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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 시몬 베유의 서신 기록을 읽어주는 AI에 부쳐

2026.05.29 | 조회 47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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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몬베유

  마감을 한번 놓친 터라 이번 마감은 꼭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이렇다 할 글감을 찾지 못했다. 그러다 문득, 내 필명이 시몬 베유인 것을 떠올리고, 일기와 서신 기록으로 세상에 알려진 이 철학자의 기록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시몬 베유 @Wikimedia Commons
시몬 베유 @Wikimedia Commons

 

 이 대단한 철학자를 내가 어찌 소개하리. 제미나이와 대화를 나누고, 그 글을 기고해보기로 했다. 프랑스의 실천적 철학자 시몬 베유(Simone Weil)는 안락한 강단을 떠나 공장으로, 내전의 참호 속으로 뛰어들었던 인물이다. 그녀가 삶의 자리를 바꾸며 남긴 편지와 노트들은 그녀의 사상적 궤적을 쫓는 가장 중요한 문헌학적 나침반이기도 하다.

 

 제미나이(프로)에게 시몬 베유의 서신 기록 연구를 위해 실제 아카이브를 탐색하고 싶다고 했다. 그녀는(?) 프랑스 국립도서관(BnF)의 갈리카(Gallica) 디지털 아카이브를 추천해주었다. 주요 서신 기록 및 아카이브 현황, 디지털 열람방법, 스터디를 위한 거라니 문헌학적 연구를 위한 다음 단계도 제안해준다. 추천 검색 키워드는 ‘Fonds Simone Weil’ 과 ‘Cahiers Simone Weil manuscrits’ 였다. 

 

 기록검색 전에 먼저 시몬 베유의 생애 연표를 근거와 함께 확인하고 싶었다. 다음은 제미나이가 제시한 생애연표다.

 

시몬 베유 생애 연표
시몬 베유 생애 연표

 

 연표의 근거로 제시한 것은 스탠퍼드 철학백과사전, 프랑스국립도서관, 서한집<신을 기다리며>, 그녀의 전기 등 이었다.  교차 검증도 인공지능이 해주는 시대. 본격적으로 서신 기록이 등장하는 시기와 대상을 물었다. 아직은 불안해서 근거 자료마저 직접 들어가 확인해보기는 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는 의심조차 하지 않고 이 모든 지식을 신뢰하는 때가 오겠지. 베유의 생애 연표를 바탕으로 생애를 편지의 수발신자가 교체되는 지점을 고려하여 시기를 다시 구분해달라고 했다.  그리고 생애연표의 명명에 어울리는 대표 기록물을 하나씩 선정하고, 선정 근거를 제시해달고 했다. 

 

7개의 시기 구분과 대표기록 선정 및 선정사유 
7개의 시기 구분과 대표기록 선정 및 선정사유 

 

 순식간에 1920년대 고등사범학교 시절 스승인 철학자 알랭(Alain)과 나누었던 치열한 학문적 서신부터, 1934년 알스톰 공장에서 프레스 기계를 돌리며 기록한 「공장 일기(Journal d'usine)」, 1936년 이념의 적대자였던 우파 지식인 조르주 베르나노스(Georges Bernanos)에게 보낸 내전의 비극적 고백, 그리고 1940년대 마르세유에서 페랭 신부와 주고받은 영적 교감의 기록을 들며 맥락화 했다. AI 관점으로 문서의 역사적 가치와 사상적 전환의 증거, 그리고 아카이브적 물성(物性)이라는 세 가지 엄격한 기준을 스스로 세워 각 시기를 대표하는 핵심 문헌을 골라낸다. 출판용으로 매끄럽게 다듬어진 원고가 아니라, 지우고 다시 쓴 흔적(ébauche)이 가득한 초안이야말로 사유의 궤적을 보여주는 진짜 기록이라는 문헌학적 통찰까지 곁들인다.

 

 직접 갈리카(https://gallica.bnf.fr)에 들어가 Simone Weil로 검색했다. 개인적으로는 제시해준 키워드보다 이름으로만 검색하는게 정확도(?)가 더 높았다. 모바일 탐색도 용이했고, 시몬 베유의 메뉴스크립트는 저작권이 만료되어 무료 다운로드도 가능했다. 

 

갈리카 모바일 열람화면
갈리카 모바일 열람화면

 

 메뉴스크립트의 일부를 캡쳐해서 해석을 요청해 보았다. 각각을 정의하고 원문 전사, 해석, 기록의 의미를 읽어낸다. 텍스트가 아닌 것은 이미지 자체도 해석한다. 이미지 귀퉁이의 산스크리트어로 쓰여진 텍스트를 읽어 시몬 베유의 이력과 더불어 그녀가 프랑스어 뿐만 아니라 고대그리스어, 라틴어, 산스크리트어, 독일어와 영어에 능통했음을 설명한다. 메뉴스크립트를 보니, 시몬 베유의 책을 읽을 때와는 확실히 감흥의 깊이가 다르다. 비록 전자 문서로 보는 그녀의 필체이지만, 그녀가 정말 한 시대를 살고 있었던, 살아있는 사람이었다는 감각이 더 깊게 전해진다. 프랑스어와 산스크리트어와 독어로 쓰여진 각각의 문서를 쉽게 해석할 수 있다니, 놀랍고 짜릿했다. 마지막 2개의 이미지는 독일어로 시몬 베유가 괴테의 파우스트 2부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아리엘의 노래를 필사한 기록이 담겨있다. 놀랍고 짜릿하지만, 무언가 너무 간편하고 손쉽게 내 사고의 과정과 품이 줄어서 이것이 내게 남을까 하는 의구심도 든다. 기록의 분류와 선별과 해석이 아키비스트의 일이라면, 앞으로 우리는 무엇을 하나. 

 

 인공지능이 아키비스트가 해야 할 일을 다해주는 시대에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또 제미나이에게 묻는다. 스스로 생각해야 할 것을 제미나이에게 묻는 것은 아닐까 하고 또 의심. 그렇지만 일단은 묻기. 다음은 인공지능 시대에 아키비스트가 실무적으로 어떤 과제를 직면하고, 인공지능과 함께 일하기 위한 사고형 질문을 뽑아본 것이다. 물론 답도 받았다. 

 

Q1. 시몬 베유의 낡은 서한과 노트(수고)들을 아카이브로 최초 이관받았을 때, 실무 아키비스트가 가장 먼저 직면하는 '문헌학적·기록학적 과제'는 무엇인가? 

Q2. 흩어진 낱장의 맥락을 찾고 난해한 흘림체를 전사(Transcription)하여 기술(Description)하는 과정에서, 인공지능(AI)은 아키비스트의 실무에 구체적으로 어떤 기술적 기여를 할 수 있는가? 

Q3. AI가 대량의 필기 전사와 엔티티(Entity) 추출까지 수행한다면, 이러한 '플랫(Flat)한 텍스트 데이터'만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기록물의 '물성'과 '수정 흔적'은 실무적으로 어떻게 통제하고 기록해야 하는가? 

Q4. 물리적 궤적과 생성 맥락까지 구조화된 메타데이터로 편입했다면, 이렇게 고도화된 아카이브 데이터를 바탕으로 아키비스트는 베유의 기록을 어떻게 '평가(Appraisal)'하고 대중 및 연구자에게 '서비스'해야 하는가? 

Q5. 고도의 자동화 도구(AI)와 지적 통제(메타데이터 구축 및 큐레이션)가 결합된 현대의 아카이브 환경에서, 궁극적으로 기록전문가(Archivist)는 어떤 실무적 역할로 자리매김하게 되는가? 

 

 답변을 요약하자면, 데이터 발굴자에서 감응의 큐레이터가 되어야 하며, 동시에 AI가 아카이브의 접근성과 처리 속도를 극대화할수록, 데이터가 문맥을 잃고 자의적으로 인용되거나 오독 될 위험성을 지적하며 파편화 된 데이터의 신뢰성을 담보하는 '맥락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고.

 

 시몬 베유는 그녀의 철학에서 '주의력'이라는 개념을 매우 중요하게 다루었는데, 그녀에게 진정한 주의력이란 고통받는 타인을 향해 자아를 비우고 스스로를 열어두는 가장 높은 형태의 집중으로서 '사랑'이라 정의된다. 아키비스트의 역할이란 이 ‘주의력’과 결부되는 것일지 모르겠다. 흘려보내지 않고, 기록을 대하는 아키비스트도, 기록을 읽는 이용자도 시몬 베유의 메뉴스크립트를 대하며, 그 속에 담긴 ‘사랑’에 집중하는 것 자체. 그 모든 행위의 과정이 인간의 일이지 않을까. 우리가 일반 문서 기록 속에서, 생산과 폐기의 대상인 일상의 무수한 기록 속에서 '사랑'을 발견하는 일은 쉽지 않지만, 그 모든 기록의 원래의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묻는 것, 자동화된 모든 것에서, 그냥 흘러가지 않도록 하는 행위가 아키비스트의 몫인 것 같다는 생각. 

 

 그녀의 기록들이 너무 매력적이라서 드는 생각 같기도 하다. 그녀의 노트들(<중력과 은총> 같은)의 매력은 정말 그것이 정말 '날 것'이라서, 그 날 것의 '있는 그대로의 과정'을 지켜볼 수 있는 기록이기에 남다르다. 더욱이 재가공된 책이 아니라, 진짜 그녀가 써내려간 메뉴스크립트라면 마음이 더 동하게 된다. 그녀는 자기를 위한 일기 이기에 글을 아름답게 정리하려 하지 않았고, 자신의 삶을 그럴 듯한 이야기로 포장하지도 않았다. 다만 자신의 생각이 어디까지 진실한지 끝없이 의심한다. 자신의 진실함을 의심하고, 질문하고, 더 진실해지도록 구도하는 이의 훈련으로서의 기록. 기억으로서의 기록이기 보다 사고와 영적 교류 현장의 생생한 기록. 완결된 문장보다 파편적인 메모들. 그래서 그녀가 남긴 기록 속에는 기도문과 철학적 단상, 노동에 대한 관찰과 신에 대한 침묵이 한 페이지 안에서 뒤섞여 있다. 생각이 뻗어나가는 속도를 채 손이 따라가기 바쁘게,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써 내려간 메모들. 그 덕분에, 그렇게 살아남은 메뉴스크립트 덕분에, 시몬 베유가 끝내 붙잡고 있었던 질문과 영감이 지금의 우리에게도 닿을 수 있었다.

 

 너무나 많은 정보와 그것들을 전달하고 주입하고 홍보하기 위헤 쏟아지는 수많은 쇼츠와 릴스들, 빠르게 소비되는 텍스트, 콘텐츠들 앞에, 이렇게 한참을 들여다 보아야 이해할 수 있는 메뉴스크립트의 가치는 더 커지는 것 같다. 빨리 읽어낸다고 깊게 읽어내는 것은 아님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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