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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

나의 이름은

차라리 아키비스트가 우리말이라고 우기는게 낫겠어

2026.08.06 | 조회 5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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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rom.
열정적인껍데기

 

아키비스트라운지 두 명의 에디터가 매일 나누던 카톡, 그 속에는 기록전문가로서의 고민과 솔직한 속마음도 날 것으로 담겨 있었습니다. 그렇게 쌓인 대화 중 밖으로 꺼내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건져내 보았습니다.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기록연구사, 기록전문가, 아키비스트. 우리를 지칭하는 말은 많습니다. 아카이브라는 말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하여 곳곳에 사용되고 있지만, 우리에 대한 소개와 자세한 설명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우리는 어디서, 어떤 일을 하는 사람들일까요?


아키비스트라운지 블로그, 아키비스트가 말하는 아키비스트 인터뷰시리즈 서문

 

 

To. Bloom

 

우리가 인터뷰시리즈를 시작하면서 썼던 서문이야. 포스팅 날짜가 2017년 8월 9일이니 곧 9년을 꽉 채우게 되네. 9년이라니! 시간이 벌써 그렇게 지난 것도 믿어지지가 않아. 2026년 8월에 썼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만큼 명칭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랍지는 않지만 슬프고.

 

오래되어 잊고 있었는데, 직장을 옮긴 2021년에는 호칭 문제를 본격적으로 마주하게 되기도 했네(아키비스트 라운지 리뷰시리즈 '뭐라고 부르면 될까요?' 참조). 모두가 모두에게 'OO샘'이라고 부르던, 다른 직원과 동일한 직렬로 입사해서 일했던 직장에서는 딱히 생각해본 적 없는 일이었지. 처음에는 나를 뭐라고 불러야 할 지 모르겠어서 당혹스러워하던 직원들도 이제는 나를 '연구사님'이라고 부르는 것에 익숙해진 것 같아. 

 

몇 년만 더 지나면 무려 20년차 기록연구사가 되는 지금[1]​, 여전히 나를 이상하게 - 그 예시들을 쓰다가 지웠어 - 부르는 사람들이 없지는 않지만 이제는 내가 신경쓰지 않게 되었어. 경력증명서에만 '기록연구사'라고 깔끔하게 쓰여 있으면 된거지 하는 마음이야.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이라는 말은 나에게는 법적 자격 명칭일 뿐 호칭으로 작용하지도 않고. 그런데 마침 그렇게 마음을 잘 다스리고 있을 때 국가기록원의 명칭 변경 설문이 왔지 뭐야. 

 

첫 번째 설문은 2025년 6월이었어. 후보안은 (1)기록관리사 (2)기록정보관리사 (3)기록관리정책전문가 (4)기록연구사. 이 때 후보안 선정 이유와 장단점 설명을 보면서 물음표를 그리다가, 다행히 주관식란이 있길래 피드백을 남겼어. 그 후로 설문 결과에 대한 문서가 오거나 어딘가에 공개된걸 찾지는 못했고. 그렇게 한 해가 넘어가길래 후보안이 도출된 과정 자체에 대한 문제 제기를 나만 한 건 아니었나보다, 그대로 다수결로 정하고 진행하기에는 애매했나보다 하며 백지화가 되었을거라고 짐작했지. ​ 

 

그게 아니었다는걸 올해 5월에 별안간 다시 온 설문 요청 문서를 보고 알았어. 아니 그런데, 이번에는 작년보다는 더 간단하게, 의견란도 없이 객관식 설문으로만 구성했더라? 1차와는 후보안에도 변화가 있었는데 왜 어떤 명칭은 삭제하고 어떤걸 새롭게 올렸는지에 대한 언급 없이, 그냥 국명문 명칭과 간단한 설명만. 다행히 이 설문은 아직 오래 되지는 않아서 '국민생각함' 홈페이지에서 설문 결과는 찾아볼 수 있어. 설문 응답자는 47명. 공문으로 받은 QR을 찍어서 응답한 기록연구사들의 수도 포함되어 있는건지 별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합친다고 해도 이 설문이 2025. 12. 기준 총 3,355명[2]​인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자격 보유자들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을까? 공공부문에 배치된 기록연구사만 해도 1,111명[3]​인데, 전문요원 미배치 기관은 설문 대상에서 제외한 조사에서 응답자 수가 이렇게 적을 땐 무응답의 의미를 먼저 찾아줬으면 좋겠다. 

 

 

'행정안전부의 의견정리: 총 투표자 47명 중 기록정보관리사 27명으로 57.4% 선택하였고, 기록사의 경우 10명으로 21.3% 선호도로 보임. 일반 국민 대상 조사로 기록정보관리사의 선호가 나타남.'
'행정안전부의 의견정리: 총 투표자 47명 중 기록정보관리사 27명으로 57.4% 선택하였고, 기록사의 경우 10명으로 21.3% 선호도로 보임. 일반 국민 대상 조사로 기록정보관리사의 선호가 나타남.'

 

아니 근데 나 정말 궁금해. 국가기록원은 혹시 국가데이터처 표준직업분류와 고용노동부 고용직업분류에는 우리가 뭐라고 되어 있는지, 한국연구재단 학술표준분류에는 기록학이 기록'학'이라고 되어있기는 한 지는 관심이 없는건가? 타부처에서 관여하는 공식적인 분류체계들을 먼저 살펴봤다면 (당사자들이 뭐라고 하든) 이미 있는 용어를 그대로 가져다 쓰는게 차라리 공공기관스럽긴 하잖아? 중앙기록물관리기관으로서 역할을 하려고 하면 기록관리와 기록학을 독립적인 업무와 학문으로 분리시키는 방안을 먼저 고려했을 것 같은데. 그러고 보니 처음 국가데이터처 표준직업분류에는 어떤 과정을 거쳐서 '기록물 관리사[4]​'라는 이름으로 들어가게 된걸까. 

 

또 알고 싶어. 이 설문조사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관련된 논문을 찾아보거나 학계 의견을 수렴하지는 않았던건가? 새로운 명칭 제안을 포함해서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제도에 대한 개선 방안을 연구한 논문[5]​이 2025년 4월에 나왔는데, 그 연구에서 제안한 명칭은 1차 설문에도 없었다는 것도 의아했어. 2025년에도 2026년에도, 후보안으로 제시한 명칭이 어떤 과정을 통해 도출되었는지가 제시되어 있지 않아서[6]​ 응답을 하기가 정말 어려웠거든. 올해에는 아예 창을 열었다가 닫았고.

 

그리고 '기록물관리 전문요원'은 자격의 이름인데, 명칭도 중요하지만 더 심각하게 생각해야 할 건 그 자격을 가진 사람들이 기관에 들어갔을 때 그 조직의 직급 체계 안에서 어떤 위치에 들어가고 어떻게 불릴지에 대한 문제 아닌가. 저 명칭 그대로 사용하는 조직들도 있는 것 같지만, 내가 있는 기관만 해도, 자타공인 전문직 종사자들 - 변호사, 회계사, 개발자, 박사 연구원 등 - 은 경력과 위상에 부합하는 직급과 호칭을 받지 '변호사'로 불리지는 않거든. 

 

 

 

엄마는 무슨 일을 해? (대화 맥락상 직업명을 묻는 질문)

 

 

'슈퍼영웅'과 '공주님'을 지나, 이젠 '아이돌', '보석 디자이너', '판사'가 되고 싶다는 아이가 나에게 물어. 솔직히 처음 질문을 들었을 땐 기록연구사라고 하면서도 어버버 했던 것 같아. 또 물어보면 '아키비스트'라고 대답하려고 해. 법적인 명칭이 어떻게 바뀌든, 아마도 앞으로도. 내가 하고 싶었던 그 아키비스트로서의 일은 일단 지금 여기에서는 할 수 없긴 한데, 하여튼 내 마음은 그래. 아니 근데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아키비스트'를 실제 내가 하는 일이 아닌 내 마음 속 지향점으로 삼아야 하는거야? 아직도 '아키비스트'와 '레코드매니저'에 대한 우리말을 찾지 못했다면, 그냥 아키비스트가 우리말인걸로 합의했으면.

 

<끝>

각주

  1. [1] 내가 몇년차인지 인지할 때 마다 이런 생각을 해. 내 연차에 부합하는 난이도의 일을 하고 싶다. 물론 그에 합당한 보상과 함께.
  2. [2] 2026 국가기록원 주요통계(2025.12.31. 기준) https://www.archives.go.kr/next/newdata/periodicalDetail.do?board_seq=103225&page=1&keytype=&keyword=
  3. [3] 위 통계자료.
  4. [4] 본문에는 끝까지 쓰고 싶지 않았는데 결국 쓰게 되었다.
  5. [5] 김장환 and 황진현. (2025). 기록물관리 전문요원 제도에 대한 법·제도 개선 방안 고찰. 기록학연구, 84, 89-131.
  6. [6] 기록학 이론에서 늘 말하는게 '맥락의 중요성'인데, 공공기관의 업무 프로세스에서 맥락정보는 주로 의도적으로 사라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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