고민은 졸업앨범 한 권으로 시작했지만, 기록을 누구에게, 어디까지, 어떤 방식으로 보여줄 것인지 고민할 수 있어서 뜻깊었다. 졸업앨범 하나로도 이렇게 생각할 이슈가 많다니, 오늘도 크고 작은 결정을 내리는 모든 아키비스트 분들이 존경스럽다.

각주

  1. [1] 국가기록원, 「NAK/A 16:2011(v1.0) 국가기록물 열람서비스 실무매뉴얼」, 2011.
  2. [2] 「공공기관의 정보공개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5조(정보공개 시 청구인 확인).
  3. [3] 연합뉴스, 「[이래도 되나요] 이제 와 다 회수할 수도 없고…졸업앨범서 줄줄 새는 개인정보」, 2021. 3. 14.
  4. [4] 서울중앙지방법원 2016. 7. 21. 선고 2015가단5324874 판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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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일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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