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동품과 기록물
나는 바이닐(Vinyl)을 모은다. 오래된 매체로 음악을 듣는 고루한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수집의 더 근원적인 동기는 '골동(骨董)' 그 자체에 있었다. 수집가들은 왜 오래된 물건에 천착할까. (모든 수집가를 대표할 수는 없지만) 내 경우를 놓고 생각해 보면, 손때 묻은 물성을 매개로 그 물건이 만들어지던 당대의 시공간에 접속할 수 있다는 것이 골동의 매력이다. 내가 좋아하는 음반의 초판을 어루만지며, 그 당시 레코드판을 찍어낸 프레싱 기술, 바이닐 커버의 새겨진 문구와 디자인 등을 보면서 내가 태어나지도 않았던 과거의 어느 한 순간을 상상해본다. 나에게 골동이란 과거의 어떤 순간을 잠시라도 다녀오게 돕는 일종의 토템과도 같다.
기록물에 매료된 이유도 다르지 않았다. 고백하자면 내가 아카이브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사료를 통한 거시적 역사 연구나 기억의 복원 같은 명분에 있지 않았다. 기록물이라는 토템을 통해 당대의 현장에 접속하고 그 물리적 결을 읽어내는 직관적인 감흥이 나를 더 매료시켰다. 나를 붙든 것은 텍스트 이전에, 기록물이라는 인공물이 발산하는 물질성과 형태였다.
오늘의 시선으로는 생경한 이 단어와 문장은 어떤 절차 속에서 기재되었을까. 양식과 격자는 어떤 제도의 궤적을 그리며 고안되고 변형되었을까. 이 공문서가 찍혀 나오던 당시의 기술 수준과 사회적 표상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타자기로 문서를 만들고, 문서에 펜으로 낙서를 하고, 그것들을 서고에 분류하고 보존해 온 이들은 대체 누구였을까.
나의 고루한 취향에도 계보가 있다는 것은 한참 뒤에 알았다. 『치즈와 구더기』의 저자로 유명한 카를로 긴즈부르그의 다른 저서 『실과 흔적』에서는 과거의 역사서술이 골동품 연구에 꽤 많은 것을 빌려 왔다고 서술한다. 비문자 증거를 이용해 종교와 정치, 행정제도와 경제에 관한 사실을 복원하려 했던 골동품 연구가(antiquario)들이 역사 서술의 방법에 공헌했음을 말한다.[1]
기록물 감상
그동안 아카이브 서고의 기록을 세상에 내놓는 방식은 주로 열람과 해제였다. 열람을 위해 기록에 붙는 것은 생산연도와 생산자를 포함한 몇 줄의 메타데이터, 그리고 건조하게 작성된 짧은 기술이다. 메타데이터와 기술(사실 이마저도 한국의 아카이브에서는 제대로 되어있지는 않은 형국이지만)은 열람자에게 내가 원하는 기록물을 탐색할 수 있도록 편의를 주지만, 그 기록을 메타적으로 이해하도록 돕지는 않는다. 과감하게 말하면 열람 서비스는 기록을 과거의 특정 시점에 동결된 정적인 증거물로 가두어 버린다. 기록물 자체의 맥락을 이해하는 일은 온전히 열람자의 몫이다.
그렇다면 해제는 어떠할까. 보통 기록물 해제(혹은 콘텐츠)는 사건을 중심으로 접근한다. 해제 안에서 기록물은 특정 기록에서 연구하려는 사건의 증거를 찾아내거나, 이미 완료된 연구에서 그 기록이 어떤 가치를 갖는지를 밝히는 데 활용된다. 사건을 중심에 두면 기록물은 과거에 일어난 일을 증언해 주는 참고 자료로 소비되고 만다.
열람과 해제가 결국 기록물을 정적인 증거물 안에 가두어 버리는 것은 아닐까. 내가 바이닐이라는 골동품을 즐기듯, 기록물 그 자체가 주인공이 되는 길은 없는 걸까. 기록물을 온전히 중심에 놓는 어떤 행위가 필요한 시점이다. 다만 이 행위에 무슨 이름을 붙여야 할지는 여전히 망설여진다. 해제는 지나치게 수동적이고, 논평은 특정 이슈에 주객이 전도되기 쉽다. 비평 역시 대상을 평가한다는 점에서 조금은 무겁고 과하다. 그래서 이 글에서는 우선 '감상'이라는 단어에 기대어 보려 한다. 기록물이라는 인공물이 머금은 생명력을 '감상'할 때, 비로소 대상을 향한 우리의 시선도 한층 다정해질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감상이라고 해서 떠오르는 인상을 늘어놓겠다는 뜻은 아니다. 그림이나 음악을 감상하는 일이 그러하듯, 오래 들여다보려면 무엇을 볼 것인지부터 알아야 한다.
기록을 감상하는 법
막상 기록물 감상을 해보겠다고 마음먹으니 막막했다. 기록물 감상이란 대체 어떻게 하는 것일까. 우선 그것이 왜 필요하며, 기존의 해제나 역사 연구와는 어떻게 구별되어야 하는지부터 따져보기로 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기록은 생산에서 수집과 평가, 활용에 이르기까지 철저히 정치적이다. 기록은 대개 행정의 결과로 축적되지만, 행정은 완전히 중립적일 순 없으며 당대의 권력관계를 반영하고 있다. 수집과 평가, 폐기 단계도 다르지 않다. 방대한 문서 더미에서 무엇을 남기고 버릴 것인가를 정하는 선별 과정 자체가 이미 정치적 행위다. 나아가 연구자가 특정 기록을 골라 해석하는 방식 역시 그 정치적 맥락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둘째, 기록을 활용한 연구에 앞서 기록 자체의 생산 맥락을 헤아리는 노력이 여전히 부족하다. 사료를 활용해 역사적 사실을 입증하려는 시도는 수없이 많지만, 이 기록물이 하나의 기록으로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그리고 그 원형 자체로 어떤 의미를 품고 있는지를 짚어내는 작업은 생각보다 희귀하다. 한국의 기록학 연구가 실무는 행정학에, 활용은 역사학에 뿌리를 두고 출발한 탓일까. 정작 기록 그 자체를 주인공으로 삼는 자리는 비어 있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기록물 감상을 어떻게 하여야 할까. 이 질문을 붙잡고 꽤 오랫동안 진지하게 고민을 거듭했다. 무작정 기록물 감상을 하기 전에, 기록물 감상이란 과연 무엇이며 어떤 관점으로 기록물을 읽어내야 하는지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기준과 프레임이 선행되어야 했기 때문이다. 다음은 완전하지 않지만 지금까지의 고민의 결과다.
하나, 행위를 감상한다
감상의 대상을 종이 위에 고정된 사건(Event)에서 기록하는 행위 그 자체로 옮겨 오는 것이다. 사건을 중심에 두면 기록물 감상은 역사 개설서나 시사 해설의 요약본으로 전락하기 쉽다. 그러나 기록을 완성된 결과물이 아니라 당대의 인간들이 개입한 실시간의 행위로 다시 놓는 순간, 기록물 감상만이 할 수 있는 질문이 생겨날 수 있다.
기록하는 이는 왜 특정한 언어와 어조를 골라 문장으로 정제했는가. 말하는 자는 자신의 지위와 의도를 관철하기 위해 어떤 수사를 동원했는가. 타협과 갈등의 막전막후에서 특정 문서의 어떤 문구가 삭제되고 새로 덧붙었는가. 회의장의 비언어적 상황을 문자라는 틀 안에 가두기 위한 속기사의 손끝은 어떻게 움직였는가. 문서 위의 수정액과 붉은 펜 아래 지워진 오타, 회의록 뒤편에 남은 버려진 말과 침묵은 모두 기록물에 남은 행위의 흔적이다. 텍스트를 넘어 이 미시적인 흔적과 소음을 추적하면 정제된 문서 뒤에 있던 사람들의 역학관계와 기록 생산의 현장성이 드러날 수 있다.
둘, 매체의 물성을 감상한다
두 번째는 텍스트 이전의 물성과 기술적 조건을 해독하는 일이다. 바이닐의 소리골이 바늘과 마찰하며 소리를 만들어 내듯, 기록물 역시 단순히 정보가 적힌 종이가 아니라 정보를 수집하고 정제하여 출력하던 당대 제도의 정보 처리 방식으로 읽어내야 한다.
종이의 질감과 규격, 속기 타자기의 타격감, 조판과 인쇄 사이에 존재했던 물리적 시차, 서식의 격자가 강제하던 양식적 제약은 모두 당시의 기술 수준을 증언하는 물질적 기호다. 이러한 관점을 통해 텍스트의 해독을 넘어, 공식 기록을 생산하고 유지하는 과정에 투입되었던 속기사, 타자수, 아키비스트의 미시적인 노동을 복원해낼지도 모른다.
이영준은 『기계비평』에서 테크놀로지를 단순한 기술 그 자체로 이해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기술이 사회와 어떻게 맞물려 있는가를 인문학적으로 비평한다.[2] 이는 일찍이 볼프강 쉬벨부쉬가 『철도여행의 역사』에서 철도라는 운송수단이 인간의 일상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를 서술한 방식과 닮아 있다.[3] 기록물 감상 역시 활자 조판 과정의 기술적 타협, 서식 규격화 같은 장치와 노동에 대한 분석을 끌어안을 때, 비로소 기록물 고유의 물질성에 한 걸음 더 다가설 수 있을지도 모른다.
셋, 기록이 탄생한 배경을 감상한다
세 번째는 기록이 수면 위로 출현할 수 있었던 사회적 배경과 생성 맥락을 살피는 일이다. 진공 상태에서 태어나는 기록은 없다. 나는 최근 일본군'위안부' 문제를 연구하는 임경화 교수의 글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는 1975년에 나온 오키나와의 배봉기 증언 그 자체에 그치지 않고, 그 증언이 세상 밖으로 드러날 수 있었던 배경에 주목했다. 배봉기의 증언에 앞서 1960년대 말부터 전개된 오키나와전투 체험 기록 운동, 그리고 오키나와 반환 직후인 1972년에 결성된 조선인 강제연행 진상조사단의 활동이 있었기에, 1991년 김학순의 증언보다 무려 16년이나 앞서 배봉기의 증언이 출현할 수 있었음을 연구를 통해 밝혀낸다.[4]
기록물 감상 역시 마찬가지여야 한다. 단순한 기록의 텍스트를 넘어, 그 기록물이 왜 하필 그때, 그러한 형태로 만들어졌는가 하는 질문이 다루어져야 한다. 어떤 사회적 요구와 제도적 균열이 닫혀 있던 입을 열게 했는가. 왜 특정 시기에 특정한 유형의 기록이 집중적으로 수집되었으며, 반대로 어떤 기록은 오랫동안 서고 속에 묻혀 있어야만 했는가.
기록물 감상 방식으로 글을 다시 쓴다면
몇 해 전 나는 서울기록원에 「'빽판'과 레코드샵의 흥망성쇠」라는 짧은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5] 취미와 업이 만난 드문 기회여서 쓰는 내내 즐거웠지만, 지금 돌이켜보면 그 글은 기록 해제라기보다는 그저 통사에 가까웠다. 규제가 없던 빽판의 시대가 있었고, 1971년 음반법 개정으로 등록된 음반점이 생겨났으며, CD의 등장으로 빽판이 자취를 감추고, MP3의 보급으로 음반점이 사라졌다는 식의 서술 속에서 기록물은 그저 삽화처럼 동원되었을 뿐이다.
그때 내가 감상의 진짜 대상으로 삼았어야 했던 것은 빽판과 레코드샵의 흥망이 아니라, 「음반판매업자 등록신청처리철」이라는 기록물 그 자체였던 것 같다. 이 문서철은 왜 태어났으며, 그 안에 수록된 「음반판매업자 등록신청서」 같은 서식은 어떠한 행정적 맥락 속에서 고안되었는가를 이야기했어야 했다.
1971년의 음반법이 등록제를 만들었고, 등록제가 서식을 만들었으며, 그 서식이 마침내 이 문서철을 낳았다. 그러니 이 문서철은 음반점의 역사를 담은 기록이라기보다, 제도가 스스로를 증명하기위해 남긴 흔적에 가깝다. 그렇다면 서식이 무언가를 물었는지 혹은 묻지 않았는지, 그 행위 자체가 중요해진다. 이를테면 당시 시행령은 첨부 서류로 판매업자의 이력서를 요구했다.[6] 음반을 파는 일에 왜 판매자의 살아온 내력까지 파헤쳐야 했을까. 나아가 준수사항으로 규정된 등록증 및 가격표 게시, 대장 비치, 확성기 음량 제한 따위의 조항을 보며, 당대 국가 권력이 동네 음반점의 실내 공간 배치와 시청각적 감각까지 왜 이토록 세세히 통제하려 했는지 질문해야 한다. 단순히 '빽판 단속용이었다'는 건조한 해제를 넘어, 바로 이러한 지점을 짚어내는 구체적인 기록물 감상이 필요했던 것이다.
내가 일하는 기관에서는 매달 기관지를 낸다. 그리고 어쩌다 맡게 된 '이달의 OO기록'이라는 코너를 통해, 기관에서 보존하고 있는 기록물에 관한 에세이를 매월 연재하고 있다. 달마다 새로운 기록을 지면 위로 불러내야 하는 처지라, 마감이 다가오는 월초면 이번엔 어떤 주제를 어떻게 다뤄야 하나 머리를 쥐어뜯으며 깊은 한숨을 쉰다. 하지만 막상 하나의 주제를 잡고 기록물을 찬찬히 읽어 나가다 보면 꽤나 즐겁다. 나에게 기록을 읽는 일은, 바이닐을 턴테이블 위에 가만히 얹어 놓고 커버의 글자를 읽으면서 그 시대를 상상해보는 감각과 맞닿아 있었던 것 같다. 그러니까 이 글은, 앞으로도 기록물이라는 인공물이 머금은 생명력을 읽어내는 '기록물 감상'을 지속해 나가겠다는 고백이자 결심이다.

각주
- [1] 카를로 긴즈부르그, 김정하 옮김, 『실과 흔적: 역사 — 진실한 것, 거짓된 것 그리고 허구적인 것』, 천지인, 2011, 28쪽. 긴즈부르그는 이 대목에서 아르날도 모밀리아노의 논문 「고대사와 골동품 연구」를 인용하고 있다.
- [2] 이영준, 『기계비평: 한 인문학자의 기계문명 산책』, 현실문화연구, 2006. 2019년 워크룸 프레스에서 다시 나왔다.
- [3] 볼프강 쉬벨부쉬, 박진희 옮김, 『철도여행의 역사: 철도는 시간과 공간을 어떻게 변화시켰는가』, 궁리출판, 1999.
- [4] 임경화, 「마이너리티의 역사기록운동과 오키나와의 일본군 '위안부'」, 『대동문화연구』 제112집, 2020, 491쪽 이하.
- [5] 「'빽판'과 레코드샵의 흥망성쇠」, 서울기록원 기록 콘텐츠. (URL: https://archives.seoul.go.kr/contents/recordshop)
- [6] 구 「음반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7조(판매업자등록 신청), 1971. 12. 31. 대통령령 제5936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이어 언급한 준수사항은 같은 영 제9조의2로, 1976년 신설되었다(1977. 3. 22. 대통령령 제8512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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